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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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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형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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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BS 로고.svg 연기대상 대상
최민수
(1995년)

박근형
(1996년)


김희선
(1998년)
* 1997년은 시상식을 개최하지 않음

역대 파일:daejongfilmawards_logo.png
파일:daejongawards.png
남우주연상
제12회
(1973년)


제13회
(1974년)


제14회
(1975년)

남궁원
(다정다한)

박근형
(이중섭)


하명중
(불꽃)


파일:백상예술대상로고(1).png
파일:baeksangartsawards4.png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제14회
(1978년)


제15회
(1979년)


제16회
(1980년)

신성일
(겨울 여자)
황해
(부초)

박근형
(망명의 늪)


이대근
(심봤다)


파일:한국방송대상 심볼.svg 한국방송대상
탤런트상
장민호
나문희
(1996년)

박근형
강부자
(1997년)

유동근
최진실
(1998년)




박근형
朴根瀅 | Park Geun-hyung


출생
1940년 6월 7일 (83세)
전라북도 정읍군 정주읍 수성리[1]
최종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75cm, 80kg
학력
정읍서국민학교[2] (졸업)
호남중학교 (5회 / 졸업)
휘문고등학교 (50회 / 졸업)
중앙대학교 예술대학[3] (연극영화학 / 학사)
가족
슬하 2남 1녀
종교
천주교 (세례명: 베드로)
소속사
에스비엔터테인먼트
데뷔
1963년 KBS 3기 공채 탤런트[4]

1. 개요
2. 연기 활동
3. 위상
4. 주요 출연작
4.1. 드라마
4.2. 영화
4.3. 연극
4.4. 예능
4.5. 광고
5. 여담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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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세(2012년)때 촬영한 브로마이드
대한민국배우.

창조적 연기론을 자신의 연기 철학이라고 밝히면서 몸소 실천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대배우이다. 꾸준한 자기관리와 서구적인 마스크, 센스 넘치는 패션 감각과 멋진 옷태로 미노년의 대표로 여겨지기도 한다. 지치지 않는 연기 열정으로 현재도 그룹의 대재벌 회장, 귀족적인 고관대작 정치인을 비롯해 장수상회의 로맨스를 그리는 할아버지, 서늘하면서도 공포가 느껴지는 킬러역할까지 연기의 스펙트럼을 계속해서 넓혀나가며 많은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대배우로 평가 받고 있다.


2. 연기 활동[편집]


1940년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정읍군 정주읍 수성리(現 정읍시 수성동)에서 태어났다. 고향 후배인 가수 송대관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휘문고로 유학했고 서울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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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시절 명함사진
휘문고등학교에서 연극부 활동을 했고 충무로에 배우 전문 학원에다니며 연극을하며 연기학과를 준비하다. 중앙대학교 개교후 입학해 연극영화를 전공하다가 중퇴한 뒤 국립극단 단원이 되었다. 1963년 KBS 탤런트 3기로 방송활동을 시작했으나, 정통연극과 달리 수준이 형편없던 당시 방송 드라마계에 만족하지 못해서 바른 소리를 많이 하다가 미움을 사서 방송계에 적응하지 못했고[5], 연극활동은 수입이 너무 적어 생계유지가 도저히 안 되는 터라, 1967년엔 고향으로 낙향해서 낮에는 부모님의 여관 경영을 돕고 밤에는 친구들과 술만 마시며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 연출가가 연극에 잠깐만 출연해달라며 서울로 오라고 권했고 연극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했던 그는 상경해서 다시 연극을 했다.

1968년에는 연극계 최고 권위의 상인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 하면서 문화계에서 일약 유명해졌다고 한다.[6] 1969년에는 TBC로 가서 단역을 주로 했고 얼마 안 있어 신생 TV방송사인 MBC에 스카웃 되어 활동했다. 몇년 뒤에는 프리랜서가 되어 MBC, TBC, KBS를 오가며 활동했다. 1970년대 말에는 주로 MBC에서 활동했고 1980년대부터는 MBC와 KBS를 넘나들며 활동했다.[7]. TV에서 활동하는 사이에 연극계와 영화계도 오가며 활발히 활동했다. 이정길과 더불어 1970년대 중후반 MBC 멜로드라마의 간판 남자배우였다. 이후로도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형제의 강[8] 등등 굵직한 시대극에 자주 나왔고 제4공화국에서의 김재규로도 유명하다. 연극계와 영화계에선 1968년 동아연극상 연기상, 1974년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인정 받았지만, 방송계에선 상복이 별로 없어서 50대 중반이 되어서 받은 1996년 SBS 연기대상이 최초의 굵직한 상이었다. 방송사 전속 탤런트가 아니라 프리랜서였기에 방송사 상복이 없었던 것이다.

꽃할배 방영당시 출연진 4인방의 젊은 시절이 공개되었을때 가장 화제가 되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지금도 미노년 소리를 곧잘 듣곤 하지만 젊은 시절에도 미남이었다.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에는 이런 얼굴을 좋은 인상으로 보지 않아서[9] 제비나 악역(미묘하지만 동생 등쳐먹는 형)을 주로 맡았다고 한다. 젊은 시절 장희빈에서 같이 호흡을 맞췄던 윤여정이 뉴스룸 인터뷰에서 밝힌 증언에 의하면 박근형은 당시 잘생기고 연기 잘하기로 매우 유명한 배우였다고 한다. 심지어 드라마 대사에서도 똑같이 언급된다. 김수현 작가가 쓴 드라마 '모래성'에서 윤여정이 박근형의 동생으로 나오는데, '오빠가 젊었을때 충무로 영화판에서 영화 찍자고 꽤나 난리였다'는 대사를 한다. 그 유명한 원빈도 본인 주장에 따르면 데뷔 전만해도 인기도 없었고 어디 가서 잘생겼단 소리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한다. 즉 스스로를 낮춰 겸손하게 얘기하는 것이다. 실제로 박근형의 필모를 살펴보면 멜로물에서 여성들 사이를 오가는 치정극 미남 남주 역이 굉장히 많다.

유달리 재벌 회장 역을 많이 맡아서 회장님 전문 배우로도 알려져있다.[10] 젊었을 때는 실장 전문 배우였는데 청춘의 덫 1970년대 원판과 영화판에서는[11] 여주인공을 거두어주는 츤데레 실장 노영국 역을 맡았다. 오히려 전광렬보다 더 연기력이 풍부해서 종영 후 제작된 극장판에서 유일하게 TV와 영화판에서 같은 역을 맡았다.

그 외에도 대물의 썩어빠진 여당(민우당) 대표 조배호 등 고위 정치인 역도 자주 맡는다. 회장님이든 정치인이든 대부분 악랄한 최종보스 역할이 많은 편. 구한말의 일본측 지도자,[12] 일제강점기의 악질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등장하기도 했다.[13] 심지어는 높은 사람이 아닌 서민층 노인 역을 맡아도 형제의 강에서처럼 가족들 고생시키는 안 좋은 역할. 선역을 맡은 적이 청춘의 덫을 비롯하여 긴 연기 인생을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다.

다만 김정수 작가가 집필한 드라마 3개(엄마의 바다(MBC, 1993), 그 여자네 집(MBC, 2001), <누나>(MBC, 2006~2007))에서는 모두 선역으로 출연하였고, 주로 영화에서는 선역으로 자주 나왔다. 앞서 말한 청춘의 덫 영화판이나 공산당의 종교 탄압을 다룬 모 종교 영화에서는 반공 목사, 청춘물에서는 빗나간 학생을 선도하는 교사 역으로 나왔다. 고무신 영화로 알려진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시리즈에서는 생활고와 아내의 죽음으로 정신병원에 들어간 아버지 역할로 나왔다.[14]

특유의 카리스마로 공화국 시리즈에서 자주 나왔다. 제2공화국에서는 이종찬으로 나와 출세냐, 쿠데타냐, 양심이냐를 고민하다가 결국 이승만의 병력 동원 명령을 거부하고 군의 정치개입 중단 선언을 작성하다 해임되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제3공화국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실장이 되는 박종규 역을 맡았다. 제4공화국에서는 김재규로 나와 카리스마적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의 제대로 된 악역 연기를 보고 싶다면 여명의 눈동자를 적극 권장한다. 독립운동가 때려잡는 악랄한 종로경찰서 형사 조선인 스즈키가 그의 배역이다. 다만 의외로 제1공화국에서는 비교적 온건했던 정치인 고하 송진우를 연기하기도 했다.

1980년대 TV드라마를 시청하던 세대에게는 악역 전문으로 많이 알려져서, 너무 리얼하게 연기한 나머지 길가다 욕먹었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요즘 드라마는 악역에게도 시청자가 웃을 포인트를 넣어 한 템포 쉬어 가게 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 땐 그런 게 없었다. 게다가 유선방송이 없고 지상파 방송국이 3개 뿐이던 던 당시의 TV연속극 시청률은 매우 높았고(50% 넘는 일도 비일비재) 시청자도 감정이입을 많이 했기 때문에, 장희빈이나 일제 검사 역할같은 악역을 맡은 배우는 한동안 기쁘게 악담을 들으며 유명세를 치러야 했다.[15] 박근형도 그 쪽으로 유명했던 사람이다.

대표적인 사극 출연은 1970년대의 윤여정 주연 장희빈에서 숙종 역, 1998년 MBC 대왕의 길에서 영조 역, 2002년 KBS 명성황후에서 일본 공사 이노우에 가오루 역을 맡은 바 있다. 특히 대왕의 길의 영조 역은 평론가들과 사극 팬들에 의해 최고의 영조 연기로 극찬을 받고 있는데[16], 생전의 영조가 환생이라도 하듯이 급하고 버럭하는 성질과 편집증적 의심, 자식에 대한 편애. 사도세자에 대한 갈굼, 마더 콤플렉스. 백성을 생각하는 명철하되 까칠한 애민군주 등 야누스적이고 다면적인 영조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어 전무후무한 연기라는 평을 받았다.

워낙 카리스마적인 연기가 인상적이다 보니 찌질연기가 안 어울리는 배우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이광수 원작의 TV 문학관 무명에서는 도장위조 사기범으로 나와서 궁극의 찌질이 연기를 보여주었고, 구로 카빈총 강도사건을 다룬 <수사반장> 특별편에서는 범인으로 나와 임채무와 함께 불멸의 연기를 보여준다. 1996년 방영한 <형제의 강>에선 큰아들만 애지중지하고 다른 자녀들은 다 개무시하지만 정작 금지옥엽처럼 떠받드는 큰아들에게 개무시당하고 굴욕당하는 아버지 역을 맞아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역시 1996년 방영한 SBS <임꺽정>에선 윤원형으로 분해 인종을 저주하다 임꺽정에게 걸려서 복날 개패듯 얻어맞다 싹싹 빌어서 빠져 나오는 찌질한 모습을 잘 표현했다. 그리고, 2000년작 산책(영화)에서는 말도 않고, 세상과 겉돌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싶은 노인 역할을 맡아 카리스마 때문에 못난 역할은 불가능한 배우가 절대 아님을 인증했다.

2012년 연극 <삼월의 눈>에서 아내와 살아온 한옥을 개발업자들에 의해 헐리고 그 돈으로 며느리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 차려주고 자신은 홀로 시설에 들어가는,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할아버지 역을 맡아 폭풍연기를 보여주었다. 예전에 <아버지> 신드롬일 때 지친 아버지 역으로도 열연했다. 이토록 부패한 기업총수나 정치인부터 돈 없고 힘 없고 늘 주눅들어 있는 서민에 이르기 까지 극단적인 두 경향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 가능한 배우이다.

역시 탁월한 중견 연기자로 유명한 그 김갑수조차도 "1970년대 후반, 1980년대 초 연극을 시작할 때는 연기를 못했다. 그때 박근형 같은 좋은 선배의 연기를 관찰하며 열심히 배웠다. 박근형 선생의 연기를 옆에서 배우고 싶어 출연하는 작품에 작은 배역이라도 맡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박근형 선생은 나에게 연기 교과서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고 할 정도이니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할 수 있다. 이외에도 명배우인 백윤식 또한 자신의 인생 최고의 배우에 박근형을 꼽고 있으며 전도연, 조민수 등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의 멘토로 인정받고 있다.

2012년 드라마 추적자 더 체이서서동환 역으로 출연했는데, 연기력이 만개한 배우들[17]이 가득 찬 이 드라마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가히 '진 최종보스'에 걸맞는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이 드라마는 물론이고 형제의 강에서도, 원래 본인이 호남 출신임에도 밀양시를 배경으로 한 해당 작품에서 동남 방언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경상도 지역의 시청자들에게도 많은 호평을 받았다. 심지어 박근형이 경상도 출신인 걸로 아는 시청자들도 있을 지경이다. 경상도 출신이 아닌 연기자들의 경우 경남과 경북 사투리의 미묘한 차이를 잘 몰라서 둘을 마구 뒤섞어 쓰는 경우가 많은데, 박근형은 경상도 출신 사람이 봐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의 훌륭한 억양을 선보이곤 한다. 손현주가 2012년 SBS 연기대상을 수상하면서 "우리 드라마(추적자 더 체이서)에는 아이돌이 없고 스타가 없는 대신 박근형 선생님이 계신다"는 소감을 해서 화제가 되었다.#

이후 소속사가 처음으로 생겼다고 한다. 추적자에서의 연기가 빛을 봤다. 2012년 연말 가문의 영광시리즈인 가문의 귀환에 출연했지만 이 시리즈가 워낙 퀄리티가 병맛인지라 흥행에 참패하고야 만다. 그래도 2013년 7월에 드라마 황금의 제국에서 그의 명불허전 명연기를 볼 수 있다.

tvN예능 프로그램꽃보다 할배이순재, 신구, 백일섭과 H4(할배 넷)로 출연, 이서진과 함께 유럽과 대만 등지를 여행하면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특히, 극중에서 재벌 회장역을 주로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과 다르게 노트르담 성당에 가서 감동받고, 갓 항암치료를 마친 아내를 위해서 여행지의 멋진 풍경을 찍어서 보내주거나 매일매일 안부전화를 하는 등 의외의 로맨틱 순정남의 일면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로맨틱 가이의 면모 덕택에 2013년 이후부터 노년의 사랑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에서 멋진 미노년 이미지로도 자주 출연하고 있다. 방영 전 네 멤버가 제작발표회 때 tvN 현장토크쇼 TAXI에 출연했다. 시상식 컨셉으로 턱시도를 입고 나왔는데, 이순재가 "우리 중에 대상 받아본 사람이 누가 있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박근형이 1996년도 연기대상 수상자[18]이고, 이순재도 MBC 방송연예대상 수상 경력은 있다. 이렇게 예능에서도 활약을 보였지만 본인의 강직한 성격은 어디 가지 않는지 꽃보다 할배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기도 했다. 특히 스페인 편에서 H4 네 명이 모두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는데도 제작진이 자신들이 맞춰놓은 일정과 대본에 따라서 촬영을 강행하고 출연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부분, 그리스 편에서는 할배들보다 이서진과 최지우의 썸 쪽에 포커스가 맞춰져서 본말이 전도된 부분,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원로급 배우 네 명을 너무 흥미 본위로 편집하는 모습 등이 상당히 마음에 안 들었던 듯하다.

2016년 9월 1일, 부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기념으로 SBS 나이트라인 초대석에 출연하였다. 영상 2017년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

80이 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순재와 함께 여전히 현역에서 활동하는 몇 안 되는, 몇 남지 않은 노년 연기자이기도 하다. 물론 찾아보면 몇몇이 있기는 하지만, 이 연령대에 이렇게까지 활발히 활동하는 배우는 손꼽을 정도로 드물다.

배우로서 선배인 이순재를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젊어서 강한 인상을 지닌 자신에 비해 선한 인상 덕분에 이순재의 배역운이 너무 좋은 편이어서 매우 부러웠다고. 또한 이순재는 시대의 흐름을 읽는 것도 빨라서 늘 자신보다 앞서 있는 느낌이었다고 회고했다.물론 그 발언에는 겸손의 의미도 읽힌다.

3. 위상[편집]


연기철학이 무척 투철하다고 한다. 한번은 《백만장자와 결혼하기》를 촬영할 당시에 한 배우를 보고 엄청 화가 나서 심한 말을 하면서까지 다그쳤다고 한다. 당시 그 배우는 그 드라마가 데뷔작이었는데 심각한 발연기를 보여서 기가 팍 죽었다고 한다. 그 배우는 바로 윤상현이었다.

그 때문인지 실제로 촬영장에서만큼은 굉장히 엄하고 무섭다고 한다.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어도 연기 못하는 건 죽어도 못 봐주는 스타일이라고 한다.[19][20] 어느 정도냐면 어느 배우는 캐스팅된 드라마에 박근형이 출연한다고 하자, 돌연 출연을 취소했다고 한다. 신인이었던 전도연이나 김남주는 아예 울었다고 한다.[21] [22] 꽃보다 할배에서 이서진도 박근형을 가장 무서운 선배 연기자로 꼽았다.[23] 이서진은 심지어 "김영옥 선생님도 박근형 선생님을 무서워한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김영옥이 여배우들 사이에서 가지고 있는 위상과 위치는 이순재에 버금가며, 박근형보다 3살이나 위임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인지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24][25]

여담이지만, 박근형도 연예계에서 알아주는 군기반장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러나 연기력이 좋고 나쁜 거와는 별개로 연기자로서 자세가 훌륭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후배들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차인표에 대해서는 대본이 걸레가 되도록 연습하는 모습과 인간적인 매력이 훌륭하다며 칭찬했다. 노희경 작가 극본의 드라마 화려한 시절에 출연해서도, 당시 주인공인 장석진 역을 맡은 지성보다도 석진의 동생 장철진 역으로 양아치연기를 기깔나게 한 류승범을 엄청나게 칭찬했다.류승범 양아치 연기는 감독을 넘어 대배우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당시 류승범은 21살에 이게 첫 장편 드라마 데뷔작이었다.

반대로 연기는 안 하고 광고만 찍는 원빈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후배라고 평가했다.[26] 어쨌든 박근형의 자식 역할을 하면 연기력이 급성장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릴 정도로 후배들의 연기에 대해서 따끔하게 지적하는 모습들로 인해 존재 자체가 연기의 교과서라고 불리고 있다.

이 후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출연해 "요즘에는 스타만 있고 배우는 없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연기력이 떨어지는 스타들이 주연을 차지하고 한류 붐에 힘입은 아이돌들이 무분별하게 연기진출하는 것에 대해 쓴 소리를 한 셈.[27] 반면에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이병헌의 연기에 대해서는 칭찬을 했다.

연기에 대해서는 거침없는 이런 발언들 때문에 작품을 할 때마다 "XX(같이 출연하는 젊은 배우)는 똥배우가 아니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을 듣곤 한다. 그외에도 배우라면 촬영장에 도착해서 스텝이나 동료배우들과 대본도 맞춰보고 함께 어울리는 자세가 필요한데, 촬영장에 도착해도 본인이 몰고온 차 안에서 지인들과 잡담이나 떨고 있는 모습들에 대해서 그런 똥배우들이 많다며 깠다.

최소 박근형한테 인정만 받는다면 먹고 사는 문제는 없을듯 보인다.

4. 주요 출연작[편집]



4.1. 드라마[편집]


연도
방송사
방송명
역할
비고
19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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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덫
노영국

1980년
파일:MBC 로고(1980-1981).svg
변명


종점
기대훈

1981년
나리집


제1공화국
송진우

1982년
파일:KBS 2TV 로고(1980-1984).svg
사랑의 조건


세 자매


1983년
청춘일기


금남의 집
교장

파일:KBS 1TV 로고(1980-1984).svg
은하의 꿈


파일:KBS 2TV 로고(1980-1984).svg
산유화


파일:KBS 1TV 로고(1980-1984).svg
고교생 일기
유현수의 큰아버지

1984년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전쟁 6.25


휴전 6.25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불꽃놀이
지훈

1985년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은빛여울
유동훈

1986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이별 그리고 사랑


1987년
파일:MBC 로고(1986-2005).svg
사랑과 야망
한 사장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이차돈
법흥왕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애정의 조건


파일:MBC 로고(1986-2005).svg
막차로 온 손님들


유혹
장씨

1988년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서울에서 제일 비싼 미소

바라밀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황금의 탑


파일:MBC 로고(1986-2005).svg
인간시장
박 회장

모래성
김진현

내일이 오면
곽 회장

1989년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지포리에서 생긴 일


파일:MBC 로고(1986-2005).svg
제2공화국
이종찬

제5열
서용탁 정보국장

1990년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영주의 증명


밤기차
노 감독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아내의 뜰


야망의 세월
최두익

1991년
파일:MBC 로고(1986-2005).svg
장미빛 인생
정태성

내 마음은 호수
이영설

여명의 눈동자
스즈키

파일:SBS 로고(1991-1994).svg
미늘


1992년
금잔화
조자경

파일:MBC 로고(1986-2005).svg
마포 무지개
황대일

나목
옥희도

파일:SBS 로고(1991-1994).svg
관촌 수필
민구 부친

1993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일요일은 참으세요


파일:MBC 로고(1986-2005).svg
제3공화국
박종규

엄마의 바다
김대봉
7회 하차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굿모닝 영동
주근엄

파일:SBS 로고(1991-1994).svg
여자의 거울
서태일

머나먼 쏭바강
박광우

친애하는 기타 여러분
이무정

1994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폴리스
가네스기 지로

파일:MBC 로고(1986-2005).svg
아담의 도시
장국철

마지막 연인

1995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갈채


젊은이의 양지
하일태

파일:MBC 로고(1986-2005).svg
제4공화국
김재규

파일:SBS 로고(1994-2000).svg
모래시계
윤재용

그대 목소리
홍익균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바람의 아들


1996년
아버지


파일:SBS 로고(1994-2000).svg
사랑의 이름으로
강혁주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사랑할 때까지
서봉수

파일:SBS 로고(1994-2000).svg
형제의 강
서복만

임꺽정
윤원형

1997년
행복은 우리 가슴에
양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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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터데이
윤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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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너머
송만호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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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필 때까지
오진우

행복을 만들어 드립니다


맨발의 청춘
기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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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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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파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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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성공
김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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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신부
장군의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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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의 길
영조 [28]

애드버킷
서승권

1999년
흐르는 것이 세월뿐이랴
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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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랑할 때
장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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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보일까봐
조두식

날마다 행복해
나사장

햇빛속으로
강경환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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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최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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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지
송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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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분노
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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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기
박화백

온달왕자들
주창균

2001년
맛있는 청혼
김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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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향꽃무
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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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네 집
김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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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없는 아침
권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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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이노우에

순정
찬석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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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시절
박근천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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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공주
한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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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빙유
이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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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아가씨
은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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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봉

얼음꽃
강인철

2003년
선녀와 사기꾼
심춘식

태양의 남쪽
차회장

2004년
소풍가는 여자
진풍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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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유혹
신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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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새
서문수
24회 하차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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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공감
지숙 부

홍콩 익스프레스
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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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가가 되리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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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찬가
강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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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장자와 결혼하기
김영대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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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
해부루왕
특별출연
불꽃놀이
신호섭

누나
건우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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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수사일지: 1호관 사건
장현석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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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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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아
이성철

외과의사 봉달희
이현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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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사랑
강 회장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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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일색 박정금
박봉필

난 네게 반했어
배덕배

에덴의 동쪽
민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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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의 성
김두형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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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일지매
김자점

보석비빔밥
서로마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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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웬수
윤인수

대물
조배호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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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참 예쁘다
서진명 [29]
특별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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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뮤지컬
유회장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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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인생
최인구

추적자 더 체이서
서동환

드라마의 제왕
남국현 회장
특별출연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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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났어 정말
이대관

2015년
사랑해서 남주나
정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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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제국
최동성
9회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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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정원
차동수

전설의 마녀
마태산

앵그리맘
강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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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왕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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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당신
조윤재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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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오네요
나대기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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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터처블
장범호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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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엄마야
신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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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의 약속
김상천

2019년
[파일:SBS 로고.svg
닥터 탐정
최곤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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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커버
이만호
특별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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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택시
회장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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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서
박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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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형사 2
정인범





4.2. 영화[편집]


개봉 연도
제목
배역
비고
1975년
특별수사본부 외팔이 김종원
김종원

1977년
엄마없는 하늘 아래[30]


1979년
청춘의 덫
노영국

1981년
별들의 고향 3
경호

1987년
요화 어을우동
이동

1996년
채널 식스나인
황기영 의원

1997년
아버지
아버지

2002년
가문의 영광
장정종 회장

2005년
공공의 적 2
부총재

2012년
가문의 귀환
장정종 회장

2013년
고령화 가족
구씨

2015년
장수상회
김성칠

2016년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김병덕

그랜드 파더
박기광

2017년
사랑하기 때문에
할배

2018년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김신[31]

2019년
자전차왕 엄복동
하세가와 총독

증인(영화)
순호 아버지
특별 출연
2020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오순철 회장
특별 출연
2021년
아들의 이름으로
박기준

동백
황순철

2022년
리멤버
김치덕



4.3. 연극[편집]


  • 3월의 눈 : 장오 역, 2012년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 극장
  • 아버지 : 앙드레 역, 2016년 명동예술극장
  • 세일즈맨의 죽음 : 윌리 로먼 역, 2023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 고도를 기다리며 : 블라디미르 역, 2023-2024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4.4. 예능[편집]



4.5. 광고[편집]




5. 여담[편집]


  • 조직폭력배 출신의 조양은의 자전적 영화 '보스'(1996년작)에 출연한 적 있다. 조폭을 미화하는 내용인데다 영화 완성도도 형편없고, 무엇보다 주인공이자 실제 주연을 맡은 조양은이라는 인간 자체가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좀... 박근형을 비롯해 알만한 배우들이 꽤 출연한 작품이다.

  • 최불암과는[32] 소시적부터 친분이 있었는데,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주점인 '은성'[33]에서 말년의 이중섭을 본 일이 있다고 한다.[34] 박근형은 실제로 74년 영화 이중섭에서 이중섭을 연기해 당해 대종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었다.

  • 드럭스토어(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대물의 조배호 관련 소재들, 더 나아가 박근형 배우의 관련 영상이 제작되기도 한다.

  • 2023년 1월 최근 박근형의 사망설이 떠도는 가짜 뉴스를 만든 제작자에게 가장 큰 분노를 표했다.

[1]전라북도 정읍시 수성동[2] 現 정읍서초등학교[3] 원래 2년제였던 서라벌예술대학에 입학하려고 했으나 조만간 중앙대학교에 4년제 연극영화과가 생긴다는 말을 듣고 입시를 1년 미루고 59학번으로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1기로 입학했다. 이후 1972년에 중앙대학교가 서라벌예대를 인수해 서라벌예대 출신들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동문으로 인정된다. 어차피 중앙대학교 출신이 될 운명이였던 셈. 그리고 입학 후 4학년 1학기까지 다니다가 개인 사정으로 중퇴 후 1999년에 늦깎이로 재입학해 2000년에 졸업했다. [4] 연극 배우는 19세 때부터 시작했다고 한다.[5] 그때 KBS에서 퇴출 당하기도 했다. 표면적으로는 연기를 못한다는 이유로 퇴출명단에 올랐지만 실은 평소 입바른 소리를 많이 해서 PD와 높은 사람들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때 같이 퇴출된 연기자들 중엔 김혜자도 있었다. 김혜자는 탤런트 수입이 너무 적고 비전이 없어보여 동아방송 성우 시험에 응시했다가 KBS의 미움을 사서 그랬다고[6] 박근형이 송승환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원더풀 라이프'에 출연했을 때, 박근형이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한 그해에 송승환이 아역상을 탔음이 확인되었고, 그때 두 사람이 트로피를 안고서 함께 찍힌 흑백사진이 공개되었다.[7] 당시 박근형처럼 방송사들을 오가며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배우는 드물었고, 다른 배우들은 주로 특정 방송국에 전속계약을 맺고 출연했었다.[8] 이 작품으로 1996년 SBS 연기대상 수상.[9] 당시에도 미남으로 여겨지던 얼굴이긴 했다. 동료배우인 사미자의 증언에 의하면, 젊은 시절에 같이 촬영을 끝낸 후 박근형이 허겁지겁 서두르기에 이유를 물어보니 입구에 팬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얼른 도망쳐야 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열성팬을 몰고 다녔다. 다만 강한 인상탓에 사람들이 선한 인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또한 그의 말에 따르면 당시엔 얼굴이 반듯하고 믿음직한 스타일의 미남이 안방극장에서 인기있던 시대였는데(박근형이 20, 30대를 보냈던 60, 70년대에는 신성일, 남궁원, 김진규, 신영균, 하명중 등의 미남 배우들이 영화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배우들과 TV배우들이 어느 정도 구별되던 시기라서 TV드라마에선 날렵하고 서구적인 미남보다 얼굴이 다소 넓적하고 듬직하고 한국적인 미남형이 각광받았다.), 본인은 이국적인 외모에 매부리코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 점이 컸다고 한다.[10] 특히 <모래시계>에서 똑똑하고 냉정한 권위자인 윤 회장 역을 맡았을 때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11] 심은하가 나오는 청춘의 덫의 원판, 1970년대 심의에 걸려서 조기 종영도 아니고 그냥 미완으로 끝났다. 1990년대판은 그 작품의 리메이크이자 완전 복원판.[12] <명성황후>(KBS)의 이노우에 가오루, 안중근(SBS 특집 2부작)의 이토 히로부미로 출연했다.[13] <여명의 눈동자>(MBC)의 최두일(일본명 스즈키) 역이 대표적.[14] 1부는 엄마는 죽고 아버지는 병원에 간 가족의 비극과 재기를, 2부는 윤미라가 분한 새 엄마가 들어오는 이야기, 3부는 서울에서 야구선수로 성공하는 아이 이야기이다. 3부부터는 박근형은 아예 공기수준이다.[15] 이건 우리 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16] 많은 배우들이 영조를 맡았지만 그 중 《대왕의 길》의 박근형이 연기한 영조가 최고의 영조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것에는 거의 이견이 없다[17] 이 해 SBS 연기대상을 탄 손현주부터 해서, 김상중, 김성령, 류승수 등 연기력이 탄탄한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었다.[18] SBS 형제의 강.[19] 훗날 배종옥도 박근형의 영향을 받았다. 자기가 중앙대 부교수를 했을 당시,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연기 어설프게 하는 배우들을 보면 그냥 부숴버리고 싶다"고 인터뷰 했을 정도.[20] 이순재도 마찬가지다. 신인 배우들이 대본을 다 외우고 대본을 손에 놓고 있는 것을 보자, 촬영장에서 화를 내며 감독을 벌벌 떨게 했다고 한다. 모 특강에서 하는 말로는 감독이 "선배님 스탠바이 오케이인가요?" 라고 여쭤봤더니, 나는 "노케이"라고 했단다. 그 말 한 마디에 촬영장이 완전히 얼어버렸다고 한다.[21] 전도연은 2005년 프라하의 연인, 김남주는 2010년 역전의 여왕, 2012년 넝쿨째 굴러온 당신으로 연기대상 대상을 받았다.[22] 송승헌이연희는 장면 하나를 끝내고 나면 박근형의 눈치를 엄청나게 봤다고 한다.[23] 박근형과 이서진은 드라마 불새를 같이 찍었는데, 이서진이 박근형을 엄청나게 무서워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드라마 모니터를 하고 온 박근형이 "서진아. 우리 악수 한 번 하자. 어제 너 잘했더라."고 한 마디를 하자,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24] 정작 훗날 라디오스타에 나와서 이서진이 말한 발언의 진위를 묻자, 자신은 김영옥을 벌벌 떨게 하려 했던 게 절대 아니라고 한다. 이순재는 1956년, 김영옥은 1957년, 박근형은 1963년 데뷔인데, 원래 그 당시 작품이 다 후시녹음이였기 때문에 이순재가 그랬듯이, 당시의 배우들은 다 성우를 겸업했다. 그 뒤로 박근형은 김영옥을 선생님이라 부른다고. #[25] 하지만 노력하는 후배 배우들에 대한 애정은 나름 있는 것 같다. 인어 아가씨에서 주인공이자 자신이 맡은 배역의 딸 역할로 출연했던 장서희가 그 해 MBC 연기대상을 휩쓸었을 때, 흐뭇해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26] 늑대의 유혹을 통해, 미남배우로 꼽히는 강동원, 클래식을 통해 알려진 조인성과는 완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팬들도 안타까워 하는 부분. 꼭지 출연 당시, 박근형이 발연기에 가깝던 송명태 역의 원빈을 빡세게 교육시켜서 연기파 배우로 만들어놨다는 건 익히 다 아는 사실이다. 아저씨를 찍었을 때 만 10세였던 김새론이 대학을 졸업하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필모그래피가 광고 외에는 추가되지가 않아서 이순재까지도 "광고만 찍은 배우, 연기나 먼저 해라"고 날서게 깠을 정도다.[27] 최소한 배우들 관련해서는 거침없이 말씀을 하시는 편. 예를 들어 1999년에 중앙대 부총장 앞에서 대놓고 "중앙대 연극영화과는 배종옥 이후로 형편이 없다."라고 해서 당시 중앙대 총장이고 부총장이고 모두 사색이 됐다. 게다가 이 얘기는 하정우가 아직 새파란 학생이던 시절 이야기다. 참고로 말하자면, 서울예대. 한예종 같은 곳을 제외하고, 연영과 쪽에서 박근형의 모교인 중앙대학교동국대학교와 함께 톱클래스를 이루는 학교 중 하나다. 한효주도 동국대 다닐 때 선배들의 시중을 들었다고 한다.[28] 편집증이 심하며 아들 사도세자를 심하게 질책하는 모습을 잘 소화했다.[29] 85회 하차[30] EBS에서 몇번 방영된 적이 있으며 지금도 가끔 방영된다.[31] 아들 윤상훈이 젊은 김신 역으로 나왔다.[32] 최불암과 무려 생일이 3일차이로 이쪽이 빠르다[33] 이곳은 당대의 문인과 예술인들이 많이 찾던 곳으로 유명했다.[34] 이중섭은 1956년에 사망했기에 국립극단에서 연극하던 시절의 박근형과는 시간적으로 절대로 만날 수가 없다. 박근형 본인이 고등학교 시절 얘기를 착각한 것인지, 본적이 없는데 양념을 친 것인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