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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고려 거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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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朴鎭

캐릭터
가족
장남[1], 차남 박석
부인, 며느리, 손주 2명
등장회차
3회, 5회, 9회
배우
이재용

1. 개요
2. 작중 행적
2.1. 3회
2.2. 5회
2.2.1. 해당 회차에 드라난 박진에 대한 분석
2.3. 9회
2.4. 11회
2.5. 12회
2.6. 13회
2.7. 14회
2.8. 15회
2.9. 16회
2.10. 17회
2.11. 18회
2.12. 19회
2.13. 20회
3. 묘사
4. 어록
5. 기타



1. 개요[편집]



[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

고려 조정이 일으킨 전쟁에 아들을 잃고,[1] 황실에 증오만 남은 지방 호족. 황제를 무너뜨려서라도 자신의 왕국을 지키려 한다.[2]




KBS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의 등장인물. 배우는 이재용.[2] 역사상 '양주시의 향리'를 바탕으로 한 가공의 인물로, 본작에서는 '충주시의 호장'으로 등장한다. 드라마의 히든 보스 포지션.

역사에 따르면 고려 현종은 몽진 행렬이 50명 남짓이었는데, 활까지 쏘는 도적들을 막아가며 힘겹게 몽진하다가 오늘날 양주시 일대에 해당하는 창화현에 이르른다. 이 곳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향리(아전)[3]가 현종의 도움을 문전박대 및 면전에서 하대, 능욕하고, 강조의 남은 일파가 하공진을 필두로 남하하여 현종을 인질로 삼으려 한다는 거짓정보를 주어 행렬을 더 와해시킴과 동시에 현종과 왕후가 떨어지게 하고, 야간에는 적도들을 풀어 행렬을 급습해가며 살해 시도, 산에 흩어져 숨은 왕의 행렬을 수색해 잡으려 하기까지 했다.

이때문에 현종 행렬은 몽진 7일차까지 40km가량밖에 남하하지 못해서, 거란 추격군이 걸어서 수 시간 거리까지 좁혀지기까지 했다. 이때 지채문이 현종을 배신하거나 하공진이 사신으로 거란군 진영에 가서 교섭 명목으로 시간을 끌지 않았다면 현종 일행은 거란군에게 잡혔을 수도 있었다. 해당 아전이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사료에 나오지 않고 있어서 불분명하다.


2. 작중 행적[편집]



2.1. 3회[편집]


충주[4]의 호장으로서 김치양에게 동조하는 지방 호족 중 한 명으로 무장한 모습으로 수하 병사들로 하여금 병장기를 챙기게 하며 출전을 재촉하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했고, 그 광경[5]을 강감찬과 김종현이 멀리서 지켜봤다.


2.2. 5회[편집]


강조가 요청한 동원령이 발동되면서 징집이 이루어지던 와중에 동원령에 협조하라면서 무장한 상태로 나타난 김종현 앞에서 "큰 아들이 지난 전쟁에서 죽었는데 이젠 둘째를 바치게 하냐?"면서 화를 내면서 반발했지만, 직후 김종현이 "동원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 그 처벌이 분명할 것이니 그리 알라."면서 떠나자, 분노하면서 위에서 올라온 동원령 문서를 내던진다. 그러나 이내 둘째 아들 박석을 전장으로 보내면서 가족들과 안쓰럽게 바라보며 꼭 살아 오라고 등을 토닥인다.


2.2.1. 해당 회차에 드라난 박진에 대한 분석[편집]


이 회차에서 박진의 언행을 통해 당시(1000년경 고려 지방사회) 호족들이 어떠했는지 여러모로 유추해 볼 수 있는데, 크게 세 부분으로 보면 아래와 같다.

  • "큰 아들이 지난 전쟁에서 죽었는데 이젠 둘째를 바치게 하냐?"
이 부분을 보면, 집안을 잇고 말고 하기 전에 자신의 아들들을 모두 전쟁으로 인해서 잃어버리게 생겼는데, 반발을 안 하는 부모가 있을지를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면서 '개경 조정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란 식으로 표현해 개경의 중앙 조정과는 강한 거리감을 나타내는데, 물론 지방에만 머물고 있던 박진이 전후사정을 전부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런 판단을 내릴 수도 있지만, 전쟁을 막는 것이 고려 조정(현대로 치면 정부)가 해야하는 일이고 상대가 국경을 흔들고 있던 해적이나 작은 부족이 아니고 당시 군사적 강대국이던 거란 즉, 요나라와의 전쟁이기 때문에 심하게 반발할 수 있다.
다만, 이 대사 이전인 4회에서도 나왔듯이 고려 조정에서는 현종과 신료들 모두 나름 전쟁을 막거나 대비하기 위해서 성격은 다르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 비난이 결과적으로 부당하지 않았다고 하기는 어렵다. 거기에 동원령 이전 거란의 사신이었던 한기가 떠날 때 강조와 현종이 한 행동을 보면, 애초 거란이 처음부터 전쟁을 하기로 마음 먹은 이상 고려 입장에서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박진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그 대상이 다소 엇나간 것 역시 사실이다.[6]
심지어 박진은 위에도 언급했지만, 3회에서 김치양에게 동조해 그의 반란에 군사들을 지원하려고 했다. 거란이 강조의 정변을 전쟁의 명분으로 삼은 것을 생각하면 김치양의 반란이 성공해 목종을 축출하고 김치양의 아들을 황제로 옹립했을 경우 그 역시 비슷한 전개가 펼쳐졌을 것이다. 박진은 김종현에게 전쟁을 두려워하며 그를 막아야 하는 것이 조정의 책임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 역시 전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위험을 초래하려고 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아무래도 중앙 정부와 달리 지방 호족으로 국제 정세와 여러 이해 관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그런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이런 박진의 행태는 아직 고려 사회가 하나의 국가로 온전히 통합되지 않은 탓이다. (천년이나 통일왕조에서 산 현대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삼국시대가 7백년이나 지속되었고, 백제는 부여계와 마한계 사이의 갈등, 신라는 진한계과 가야계 사이의 갈등이 빈번했던 만큼 고려 초반만 해도 모두 한 나라 사람이라는 인식이 부족했다. 아닌 게 아니라 신라가 삼국통일한 뒤에도 신라의 힘이 약해지자 후삼국시대가 열리고,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도 힘이 약해지자 각지에서 삼국 부흥운동이 일어나는 것처럼, 박진 같은 고려 각지의 호족은 자신들이 "고려인"이라는 인식 보다는 "개경에 복종하는 충주인"이라는 정체성이 더 강했을 것이다. 또한 후술될 호족들의 반응처럼 봉건제 하에서 복종하고 있는 자신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개경이 보호는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다양한 것을 갈취해가는 것은 엄연히 월권에 가깝게 여겨지고 있는것이긴 하다.

  • 김종현의 경고와 퇴장, 그리고 문서를 집어던지면서 분노하는 박진
위에 언급된 박진의 반발에는 김종현의 태도에도 어느정도 책임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김종현이 박진보다 나이나 지위로서 아래이기 때문에 제대로 대우해주고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으면 저렇게 반발하지 않았을 것인데, 오히려 엄포를 놓고 갔으니 반발할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시대상을 따지기 전에 김종현이 무례한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황제도 아닌 군대의 일개 부장급[7]이 지방 호족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호장에게 저런 발언을 하고 간 점은 당시로서는 엄연히 월권 행위이다. 사실 전시라서 그냥 넘긴 것이지 그게 아니라면 박진이 김종현을 스스로 처단한다고 해도 딱히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무례를 범한 것이다. 당장 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지방 중 한 곳인 공주에서는 절도사 김은부가 동원령을 원만하게 수행하기 위해 지방 호장들의 협조를 구하고, 심지어 그들의 아들들은 동원에서 빼주기도 하는 상황인 점을 김종현이나 그 상관인 충주 절도사가 감안했어야 한다.
다만, 김종현이 "절도사께서 처벌을 내릴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단순히 김종현이 무례하게 행동한 것이 아니라 저렇게 엄포를 놓은 것 자체가 동원령에 대한 반발을 억누르기 위한 절도사의 명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박진이 분노만 하다가 김종현의 떠난 후 문서를 던진 것 외에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못한 것은 당시 충주의 절도사가 호장들에게 상당히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거나, 혹은 3회에서 김치양의 반란에 연루되었던 것 때문에 조정의 대리인인 절도사에게 적극적으로 반발할 수 없었던 듯하다.

  • 둘째 아들을 배웅하는 박진 가족
결국 어쩔 수 없이 둘째 아들을 노비와 함께 딸려 보냈는데, 박진 본인을 포함해 부인과 며느리(둘째 아들의 아내)는 물론 하인들까지 안타까운 모습을 보였지만, 정작 당사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전장으로 나섰다. 이를 보면, 박진의 아들은 전장의 두려움보다는 호족의 의무으로 공을 세우던가, 첫 전쟁에서 전사한 형의 원수를 갚을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3. 9회[편집]


북쪽에서 고려와 거란이 대치 중인 상황에서 지역 내 다른 호족들과 함께 개경의 조정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황제가 문제"라면서 신랄하게 비난[8]했다.

그러다가 둘째 아들과 같이 떠난 노비가 혼자 거지꼴로 돌아온 것을 보고,"벌써 전쟁이 끝났느냐?"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이내 둘째 아들이 보이지 않는 것에 뭔가 일이 생겼단 걸 깨닫곤 황망해하는 표정과 함께 황급히 아들을 찾지만[9], 노비가 수레에 싣고 온 아들의 시신[10]을 맞이한다. 발목에 감긴 부적을 보고 자신의 아들임을 알고 마지막 얼굴이라도 보려는데 "거란군이 목을 베어가는 바람에 시신이 온전치 못하옵니다."라는 노비의 말을 듣는다.[11] 이 참혹한 말에 박진은 얼굴 전체를 파르르 떨다가 이를 악물고 거적데기를 들추지만 당연히 머리가 존재하지 않았고 이내 머리 없는 죽은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고 오열하기에 이른다. 이후 장면이 전환되어 공주의 호족들 중 일부는 동원령에 협조하는 대가로 자신의 아들들은 동원에서 뒤로 빼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것과 대비되어 더욱 비극성이 부각된다. [12]


2.4. 11회[편집]


예고편과 위에 언급된 역사를 보면, 아들들이 죽은 원한 때문에 몽진을 떠나는 현종 일행과 크게 엮일 가능성이 있다.


2.5. 12회[편집]



2.6. 13회[편집]



2.7. 14회[편집]



2.8. 15회[편집]



2.9. 16회[편집]



2.10. 17회[편집]



2.11. 18회[편집]



2.12. 19회[편집]



2.13. 20회[편집]




3. 묘사[편집]


담당 배우인 이재용의 뛰어난 연기 덕분에 후일 고려 조정과 임금을 위험에 빠뜨리는 인물임에도 정서적인 공감이 많이 되었다는 평가들이 많다.[13] 특히 9회에서 둘째 아들에게 변고가 생긴 것을 직감하는 표정, 아들의 목이 잘려나갔다는 말에 얼굴을 파르르 떠는 모습, 그리고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위해 거적을 들춰 아들의 모습을 지켜본 후 참척의 고통에 울부짖는 등 연기가 매우 뛰어나서 작중 인물의 행적을 이해할만 하다는 시선들이 많다.##, #.

이런 박진에 대한 묘사 때문에 나중에 "임금께서는 나의 이름과 얼굴을 아시겠습니까?"라는 대사가 가진 무게감이 완전히 다르게 되었다. 원래는 지방 유지가 자기 세력권에 들어온 고려 황제에게 거만함을 보이는 말이지만, 드라마에서는 "두 아들을 고려 황실 때문에 잃은 날 알아보냐"고 원한을 품은 대사로 바뀌었다.

비극적인 개인사를 제외하면 여러모로 고려 지방 호족의 모습과 그 한계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아무리 원래부터 고려 황실에 대한 반감이 있다고 해도 김치양의 반역에 동조한다던가,[14] 엄연히 거란이 고려를 침략한 것임에도 두 아들을 죽인 거란이 아니라 고려 황실을 탓하던가, 자기 지방과 가문만 최우선시하고 국제정세에 어둡거나 나라를 생각하는 것은 부족한 면모를 보인다.

참척의 비극을 두 번이나 겪은 인물이라지만, 인품은 좋아보이지도 않는데, (아직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을 깨닫기 전에) 자기 집 노비가 전장에서 거지꼴로 돌아왔는데도 딱히 신경 써주지도 않는 모습을 보였다.[15][16]


4. 어록[편집]




5. 기타[편집]


여담으로 박진에게는 어린 손자가 있는데, 성인으로 자랐을 때는 제3차 여요전쟁이 발발하기 때문에 이 때문에 귀주 대첩을 비롯한 제3차 여요전쟁에 박진의 손자까지 징용된다는 예측도 있다. 사실 이러면 오히려 다행인 것이 대놓고 현종을 해치려고 할 텐데, 2차 여요전쟁이 끝나고 역적으로 집안이 멸문당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현종이 자비를 베푼 것이다.

9회 엔딩에서 박진이 둘째 아들의 시체를 보면서 절규하던 컷씬 옆에 공교롭게도 최수종의 상조 광고(...)가 같이 떠 고려 황실과 강감찬이 대놓고 티배깅을 한다, 이러니 몽진길이 지옥이 되는 것이지 라는 반응이 나왔다(...)

[1] 작중에서는 이미 고인이다.[2] 야인시대에서 미와 경부, 뿌리깊은 나무에서 조말생, 징비록에서 이산해, 화정에서 김상헌 역을 맡았다.[3] 조선시대와는 달리 고려의 아전은 지방에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호족들이 주류를 차지한 실권자들이었다. 현종에게 이렇게 무례하게 대한 것엔 그런 뒷배도 있어서 가능했다.[4] 우연이겠지만 정종과 광종의 외가가 '충주 유씨'로 혜종과 달리 집안이 막강해 강한 왕권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었다.[5] 이 장면은 고려의 행정체제를 잘 보여주는 모습인데 조선 시대와 달리 봉건제와 관료제가 적당히 섞여 호족이 반란을 일으킬 정도의 힘은 없지만, 동시에 지방을 완전히 장악할 힘이 없는 고려 조정이 적당히 타협한 형태다.[6] 다만 정보가 넘치는 오늘날에도 함부로 국제 정세를 판단하기 어려운 것을 보았을 때, 1차는 만부교 사건, 2차는 강조의 반란 등 겉으로 보이는 원인에 이목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거란의 흉계라고 해도 변명처럼 보이기에 잘못된 판단이라고 해도 비합리적인 것까지는 아니다. 박진의 분노는 여기에 기본적으로 지방 호족으로서 중앙에 품은 여러 불만이 합쳐진 결과물로 보인다.[7] 당시 김종현의 지위가 충주 사록이었다.[8] 박진 입장에서는 두 아들과 휘하 병력을 전쟁에 보내고, 적어진 병력으로 어떻게든 치안을 유지하려는데, 조정에서는 도와주지도 않으니 저런 소리가 나온 것으로 영화 황산벌에서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함에도 중신들이 "해주는 거는 쥐뿔도 없으면서 툭하면 병력을 내라마라야"라는 대사와 일맥상통한다.[9] 바로 자기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을 직감하는데, 이런 박진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것이 "첫째 아들이 죽은 경험" 때문에 바로 알아차린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한 번 경험한 비극이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 비극이니, 바로 알아차린 것.[10] 이 노비도 대단한 것이 통주 삼수채 전투에서 고려군이 패하면서 3만 명이 죽고 대다수가 달아나던 중에 기어이 주인집 아들(박석)의 시신을 찾은 것이다. 그것도 머리가 없고, 온몸이 타버린 상태에서 발목에 있던 부적만으로 시신을 찾고, 그 시신을 수레에 싣고 거란군을 피해 삼수채에서 충주까지 먼 길을 온 것이다.[11] 이 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경악하면서 고개를 돌렸는데, 엑스트라 연기자들의 연기력이 빛을 발하는 장면이기도 했다.[12] 우연히도 박진이 오열하는 장면 직후 배너 광고로 최수종강감찬이 출연한 상조 회사 광고가 올라왔다.[13] 현재 대한민국의 징병제 때문에 아들을 군대에 보낸 박진의 심정을 더더욱 공감된 것도 있다.[14] 김종현이 박진에게 동원령을 전달할 때 무례하게 군 것도 이 때문이다. 본인이 강감찬과 함께 박진이 김치양을 위해 병력 동원을 하는 것을 직접 봤기 때문.[15] 다만 이는 고려는 물론 전근대 이전에는 동서양 귀족 모두 비슷한 태도를 가졌다. 민본주의를 중시한 조선시대 양반이 특이한 경우로, 나중에 조선 후기에 유교가 교조화되면서 역시 마찬가지로 신분을 따지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16] 조선시대 사극에 익숙해서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다는 유교적 이념이 반영 된 결과 이기에 유교적 영향이 크지 않은 고려시대 배경이라면 이질적으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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