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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진흥고등학교 야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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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진흥고등학교 야구부
(Gwangju Jinheung High School)
창단1973년(51주년)
소속 리그전라권
감독김인호
우승 기록[1]3회


대회우승준우승4강
대통령배2회(2001, 12)-1회(1985)
청룡기-2회(2001, 06)1회(1996)
황금사자기-3회(1981, 85, 86)1회(2020)
봉황대기1회(2000)2회(1977, 86)
이마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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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연혁
3. 출신 선수[2]
4. 역대 감독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광주일고, 광주동성고에 이어 광주광역시에 있는 3번째 고교 야구부. 셋 중에서 역사가 가장 짧고 우승 기록도 셋 중에 가장 적기는 하지만[3] 그래도 4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KBO 리그에서 스타가 된 졸업생도 눈에 띄게 보이는 학교다. 특히 투수,포수는 특급선수 배출을 많이 해냈다. 임창용,김진우, 나성범(투수출신), 양의지, 문동주등이 있다.


2. 연혁[편집]


전국적인 고교야구 붐이 일기 시작하던 1973년에 창단했다. 우승의 기회는 비교적 빨리 찾아와 1977년 봉황대기 결승에서 충암고와 만났는데[4] 당시 창단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팀 간의 대결은 충암고의 승리로 돌아갔고 광주진흥고의 첫 우승 기회는 그렇게 날아갔다. 그 후 1981년 황금사자기에서 훗날 가을까치로 불리는 김정수의 호투를 발판삼아 결승까지 올라갔지만, 그 해 상대는 성준류중일이 버티던 최강 경북고였고, 결국 다시 준우승으로 만족해야 했다.

1985년과 1986년 김기태(광주일고-인하대)를 제치고 해태의 1차 지명을 받은 것으로 유명해진 오희주[5]를 앞세워 결승에 도전했지만, 두 해 동안 치러진 세 차례의 전국대회 결승에서 모조리 패하면서[6]에 패배 창단 후 30년간 5번의 준우승에 그치면서 콩라인에 가입하게 된다. 1990년대 해태는 이대진, 임창용, 김상진 같은 광주진흥고 출신 투수들을 받아들이면서 투수력의 새 피를 수혈했지만, 정작 이들의 고교 시절에는 팀을 정상권으로 이끌기에는 전력이 많이 모자란 상황이었다.

유니폼이 왠지 어딘가홈 유니폼을 닮은 것 같다면 기분 탓.[7]

광주진흥고의 콩라인 탈퇴를 이끈 선수는 김진우였다. 고등학교 2학년 신분으로 2000년 봉황대기에서 순천효천고를 꺾고 팀을 첫 정상에 올려 놓으면서 이름을 알린 김진우는 1년이 지난 후에 더욱 일취월장한 기량을 선보이면서 일약 초고교급 선수로 등극하였다. 2001년 대통령배 결승에서 성남서고를 제압하고 우승을 이끌었고, 바로 이어진 청룡기에서는 피로 누적으로 무너지는 바람에 덕수정산고[8] 에게 패배해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지만, 광주권에서도 항상 넘버 3로 밀리던 광주진흥고의 자존심을 세우기에는 충분했다.[9]2000~01년 광주진흥고 재학생이 회상한 추억

그리고 2006년 또 하나의 초고교급 선수인 정영일을 앞세워 청룡기 정상에 도전했지만, 무식한 혹사[10][11]를 견딘 정영일의 역투에도 불구하고 팀은 경남고의 신본기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으며 패하면서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고, 정영일은 그 뒤 부상으로 신음하기에 이르렀다. 정영일의 시대 이후 한동안 고전하던 광주진흥고는 2012년 고교 2학년이던 하영민을 앞세워 깜짝 우승에 성공하며, 통산 3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에 성공했다.

그 뒤로 침체기를 겪었던 광주진흥고는 2020년 황금사자기에서 2회전에서 상우고, 16강전에서 중앙고를 꺾은데 이어 율곡고와의 8강전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오랜만에 전국대회 4강에 올랐다. 그러나 결국 모든대회 통틀어서 첫 4강이었던 김해고를 상대로 0-3으로 패배하며, 오랜만의 4강 진출인 점에 만족해야 했다.

광주 무등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는 우승 3회(1995,1996,2006), 준우승 1회(2005)를 기록했다. 대구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는 우승은 없고, 준우승 1회(1992)를 기록했다. 부산 화랑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는 우승 1회(2008)[12], 준우승 2회(1999,2005)를 기록했다.

광주 지역 3개 고교 중 유일하게 전용구장을 보유하고 있다.[13] 광주일고와 광주동성고는 일반 학생들과 운동장을 공유한다.


3. 출신 선수[14][편집]


이름포지션프로입단경력
장진범내야수1983년 1차 지명영남대-해태(1983~1987)
김정수투수1986년 1차 지명연세대-해태(1986~1999)-SK(2000)-한화(2001~2003)-SK(2003)
김인호내야수,외야수1989년 2차 1라운드성균관대-롯데(1989)-태평양/현대(1990~2001)
나광남외야수1989년 2차 4라운드단국대-삼성(1989~1991)
송유석투수1985년 연습생 입단해태(1985~1996)-LG(1997~1999)-한화(2000~2001)
이민호내야수1993년 신고선수 입단한양대-해태(1993~1996)
고형욱투수1994년 신고선수 입단인하대-쌍방울(1994~1999)
이대진투수1993년 고졸연고자유계약해태/KIA(1993~2011)-LG(2011~2012)
임창용투수1995년 고졸연고자유계약해태(1995~1998)-삼성(1998~2007)-야쿠르트(2008~2012)-CHC(2013)-
삼성(2014~2015)-KIA(2016~2018)
김상진투수1996년 고졸우선지명해태(1996~1999)
강명구내야수2003년 2차 1라운드탐라대-삼성(2003~2014)
김진우투수2002년 1차 지명KIA(2002~2007)-서울 해치(2010)[15]-KIA(2011~2018)-질롱 코리아(2018)
손주인내야수2002년 2차 3라운드삼성(2002~2012)-LG(2012~2017)-삼성(2018~2019)
전준호투수2005년 2차 7라운드SK(2005~2006)-경찰(2008~2009)-삼성(2010)-NC(2012)
문광은투수2010년 1라운드동의대-SK(2010~2018)-LG(2018~2020)
양의지포수2006년 2차 8라운드두산(2006~2018)-NC(2019~2022)-두산(2023~)
나성용내야수2011년 3라운드연세대-한화(2011)-LG(2012~2015)-삼성(2016~2017)
정영일투수2007년 1차 지명
2007년 아마추어 자유계약(LAA)
2014년 2차 5라운드
LAA(2007~2011)-고양 원더스(2011)-카가와 올리브 가이너즈(2013)-
상무(2013~2015)-SK/SSG(2016~2021)
강하승내야수2012년 신고선수 입단동국대-고양 원더스(2012)-KIA(2013)
나성범외야수2012년 2라운드연세대-NC(2012~2021)-KIA(2022~)
고영창투수2013년 6라운드연세대-KIA(2013~2023)
박상현내야수2009년 2차 2라운드SK(2009~2015)
정형식외야수2009년 2차 2라운드삼성(2009~2014)
김건태투수2010년 1라운드넥센(2010~2017)-NC(2018~2022)
임기준투수2010년 2라운드KIA(2010~2020)
최용제포수2014년 신고선수 입단홍익대-두산(2014~2022)
김도현외야수 2011년 7라운드넥센(2011)-SK(2012~2017)-두산(2018~2019)-KT(2020~2021)
양승철투수2019년 2차 4라운드원광대-KIA(2019~2021)
김성욱외야수2012년 3라운드NC(2012~)
박창빈외야수2017년 2차 8라운드동국대-두산(2017)-당진 현대제철 블루캅(2021~)
윤대영[16]내야수2013년 4라운드NC(2013~2015)-LG(2016~2018, 2020)[17]-NC(2021~)
박진두내야수2014년 2차 8라운드KIA(2014~2020)
하영민투수2014년 2차 1라운드넥센/키움(2014~)
김기연포수2016년 2차 4라운드LG(2016~)
천성호내야수2020년 2차 2라운드단국대-KT(2020~)
최상인[18]외야수2016년 2차 5라운드NC(2016~)
정윤환투수2017년 2차 9라운드KIA(2017~2018)-성남 맥파이스(2021~)
류현인내야수2023년 7라운드단국대-KT(2023~)
오동욱투수2019년 2차 6라운드한화(2019~)
임준형투수2019년 2차 8라운드LG(2019~)
김윤식투수2020년 2차 1라운드LG(2020~)
김성민투수2020년 2차 7라운드두산(2020~2022)
문동주투수2022년 1차 지명한화(2022~)
신명승포수2022년 2차 9라운드KIA(2022~)
김재민포수2024년 10라운드NC(2024~)
김호진내야수2024년 6라운드삼성(2024~)


4. 역대 감독[편집]


김규영(1973)
서용선(1974)
박인규(1975)
허양옥(1976)
백대삼(1977-78)
김기홍(1979)
황진설(1980)
김광배(1981)
도영권(1982)
김학용(1983)[19]
강의원(1984-88)(1991-1997)(1999-2004)[20]
이성열(1989-90)[21]
강풍원(1998)[A][22]
박병준(2005)[23]
박철우(2006)[24]
최재영(2007-13)[A] : 16회[25]
윤현필(2014-18)[A] : 17회
오철희(2018-2022)[A]
김인호(야구)(2023~현재)[A] : 11회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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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대 메이저 + 협회장기[2] 나무위키 등록 선수 한정, 졸업 연도순[3] 국내 고교 야구부에서 광주진흥고와 비슷한 지역 내 포지션에 있는 학교가 인천 제물포고다. 다만 팀의 기록은 제물포고 쪽이 더 열악한 편.[4] 이 당시 충암고의 감독이 김성근이었고 충암고 주전 포수였던 조범현이 이 대회 최우수선수에 뽑히게 된다.[5] 우완투수로 한양대에 진학했다. 천하의 김응용 감독과 첫 대면에서 반짝이 옷에 파마머리를 하고 나왔다고 한다. 김응룡 감독이 스카우트 팀장에게 "유명한 가수신가?"라고 물었고 오희주는 속으로 "이야, 해태에 적응하기 어렵겠다" 싶다고 한다. 결국 해태에서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고 2년 후 LG 트윈스로 이적했다.#[6] 1985년 제39회 황금사자기 준우승(2-9, vs 전주고), 1986년 제40회 황금사자기 준우승(1-2, vs 군산상고), 1986년 제16회 봉황대기 준우승(vs 부산고)[7] '00년까지는 모자와 유니폼 줄무늬가 남색이었으나 '01년부터 흑색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8] 덕수와의 결승전 전날인 성남고와의 준결승에서 김진우가 분전하느라 힘이 빠졌다. 덕수에는 3학년 에이스 투수 류제국, 신입생 톱타자 외야수 이용규, 거포 최진행 등이 있었다.[9] 당시 광주진흥고 라인업은 투수 김진우(해태 입단), 포수 이원희(대불대 진학), 1루 이상오(중앙대 진학), 2루 조용원(한양대 진학), 3루 김경선(고려대 진학), 유격 손주인(삼성 입단), 외야 최길환(한양대 진학)-최근호(중앙대 진학)-양기성(영남대 진학) 등 3학년생 주축이었으며, 양기성 자리에서 대신 2학년 단신 좌타자 김재천(SK 입단)이 활약했다.[10] 청룡기에서의 등판 기록이다. 2006. 5. 30. 32강전 성남서고 8과3분의2 121개 투구→2006. 6. 2. 16강전 대전고 8이닝 122개 투구→2006. 6. 4. 8강전 충암고 9와3분의2이닝 159개 투구→2006. 6. 6. 4강전 덕수정보고 8이닝 117개 투구→2006. 6. 7. 결승전 경남고 16회(기록상 15회)222개 투구. 경남고등학교는 16회까지 이상화이재곤이 나눠 던졌다.[11] 당시 감독인 박철우가 비난을 많이 받았다.[12] 여담으로 지역라이벌인 광주일고와 광주동성고는 화랑대기를 단 한 차례도 차지하지 못했다.[13] 운암동 시절에는 야구장이 없었으나 신창동으로 이사하면서 교내에 야구장 부지를 따로 마련했다.[14] 나무위키 등록 선수 한정, 졸업 연도순[15] 과거 일본 간사이 독립리그에 참가했던 팀. 이름에 서울이 들어간건 재일교포 및 한국인들로 구성된 야구팀이었기 때문이다. 간사이 독립리그가 자금난, 구성원간의 갈등 등으로 해체된 후 서울 해치도 해체되었다.[16] 이종범의 조카. 윤대영에서 윤형준으로 개명했다.[17] 2019년은 음주운전 적발로 인해 임의탈퇴 처리되었고, 2020년부터 선수단에 복귀했다.[18] 최해식의 아들. 최상인에서 최우재로 개명했다.[19] 인천동산고동국대를 졸업했으며 동산고, 광주진흥고, 동국대 감독을 역임했다. 동산고 제자는 위재영, 정민태, 송지만, 송은범, 정상호, 류현진, 권윤민, 동국대 제자는 한대화, 김성한, 김민호(롯데), 박준태, 강길용 등이 있으며 수많은 우수선수들을 길러냈다.[20] 광주진흥중 감독, 광주진흥고 감독, 광주진흥고 야구부장 등을 맡으면서 많은 제자들을 키워냈다. 광주진흥고 체육교사를 겸임했다.[21] 훗날 유신고등학교 야구부에서 장기간 재직하며 많은 제자들을 키워냈고 2022년까지 지도자로 활동했다.[A] A B C D E 모교 졸업생[22] 광주진흥고 동기인 김경배, 김정수와 함께 연세대로 진학했다.[23] 목포 영흥고등학교 감독 역임[24] 이 해에 정영일의 혹사로 문제를 일으켰다.[25] 광주진흥고 동기인 고형욱은 2007년에 중앙고 감독을 맡아 중앙고를 대통령배 및 무등기 4강으로 이끌었으나 중앙고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감독에서 물러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