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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키자와 미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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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
2. 생애[편집]
1971년 1월 2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훗날 외무대신을 역임한 가키자와 미토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대장성 관료였던 아버지가 벨기에에서 근무했었고, 생후 3개월에 일본으로 돌아와 도쿄도 고토구에서 성장했다.
고토구립 카츠야소학교와 아자부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대학을 중퇴한 후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1995년 NHK에 입사하여 기자로 활동하였고,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취재했었다.
1999년 아버지의 도쿄도지사 선거 출마를 계기로 NHK를 퇴사, 2000년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아버지가 국정에 복귀해 아버지의 의원 비서를 맡았다.
2001년 무소속 정치단체인 "2분의 1 모임"을 결성, 같은 해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고토구 선거구에 출마해 첫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당선 이후 민주당에 입당했다.
2005년 선거에서 재선하고, 민주당 도쿄도지부연합 정무조사회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2008년 고속도로에서 음주운전을 하며 기물파손을 일으켜 의원직을 사직하고 민주당을 탈당했다.
2009년 모두의 당에 입당하여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도쿄도 제15구에 출마해 3위를 기록했으나, 석패율제 구제를 받아 당선되어 국정에 진출했다.
2012년 선거에서 1위로 첫 당선되었고, 같은 해 네리마구를 지역구로 두고있던 민주당 소속의 노가미 유키에 도쿄도의원과 결혼했다. 이후 유키에는 2013년 도의회선거에서 남편의 지역구인 고토구에 출마, 당적도 모두의 당으로 변경했다.
모두의 당에서 정무조사회장을 역임하며 당시 에다 겐지 간사장의 측근으로 활동했으나, 에다 간사장과 와타나베 요시미 대표와의 갈등으로 인해 에다와 가키자와 모두 직책에서 해임되면서, 둘 다 모두의 당을 탈당하고 2013년 결속당을 창당했다. 가키자와는 결속당에서 정책조사회장을 역임했다. 2014년 일본 유신회와의 합당으로 유신당이 창당되었고, 유신당에서도 정무조사회장을 역임했다.
2015년 5월 오사카도 전환 주민투표가 부결되면서 유신당 소속이었던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부지사가 정계를 은퇴하고, 동시에 에다 대표도 대표직에서 사임하면서, 같은 달 21일 출범한 신집행부에서 유신당 간사장에 취임했다.
같은 해 8월 14일 야마가타시장 선거에서 가키자와가 민주당과 공산당이 추천한 후보를 지원 유세하자, 마쓰이 이치로 오사카부지사가 책임을 물어 간사장 사임을 요구했다. 그러나 가키자와가 이를 거부하자 하시모토와 마쓰이가 유신당을 탈당하여 훗날 신 일본유신회의 모티브가 되는 오사카 유신회를 재창당했다. 이 때문에 당 내에서 간사장 해임론이 들끓어 결국 간사장직을 사임했다.
2016년 3월 민주당과의 합당으로 민진당이 창당되어 당 임원실장에 취임했다. 같은 해 10월 당 도쿄도지부연합 회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현직 회장에 밀려 낙선했다.
2017년 6월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민진당 소속이었던 아내 유키에가 도민퍼스트회와의 연계를 모색한다며 탈당 신고서를 제출했고, 가키자와는 그 책임을 물어 임원실장직을 사임했다. 한편 유키에는 무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했으나 도민퍼스트회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같은 해 9월 가키자와가 희망의 당 결성에 참여할 의향을 보였고, 같은 달 탈당 신고서를 제출해 희망의 당에 참여했다. 다음 달 제48회 중원선에서 2위로 낙선했으나 석패율제 구제로 당선되었다.
2018년 민진당과의 국민민주당 합당에 참여하지 않고 무소속이 되었다. 다음 해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가 이끄는 중의원 회파 "사회보장을 재건하는 국민회의"에 참여했고, 시게토쿠 가즈히코의 직간회에도 참여했다.
2021년 10월 4일 총리 지명 선거에서 자유민주당 후보였던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총재에게 투표했고, 당일 "입헌민주당·무소속" 회파를 이탈했다.
가키자와와 오랫동안 대치해온 자민당 도쿄도지부연합은 가키자와의 자민당 입당에 반대해 도쿄 15구에 도쿄 비례 블록 소속인 이마무라 히로후미 의원을 옹립하기로 결정했으나, 중앙당에서 이마무라를 공인하지 않고, 가키자와와 이마무라 양 후보를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제49회 중원선에서 가키자와가 무소속으로 당선되었고, 당선 소감에서 자민당 입당 의향을 보였다. 당선 이후 자민당 입당이 승낙되었고, 중·고등학교 동문인 다니가키 사다카즈 전 자민당 총재가 있는 유린회에 입회했다.
2023년 4월 도쿄 고토구장 선거에서 가키자와가 선거 지원 유세 도중 고토구의원들에게 헌금을 제공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
같은 해 9월 제2차 기시다 제2차 개조내각에서 법무부대신에 취임했으나, 위에서 서술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실이 발각되어 10월 31일 부대신직을 사임하고, 12월 14일 사무소 등을 압수수색 당하며 같은 날 자민당을 탈당했다. 이후 12월 28일 비서들과 함께 검찰에 구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