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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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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가톨릭 베네딕도회 소속의 수녀. 1970년 시인으로 등단하여 많은 동시(童詩)와 수필을 써온 문인이기도 하다.
2. 생애[편집]
이해인 수녀의 삶, 작품세계를 다룬 2023년 7월 기사(조선일보)
독실한 천주교 신자 집안에서 자랐고, 어렸을 적부터 책 읽고 글쓰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6.25 전쟁 시기 납북되었다. 어머니가 20대에 세례를 받았고, 자식들로 1남 3녀(이해인 수녀는 셋째)를 키웠는데 그 중에서 큰딸, 그러니까 이해인의 큰언니는 이해인이 초등학교 시절 수녀원에 입회했으며, 이에 이해인이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고모가 2명 있는데 그 중 1명도 젊은 시절 수녀가 되려 하였다고.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자신이 지은 동시를 "누가 써 준 것임에 틀림없지?"라고 믿지 못했던 담임선생의 증언(?)이나, 백일장에서 입선하는 등, 어린 시절부터 글쓰는 것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무렵 수도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때 수도자의 길과 시인의 길을 같이 걸을 수 있을까 걱정했으나, 세월이 흐른 지금, 결국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었다.
2005년에 발간된 가톨릭 성경 번역에도 참여하였다. 주로 시 부분의 번역에 도움을 주었다.
2021년 12월 8일,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의 서울대교구장 착좌 미사에서 수도자 대표로 축사를 했다.
3. 대표작[편집]
- 나를 위로하는 날
- 작은 노래(2연작)
4. 타 종교인과의 만남[편집]
종파를 넘어 생전의 법정과 친분이 깊다.[3] 관련 기사 한국 천주교와 불교는 서로 왕래가 매우 잦으며 친분도 굉장히 두텁다. 크리스마스와 부처님오신날에 서로 축하메세지를 주고 받으며, 일반 신자들 사이에서도 인식이 서로 호의적인데다가 사제와 승려들이 친밀하게 지내는 것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4]
법정과 함께
혜민과 함께
5. 대중매체에서[편집]
- 영화 그대 어이가리의 연희(정아미)가 적어놓은 메모에서 시 '나의 별'이 기록되어 있다. 극 중에서 연희가 병마와 싸우는 고통의 감정을 시를 기록하는 것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나중에 이를 발견한 동혁(선동혁)이 연희의 외롭고 고통스러운 투병을 알고 펑펑 운다.
[1] 정확히는 수도 서원을 하면서 받은 수도명이다. 태어날 당시 부모님이 지어 준 세례명은 '벨라뎃다(Bernadette)'. 수도자들은 대부분 서원 이전의 세속의 삶을 끊어낸다는 의미에서 수도명을 새로 지으면 기존 세례명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2] 필리핀 바기오에 위치한 대학교로, 1911년 12월 1일 가톨릭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필리핀의 명문 대학교 중 하나이다.[3] 두 사람은 샘터 출판사에서 다수의 저서를 쓴 문인으로서의 인연도 깊다.[4] 종교가 다르다고 사제나 수도사, 목회자 등이 승려와 서로 감정이 안 좋지는 않다. 오히려 성품이 온화한만큼 잘 맞는 부분이 많으며 목회자가 공개적으로 자신이 스님들을 좋아한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본보기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