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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FIFA 월드컵 서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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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74년 서독에서 개최된 10번째 FIFA 월드컵. 1974년 6월 13일부터 1974년 7월 7일까지 진행되었다.
대회 방식에 변화가 생겼는데 16강 조별리그를 거치는 것까지는 전 대회와 동일했으나 8강이 토너먼트 대신 4팀 2개조로 나뉘어 8강 조별리그를 벌여 각 조 1위가 결승전, 2위가 3-4위전을 치르는 형식으로 변경되었으며 이는 경기 수를 늘려 흥행 확대를 노린 FIFA의 조치였다.
전 대회에서 브라질이 3회 우승을 차지하며 줄리메컵을 영구 소유하게 되면서, FIFA에서 새로운 트로피를 만들었다. 이전 줄리메컵과 달리 어느 한 나라가 영구 소유하지 않고 그때그때 우승팀에게 양도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지금까지도 잘 써먹고 있다. 이 대회부터 공식 명칭이 '월드컵'으로 바뀌었는데,[1] 지금까지 해당 명칭이 그대로 이어진다.
동독이 지역예선 통과를 하여 월드컵에 선보이게 되어, 동서독이 모두 참가한 유일한 월드컵이 되었다. 이후 동독은 통일될 때까지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다. 서베를린에서도 몇 경기가 배정되었는데, 여기서 경기를 치르는 팀은 동독을 잠시 지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동독 역시 서베를린에서 한 경기를 치렀기 때문에 중도 일시 귀국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불세출의 스타 요한 크루이프가 진두지휘한 네덜란드가 토털사커 광풍을 일으킨 대회였지만 우승은 개최국 서독의 차지였다.
2. 지역예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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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기장[편집]
월드컵이 열린 구장이 있는 도시와 구장 이름은 다음과 같다. 총 9개의 도시와 9개의 구장에서 열렸다.
- 뮌헨 - 올림피아슈타디온 (Olympiastadion) (77,573명) - 결승전 개최
- 프랑크푸르트 - 발트슈타디온 (Waldstadion) (62,200명) - 개막전 개최
- 서베를린 - 올림피아슈타디온 (Olympiastadion) (86,000명)
- 슈투트가르트 - 네카어 슈타디온 (Neckarstadion) (72,200명)
- 겔젠키르헨 - 파르크슈타디온 [2] (Parkstadion) (72,000명)
- 뒤셀도르프 - 라인슈타디온 [3] (Rheinstadion) (70,100명)
- 함부르크 -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 (Volksparkstadion) (61,300명)
- 하노버 - 니더작센 슈타디온 (Niedersachsenstadion) (60,400명)
- 도르트문트 - 베스트팔렌슈타디온 (Westfalenstadion) (53,600명)
4. 참가 감독[편집]
5. 대회 진행[편집]
5.1. 1차 조별 리그[16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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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편성은 다음과 같다.
5.1.1. 1조 [편집]
- 서독 1-0 칠레
- 동독 2-0 호주
- 호주 0-3 서독
- 칠레 1-1 동독
- 칠레 0-0 호주
- 동독 1-0 서독
5.1.2. 2조 [편집]
- 브라질 0-0 유고슬라비아
- 자이르 0-2 스코틀랜드
- 유고슬라비아 9-0 자이르
- 스코틀랜드 0-0 브라질
- 스코틀랜드 1-1 유고슬라비아
- 자이르 0-3 브라질
5.1.3. 3조 [편집]
- 우루과이 0-2 네덜란드
- 스웨덴 0-0 불가리아
- 우루과이 1-1 불가리아
- 네덜란드 0-0 스웨덴
- 불가리아 1-4 네덜란드
- 우루과이 0-3 스웨덴
5.1.4. 4조 [편집]
- 이탈리아 3-1 아이티
- 폴란드 3-2 아르헨티나
- 아르헨티나 1-1 이탈리아
- 아이티 0-7 폴란드
- 아르헨티나 4-1 아이티
- 폴란드 2-1 이탈리아
5.2. 2차 조별 리그[8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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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1위는 결승 진출, 조 2위는 3·4위전 진출. 공교롭게도 두 조 모두 첫 두 경기를 모두 이긴 두 팀이 마지막 경기에서 맞붙게 됨으로써 해당 경기가 사실상 준결승전 역할을 했다.
5.2.1. A조[편집]
- 네덜란드 4-0 아르헨티나
- 브라질 1-0 동독
- 아르헨티나 1-2 브라질
- 동독 0-2 네덜란드
- 아르헨티나 1-1 동독
- 네덜란드 2-0 브라질
5.2.2. B조[편집]
- 유고슬라비아 0-2 서독
- 스웨덴 0-1 폴란드
- 폴란드 2-1 유고슬라비아
- 서독 4-2 스웨덴
- 폴란드 0-1 서독
- 스웨덴 2-1 유고슬라비아
5.3. 결승 / 3·4위전[편집]
- 3·4위전
브라질 0 : 1 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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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승
네덜란드 1 : 2 서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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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우승[편집]
6. 최종 순위[편집]
7. 수상[편집]
- 신인상 - 브와디스와브 즈무다 (폴란드)
- 페어플레이상 - 서독
8. 기타[편집]
- 이 대회가 개최되기 2년 전에 뮌헨 올림픽 참사가 터지는 바람에 서독 정부는 월드컵 개최 1년 전부터 비상 체제로 돌입했는데,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중 때문에 결국 기관총과 셰퍼드를 몰고 온 특공대원들이 경기장 내에 상주하며 철저히 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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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회부터는 이 사진의 트로피를 처음 사용하게 되었으며 쥘 리메 컵을 쓰지 않는다. 쥘 리메 컵은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에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이 우승하자 통산 우승 3회를 달성한 기념으로 FIFA에서 브라질 축구협회에 영구소장하라고 증정했으며 그 뒤에 현재의 트로피를 쓰게 되었다. 그러나 그 쥘 리메 컵은 도난당해 녹여져서 금괴가 되는 최후를 맞이했다.
- 최초로 자국리그 선수와 외국리그 선수로 구성된 팀이 우승한 대회이다.[5] 또한, 100% 자국리그 선수들로만 구성된 팀은 7팀에 불과하게 되면서 절반도 되지 않게되었다.
- 한국에서는 동양방송(TBC)에서 1974년 7월 6일부터 약 4개월에 걸쳐 결승전을 제외한 37경기를 녹화 중계했으며 # 1974년 7월 8일 오후 7시 30분부터 오후 9시 20분까지 서독과 네덜란드의 결승전을 녹화 중계했다. # 당시 동양방송의 가시청권이 서울특별시와 (정부 직할)부산시 일원에 국한된 탓에 지방에서 불만의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16강] A B [8강] A B [1] 다만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월드컵'이라는 명칭을 쓴 바가 있다.[2] 1973년에 개장하여 2001년까지 사용된 FC 샬케 04의 옛 홈구장이었던 축구장이다.[3] 1925년에 개장하여 1974년에 보수된 뒤 2002년까지 포르투나 뒤셀도르프가 사용하고 철거된 옛 축구장이다.[4] 월드컵 득점왕은 6골을 넘기지 못한다는 징크스가 생기기 이전의 마지막 득점왕. 이후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부터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까지 2002년의 8골, 2022년의 8골을 제외하면 모든 월드컵 득점왕은 6골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5] 나머지 선수들은 모두 분데스리가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귄터 네처만 유일하게 레알 마드리드 소속이었다.[6] 1939년생, 35세.[7] 1955년생, 18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