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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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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신라 진흥왕의 왕비. 삼국유사 '제3권 흥법 제3'의 '원종흥법 염촉멸신'에서는 모량리(牟梁里) 각간 박영실의 딸로 식도부인(息道夫人/息途夫人) 혹은 색도부인(色刀夫人)이라고도 한다. 진흥왕과 결혼해 김동륜(진평왕의 부친)와 진지왕(김사륜), 김구륜(金仇輪)을 낳았다.
삼국유사 '왕력'에서는 진지왕의 어머니이자 진흥왕의 어머니도 될 수 있다고 나오는데, 일반적으로 후자는 오기로 본다.
진흥왕 사후 출가해 비구니가 되어 영흥사(永興寺)에서 지내다 사망했다. 몇 년에 태어났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손자인 진평왕이 즉위하고 36년이 지나서 사망했으므로 상당히 장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화랑세기 필사본에서는 옥진의 딸로 미실의 이모이며, 자신의 둘째 아들이기도 한 진지왕의 폐위를 주도했다고 나온다. 참고로 화랑세기의 영향으로 사도부인을 사도태후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정사에서 그녀는 태후라고 불린 적이 없어서 태후가 되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 이는 진흥왕 사후에 출가해서 절에 있었기 때문인 듯.
2. 창작물[편집]
대왕의 꿈에선 정재순이 연기했다.
선덕여왕에도 나올법 했는데 나오지 않았다. 이 드라마에서 채택한 화랑세기 기록대로 하자면 미실은 중간보스 느낌으로 사도태후는 진 최종보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텐데 아쉬운 부분. 다만 등장한다면 주인공인 덕만공주는 자기 증조할머니랑 권력 투쟁을 벌이는 셈이다.
[1] 손자인 진평왕의 탄생년도등을 볼 때 540년대에 태어났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 아무리 적어도 530년대 태어난 게 되는데 진흥왕보다 몇살이 더 많았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