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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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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칼'은 여기로 연결됩니다.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의 캐릭터 티칼에 대한 내용은 티칼(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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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kal
1. 개요[편집]
티칼은 과테말라 페텐 주에 있는 마야 문명의 유적이다. 마야어로는 약스 무탈이라고 불렀다.
마야 문명권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들 중 하나로, 한때 100,000명에 달하는 인구가 거주하면서 고전기때, 인근의 도시국가 칼라크물[6] 과 함께 마야 문명 내부에서 투톱을 달리던 도시였다. 기원후 200년부터 900년까지 이어진 고전기 내내 전성기를 누리며 인근의 도시들 대부분을 지배했고, 멀리는 멕시코의 테오티우아칸과도 교류했다. 그러나 점차 기후 변화와 기근, 가뭄 등이 겹치면서 마야 도시들이 몰락하면서 티칼도 역시 함께 10세기 경 즈음에 멸망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울창한 정글이 도시를 파고들었고, 티칼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진 채 남아있었다. 그러다 탐험가들에게 1848년 경에 재발견되어 발굴되었으며, 1979년에는 세계유산에도 지정되었다.
티칼은 현재 후고전기때의 치첸 이트사와 함께 마야 도시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도시들 중 하나이다. 조지 루카스 감독이 <스타워즈>를 찍을 때 야빈 IV의 배경으로 섭외하면서 인지도가 크게 높아졌고, 수많은 석비들과 무덤들이 발견되면서 매년 200,000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티칼을 찾고 있다. 다만 접근성은 의외로 떨어지는 편인데, 과테말라 내 주요 도시에서 갈 수 있는 방법은 있으나 너무 멀고, 칸쿤 등 멕시코 킨타나 로오주 일대에서 방문할 경우 벨리즈를 거쳐서 들어와야한다.[7] 멕시코 다른 곳에서 가는 경우 타바스코 주의 비야에르모사나 캄페체 주의 에스카르세가에서 환승, 이후 테노시케에서 과테말라로 가는 광역버스로 환승한 뒤 과테말라에 들어가서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야한다. 항공편을 이용하려고 해도 멕시코 비야에르모사로 들어온 뒤 육로를 이용하는 것이 낫다. 즉, 환승저항이 꽤 심하다.
2. 역사[편집]
기원전 1000년 경 즈음에 처음으로 티칼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했고, 이후 선고전기 시기인 기원전 700년 경에 본격적인 궁전들과 피라미드들이 지어지면서 그럴듯한 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티칼은 인근의 엘 미라도르[8] , 나크베 등의 대도시에 비하면 한낱 보잘것없는 중소 규모의 그저그런 도시였으며, 선고전기 내내 딱히 두각을 드러내는 존재는 아니었다. 티칼이 본격적으로 급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후 1세기 경에 선고전기가 끝나며 엘 미라도르 등의 대도시들이 몰락하면서부터였다. 티칼은 옛 경쟁도시들이 사라진 자리를 빠르게 거머쥐는 데 성공하면서 선고전기 이후 도래한 마야 고전기의 핵심 도시로 떠올랐고, 멕시코 지방의 강대국이었던 테오티우아칸의 도움을 받으면서 유카탄 반도의 마야 도시들 상당수를 통치하는 왕국을 세웠다.
당시 테오티우아칸과 티칼은 상당히 밀접한 관계였다. 기원후 200년에 테오티우아칸의 장군인 시야 칵이 티칼로 쳐들어와 티칼의 왕을 죽이고 새로운 왕에 즉위했고, 티칼은 좋든 싫든 자연스레 테오티우아칸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시야 칵은 인근의 도시들을 굴복시키고 티칼의 세력을 확장시켰으며, 시야 칵의 아들인 약스 누운 아이인 1세 역시 47년 동안 재위하면서 티칼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토착 왕족의 딸과 결혼하면서 기존 권력층과의 평화를 꾀했고, 그의 후손들은 빠르게 티칼의 기존 엘리트 계급과 동화되는 데 성공했다. 티칼의 세력은 5세기까지 끊임없이 팽창했고 사방으로 50 여km에 달하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다. 5세기 초중반에는 식민도시이자 남부의 거점도시인 코판[9] 을 세우기도 했다.
6세기 경부터는 본격적인 고전기가 도래하면서 티칼과 그의 숙적 도시였던 칼라크물 간의 경쟁이 바야흐로 시작되었다. 티칼 인근에 자리잡은 칼라크물은 전체주의 성향의 강력한 군사도시로,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급격히 성장하면서 티칼과 대립각을 세웠다. 티칼과 칼라크물은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인근의 도시국가들과 동맹과 배신을 반복하면서 서로 치고 받았으며, 때문에 고전기 마야에서는 전쟁이 끊이지를 않았다. 티칼과 칼라크물의 군주들은 당시 마야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로 군림하면서 스스로를 타 도시의 왕들과 구분하기 위해 '카룸테', 즉 대왕이라고 높여부르기도 했다.
티칼과 칼라크물 간의 경쟁은 6세기 중반에 칼라크물이 인근의 도시국가 카라콜과 연합하여 티칼을 점령하는 데 성공하면서 일시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대사건 이후인 6세기 후반부터 7세기 후반까지 꽤나 오랜 기간 동안 티칼에는 기나긴 암흑기가 닥쳤고, 그 어떠한 피라미드나 궁전들도 세워지지 않았다. 티칼의 부를 약탈해간 칼라크물은 마야 문명의 유일한 패권국으로 자리매김하며 엄청난 영광을 누렸고, 반대 급부로 티칼은 전성기 시절, 100,000명에 달하던 인구가 10,000명까지 쪼그라들면서 초라한 위성도시 수준으로 전락해버렸다. 고고학계는 티칼이 비실대던 이 시절을 따로 티칼 히아투스라고 칭하며, 마야 고전기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는 기준으로 삼는다. 티칼은 682년에 명군인 자소우 찬 카윌 1세 대왕이 다시 세력을 회복하여 칼라크물을 정복하면서 '티칼 히아투스'에서 약 120여 년만에 벗어났다. 칼라크물은 지난 영광을 뒤로 하고 완벽한 쇠퇴기에 접어들었으며, 다시는 부활하지 못했다. 반대로 티칼은 칼라크물에 대한 복수를 성공시킨 뒤 칼라크물이 지니고 있었던 '카룸테'의 지위를 회복하고 이후 몇 백여 년 동안 마야 고전기 시대의 압도적인 패권국으로 화려한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몇 백년에 달하던 티칼의 영화도 9세기 경 몰락의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나친 벌목, 기후 변화와 사회 구조의 쇠퇴 등 온갖 안좋은 요인들이 겹겹이 덮쳐오면서 고전기 마야 문명 자체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점차 도시를 버리고 떠나가는 사람들이 속속 나타났다. 도시국가들은 점차 붕괴했고, 살아남은 유민들은 그나마 국가체제가 유지되고 있었던 대도시, 혹은 북부 지방이나 멕시코로 피난을 갔다. 이 때 티칼에 막대한 수의 유민들이 일시적으로 유입되었으나, 이미 망해가고 있는 것은 티칼도 마찬가지였고 난민들의 유입은 오히려 식량 부족과 맞물려 티칼의 붕괴를 가속화시킬 뿐이었다. 9세기 후반 경에는 국왕들이 도시의 피라미드들과 비석들을 복원하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등 필사적으로 도시를 유지하려 노력했으나 이미 붕괴하는 사회를 되돌리기는 너무 늦어버린 시점이었다. 9세기 말엽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식량 부족, 전염병 등으로 죽어버리거나 티칼을 떠났고, 몇 십에서 몇 백에 달하는 일부 주민들만이 겨우 남아 옛 궁전과 사원들을 무단점거하고 들어가 살았다. 이들은 왕들의 무덤과 사원들을 도굴하고 부장품들을 챙겨갔으며, 덕분에 10세기 경 초에 이미 티칼은 완벽하게 황폐해진다. 950년 즈음에는 티칼에 조그만 부락을 이루고 살던 마지막 사람들마저 모두 사라졌고, 인근의 원주민들은 티칼 유적을 저주받은 곳이라 믿어 함부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티칼은 스페인의 탐험가들이 도착하기까지 약 60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을 정글의 어둠속에 갇혀 조용히 무너져갔다.
티칼 유적은 17세기 경 유카탄 지역을 탐험하던 백인 탐험가들의 기록에 간간히 등장하다가, 1848년에 페텐 주의 주지사인 모데스토 멘데즈가 공식적으로 처음 티칼을 재방문하면서 다시 빛을 보았다. 이후 고고학자 알프레드 모슬레이가 티칼을 답사하고 대대적인 발굴 작업을 진행했으며, 20세기 초에 본격적으로 나무와 흙더미 등을 제거하고 유구를 보존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1956년부터 1970년까지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연구팀의 주도하에 대부분의 주요 신전들이 발굴되었으며 1984년에 추가 발굴작업까지 완료되면서 티칼은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을 갖추었다. 현재 티칼과 티칼 국립공원은 과테말라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들 중 하나이며, 매년 2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이 곳을 찾는다고 한다.
3. 유적[편집]
3.1. 신전[편집]
3.2. 건물군[편집]
원래 티칼은 10만 명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던 대도시였고, 때문에 수많은 건물들이 빽빽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도시가 버려진 후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의 건물들이 초목에 침식되어 무너지거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쇠락했고,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건물들 대다수는 고고학자들이 후대에 복원한 것들이다. 해당 문서에서는 티칼의 수많은 유적들 중에서 유명하거나 크기가 큰 것들, 혹은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물들만을 설명해놓았다.
4. 매체에서[편집]
4.1. 영화[편집]
4.1.1. 스타워즈 시리즈[편집]
티칼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4에 저항군들의 기지인 야빈 IV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영화 내부에서는 아예 CG처리도 안하고 그대로 배경으로 쓰였을 정도로 유적에 감도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강했다.
4.1.2. 기타[편집]
- 트랜스포머: 비스트의 서막에서 언급된다. 엘레나 월리스가 나스카 지상화와 티칼 사원이 맥시멀의 작품이냐고 묻지만, 옵티머스 프라이멀은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대답한다.
4.2. 게임[편집]
4.2.1.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편집]
화약 시대(???) 불가사의로 "티칼 사원(Temple of Tikal)" 이 등장한다. 효과는 목재 채취 속도와 상업 한계치를 증가시키고 사원이 도시의 국경과 체력, 사정거리에 주는 보너스가 증가하는 것.
4.2.2.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편집]
티칼의 1번 사원 즉 재규어의 신전은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에서 '티칼의 재규어 사원'이라는 이름으로 마야인의 불가사의로 등장한다.
4.2.3. 소닉 시리즈[편집]
티칼(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의 이름과 미스틱 루인은 여기서 따왔다.
4.2.4. 도미네이션즈[편집]
티칼 사원이 불가사의 중 하나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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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타[편집]
- 마야의 피라미드들을 찍은 사진들을 보면 외관을 찍어놓은 것들 밖에 없어 꼭대기의 신전 방 내부가 어떨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로 안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대단히 좁고 특별한 장식도 없어 단출하다. 방이 좁은 것은 신전 지붕 위에 거대한 돌로 만든 빗돌을 세우려다 보니 벽이 이 하중을 지탱하게 만들어야했고, 당시 마야의 건축기술로는 무조건 벽을 두껍게 만드는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대부분의 피라미드들은 방을 3개 가지고 있다.
6. 둘러보기[편집]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3]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4] 육상, 민물, 해안 및 해양 생태계와 동·식물 군락의 진화 및 발전에 있어 생태학적, 생물학적 주요 진행 과정을 입증하는 대표적 사례일 것 [5] 과학이나 보존 관점에서 볼 때 보편적 가치가 탁월하고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을 포함한 생물학적 다양성의 현장 보존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의미가 큰 자연 서식지를 포괄[6] 티칼의 최대 경쟁국가로, 호전적인 성향의 강대국이었다.[7] 칸쿤에서 출발할 경우 멕시코 시티라던지 베라크루스 등지에서 가는 방법처럼 테노시케를 경유하는 방법도 있지만 너무 돌아가는 길이다.[8] 선고전기 마야의 최고 도시. 선고전기 내내 번영을 누렸으나 기후 변화와 자연 파괴로 몰락했다.[9] 유명한 마야 도시. 마야 문명권의 남부 변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적에서 발굴된 화려한 석비가 유명하다.[10] 야금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마야에서는 황금이 아니라 옥이 가장 값비싼 물건이었다.[11] 다만 테오티우아칸의 태양의 피라미드가 훼손되기 이전에는 더 높았을 가능성이 크다.[12] 티칼의 몰락은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인구가 감소하면서 점차 필요없는 구역들을 버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즉 티칼의 피라미드들이 연이어 버려지는 와중에도 문도 페르디도에는 최후의 순간까지 티칼의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13] 마야의 달력 주기[14] 기본적인 규칙 일부만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허용되었기에 서로 찌르고 때리는 등 굉장히 잔혹한 경기가 일어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15] 저멀리 입구를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