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덤프버전 :
1. 국보 제256호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편집]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틀:대한민국의 국보 1~30호, version=27,
title2=틀:대한민국의 국보 31~60호, version2=23,
title3=틀:대한민국의 국보 61~90호, version3=18,
title4=틀:대한민국의 국보 91~120호, version4=16,
title5=틀:대한민국의 국보 121~150호, version5=18,
title6=틀:대한민국의 국보 151~180호, version6=15,
title7=틀:대한민국의 국보 181~210호, version7=13,
title8=틀:대한민국의 국보 211~240호, version8=15,
title9=틀:대한민국의 국보 241~270호, version9=13,
title10=틀:대한민국의 국보 271~300호, version10=12,
title11=틀:대한민국의 국보 301~330호, version11=21,
title12=틀:대한민국의 국보 331~360호, version12=14)]
1.1. 개요[편집]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一. 고려 초기, 현종 재위시기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의 일부. 현재 경기도 용인시의 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256호로 지정되어 있다.
1.2. 내용[편집]
가로 1223.5㎝, 세로 28.5㎝.
지금으로부터 약 천년 전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두루마리 형태로 제작된 대방광불화엄경 주본으로, 길이는 펼쳤을 때 약 12.5미터 정도 되는 대형 불경이다.
고려 현종 2년(1011년)에 거란의 대대적인 침입이 일어나자 당시 정부에서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기 위해 초조대장경을 제작하였는데, 이 때 간행된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이다. 이 초조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인 1011년에 처음 제작을 시작하여 10여 년 동안 판수제 등 개보판 대장경의 일부를 수정하여 완성한 것이다. 이 때의 초조대장경의 규모는 대략 6천 권 정도의 분량으로서 당시의 한역(漢譯) 대장경으로서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었던 가장 방대한 세계기록유산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초조대장경은 고려 고종 19년인 1232년에 몽골군이 침입하였을 때 모두 불타버리고 말았다. 이에 몽골 제국과의 항전이라는 호국의 의지를 담아 다시 대장경 판각을 시도한 것이 바로 현존하는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이다.
초조대장경은 고려 초기의 불교적 역량과 목판 인쇄술의 발전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귀중한 민족적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이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은 얼마 남지 않는 초조대장경 중에서도 유일한 권1로, 권수에 표전문과 총목이 수록되어 있고, 과거 초조대장경의 저본으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완전히 소실되고 없는 중국 북송 대장경에 수록되어 있던 측천무후의 친필 서문이 붙어 있으며, 권말에 역경에 참여한 승려의 소속과 역할이 기록되어 있어 초조판 대장경의 원형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써, 전세계에 현존하는 근현대 대장경들의 뿌리가 된 고려 팔만대장경의 최초 원류라 할 수 있는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으로 그 세계사적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1990년 9월 20일에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1.3. 외부 링크[편집]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
- 두산백과 :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권1)
- 향토문화전자대전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권1)
- 한국어 위키백과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
1.4. 국보 제256호[편집]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불교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은 고려 현종 때(재위 1011∼1031)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로, 당나라의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화엄경』주본 80권 중 권 제1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전체 크기는 세로 28.5㎝, 가로 1223.5㎝이다.
초조대장경은 이후에 만들어진 해인사대장경(재조대장경 또는 고려대장경)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목판의 새김이 정교한 반면에 해인사대장경과 글자수가 다르고 간행연도를 적은 기록은 없으며, 군데군데 피휘(避諱:문장에 선왕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 공경과 삼가의 뜻을 표시하기 위하여 글자의 한 획을 생략하거나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대치하는 것)와 약자(略字)가 나타난다. 또 초조대장경은 책의 장수를 표시하는데 있어서 대체로 ‘장(丈)’자나 ‘폭(幅)’자를 쓰는 데 비해 해인사대장경은 ‘장(張)’자로 통일되어 있다.
이 책에서도 ‘경(敬)’자의 한 획이 빠져있는 점, 각 장의 글자수가 23행 14자로 해인사대장경의 24행 17자와 다른 점, 책의 장수 표시로 ‘장(丈)’자를 쓰고 있는 점, 간행기록이 없는 점 등을 통해서 초조대장경의 특징을 살필 수 있다.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중 유일한 권 제1로, 11세기경에 찍어낸 초조대장경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2. 국보 제257호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편집]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틀:대한민국의 국보 1~30호, version=27,
title2=틀:대한민국의 국보 31~60호, version2=23,
title3=틀:대한민국의 국보 61~90호, version3=18,
title4=틀:대한민국의 국보 91~120호, version4=16,
title5=틀:대한민국의 국보 121~150호, version5=18,
title6=틀:대한민국의 국보 151~180호, version6=15,
title7=틀:대한민국의 국보 181~210호, version7=13,
title8=틀:대한민국의 국보 211~240호, version8=15,
title9=틀:대한민국의 국보 241~270호, version9=13,
title10=틀:대한민국의 국보 271~300호, version10=12,
title11=틀:대한민국의 국보 301~330호, version11=21,
title12=틀:대한민국의 국보 331~360호, version12=14)]
2.1. 개요[편집]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二十九. 고려 초기, 현종 재위시기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의 일부. 현재 충청북도 단양군의 구인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257호로 지정되어 있다.
2.2. 내용[편집]
가로 891cm, 세로 28.5cm.
11세기 초에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으로, 고려 현종 2년(1011년)에 거란의 대대적인 침입이 일어나자 당시 정부에서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기 위해 초조대장경을 제작하였는데, 이 때 간행된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써, 전세계에 현존하는 근현대 대장경들의 뿌리가 된 고려 팔만대장경의 최초 원류라 할 수 있는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으로 그 세계사적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국보 제256호와 함께 1990년 9월 20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2.3. 외부 링크[편집]
2.4. 국보 제257호[편집]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불교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은 고려 현종 때(재위 1011∼1031)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로, 당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화엄경』주본 80권 중 권 제29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종이를 길게 이어붙여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전체 크기는 세로 28.5㎝, 가로 891㎝이다.
초조대장경은 이후에 만들어진 해인사대장경(재조대장경 또는 고려대장경)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목판의 새김이 정교한 반면에 해인사대장경과 글자수가 다르고 간행연도를 적은 기록은 없으며, 군데군데 피휘(避諱:문장에 선왕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 공경과 삼가의 뜻으로 글자의 한 획을 생략하거나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대치하는 것)와 약자(略字)가 나타난다. 또 초조대장경은 책의 장 수를 표시하는데 있어서 대체로 ‘장(丈)’자나 ‘폭(幅)’자를 쓰는 데 비해 해인사대장경은 ‘장(張)’자로 통일되어 있다.
이 책도 장수를 ‘장(丈)’자로 표시하고 있는 점, 간행기록이 없는 점, 글자수가 23행 14자인 점, ‘경(竟)’자에 한 획이 빠진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초조대장경 판본임을 알 수 있다.
국내에서 발견된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 중 유일한 권29로, 11세기경에 찍어낸 초조대장경의 원형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3. 국보 제265호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3[편집]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틀:대한민국의 국보 1~30호, version=27,
title2=틀:대한민국의 국보 31~60호, version2=23,
title3=틀:대한민국의 국보 61~90호, version3=18,
title4=틀:대한민국의 국보 91~120호, version4=16,
title5=틀:대한민국의 국보 121~150호, version5=18,
title6=틀:대한민국의 국보 151~180호, version6=15,
title7=틀:대한민국의 국보 181~210호, version7=13,
title8=틀:대한민국의 국보 211~240호, version8=15,
title9=틀:대한민국의 국보 241~270호, version9=13,
title10=틀:대한민국의 국보 271~300호, version10=12,
title11=틀:대한민국의 국보 301~330호, version11=21,
title12=틀:대한민국의 국보 331~360호, version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