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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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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기원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장르
철학
저자
한나 아렌트
최초 발행
1951년
언어
영어

1. 개요
2. 상세
3. 내용
4. 여담




1. 개요[편집]


『전체주의의 기원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은 한나 아렌트가 1951년에 쓴 철학 서적이다. 이 책에서 아렌트는 나치즘스탈린주의전체주의 정치 운동으로 분석하고 있다.


2. 상세[편집]


『전체주의의 기원』은 1945년 집필하기 시작하여 1951년 처음에 출판되었을 때는 총 12장의 구성에다 영어로 출판되었다. 1955년에는 독일어로 번역되어 『전체주의적 지배의 요소와 기원 (Elemente und Ursprünge totaler Herrschaft)』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1958년에 개정판을 출간하면서 책의 마지막에 결론 부분을 대신하여 두 개의 장을 추가했다. 그 두 개의 장은 13장 「이데올로기와 테러: 새로운 국가 형태」, 14장 「에필로그: 헝가리 혁명에 대한 성찰」인데, 14장은 후속 개정판에서는 생략되고 별도의 책으로 출판된다. 그래서 현재 완성된 판본은 총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제목이 말해주고 있듯이 이 책은 전체주의의 기원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지만, 정확하게는 그 '역사적 기원'을 설명하는 것 보다는 '발생 요소'에 대해 초점을 두고 설명하고 있다. 책은 크게 3부분으로, 1부는 '반유대주의', 2부는 '제국주의', 3부는 '전체주의'로 구성된다. 아렌트는 '반유대주의'와 '제국주의'를 전체주의를 가능하게 만든 전조 현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인 '전체주의'에서는 인간의 인격마저 말살시킨 나치즘과 스탈린주의의 '총체적 지배'의 의미에 대해서 분석한다.

책 분량이 꽤 많은데다가 철학책에 익숙하지 않은 초심자의 경우 이해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보통 읽다가 포기하는 그런 책이다. 그런데 책의 핵심 부분은 뒤에 다 몰려 있으니 사실 3부 '전체주의'만 읽어도 무방하다. 물론 좀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의 앞부분을 읽는 것이 필요하긴 하지만 말이다.


3. 내용[편집]


아렌트에 의하면 반유대주의는 단순한 외국인 혐오증이라는 반작용이 아니다. 그렇다고 유대인이 완전히 무죄한 '희생양'이라는 말도 아니다. 근본적으로 그것은 국가와 유대인과의 관계가 바뀌는 상황 속에서 유대인이 수행하는 역할이 변화했기 때문이다.[1]

오랫동안 유대인들은 지정된 게토에 살아야 하는 차별을 받았음에도 은행업에 종사하여 돈은 많았던 까닭에 프랑스 혁명 이후 탄생한 국민 국가의 부족한 자금을 융통해 주면서 귀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던 이중적 지위에 놓여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국민 국가 내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서 잉여 자본과 잉여 인력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 '쓸모없는' 것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사용하고 소비할 식민지, 즉 제국주의가 필요하게 되었는데, 제국주의는 자체 국가 권력으로써 자본을 창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국가는 더이상 유대인 은행가의 돈을 빌리지 않아도 되었다. 이는 유대인이 사회에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유대인들에게는 위험신호였다. 게다가 평등사상으로 인해 '명목상' 유대인에 대한 법적 차별은 없었는데, 유대인은 더이상 국가를 상대로 돈을 벌 수 없었으므로 이제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돈벌이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는 '의무 없이 착취만 한다'는 생각으로 번지게 되어 곧 극도의 증오를 받게 되었다.[2] [3] [4]

한편, 제국주의 국가는 모순을 지니고 있었는데, 국내로는 법적 평등을 주장했지만, 식민지에서는 법이 없는 것이 유리했으므로 무법 상태를 용인하게 되었던 것이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식민지에 처리된 사회의 쓰레기, 즉 '잉여 인력'들은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무법을 식민지에서 배우게 되었고, 그들의 무법적 행동은 나중에 '절망적이고 증오로 가득차 고립된 대중'인 '폭민(mob)'[5]에게 큰영향을 미쳤다. 이 '쓸모없는' 인간으로 불리는 폭민은, 행동하지 않는 자유주의 정치인들의 실정에 대한 허무감에 곧잘 빠졌기 때문에, 음모론적 비방과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해결을 제시하는 범민족 운동[6]이 그들 앞에 나타났을 때 그 운동에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운동을 위해 약탈, 협박, 강간, 살인 등의 범죄를 기꺼이 저지를 수 있었으므로, 몰락했던 엘리트들은 이 폭민들을 이용하여 권력을 잡고 마침내 전체주의 정권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7] [8] [9] [10]

따라서 전체주의의 핵심적 목표는 대중의 운동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런 대중들의 범죄적 운동을 용인하는 사회에서만 자신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전체주의 정권은 더이상 정권비방을 용인할 수 없었으므로 '예전같은 운동'은 지속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운동을 국외로 확장할 필요가 있었고, 국내에서는 대중들에 대한 선전(프로파간다)을 통해 개인의 정치적 공간, 곧 개인의 '자발성'을 없애는 작업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11] [12]

이 과정에서 그들은 새로운 조직을 끊임없이 만들어 기존 조직과 경쟁시키고 서로를 감시하고 검열하게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 끊임없이 숙청을 하는 등 내부적인 운동도 만들어냈다. 이는 정상적인 정부 내에서의 상호 견제가 아니라, 운동이 지지부진해질 때마다 그 운동을 지속시키기 위한 새로운 조직이었으므로 그 효율과 상관없이 끊임없이 추가되는 조직이었다. 물론 역할이 겹치는 조직을 끊임없이 만들고 이를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다는 것은 극도로 비효율적인 행위다. 그러나 그들은 순전히 내부적인 운동을 지속하기 위해, 그 조직들 뒤에 숨어 그들을 관리하는 비밀경찰[13]을 통하여 이 극도로 비효율적인 행위를 지속해야만 했다. 이조차 힘들어지는 전쟁 말기에야 그들은 마침내 유대인을 '객관적인 적'으로 설정하고는 그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죽임으로써 운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14] [15] [16] [17] [18]

이러한 운동을 통해 전체주의 정권은 '총체적 지배'를 구축한다. '총체적 지배'란, 무한히 많고 다양한 인간들을 마치 한 사람(One man)인 것처럼 조직하는 것이다. 이 총체적 지배는, 모든 개인이 각각 항상 변함없는 반작용들의 동일성으로 축소되어서 이 반작용 묶음들이 다른 묶음과 임의로 교환될 수 있을 정도가 됐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마치 벨이 울릴 때마다 반사적으로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강제 수용소의 힘 덕분이었다. 강제 수용소 내의 절대적인 공포정치는 바로 인간의 자발성 자체를 제거하고 인격을 단순한 사물로 만드는 무서운 실험실이자, 전체주의 엘리트들의 비도덕적 이데올로기 교육을 수행하는 시험장이었던 것이다.[19]

강제 수용소는 일단 국적을 박탈하여 그 사람의 '법적 인격'을 살해한다. 또한 강제 수용소는 선을 행하는 것이 전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을 만듦으로써[20] 전체주의 정권의 범죄에 모든 사람이 의식적으로 조직적인 가담을 하게 만들고는 이로써 그 사람의 '도덕적 인격'을 살해한다. 마지막으로 강제 수용소는 끔찍한 고문을 통해 신체를 파괴하고 궁극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여 끝내 그 사람의 '개성을 파괴'한다. 개성을 파괴하는 것은 인간의 자발성을 파괴하는 것이며 스스로 새로운 일, 즉 환경과 사건에 대한 단순한 반응의 토대 위에서는 설명될 수 없는 어떤 것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남는 것은 인간의 얼굴을 한 무시무시한 꼭두각시 인형들이다. 모두가 파블로프의 개들처럼 행동하고 반응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런 인형들이다.[21] [22] [23]

아렌트는 끝으로 이 전체주의 운동을 움직이게 만든 것은 '이데올로기'와 '테러'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이데올로기 자체만으로는 전체주의적이지 않다. 그 이념으로부터 발전해 나올 수 있는 '논리적 과정'의 예언에 확신을 가지고 그것을 강압을 할 때 그것은 전체주의적인 것이 된다. 한편, 테러는 '고립'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벌어진다. 물론 인간은 기술이나 예술 작품을 제작하는 등 생산적인 일을 할 때 잠시 동안 고립 상태에 놓이기도 한다. 그러나 공동 세상에 자기 자신만의 것을 더할 수 있는 능력이 파괴될 때 고립은 완전히 참을 수 없는 것이 되고, 테러에 동조하는 감정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고 보장하는 나의 자리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나오는 결론은 무엇인가? 이데올로기의 강압과 인간 삶의 고립을 막기 위해, 그리고 타인의 정체성과는 결코 오인될 수 없는 나만의 정체성을 갖기 위해, 우리는 '사유'를 해야 하고,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 '사유'는 나와 동등한 사람과 신뢰할 수 있는 교제를 나눌 때에만 비로소 확인될 수 있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24] [25] [26] [27] [28]


4. 여담[편집]


  • 이 책을 매우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비밀경찰과 수용소의 감시와 폭력을 통해, 이데올로기적 예언을 강요하고 비상식적 테러를 용인하여 상식을 무력화시키고, 모든 사람을 하나의 명령에만 반응하게 하는 꼭두각시로 만드는 조직이 전체주의 체제라는 것이다. 이런 사태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개인의 심리는 근본적으로 개인이 고립감을 느낄 때 생기므로, 우리는 자신이 더이상 고립감을 느끼지 않도록 공공의 영역에 대하여 '사유'할 줄 알아야 하며, 또한 '사유'할 수 있는 공간(다른 사람과의 교제)을 필요로 한다.

  • 아렌트는 전체주의 조직의 핵심이 '비밀경찰'이라고 말하는 데, 이 때 '비밀경찰'은 그냥 경찰이 아니라 첩보 및 감시 업무를 비밀리에 담당하는 경찰, 즉 한국으로 치면 국정원을 가르킨다. 그렇다고 꼭 같은 것만은 아닌데, 국정원 같은 첩보 기관은 해외 업무에 관련한 문제를 다루는데 비해, 아렌트가 말하는 비밀경찰은 그 첩보와 감시를 '국내의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1] 근대의 반유대주의는 국민 국가의 발전이라는 보다 일반적인 틀 속에서 고찰되어야 하며, 동시에 반유대주의의 원천은 유대인 역사의 몇 가지 측면에서, 특히 지난 세기 동안 유대인이 수행했던 역할에서 찾아야만 한다. 국민국가가 분열하는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반유대주의 슬로건들이 제국주의를 확대하고 낡은 지배 형태를 파괴하도록 대중을 부추기고 조직화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입증되었다면, 유대인과 국가가 맺었던 관계의 역사는 사회 집단과 유대인 간의 적대감이 고조된 이유에 대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1』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p.93)[2] 인간은 권력이 모종의 기능을 하며 일반적으로 유용하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아는 까닭에 실질적 권력에 복종하거나 견디는 한편, 권력 없이 부만 가진 사람들을 증오한다. 착취와 억압조차도 사회가 돌아가게 만들고 나름의 질서를 확립시킨다. 단지 권력을 상실한 부와 정책적 대안 없는 냉소만이 기생충 같고 무용하며 역겨운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 이유는 이런 조건이 사람들을 서로 묶어주는 끈을 모두 잘라버리기 때문이다. 착취하지 않는 부에는 흔히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마저 결여되어 있다. 정책 없는 냉소에는 착취자가 피착취자에 대해 통상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관심조차 들어있지 않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1』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p.86)[3] 정권도 과거처럼 유대인이 절실하게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정부가 이제 의회를 통해 과거의 절대군주나 입헌군주가 꿈조차 꾸지 못했던 정도로 폭넓은 재정적 기회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도적인 유대인 가문들은 서서히 모든 공적인 경제 정책의 무대에서 물러났고, 귀족의 반대유대주의 살롱으로 가서 좋았던 옛 시절을 되찾으려는 목적을 가진 반동 운동에 뒷돈을 대주려는 꿈을 꾸었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1』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p.228)[4] 유대인들에 관한 요점은 그들이 지닌 실제의 영향력과 권력의 지위에 반비례하여 그들이 더 유명해지고 부각되었다는 사실이다. 국민국가의 안정과 힘이 축소되면 그것은 항상 유대인 지위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이 되었다. 국민이 국가를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정복하면 정부 기관이 모든 계급과 정당 위에 군림하는 자신의 기존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그 때문에 정부 기관은 유대계 주민들과 맺은 동맹의 가치를 무효화시켰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사회 계층의 바깥에 머물고 또 정당정치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었다. 제국주의 성향의 부르주아 계급이 외교 정책에 점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고 국가 기관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이 증가했지만, 유대인 부유층은 모두 생산사업에 참여하기를 계속 거부했고, 또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의 발전에 발맞춰 전통적 금융거래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 모든 요인들이 함께 어우러져 한 집단으로서의 유대인들의 경제적 유용성은 끝났으며, 사회적 분리가 그들에게 가져다준 이점들도 끝났다. 프랑스 유대인 사회가 제3공화국의 처음 1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중앙 유럽의 유대인 사회는 국민으로 동화되었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p.92)[5] 아렌트가 정의하는 '폭민'의 개념은 이렇다. 국민 국가의 각각의 정당(귀족당, 노동자당, 부르주아당 등등)에서 각각의 생업으로 인한 이익관계로 묶여 있던 각 계층들을, 제국주의가 하나의 국가 이익이라는 명분으로 모두 무너뜨림으로서, 각 계층에서 무기력하게 탈락하여 나온 잉여 인력들이 '폭민'이라는 것.[6] 여기서 범민족 운동이란, 구체적으로 범슬라브주의, 범게르만주의를 말한다. 범슬라브주의는 볼셰비키 공산당 전체주의가 되었고, 범게르만주의는 나치 전체주의가 되었다는 것이 아렌트의 주장이다.[7] 폭민은 일차적으로 각 계급의 낙오자들을 대표하는 집단이다. 이 때문에 폭민을 국민과 혼동하기 쉽다. 국민 역시 사회의 모든 계층을 아우르기 때문이다. 국민이 모든 혁명에서 진정한 대의제를 위해 투쟁했다면, 폭민은 항상 '강한 자', '위대한 지도자'를 소리 높여 외친다. 폭민은 자신을 소외시킨 사회를 증오하며, 자신을 대변해주지 않는 의회 역시 증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폭민의 지도자들이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있던 수단인 국민 투표제는 폭민에 의존하는 정치가들의 낡은 개념이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1』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p.242)[8] 자본주의 조직에서 폭민이 발생하는 현상은 이미 일찍이 관찰되었고 그 성장은 19세기의 모든 위대한 역사가들에 의해 신중하게 그리고 우려와 함께 언급되었다. 부르크하르트에서 슈펭글러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사적 염세주의는 본질적으로 이런 관찰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순수한 현상 자체를 슬픈 심정으로 다루었던 역사가들이 포착하지 못했던 사실은, 폭민은 성장하는 산업 노동자와도 또 더욱 분명하게는 국민 전체와도 동일시될 수 없었으며, 실제로 모든 계급의 폐물들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폭민은 이렇게 구성되었기 때문에 폭민과 그 대표자들이 계급 차이를 폐지한 것처럼 보였고, 또 계급 국가의 밖에 있는 그들은 왜곡된 형태 또는 희화화된 형태의 국민이라기보다 국민 자체(나치가 말하듯이 국가 공동체)처럼 보였다. 역사적 염세주의자들은 이 새로운 사회 계층의 본질적인 무책임성을 알았고 또 민주주의가 전제정치로, 그 독재자들이 폭민에게서 발생하고 폭민을 지지 기반으로 둘 그런 전제정치로 바뀔 가능성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그들이 알지 못한 사실은 폭민이 부르주아 사회의 폐물일 뿐만 아니라 이 사회가 직접 생산한 부산물이며, 그래서 결코 이 사회와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상류 사회가 지하 세계를 지속적으로 동경하고 찬양하게 되며, 이런 동경과 찬양이 19세기를 관통하고 또 상류 사회가 모든 도덕 문제에서 한 걸음 한 걸음 후퇴하고 자손들의 무정부주의적 냉소주의를 점점 더 좋아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못했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1』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p.314)[9] 엘리트와 폭민의 일시적 동맹이 가능한 까닭은 후자가 상류사회의 명성을 파괴할 때, 엘리트가 기쁨을 느꼈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강왕들이 자신이 페인트공이었고 낙오자였다고 스스로 인정한 히틀러와 어쩔 수 없이 상대하고 또 그를 사회적으로 수용해야만 했을 때, 또 전체주의 운동이 유럽 역사의 훌륭하지 않은 모든 밑바닥 요소를 모아 하나의 일관된 그림으로 그리면서 지적인 모든 분야에서 노골적이고 저속한 위졸르 자행했을 때 상류사회의 명성은 파괴되고 폭로될 수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볼셰비즘과 나치즘이 자신의 이데올로기 원천도 막으려 했다는 것은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역사를 다시 쓰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 것은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이 아니라 300가족의 음모였고, 고비노와 체임벌린의 과시적 과학성이 아니라 '시온 장로 의정서'였으며, 그 증거를 확인할 수 있는 가톨릭 교회의 영향과 라틴계 국가들의 교권 반대주의가 맡은 역할이 아니라 예수회 회원과 프리메이슨단 회원에 관한 저속한 문헌이었다. 가장 다양하고 유동적인 이런 구조물의 목적은 항상 공식 역사를 하나의 웃으거리로 폭로하는 것이고 은밀한 영향력이 작용하는 영역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가시적이고 확인할 수 있으며 알려진 역사적 현실은 단지 사람들을 기만하기 위해 세운 외면적 외관에 지나지 않았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p.58~59)[10] 대중이 인정하지 않는 것은 현실에 만연해 있는 우연성이다. 이데올로기는 사실을 법칙의 단순한 예로 설명하고 또 모든 사건의 밑바탕에 있다고 여겨지는 포괄적인 능력을 발명함으로써 우연의 일치를 제거하기 때문에 대중은 온갖 이데올로기에 빠지기 쉽다. 전체주의 선전에는 현실로부터 허구로의 도피, 우연의 일치로부터 일관성으로의 도피와 같은 도피들이 무성해진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p.88)[11] 나치즘이나 볼셰비즘 모두 새로운 형태의 정부를 선언하지 않았으며, 권력을 장악하고 국가 기구를 통제함으로써 자신들의 목표가 성취되었다고도 주장하지 않았다. 그들의 지배 이상은 어떤 국가나 폭력 장치도 결코 성취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단지 끊임없이 움직이는 운동일 뿐이었다. 다시 말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개개인의 지속적인 지배였다. 폭력 수단을 통한 권력 장악은 결코 그 자체 목표가 아니라 목표에 이르는 수단일 뿐이다. 그리고 어떤 나라에서의 권력 장악은 환영할만한 통과 단계일 뿐, 결코 운동의 끝이 아니다. 운동의 실천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운동으로 끌어들여 조직하고, 그들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운동을 멈추게 할 정치 목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p.47)[12] 전체주의 운동은 이런저런 이유로 정치 조직에 대한 욕구를 가진 대중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다. 대중을 결집시키는 것이 공동 관심은 아니다. 확고하고 성취될 수 있는 특정한 목표로 표현되는 특수한 계급의식이 그들에게 없다. 단순히 수가 많거나 공공 업무에 관한 무관심 때문에, 아니면 이 둘 다의 이유로 인해 정당이나 자치 정부, 전문 조직 또는 노동조합처럼 공동 관심에 기초한 조직으로 통합될 수 없는 사람들을 상대할 때에만 '대중'이라는 용어는 적용된다. 대중은 잠재적으로 어느 국가에나 존재하며, 정당에 참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투표하러 가지도 않는 중립적이고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사람들이 다수를 형성한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p.25)[13] 한국으로 치면 국정원이다. 국정원이 해외업무를 보지 않고 국민을 대상으로 첩보 감시 업무를 행하고 있는 것과 같다.[14] 전문적으로 말한다면, 전체주의의 지배 장치 안에서 운동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지도부가 끊임없이 실질적인 권력의 중심을 다른 조직으로 이동시키면서도 권력을 박탈당한 집단을 해체시키지 않고 공개적으로 탄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치 정권의 초기, 즉 제국의회의 화재 사건 직후 나치 돌격대는 권력의 진정한 심장부였고 당의 표면상의 권력이었다. 그러다가 권력은 나치 돌격대에서 나치 친위대로 넘어갔고 결국 나치 친위대에서 공안부로 넘어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권력 기관도 자신이 지도자의 의지를 구현하고 있는 척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긴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중략) 달리 말해 누구에게 복종해야 할지 알게 되고 또 위계 질서가 비교적 영구적으로 정착된다면 전체주의 통치에 본질적으로 맞지 않는 안정성의 요소가 들어올 것이기 때문에, 나치는 실권 기관이 공개되면 언제나 그것을 부인했고 새로운 통치 기관을 신설했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p.162~163)[15] 통치 기술로서 전체주의 장치는 단순하고 효과적이다. 이 장치들은 절대적인 권력의 독점뿐만 아니라 모든 명령이 반드시 실행된다는 절대적인 확실성을 보장해준다. 명령의 전달 통로의 다양성, 위계 질서의 혼란으로 인해 독재자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전혀 의존하지 않으며 정책에서 예상외의 신속한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전체주의는 이런 특징으로 유명하다. 나라의 정치 체재는 그 무정형 때문에 어떤 충격에도 끄떡없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p.174)[16] 국가의 위에, 표면적인 권력의 간판 뒤에, 여러 겹으로 중복된 관청들의 미로 한가운데, 모든 권력 이동의 배후에, 그리고 비능률의 혼돈 가운데에 국가의 권력 핵심, 능률적이며 유능한 비밀경찰의 부서들이 자리잡고 있다. 유일한 권력 기관으로서 경찰의 역할이 강조되고 이에 상응하여 군대는 겉보기에는 더 큰 권력을 가진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경시되는 경향이 전체주의 정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p.192)[17] 전체주의 정권의 권력 장치 안에서 "조직력과 능률에서 가장 뛰어난" 정부 부서였던 비밀경찰의 정치 기능은 의심스러운 것도 아니고 불필요한 것도 아니다. 비밀경찰은 정부의 진정한 집행 부서로서 이 부서를 통해 모든 명령이 전달되었다. 비밀 요원들 간의 조직망을 통해 전체주의 통치자들은 그 자신을 위해 직접 집행 명령을 전달할 수 있는 연계망을 만들었다. 이 연계망은 겉으로 드러난 양파 구조의 위계 질서와는 달리 다른 제도들로부터 단절되고 고립되어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비밀경찰 요원들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유일하게 공공연한 지배계급이며, 그들의 가치 기준과 척도가 전체주의 사회의 전체 구조 안으로 침투될 수 있었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p.206)[18] 이런 관점에서 비밀경찰의 어떤 특성이 전체주의 비밀경찰만의 고유한 특성이 아니라 전체주의 사회의 일반적인 성격이라는 것은 그리 놀랍지 않다. 용의자라는 범주는 전체주의 조건에서는 전 주민을 포함한다. 공식적으로 정해졌지만 수시로 변하는 노선에서 일탈한 사상은, 어떤 활동 영역에서 일어나든 모두 이미 혐의의 대상이 된다. 인간은 생각할 능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용의자가 되며, 모범적인 행동을 한다해도 이 혐의를 돌릴 수 없다. 왜냐하면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동시에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확실하게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치의 공유나 이기심의 예측 가능성이 사회적 현실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혐의는 완화될 수 없다. 그러므로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상호 의심이 모든 사회 관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심지어 비밀경찰이라는 특수 영역의 밖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전체주의 정권에서는 과거 한때 비밀경찰의 전공이었던 도발이 이웃을 다루는 방식이 되었으며, 모든 사람은 원하든 원치 않든 이 방법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면에서 모두가 다른 사람의 앞잡이가 된 것이다. '위험한 생각'의 우호적인 상호 교환이 당국의 관심을 끌면, 누구나 자신을 앞잡이라 부를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 주민들이 정치적 반대파를 고발하면서 정권에 협조하고 밀고자로서 자원봉사를 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전체주의 정권에서 그들은 너무나 잘 조직되어 있어 전문가가 일할 필요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사방에 염탐의 눈길이 있는 체제 아래서 모든 사람이 경찰 끄나풀이 될 수 있고 각 개인이 감시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곳, 게다가 직업적 성공이 불확실하고 극적인 출세와 몰락이 일상사가 되어버린 곳에서 모든 말은 애매모호해지고 회고적 '해석'의 대상이 되기 쉽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p.207~208)[19] 총체적 지배는 무한히 많고 다양한 인간들을 마치 모든 인간이 하나의 개인인 것처럼 조직하고자 한다. 이 총체적 지배는, 모든 개인이 각각 항상 변함없는 반작용들의 동일성으로 축소되어서 이 반작용 묶음들이 다른 묶음과 임의로 교환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 다시 말하면 "종족 보존" 이 유일한 '자유'인 어떤 동물종과 유사한 인간종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주의 지배는 이 목적을 엘리트 집단의 이데올로기 주입 교육과 수용소 내의 절대적인 공포정치를 통해 이루고자 한다. 엘리트 집단의 무자비한 만행은 주입된 이데올로기가 실제로 적용된 것이었다. 즉, 이데올로기 교육이 입증되는 시험장이었다. 수용소의 소름 끼치는 광경 자체는 이데올로기의 '이론적' 검증으로 간주된다. 수용소는 사람들을 말살하고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릴 목적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과학적으로 통제된 조건에서 인간 행동의 표현인 자발성 자체를 제거하고 인격을 단순한 사물, 동물조차 아닌 ㅡ 잘 알다시피 배가 고플 때가 아니라 벨이 울릴 때 먹이를 먹도록 훈련받은 파블로프의 개는 변태 동물이지만 동물이었기 때문이다ㅡ 그런 사물로 만드는 무서운 실험실이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p.218~219)[20] 아렌트는 세 자식 가운데 어느 아이를 죽일지 나치로부터 선택을 강요당한 그리스인 엄마를 예로 들면서, 전체주의 정권이 양심의 결정을 의심스럽고 애매모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고 비판한다.[21] 범죄자들을 다른 범주의 사람들과 섞는 것은 다른 모든 신참들이 자신들이 사회에서 가장 수준 낮은 곳에 떨어졌다는 것을 놀라울 정도로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는 이점이 있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p.234)[22] 양자택일은 선과 악 사이에서가 아니라 살인과 살인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세 자식 가운데 어느 아이를 죽일지 나치로부터 선택을 강요당한 그리스인 엄마의 도덕적 딜레마를 누가 해결할 수 있는가? 양심이 부적절해지는 조건, 선을 행하는 것이 전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을 만듦으로써 전체주의 정권의 범죄에 모든 사람이 의식적으로 조직적인 가담을 하게 되고, 이 공모 관계는 희생자에게까지 확대되며 그렇게 하여 진정한 의미에서 전체주의적이 된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p.241)[23] 신체의 파괴는 궁극적으로 인간 존엄성의 파괴를 목적으로 했다. 죽음은 막거나 무한정 연기될 수 있었다. 수용소는 이제 인간의 모습을 한 야수들, 다시 말해 정신병원이나 감옥에 가야 할 사람들의 놀이공원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수용소는 완벽하게 정상적인 사람들을 나치 친위대의 정식 일원으로 훈련시키는 "학습장"이었다. 인간의 개성, 유일무이성은 자연과 의지 그리고 운명이 동등한 비율로 참여하여 만든 것으로서 모든 인간 관계의 자명한 전제 조건이 되기 때문에 심지어 똑같이 생긴 쌍둥이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한 심기를 느끼게 할 정도이다. 그러나 이런 개성의 말살은 법적, 정치적 인간의 분노와 도덕적 인간의 절망보다 훨씬 강렬한 전율과 공포를 야기한다. 바로 이 공포가 본질적으로 모든 인간은 야수라고 하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허무주의적 일반화를 등장시킨 장본인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p.243~245)[24] 19세기의 세계관과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 전체주의적이지 않다. 비록 인종주의와 공산주의는 20세기의 결정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었지만, 원칙에서 다른 것들보다 '더 전체주의적'이지는 않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p.270)[25] 전체주의 지배자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사람들을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동원하기 위해 강압이라는 방식에 의존한다. 그런데 이 강압은 우리가 결국 우리 자신을 강요할 때 쓰는 방법이다. 이 내적 강요는 논리성의 독재로서,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외에 어떤 것도 그에 대항할 수 없다. 논리성의 독재는 정신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과정인 논리에 복종하면서 시작된다. 인간이 이 무한한 과정에 의존하는 것은 자기 생각을 가지기 위해서이다. 그가 외부의 독재에 굴복하면서 운동의 자유를 양도하는 것처럼 논리에 복종함으로써 자신의 내적 자유를 양도한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p.275)[26] 인간이 제작인(homo faber)인 한, 그는 일과 함께 스스로를 고립하려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정치 영역을 잠정적으로 떠나려는 경향을 보인다. 한편으로 행위와 구분되고 다른 한편으로 단순한 노동과 구분되는 제작은, 비록 그 결과가 기술이나 예술 작품일지라도 항상 공동의 관심에서 벗어난 고립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인간은 고립 속에서 인공 세상과 지속적으로 접촉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가장 기초적인 형태의 창의성, 즉 공동 세상에 자기 자신만의 것을 더할 수 있는 능력이 파괴될 때만 고립은 완전히 참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 세상은 노동이 그 주요 가치를 규정하는 세상, 즉 모든 인간의 활동이 노동으로 전환된 곳이다. 그런 조건 아래서는 생존 노력이라 할 수 있는 순전한 노동의 노력만이 남게 되고 인간이 만든 것, 즉 세상과의 관계는 파괴된다. 인간이 제작인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노동하는 동물로 취급되며 그의 '자연과의 신진대사'가 어느 누구의 관심사도 되지 못할 때, 정치적인 행위 영역에서 자기의 자리를 잃은 고립된 인간은 사물의 세상에서도 버림을 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고립은 외로움이 된다. 일반적으로 고립에 기초한 압제정치는 인간의 생산 능력을 그대로 내버려둔다. 그러나 '노동자'에 대한 압제정치는 자동적으로, 예컨대 고대의 노예에 대한 지배처럼 고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외롭기도 한 사람들에 대한 지배가 될 것이며 전체주의로 흘러갈 것이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p.278)[27] 고독은 전체주의 정부의 본질인 테러의 공통된 토대이며, 전체주의의 집행인과 희생자를 준비하는 이데올로기나 논리적 타당성의 공통된 토대이다. 고독은 현대의 대중이 뿌리 뽑혀 불필요하게 된 현상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런 현상은 산업 혁명이 시작된 이래 현대 대중의 저주가 되었으며, 19세기 제국주의의 부상과 더불어 그리고 우리 시대에 들어서 정치 제도와 사회적 전통의 붕괴와 더불어 악화되었다. 뿌리 뽑혔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고 보장하는 자리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립이 고독의 예비 조건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뿌리 뽑힘은 무용지물의 예비 조건일 수 있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p.278~279)[28] 에픽테투스에 의하면 외로운 사람은 그가 관계를 맺을 수도 없고 그를 향해 적개심을 노출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반대로 고독한 사람은 혼자이며 그래서 "자기 자신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인간은 "자신과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나는 고독 속에서 나 자신과 함께 "나 혼자" 있으며, 그러므로 한 사람-안에-두 사람인 반면, 외로움 속에서 나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고 실제로 혼자 있는 것이다. 엄격히 말해 모든 사유는 고독 속에서 이루어지며, 나와 나 자신의 대화이다. 그러나 한 사람-안의-두 사람이 전개하는 대화는 같은 인간들과의 접점을 잃지 않는다. 내가 사유의 대화를 함께 이어가는 동료 인간들이 이미 나 자신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고독의 문제는 한 사람-안의-두 사람이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정체성과 결코 오인될 수 없는 정체성을 가진 불변의 개인이 되기 위해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내 정체의 확인을 위해서 나는 전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한다. 고독한 사람들에게 교우 관계가 주는 가장 큰 장점은 그들을 다시 '전체'가 되게 하고, 항상 불명확한 존재로 남게 되는 사유의 대화에서 그들을 구해주며, 정체성을 복구시켜 그들이 대체할 수 없는 한 사람의 한 목소리로 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 이진우·박미애 옮김, 한길사, 2006, p.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