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먼나라 이웃나라/문제점/중국편

덤프버전 : r20170327




1. 기본
2. 기독교
3. 중국의 지배
4. 문화 정체성
5. 소련군
6. 린바오와 마오쩌둥
7. 중일전쟁 관련 국민당과 공산당에 대한 오해
8. 그 외


1. 기본[편집]


  • 건륭제가 신임한 '희대의 간신' 화신은 가경제의 종용으로 음독 자살했다.
- 실제는 가경제가 능지형을 내리려 하였으나 화신의 며느리인 가경제의 이복누이동생인 고륜화효공주가 간곡히 청하여서 형량을 낮추었다. 화신은 하얀 비단으로 목을 매 자살했다.

  • 영국 의회는 5표 차이로 아편전쟁을 승인했다.
- 실제로는 9표 차이.

- 태후가 되고나서 서태후는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다. 문제는 오탈자가 심하고 악필이라서 독해가 가능한 정도에서 머물렀다는것이지만....

- 서태후가 속한 예흐니라 성씨는 해서여진이라는 지파에 속해있으며 이들은 사르후 전투 이후 누르하치가 이끄는 건주여진에게 패해 흡수당한 파벌이다.

  • 세포이 항쟁이 영국이 인도인 용병들에게 나누어준 총기 관리용 동물 기름이 폭동의 원인이 되었다.
-총기 관리용 동물 기름이 아니라 장전할 때 쓰는 화약 탄포 문제 때문이었다. 자세한 것은 세포이 항쟁 항목 참고.

- 실제 사망일은 1908년 11월 14일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 서태후도 죽는다. 그런데 정작 만화에서는 서태후가 광서제가 죽고 난 뒤 선통제를 세우고 죽었다고 여러 번 설명하고 있다.

  • 중화민국 총통 단기서는 일명 기독교 장군으로 불렸다.
- 실제로 기독교 장군이라 불린것은 풍옥상[1]이었으며, 단기서는 불교도였다.

  • 청교도적 위선에 가득 찬 영국인 운운...
- 공정성 문제는 둘째치고 영국 국교는 영국편에서도 설명했듯 성공회이다. 물론 영국에도 청교도들이 공존하긴 하지만 신도 수를 따져도 성공회가 우위에 있다. 청교도가 우위였으면 메이플라워 호가 북미 땅에 갈 일도 없었을 것이다.

* 만주국 수립에 대해 설명할때 관동군을 광동군이라 써놓았다(...).

  • 중일전쟁 시기 장제스는 대머리인데 머리가 있다.
- 분명 먼나라 이웃나라 한국편의 장제스는 대머리로 그렸으면서 여기선 장제스가 머리숱이 많이 나온다... 한국편 이후로 퇴화된 작화의 일환으로 보자.

* 푸이의 만주국 황제직위 퇴위 후의 삶을 설명할때 이런 맨트가 나온다.'중화 인민 공화국에 포로로 잡혀...' 라고 하는데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라 소련이다.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오히려 푸대접을 해주었다.그리고 푸이는 소련이 1945년 8월 폭풍작전을 수행할때 만주국을 멸망시킨다.그리고 소련군은 푸이를 포로로 잡았다.

  • 연재 당시 마오쩌둥의 고향을 허난 성이라고 표기하였다.
- 실제로는 후난 성이다.

2. 기독교[편집]


  • 지금도 중국의 기독교 인구는 거대한 가마솥에 물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 전체 인구 대비 기독교 인구를 살펴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표현이 과장된 측면이 있고 최근의 중국 기독교 세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견해도 있다. 기독교 국가가 아닌 중국도 현대로 오며 문화개방과 경제성장을 따라 서구 사상과 종교가 더 유입되고 국가 내부적으로도 기독교인 숫자가 성장하면서 지금은 공식(삼자)교회와 지하교회 교인 수를 합쳐 기독교 국가가 아닌 아닌 국가치고는 상당히 많은 2~3천만 이상, 2010년 퓨 리서치 추정과 같은 자료에 따르면 6~7천만 명 정도의 거대한 신자가 있다.[2] 이미 아시아에서는 한국을 능가하며 필리핀을 제외하고 가장 기독교 인구(비율 말고 절대 인구 수로만 치면)가 많은 국가이며, 중국 공산당 정부 당국의 종교규제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세계 순위권을 다투는 기독교 인구대국으로 급성장한다는 예측이 여기저기서 나올 정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전해진다.게다가 한국편에서도 여러번 씩이나 설명한다.

다만 비율적 측면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중국 기독교인이 7천만이라 대단하다고들 하지만 그렇게 치면 인도 기독교인도 3천만에 육박한다. 그러나 인도는 항상 기독교의 세력이 매우 적은 (전 인구의 2.3%) 곳으로 분류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중국 기독교인은 백분율로 치자면 여전히 전체의 2% 내지 잘해야 4~5%에 머물며, 특히 (한국이나 홍콩, 싱가포르 등과는 완전히 대조적으로 사회적 영향력은 거의 전무함을 보면, '거대한 가마솥에 물 한 방울'이라는 것도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가뜩이나 중국은 종교의 자유가 제한된 사회주의 국가라 종교인 특히 '서구 열강 침략의 산물'인 기독교인들은 모래알 같은 형상으로 서로 흩어져 잘 드러나지도 못한다![3] 게다가 그나마 있는 신도의 비율도 저학력, 저소득, 고령층에 다소 집중되고 청장년층 신도의 비율은 전체 인구 1% 남짓의 괴멸적 비율로 일본과 유사하다.[4] 2014년 무렵부터 심해지고 있는 당국의 압박도 중국 교회에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계속 이전과 같이 성장할 것이라는 전제는 신뢰하기 어렵다.

현재까지는 전체 인구 13억(미등록/신고 인구까지 하면 14~15억도 운운하니) 중에 놓고 본다면 전체 인구 대비 기독교 인구 비율(%)로 따지면 국민의 8~90%는 기독교가 아니므로 아마 책에서는 그 점을 얘기하고자 문구를 저렇게 표현한 듯 싶다. (출처:civilization 서양과 나머지 세계/저자:니얼 피거슨)


3. 중국의 지배[편집]


* 중국의 지배는 서양과 달리 무력이 아닌 문화에 의한 교화라는 평화적인 방법을 사용하였다.

-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할 수 있겠다. 우선 고대 로마 제국부터 동,서양 가리지 않고 모든 제국은 자국 문화를 주변 국가에 퍼트려 강제로 교화시키려 하며 중국도 고조선이나 고구려, 베트남, 기타 북방 유목민족들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제국주의적 침략 전쟁도 가리지 않았다. 한국사 책만 봐도 중국의 반도침공 사례가 수도없이 나온다. 베트남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중국 땅에 사는 소수민족들한테 심한 차별을 했으며, 특히 소수민족들이 중국 정부의 차별과 탄압에 분노하여 일어난 반란은 항상 잔혹하게 진압했으며 이를 평화롭게 정벌했다는 평정이라는 말로 왜곡하는 뻔뻔한 짓을 했다. 따라서 중국 역시 서양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라 위구르족과 티베트족이 계속 중국 정부에 저항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장 동북공정만 봐도 그렇지만, 수많은 사서에서 자기네는 무조건 '중화'고 주변 민족은 벌레네 야만인이네 하면서 심지어 그마저도 서로 다르게 불러서 (안타깝게도 참고할 사료가 많지 않은)주변 국가의 학자들이 자국 역사를 연구하기 곤란하게 만들어놓았다.

다만 중국이 어쨌든 북적, 남만, 서융, 동이 방위별로 자기 외에는 다 오랑캐라 하면서 자기 땅에 안주하며 역사적으로 중원 본토 이외로 뻗어나간 적이 서양국가들과 비교하면 많지는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중국이나 한국 일본의 경우를 서양과 비교하여 서양은 뭐든지 조금만 수틀리면 창,칼 들고 쳐들어가 다른나라 공격/멸망시키고 중국의 경우는 조공형식의 간접적 지배를 좀 더 선호하는 편이었고 오랑캐의 천박한 땅이고 중화사상 자기중심주의에 갇혀 외부로 영토를 더 뻗어나갈 생각은 딱히 많이 안했다고 한다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아마 저 책에서도 이러한 부분을 놓고 얘기한 듯 싶다.(서양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좀 덜했다는 얘기라면 딱히 틀린것만은 아니다 물론 침략전쟁을 아예 안했다는 것도 아니지만.)


4. 문화 정체성[편집]


  • 중국은 일본과 달리 제국주의 시대에도 문화 정체성을 잃지 않았고 그것이 21세기에 일본이 방황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수직상승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 이것도 역사의 자의적인 해석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는 중국은 5.4 운동과 문화대혁명에서도 보듯 구습을 타파한다면서 과거의 정체성을 완전히 버리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일본의 메이지 유신도 자세히 보면 서양의 그것을 일본식으로 해석해서 받아들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중국이 21세기에 잘나가고 일본이 주춤하는 이유를 단순히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간단한 명제로 설명할 수 없다. 인구 14억이 넘는 중국의 잠재력이 발휘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 다만, 10억이 넘는 인구의 국가가 크게 분열되지 않은건 자신들이 중국인이라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말이 인도 수준으로 다르다.



5. 소련군[편집]


  • 소련군폭풍 작전으로 동아시아 일대에서 승리자가 되어 우쭐하고 있고 미군이 그걸 보고 실제로 싸운 건 얼마 되지도 않았다면서 못마땅한 눈으로 보고 있다.
- 독소전쟁에서 독일군은 소련군이 강해서 아르덴 대공세같은 예외가 아닌 경우 가급적 동부전선에 병력을 더 많이 투입해서 제2차 세계대전 독일군 전사자의 80% 이상이 독소전쟁 전사자이다 (그러나 영국이 아프리카 전선에서 패했다면 소련이 패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비록 소련군도 유럽의 절반 이상과 베를린을 포함해 독일 영토의 절반을 차지했지만 연합군의 점령지 역시 쓸데없는 아프리카땅을 제하더라도 상당히 넓었고 괜찮은 곳도 많았다. 물론 노르망디나 랜드레스 엘알레마인에서의 승리가 없었다며우 소련도 졌을거다

대신 아시아의 경우는 상황이 반대로 미군이 섬 하나 하나를 먹기 위해 고생한 동안 소련군은 유럽에서 연합군이 그런 것처럼 상당히 손쉽게 만주를 장악했다(당시 만주의 관동군은 무장수준이 만주군보다 못한 정도였다).

그래봐야 이때 당시 관동군은 빈 껍데기인건 맞다-태평양, 중국 전선으로 관동군 정예군들이 모두 빠지고 물자나 보급도 다 다른곳으로 갔다 한마디로 껍데기. 반면 미군은 당시 세계 최강을 다투던 일본해군을 격파했다 빈껍데기에 불과한 관동군과는 비교불가능한 수준....
독소전쟁도 미군의 랜드리스덕이 크다+노르망디에서의 어그로도


6. 린바오와 마오쩌둥[편집]


  • 린뱌오와 마오쩌둥은 소련,미국과의 대외 관계 문제로 인해 앙숙이 되었다?
- 문화대혁명 ③ 린뱌오와 사인방페이지 파트에서 나오는 내용. 하지만 린뱌오 항목에서
보면 알수 있듯이 사실 린뱌오와 마오쩌둥은 대외관계 문제보다는 문화대혁명 이후 내부 권력 재편 문제로 인해 서로간의 이견이 엇갈리면서 앙숙이 되었다.


7. 중일전쟁 관련 국민당과 공산당에 대한 오해[편집]


  • 중일전쟁 때 국민당은 후방에서 방관했지만 공산당은 앞장서서 싸웠다.
- 이 부분을 보면 이원복 교수가 2000년대 전 중국에서 쓰인 사료를 썼다는 걸 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5]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중일전쟁에서 가장 앞장서서 싸운 건 국민당 이고 공산당은 옌안에 틀어박혀 세력만 키웠지만 중일전쟁 이후 국공내전 에서 공산당이 승리 한 이후 국민당의 업적은 지대하게 깎아내려졌다.

그렇지만 2000년대 이후 대륙에서도 장제스와 국민당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장제스는 중국의 근대화와 항일전쟁을 이끌었던 영웅으로 치켜세워 졌고 [6] 2010년대 이후 중국에서 나온 중일전쟁 관련 영화에선 중국군은 공산군이 아닌 청천백일기를 들고 태양 마크를 철모에 붙힌 국부군 으로 그려진다. [7] 최근 중국의 역사교육에서도 국정제->검정제로 바뀌면서 역사교과서에 중일전쟁의 역할에는 국민당 정권이 컸다는것은 분명하게 기술하고 있다.

오히려 중일전쟁 동안 뒤에서 이득만 노리던 건 공산당으로 마오쩌둥이 세력확장에 7할, 2할에 반장 그리고 나머지 1할에 항일 이라 교시했을 정도로 이 부분은 가히 역사는 승자에게 쓰여진다 라는 공식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부분이다. 자세한건 항목참조.

리그베다 위키 시절, 먼나라 이웃나라 및 중국공산당측 주장과 동일한 내용으로 기술 되어 있었다. 아직도 중일전쟁이나 관동군 항목등 관련 항목등을 뒤져보다 보면 먼나라 이웃나라식 기술을 찾아 볼 수 있다. 어쩌면 이책을 읽은 얕은 지식으로 항목을 기술한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 어쨌든 책에서 나오는 만주 에서 장쉐량의 역활과 시안사변, 신4군의 환난 사변 등 중일전쟁에 대한 대부분의 내용은 인과관계가 완전히 틀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일전쟁 내내 심각한 중국공산당 찬양과 장제스/국부군 까로 점철 되어 있는데, 작가의 성향이 보수우익 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아이러니한 부분. 중국공산당측 자료만 뒤져보고 책을 집필 한 것 같다. 먼나라 이웃나라 전체에서 지엽적인 부분은 수많은 비판 사항이 지적되고 있는데, 중일전쟁 파트 처럼 큰 규모를 완전히 오해한 것은 매우 드믈다.

  • 중일전쟁 말기 공산군과 국민당군이 각자 일본군에게 자신들에게 항복할 것을 요구하자 일본군은 둘 다 거부하고 최후까지 저항했다.
- 실제로는 당시 세력이 더 컷던 국민당군에게 항복하기로 결정하고 공산군과는 교전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8. 그 외[편집]


- 실제로는 1998년에 사망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725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725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5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1] 민국 시기 서북쪽을 기반으로 거병한 군벌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기로 유명하다. 광서/광동 군벌들과 함께 장개석 안티로 유명했던 편이었으며, 본인은 문맹이었던 주제에, 자기들 부하들보고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갈구기로 유명했던 사람이다.[2] 1억 명이라는 이야기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지만 실제보다 심하게 과장되어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3] 중국에 거주하는 한 서양인이 쓴 칼럼. 중국 기독교인이 많다니 어쩌니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래 살아도 한 두 사람 보기 힘들다는 이야기.[4] Chinese Family Panel Studies의 2012년 조사 자료[5] 사실, 이 부분은 한국의 역사학계에서도 2000년대 이전 중국에서 쓰인것들 그대로 인용하기도 했었다.[6] 장제스를 호평하면 그를 상대로 해서 승리한 마오쩌둥의 평가도 같이 올라가게 되니 당연한 과정이다.[7] 대표적으로 난징! 난징!진링의 13소녀, 그리고 첩혈고성. 이 영화들 에서 처절하게 저항하고 싸우는 중국군은 전부 다 국민당군 복장과 제식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