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와 함께 사대문안-강남 사이에 있어, 양 방향으로 접근이 용이하고 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다. 사대문 안에서 강남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어 위치상으로도 상당히 요충지인데, 대표적으로 4개의 지하철 노선과 1개의 철도 노선, 그리고 2개 노선을 추가로 건설 및 추진 중인 왕십리역이 관내에 있다. 이 과정에서 왕십리 일대가 많이 발전했다.
1995년 제정되어 2003년까지 사용한 성동구의 휘장. 외곽의 둥근형태는 태양을 상징하며 동시에 원만하고 원대한 이상을 표현한다. 성동구의 구조인 참매가 힘차게 비상하는 모습으로 성동구의 발전상을 표현한다. 아래쪽의 3줄은 태양이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모습으로, 성동구의 영원한 이미지를 나타낸다. 짙은 청색은 조직적이고 합리적인 구정을, 하늘색은 미래의 희망을 상징한다.
2003년~현재
현재 사용중인 성동구의 휘장이다. 물을 근원으로 하여 생성되는 무지개는 서울에서 가장 많은 수변 구간을 접하고 있는 성동구의 지리적 특징을 나타낸 것으로 무지개의 일곱 색깔이 물 흐르듯 이어지고 있는 모양은 성동구민 전체의 긴밀한 유대와 화합, 그리고 미래를 향한 힘찬 도약을 의미한다.
서울특별시 성동구의 심벌
2015년 ~ 현재
현재 사용중인 성동구의 심벌 이미지이다. 무지개 색상과 성동구의 지형적 형태를 따르면서 동별 각 지역이 조화롭게 더불어 삶을 이루는 성동구를 상징한다.
서울특별시 성동구의 비전 및 슬로건
비전브랜드
슬로건
서울특별시 성동구의 브랜드
2018년 ~ 현재
오랜 시간 사람들은 성동을 왕십리 판자촌, 금호동 달동네, 청계천변, 성수공단이 있는 낙후된 도시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수년간 성동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왕십리엔 뉴타운이 생겼고, 달동네였던 금호동은 고급 주거지가 되었습니다. 청계천은 자연생태가 보존된 깨끗한 서울의 하천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빼곡했던 공업지역은 지식산업센터와 문화예술공간이 넘쳐나는 서울의 핫플레이스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성동에 거주하시는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동에 살아서 행복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성동구를 자랑스러워하시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 자부심과 뿌듯함을 함께 누리고, 즐기기 위해 성동사랑 캠페인 「#성동에 살아요」를 시작합니다.
성동이라는 지명은 한양도성 성곽 동쪽에 있는 지역이라는데서 본따왔으며 한자도 城東으로 표기한다. 같은 서울시의 성북구 역시 한양도성의 성곽 북쪽에 속한 지역이라하여서 성북이라는 지명이 지어졌다.[20]
유사한 지명의 경기도 성남시의 경우 이쪽은 남한산성의 성곽 남쪽에서 본딴 지명이라 한양도성과는 관련이 없다.
조선시대에는 한성부성저십리 동부 인창방(왕십리, 마장동, 사근동, 용답동)과 남부 두모방 지역이었다.[21]
지금은 '두모교'라는 교량 명칭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으며, 서울역사박물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14년에 일제에 의해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중랑천 서쪽지역) 및 뚝도면(중랑천 동쪽지역)에 편입되었다. 이때 양주군 고양주면 지역이었던 현 광진구, 잠실, 신천 일대도 뚝도면에 편입되었다. 이 때, 인창면 소속이었던 지역들도 숭인면으로 편입된 용답동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지면에 편입되었다.
1963년~1972년까지의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상황. 영등포구와 성동구가 정말 크고 아름답다. 외곽에서 구청 한 번 찾아가려면 시간을 얼마나 허비해야 하는 것인가[30]
물론 당시 서울특별시에 새로 편입된 지역들은 각 구 본청에서 따로 출장소를 설치하여 관할하였다. 성동구의 경우 언주출장소(구 언주면+대왕면), 송파출장소(구 중대면), 천호출장소(구 구천면)가 설치되었다.
그러다가 1975년 신당동 일대를 중구에 넘겨주고, 강남 개발의 본격화와 함께 한강 이남 전체를 강남구로 분구시키면서 구역이 대폭 축소되었다. 중곡동과 군자동의 일부였던 장안평(장한평) 일대 역시 동대문구에 편입되었다(현재의 동대문구 장안동). 대신 동대문구의 천호대로 이남(용두동, 답십리동 각 일부)을 편입하여 용답동을 신설하였다. 1976년 구 민주공화당 중앙훈련원(연수원) 건물로 구청을 이전하였다.
최종적으로 1995년동일로 동쪽을 광진구로 떼어서 분구시킨 이래 현재에 이른다. 재미있는 것은 분구 당시 성동구청(구 민주공화당 연수원)이 지금의 구의역 인근(자양동)에 있었기 때문에, 광진구는 구청을 새로 짓지 않고 기존 성동구청을 그대로 광진구청으로 사용하기로 하였으며, 오히려 성동구가 자기네 구청을 마장동 임시청사로 이전해야 했다.[31]
같은 사례로 도봉구와 강북구, 부산광역시 남구와 수영구가 있다.
한 때 서울 강남권까지 전부 관할하던 거대 행정구역이었으나 현재는 왕십리와 성수동 일대만을 관할하는 영역으로 축소된 역사를 두고, 한 트위터 봇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동구에게 (광진구는) 캐나다의 퀘벡이자, 네덜란드의 플랑드르와도 같았다." # 이후 성동구청은 한동안 청계천에 있는 서울시설공단 사옥에 세들어 살다가, 2004년 행당동에 성동종합행정마을을 조성하면서 비로소 입주하였다. 때문에 성동구의 역사적 정통성은 사실상 광진구가 가져갔다(...). 구 성동구청인 광진구청 안에 역사전시실이 있는데 이 자리에 광진구를 설치하기 이전에 성동구 역사에 대해서도 같이 다루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담으로 현재 광진구 관내 농협조합인 중앙농협이 성동구의 크고 아름다웠던 시절의 흔적인데, 예전 명칭부터가 바로 성동농협이었으며 과거 성동구가 관할하던 한강 이남지역이 현재도 영업권역으로 인정되는 관계로 잠실 일대에 지점 2곳(신천/동잠실)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신천지점은 성동농협 신천지소라는 왠지 송파구에서 싫어할법한 이름으로 10여년간 영업했으며 지금은 중앙농협 신천지점으로 영업중. 이러한 사정 때문에 2015년 전국조합장선거 당시 잠실 일대에 광진구선거관리위원회 명의의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막상 현재의 성동구 관내에는 옥수/금호지점 둘뿐이며 본점을 비롯한 주요 영업구역이 광진구 일대다보니 2001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32]
사실 여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역단위 농협들은 과거 시(도농통합시 제도 이전)·구·읍·면당 1개소를 두었기 때문에 이후 행정구역의 변천과는 별개로 각 지역단위 농협들은 전통적인 행정구역을 따라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1970년대에는 서울동부지방법원이 '서울지방법원 성동지원'이었다. 이 역시 성동구가 한때 지녔던 위엄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성동구 일대는 마장동과 성수동 등을 제외하면 체계적으로 개발되지 못했고, 난개발로 진행되면서 주택들이 어지럽게 밀집되었으나,[34]
특히 옥수동과 금호동에서 노후된 불량주택들이 많았는데, 옥수동의 경우 매봉산(동네 야산)을 일대로 한 손약국이라고 불리는 지역이 대부분 달동네였고 금호의 경우 신금호지역과 옥수동 근처~해병산에 있는 지역에 노후된 불량주택이 밀집되어 있었다.
재개발사업이 대부분 완료되어 고품격 아파트가 들어섰다. 금호동 일대에는 박원순 시장 취임 후 재개발방식이 현 주민 위주로 변경되어 사업진행이 속도를 내지 못하거나 취소된 곳도 몇 군데 있다. 왕십리로터리에서 을지로로 통하는 왕십리로 연변에는 상가와 업무 기능이 발달해 있으며 성수 일대는 저층 경공업 공장이 밀집해 있다.
디자인서울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바로 과거 성수동 뚝섬 경마장 일대, 지금 서울숲 일대에 있었던 판자촌에서 태어났고 성장기를 보냈다.
하지만 정문의 경우 위치가 애매한 편이며 분당선의 서울숲역을 통해 나오면 갤러리아 포레 빌딩 방향으로 가게 된다.
성동구의 중심지역은 왕십리역 주변으로 인근 지역에는 이 지역 유일의 4년제 대학교인 한양대학교가 들어서 있으며, 이 인근은 성동구에서 최초로 스타벅스가 들어선 지역이다. 게다가 요 근래 왕십리 민자역사의 완공과 함께 엔터식스 파크에비뉴가 개장하면서 반경 300m 이내에 스타벅스가 세 곳이나 있다. 왕십리역은 왕십리에 있는 게 아니라 행당에 있다.
성동구는 서울 강북 동부에서 동대문구, 성북구, 강북구와 함께 난개발이 심했던 지역이며, 산이 매우 많아 곡선인 도로들이 많고 그에 따라 구획정리도 상당히 어렵다. 산동네답게 구불구불한 도로들이 너무 많고 거기다가 행당동이나 금호동, 옥수동 쪽은 도로의 경사도 가파른 편. 산동네에 집들이 계획 없이 우후죽순 들어선 결과라고 하겠다. 그래서 이들 지역에서 배민커넥트와 쿠팡이츠 음식배달을 하거나 퀵서비스 일을 하는 사람들은 곳곳에 있는 가파른 언덕과 계단을 항상 주의해야 한다.
2010년대 들어 성수동 일대가 새로운 부자동네로 뜨면서 갤러리아 포레, 성수동 트리마제, 아크로 서울포레스트 등의 고급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다. 천지개벽수준으로 아파트들이 들어선 옥수동, 금호동, 그리고 왕십리뉴타운으로 개발된 왕십리권까지 2022년 기준 상당히 높은 평단가를 기록하고 있으며, 강남과의 접근성을 살려 강남3구에 이어 소위 마용성으로 불리며 소득수준이 높은 자치구라고 인식되고 있다.
서울시내의 자치구들 중 관할 면적이 좁은 편이다. 2023년 2월 기준, 인구는 자치구들 중 뒤에서 5위를 기록하고 있다.
2007년경에 성수에 있던 동부시네마가 문을 닫고 2008년 12월 24일에 왕십리역에 CGV 왕십리점이 문을 열 때까지 1년 넘는 기간동안 영화관이 한 군데도 없었다. 이후 이마트 왕십리점을 중심으로 엔터식스와 기타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이 왕십리 엔터식스 부지에 CGV가 들어섰는데, 2015년 천호점, 2016년 용산아이파크점이 들어서기 이전까지 사실상 CGV의 플래그십 스토어의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아이맥스의 스크린 사이즈도 2013년 전주효자/울산삼산이 들어오기 전까지 가장 큰 스크린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현재도 가장 큰 축에 속할 정도로 영화관의 퀄리티는 매우 좋은 편이다. (1위 용산아이파크몰, 2위 천호, 공동 3위 전주효자, 울산삼산, 4위 판교)
그리고 2019년11월에 메가박스에서 뚝섬 서울숲역 인근에 본사 건물을 지으면서 메가박스 성수점이 입점했다. MX관은 큰 편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밸런스가 잘 잡혔다는 평이다. 성수권역에 영화관이 들어선 것은 12년 만이다.
또한, 2020년에는 성수역 인근에 있던 단편영화 상영관 다락스페이스가 장편영화 상영도 개시하게 되면서, 성동구에 영화관이 3군데가 되었다. 다락스페이스는 비상설상영관으로 연간 120일까지만 상영할 수 있고, 일요일, 월요일에는 아예 영업하지 않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성동구민 CLC: 숙소와 회사 모두 성동구에 있는 CLC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성동구가 배경으로 상당히 자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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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7개 법정동, 17개 행정동[2] 2023년 11월 기준 행정안전부주민등록인구 통계[3] 성동구 가선거구 (금호1가동, 금호2·3가동, 금호4가동, 옥수동): 박성근, 양옥희 성동구 나선거구 (왕십리도선동, 왕십리2동, 행당1동, 행당2동): 전종균, 남연희 성동구 다선거구 (마장동, 사근동, 송정동, 용답동): 장지만, 오천수 성동구 라선거구 (응봉동, 성수1가1동, 성수1가2동, 성수2가1동, 성수2가3동): 김현주, 고용필 비례대표: 이영심[4] 성동구 가선거구 (금호1가동, 금호2·3가동, 금호4가동, 옥수동): 엄경석 성동구 나선거구 (왕십리도선동, 왕십리2동, 행당1동, 행당2동): 정교진 성동구 다선거구 (마장동, 사근동, 송정동, 용답동): 박영희 성동구 라선거구 (응봉동, 성수1가1동, 성수1가2동, 성수2가1동, 성수2가3동): 주복중 비례대표: 이현숙[5] 성동구 제1선거구 (금호1가동, 금호2·3가동, 금호4가동, 옥수동): 박중화 (재선) 성동구 제2선거구 (왕십리도선동, 왕십리2동, 행당1동, 행당2동): 구미경 (초선) 성동구 제4선거구 (응봉동, 성수1가1동, 성수1가2동, 성수2가1동, 성수2가3동): 황철규 (초선)[6] 성동구 제3선거구 (마장동, 사근동, 송정동, 용답동): 이민옥 (초선)[7]중구·성동구 갑 선거구는 성동구로만 이루어져 있다. 금호동, 옥수동은 중구와 함께 을 선거구로 획정되어 있다.[8]성북구도 한양도성의 북쪽에 있어서 성북구가 되었다.[9]왕십리, 마장리, 사근리, 용두리, 답십리[10] 수철리(현 금호동), 두모리(현 옥수동), 신촌리(현 응봉동), 행당리[11] 화양리, 모진리(현 화양동), 능리, 자마장리(현 자양동), 구의리, 광장리, 군자리, 중곡리, 면목리[12] 인창방에서 하왕십리가 편입되었다.[13] 신당리[14] 용두리, 답십리[15] 상왕십리, 하왕십리, 수철리(현 금호동), 두모리(현 옥수동), 신촌리(현 응봉동), 행당리, 마장리, 사근리[16] 서뚝도리(현 성수동1가), 동뚝도리(현 성수동2가와 자양4동), 송정리, 화양리, 모진리(현 화양동), 능리, 자마장리(현 자양동), 구의리, 광장리, 군자리, 중곡리, 면목리[17] 용두정, 답십리정[18] 용두동, 답십리동[19]신당동, 황학동, 무학동[20] 유사한 지명의 경기도성남시의 경우 이쪽은 남한산성의 성곽 남쪽에서 본딴 지명이라 한양도성과는 관련이 없다.[21] 지금은 '두모교'라는 교량 명칭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으며, 서울역사박물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22] 영등포구, 용산구, 중구, 종로구, 서대문구, 동대문구, 성동구의 7개 구.[23] 현재의 성수동 일대와 광진구 전역, 그리고 중랑구 면목동과 송파구 잠실동 일대[24] 현재의 강남구 대부분과 서초구 남동부[25] 현재의 송파구 대부분[26] 현재의 송파구 풍납동과 강동구 전역[27] 현재의 강남구 수서동, 일원동 일대[28] 사실 현재도 용산구 용산동6가가 한강 남북 모두 걸쳐있기는 하다.[29]서울동부구치소의 전신 성동구치소가 성동구가 아닌 송파구에 있었던 이유도 송파구 지역이 과거 성동구 관할이었기 때문이다.[30] 물론 당시 서울특별시에 새로 편입된 지역들은 각 구 본청에서 따로 출장소를 설치하여 관할하였다. 성동구의 경우 언주출장소(구 언주면+대왕면), 송파출장소(구 중대면), 천호출장소(구 구천면)가 설치되었다.[31] 같은 사례로 도봉구와 강북구, 부산광역시남구와 수영구가 있다.[32] 사실 여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역단위 농협들은 과거 시(도농통합시 제도 이전)·구·읍·면당 1개소를 두었기 때문에 이후 행정구역의 변천과는 별개로 각 지역단위 농협들은 전통적인 행정구역을 따라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33] 용답동 신설[34] 특히 옥수동과 금호동에서 노후된 불량주택들이 많았는데, 옥수동의 경우 매봉산(동네 야산)을 일대로 한 손약국이라고 불리는 지역이 대부분 달동네였고 금호의 경우 신금호지역과 옥수동 근처~해병산에 있는 지역에 노후된 불량주택이 밀집되어 있었다.[35] 디자인서울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바로 과거 성수동 뚝섬 경마장 일대, 지금 서울숲 일대에 있었던 판자촌에서 태어났고 성장기를 보냈다.[36] 2015년 상반기 노선 조정안을 보면 2233번이 옥수동에서 용비교를 지나 성수동까지 연장운행하기로 예정되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부결된 바 있다.[37] 노선은 옥수역에서 출발하여 서울숲푸르지오아파트 및 용비교를 지나 서울숲, 이마트 성수점을 경유한 뒤 성수역에서 회차하는 경로이다.[38] 대신 일부 구간이 입체화된 뚝섬로-서빙고로를 이용할 수 있다.[39]동대문구와 성동구의 경계에 있어서 동대문구 항목에서도 이 역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역의 주소는 동대문구로 되어있다.[40] 여학생과 남학생 비율이 놀라울 정도이다. 교복과 과잠바가 너무 예쁘다.[41] 舊 동호공업고등학교. 이 학교 운동장 부지에 서울동호초등학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