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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일본여대생 실종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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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91년 3월 27일 일본 시모노세키발 부산행 부관페리호편으로 한국에 입국한 일본인 관광객 오마사 유미(大政由美, 당시 24세. 미에대학원 진학 예정.)가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계림 유스호스텔 214호실을 나간 뒤 행방불명된 사건으로, 끝내 해결되지 않은 미스테리한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다.
만약 어딘가 생존해 있다면 현재 나이는 55~58세이다.
2. 상세[편집]
1991년 3월 27일 일본 시모노세키발 부산행 페리호편으로 관광객 오마사 유미가 입국했는데 다음날 3월 28일 오전 10시경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계림 유스호스텔 214호실을 나간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 경찰은 납치 감금 또는 본인과실에 의한 사고로 추정하고 10만여 명을 동원해 오마사의 행적을 추적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일본 언론도 이를 긴급보도하며 한국 경찰에 요청해 국제 공조수사를 벌여 나가기로 했지만 오리무중이었다.
실종 직후부터 1994년 10월 사이에 몇 차례 가족에게 무언의 전화가 왔는데 발신자는 알수 없으며 전화를 건 사람의 숨소리도 생활음도 전혀 들리지 않아 아무 말도 듣지 못한채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고 전해진다.
북한에 납북된 일본인이 자신의 생존을 알리기 위해 무언의 전화를 가족에게 한 사례가 많아서 오마사 유미는 납북일본인의 행방을 조사하는 민간단체인 일본 특정실종자 문제조사회의 북한 납북의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는 실종자 명단에 들어있는 상태이다.
3. 목격담[편집]
그런데 오마사를 봤다는 증언이 있다. 사건 당일 28일 오전 계림 유스호스텔 기념품 판매점에서 여행자 수표로 백옥쌍 가락지와 비취 목걸이 각 1개씩을 구입했음을 당시 기념품 판매점의 판매원 김모씨가 확인하였다. 이후 불국사-석굴암 순회버스편으로 석굴암을 관광하고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국립경주박물관 쪽으로 갔다고 사실을 불국사 주차장 관리인 박모씨, 당시 순회버스를 운전했던 버스기사 이모씨가 증언하였다.
실종 당시 오마사가 쥬시하쿠고 은행에서 발행받은 일본 여행자 수표 10장(각각 50$, 20$)을 가지고 있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으나, 결국 더 이상의 실마리는 잡지 못하고 사건은 미해결로 남았다.
4. 여담[편집]
이 당시만 해도 일본에 대한 반감이 지금과는 비교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강했던 데다 상대적으로 저열했던 시민의식 등, 그 당시의 정서때문에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거나 소홀히 다뤄진데다 피해 당사자 일본인들의 메이와쿠 때문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말하지 않는 탓에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 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