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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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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신라 제 39대 국왕 소성왕의 딸이자 신라 제 42대 국왕 흥덕왕의 왕비. 또한 신라 제 40대 국왕 애장왕의 누이.
2. 생애[편집]
숙부 김경휘[1] 와 결혼한다.
이후 그녀의 형제 애장왕이 숙부 김언승[2] 에 의해 쿠데타로 시해당한다.[3]
그리고 826년에 남편이 왕위에 오르고 본인 또한 왕후가 된다.
826년 12월에 졸(卒)하였고 이후 ‘정목왕후(定穆王后)’로 추존된다.
3. 여담[편집]
남편 흥덕왕은 아내를 무척 사랑하였는지 재혼하지 않고 그녀만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또한 장화부인은 신라 역사상 유일하게 왕과 합장된 왕후이기도 하다.
제42대 흥덕대왕(興德大王)이 보력(寶曆) 2년 병오년(826)에 즉위하고, 얼마 안 되어 어떤 사람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앵무새 한 쌍을 가지고 왔는데, 오래지 않아 암컷이 죽었다. 홀로 남은 수컷이 애처롭게 울기를 그치지 않자, 왕은 사람을 시켜 앞에 거울을 걸게 하였다. 새가 거울 속의 그림자를 보고 짝을 얻은 것으로 생각하여 그 거울을 쪼다가 그림자임을 알고서 슬피 울다가 죽었다.
삼국유사 앵무조
겨울 12월에 왕비 장화부인(章和夫人)이 죽으니, 추봉하여 정목왕후(定穆王后)라 하였다. 왕이 왕비를 생각하며 잊지 못하고, 슬퍼하며 즐거워하는 일이 없자, 군신들이 표를 올려 다시 왕비를 맞아들일 것을 청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외짝 새도 짝을 잃은 슬픔이 있거늘, 하물며 좋은 배필을 잃고서는 어떠하겠는가. 어찌 차마 무정하게 곧바로 다시 아내를 얻겠는가.”라고 하며 따르지 않았다. 또 시녀를 가까이 하지 않고, 좌우의 시자(使者)로는 오직 환관만을 두었다.
삼국사기 흥덕왕 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