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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에서 넘어왔습니다.
반가사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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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半跏思惟像
반가사유상은 반가부좌를 틀고(半跏) 현세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위한 상념에 잠긴(思惟) 미륵보살을 표현한 모든 형태의 불상을 가리키는 유물명이다. 반가(半跏)는 본디 땅바닥에 앉아서 하는 반가부좌(半跏趺坐)의 줄임말이지만, 여기서는 의자에 앉아 오른발을 왼 무릎에 얹은 자세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영어로는 Bodhisattva in pensive position 또는 Pensive Bodhisattva라고도 한다.
2. 상세[편집]
우리나라에 지정문화재로 지정된 반가사유상은 국보 제78·83·118호, 보물 제331·643호 등 여러 점이 있는데 본 문서에서는 이 중 대중적으로 유명한 국보 제78호와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상(金銅彌勒菩薩半跏像)을 중점적으로 설명한다.
각각 국보 제78호, 제83호에 지정된 이 두 불상은 삼국이 한창 피 터지게 싸우던 시기인 6~7세기 만들어진 유물로, 세계적으로도 아름다운 고대 불교 문화재 중 하나로 손꼽힌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여느 문화재들과 달리, 이 두 불상은 '사유의 방'이라는 전시관 하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만큼 특별하고 귀하게 취급받고 있다. 두 불상 모두 위대한 걸작이지만 굳이 우열을 논하자면 83호가 평가가 조금 높은 편이다. 화려함의 정도는 78호가 앞서지만 옷 주름이나 손가락 등의 세밀한 표현기법과 사실성, 입체성의 기준에 있어 83호가 더 훌륭하다고 평가받으며 도무지 국적을 종잡을 수 없는 78호와 달리 83호는 신라로 의견이 모아진 상태라 연구에도 용이하다.
또한 일본 고류사의 목조반가상과의 유사성 등을 토대로 삼국시대의 한일관계 연구에서도 칠지도, 목화자단기국 등의 문화재와 더불어 가장 의미 있게 논의되는 유물이기도 하다. 또한 사이즈 역시 10 cm 가량 83호가 더 크기도 하고 무게는 3배 가량이나 더 많이 나간다. 한국사 교과서의 표지나 내용에 수록된 사진에서도 78호보다 출현 빈도도 훨씬 높고 대중적 인지도 역시 더 높다. 83호가 더 수법이 뛰어나기 때문에 학자들은 78호가 6세기 후반, 83호는 그보다 반세기 더 늦은 7세기 초반 즈음에 만들어졌다고 추정한다. 해외 박물관에서도 83호의 전시 요청이 훨씬 많고 실제로 83호가 훨씬 많이 출국하기도 했다. 요즘은 문화재 보호 등의 이유로 거의 뜸해졌지만. 참고로 문화재 보험 가격은 78호가 약 300억, 83호가 약 400억 정도로 측정되었다.
국보 78·83호 두 불상은 국립중앙박물관의 불교 문화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보러 온다.'는 마니아 그룹까지 생겼다. 박물관 큐레이터가 유물을 설명해주는 '큐레이터와의 대화' 시간에 관람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유물이다. 모 회사원은 "반가사유상을 보고 있으면 영혼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라고 말했으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본래 2개 모두 한 번에 보여줄 수도 있지만, 문화재의 특성과 관리로 인해 보통 6개월에 한 번씩 로테이션을 도는 것처럼, 한 불상이 6개월 동안 전시되는 동안 나머지 하나는 수장고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문화재연구소로 옮겨져 연구대상이 되거나, 또는 보존실로 모셔져 특수 약품 처리를 받으러 간다. 그러나 2020년 8월 25일부터 2021년 2월 14일까지 국보 78호 반가사유상과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을 각각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내 1층 특별전시실과 3층 불교조각실에 나누어 전시 중이니 두 유물을 모두 관람하고자 한다면 이 기간 내에 방문하도록 하자. 2021년 2월 3일,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주요 업무계획을 발표하며 2층 기증관 입구에 440m2 전용공간을 만들어 두 반가사유상을 동시에 전시하겠다고 밝혔다. 10월 28일 전시를 위해서 약 100일간은 전시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공식 인스타그램
2021년 11월 12일부터 전용 전시 공간인 '사유의 방'에서 두 반가사유상을 동시에 볼 수 있게 되었다.연합뉴스, 국립중앙박물관 공식 유튜브1, 국립중앙박물관 공식 유튜브2
해외 문화 교류로 외국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총 9번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 특히 2013년 10월 말에는 세계 최대급 박물관으로 꼽히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신라 특별전 전시를 위해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이 반출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호암 금동관 파손 사태를 문제삼아 변영섭 문화재청장이 반출을 불허하고 레플리카를 미국으로 보내려다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측의 수차례에 걸친 요청으로 문광부가 직접 개입하는 소동 끝에 반출이 이루어진 것은 공공연한 비밀.
한 번 해외로 나갈 때는 문화재 보험에 들게 된다. 이 정도 국보급 유물이 해외에 나갈 때는 보통 빌려 가는 국가 정부에서 직접 보험금 지급 보증을 서는 경우가 많다. 이때 보험금이 1990년대 말에 이미 약 300억 원, 2013년 미국 반출 때는 약 500억 원으로 책정되었다. 하지만 통상 보험평가액은 실거래 금액의 10분의 1 정도로 산정함을 고려한다면 이 반가사유상 2점은 수천억 원을 호가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불상들의 역사성과 작품성 등을 따진다면 실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이 두 불상은 공통의 의문점도 가지고 있는데 바로 고향(출토지)이 어디인지 확실히 모른다는 것이다. 가장 완성도 높고 유명한 국보 78호와 83호 두 문화재는 직접 발굴해 소장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도굴했던 것을 박물관이 거액의 돈을 주고 사 온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학계에서는 78호에 대해서는 신라 제작설이 약간 우세하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한 정도고, 83호는 신라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상당히 높게 보고 있다. 둘 다 아직까지 100% 확신할 수 있는 증거는 없으나 대략적으로 통일신라 이전의 것이라는 것만 확실하다고 결론지었다.
3. 국보[편집]
3.1. 국보 제78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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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78호의 경우 일본인 골동품상이 데라우치 마사타케 조선 총독에게 바쳤던 것을 총독이 조선총독부 박물관(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신라 제작설이 가장 우세한 편이긴 하지만 백제와 고구려 제작설도 상당히 심도 있게 거론되고 있다. 특히 신라 제작으로 볼 수 밖에 없는 경상북도 봉화군의 석조 반가사유상의 하반신 옷주름이 판박이다.
신라 제작설의 경우에는 신라에서 불교, 특히 미륵사상이 가장 유행했다는 사실과 이로 인해 삼국 모두 반가사유상을 제작하긴 했지만 신라에서 특히 유행해 많이 제작되었다는 점이 주 근거로 활용된다. 그리고 출토 장소가 명확하진 않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출토되었다는 증언이 존재하는 점[2] , 백제 제작설이 언급되는 보물 331호 반가사유상이 인체를 길쭉하게 표현한 것에 비해 78호 역시 다른 신라계 반가사유상 유물들과 체형 묘사가 닮았다는 점이 있다.
한편 백제 제작설의 경우 이 불상의 양식이 83호처럼 전형적인 신라 양식이 아닌 백제 양식에 가깝다는 점(정작 그 가깝다는 백제 양식은 무얼 말하는 지 실체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 논거로 활용되며 고구려 제작설 역시 이 상이 전형적인 북위의 양식을 따르는데 이 양식이 고구려에서 널리 유행했다는 점을 주 논거로 활용한다. 실제 국립경주박물관 관장을 지낸 강우방 박사는 78호 사유상에 대해서 문화 전파경로와 고구려에 전해진 북위 불교미술 양식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고구려 불상으로 판단한 바 있다.
3.2. 국보 제83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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