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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달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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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白磁 壺. 조선 후기, 17세기 말엽부터 18세기 중반(숙종 ~ 영조) 쯤에 만들어진 조선백자 양식. 현재 용인대학교 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 국립고궁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262호, 제309호, 제310호, 대한민국 보물 제1437호, 제1438호, 제1439호, 제1441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편집]
조선 후기, 숙종 ~ 영조년간에 형성된 커다란 백자 항아리 양식으로, 조선 시대 백자의 특징인 온화한 백색과 유려한 곡선, 넉넉하고 꾸밈없는 형태를 고루 갖추어진 항아리로 인정받는다. 매력적인 볼륨감과 질감, 형태, 공간감을 가졌기 때문에 국외에서도 달항아리를 주로 찾는 도예가들이 보이곤 한다. 예로 2023년 3월 달항아리는 크리스티스에서 60억원에 경매되었고 9월 소더비스에서는 47억에 거래되었다.
국보 제262호는 용인대학교에, 국보 제309호는 삼성미술관 리움에, 국보 제310호는 국립고궁박물관, 보물 제1437호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물 제1438호는 서울 종로구의 김영무(개인)이, 보물 제1439호는 서울 영등포구의 최상순(개인)이, 보물 제1441호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각각 소장하고 있다.
조선 후기 한국의 도자문화를 대표하는 도자기로 유명하다.
백자는 태토가 그닥 견고하지 않아서, 한번에 달항아리 형태를 크게 차내면 기울어지거나 무너지기 쉽다. 때문에 두개의 반원을 차낸 후, 건조시켰다가 이 둘을 흙물로 접합하는 방식으로 만들곤 한다.
달항아리의 쓰임새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정확히 입증된 것은 아직 없다. 기름이나 꿀과 같은 액체 혹은 곡식을 담는 저장용[1] 이나 꽃을 꽂아 장식하는 용도, 궁중에서 공용 간이 화장실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 등이 제기되었지만 불분명하다.
여기에서 다양한 한국의 달항아리(korean moon jar shaped pots) 사진
3. 국보 제262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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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커다란 백자 항아리로, 크기는 높이 49.0㎝, 아가리 지름 20.1㎝, 밑 지름 15.7㎝이다.
큰 항아리는 형태를 만들거나 구워내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한번에 물레로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고,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든 후, 두 부분을 접합시켜 완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짧은 아가리가 사선으로 작은 각을 이루며 맵시있게 꺾인 이 항아리는 아가리 주변 아래에서부터 목이 따로 없이 자연스러운 곡선을 그리면서 벌어지다가, 몸체 중앙의 접합부를 지나면서 다시 좁아져, 아가리 지름과 비슷한 크기의 굽에 이른다.
조선 시대 백자의 특징인 온화한 백색과 유려한 곡선, 넉넉하고 꾸밈없는 형태를 고루 갖추어진 항아리로 백자호(국보 제261호)와 비교되는 대표적인 백자 항아리이다. 엷은 청색의 유약이 내외면에 고르게 씌워졌으며, 표면의 색조는 유백색이다.
이 항아리는 대형일 뿐 아니라 시원하고 당당한 모습이 17세기 말경부터 18세기 중엽 백자의 대표작이라 할 만 하다.
4. 국보 제309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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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309호 백자 달항아리는 백자 달항아리들 가운데 가장 원형(圓形)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다. 현재 삼성 리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백자 달항아리는 보통 높이가 40cm 이상 되는 대형으로, 둥글고 유백색(乳白色)의 형태가 둥근 달을 연상하게 되어 일명 ‘달항아리’라고도 불린다. 조선 17세기 후기 ~ 18세기 전기의 약 1세기 동안(특히 18세기 전기 50년간) 조선 왕조 유일의 관요(官窯) 사옹원(司饔院)의 분원(分院) 백자제작소(경기도 광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광주 지역에 산포해 있던 340여 개소의 가마 가운데 금사리 가마에서 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크기가 대형인 탓에 한번에 물레로 올리지 못하고 상하 부분을 따로 만든 후, 두 부분을 접합하여 완성한 것으로 성형(成型)과 번조(燔造)가 매우 어렵다. 순백의 미와 균형감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백자의 독특하고 대표적인 형식이다.
국보 제309호 백자 달항아리는 높이 44cm, 몸통 지름 42cm 크기에 구연부가 짧고 45°정도 경사진 것으로 몸통의 곡선이 둥글며 매우 풍만한 형태를 하고 있다. 몸통의 중심부 이어붙인 부분에 일그러짐이 거의 없어서 측면 곡선은 거의 완전한 원을 그리고 있다. 구연부의 외반 정도와 수직 굽이 조화되어 풍만하면서 안정적이며 전반적으로 완전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어 전형적인 조선 중기 백자 호의 특징을 보인다. 몸통 전면에 성형 흔적 없이 표면이 일정하게 정리되어 있어 최고수준의 환경에서 제작되었음을 보여주며, 굽은 수직에 가깝고 깎음새도 매우 단정하다.
5. 국보 제310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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