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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렌스키 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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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케렌스키 공세는 제1차 세계 대전의 동부전선 중 일부로, 러시아군의 마지막 공세였다. 하지만 동맹국의 승리로 끝났다.
2. 배경[편집]
우선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공세는 러시아의 전쟁 장관이었던 알렉산드르 케렌스키가 지시한 공세이다. 러시아의 명장 알렉세이 브루실로프가 지휘하였다. 당시 러시아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안 그래도 이 공세를 명령한 케렌스키는 혁명을 일으킨 뒤였고, 장교들은 종종 사병들의 희생양이 되기도 하였다. 케렌스키는 큰 전투에서의 승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브루실로프에게 이 공세를 제안하였다.
3. 전투[편집]
케렌스키 공세의 시작은 매우 좋았다. 독일 제국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3개의 참호를 점령하였고, 12,000명의 포로를 잡았다. 두번째도 성공적이었는데, 6,300명의 포로를 잡았다. 굉장히 깊게 파고드는 공세를 계속하였다. 간단하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은 무너졌고, 러시아군은 공세를 성공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군사적인 위기였고, 독일 제국은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당시 수상이었던 테오발트 폰 베트만홀베크가 무제한 잠수함 공격에 반대를 보였다가 자신의 자리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후 교황이 되는 에우제니오 마리아 주세페 조반니 파첼리는 전쟁을 중지시키려고 하였다.
하지만, 자세히 파보면 러시아군의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다. 혁명으로 나라가 뒤집혔을 정도로 막장이었을 정도니 군대가 제대로 돌아갈 리도 없었다. 물자는 부족했고 당장 먹을 것도 없어 탈영하는 병사들이 계속 늘어났다. 초반 러시아의 승리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상태가 똑같이 좋지 않다 보니 제대로 방어하지 않아서 얻은 승리에 불과하여 보급만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공세는 급격히 약해지기 시작하였다. 러시아군은 손실이 커질 때마다 장교의 위상이 떨어졌고 나중에는 병사들이 장교에 말에 복종하지도 않았다. 결국 더이상 공세를 하지 못하고, 7월 20일부터 7월 23일까지 오히려 후퇴를 하였다. 이윽고 독일 제국군의 원군이 투입되기 시작하자 전세는 완전히 뒤집혀 버렸다. 이렇게 러시아군의 마지막 공세는 끝이 났다.
4. 여담[편집]
케렌스키가 직접 전투에서 장병들을 격려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