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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계 리투아니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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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현황
3. 지역별 분포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러시아계 리투아니아인은 리투아니아에 거주하는 러시아인을 말한다.


2. 현황[편집]


2011년 리투아니아 인구 통계에 의하면 러시아계 리투아니아인 인구 중 11.9%는 가톨릭으로, 구소련 구성국 러시아인 디아스포라 중에서 유달리 가톨릭 신도가 많은 편이다.

리투아니아 독립 당시에 러시아인 인구비중이 10%대였기 때문에 리투아니아 당국에서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와 달리 러시아인들에게 리투아니아 시민권을 부여해서 상대적으로 트러블이 적었던 편이다. 다만 리투아니아 자체가 해외이민이 많은 국가인 만큼 러시아인들도 러시아 본토와 EU 회원국으로 많이 빠져나갔다. 리투아니아 독립 당시 러시아인들의 인구가 30만명을 넘겼던 데 반해, 2020년대에는 14만명으로 절반 넘게 빠져나갔다.


3. 지역별 분포[편집]


2차대전 전후 빌뉴스가 폴란드 제2공화국에서 소련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빌뉴스 시의 폴란드인 인구 상당수가 추방당하고 그 자리를 소련 각지에서 온 인구가 메꾸게 되었다. 오늘날 빌뉴스 시 인구의 13%는 러시아계라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 독일계 인구가 많이 거주하던 소리투아니아 지역 클라이페다 역시 독일계 인구가 추방당한 자리에 소련인들이 이주하였고, 그 결과 클라이페다는 리투아니아 주요 도시 중 가장 러시아계 인구가 많은 도시가 되었다.

여타 발트 3국 국가 라트비아나 에스토니아와 마찬가지로 리투아니아의 클라이페다나 빌뉴스는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웬만한 도시들보다는 생활 수준이 높은 편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리투아니아에서 근무를 마친 소련 공무원들 중 상당수가 은퇴 이후에도 리투아니아 정착을 원하였고 특히 바닷가를 끼고 있는 휴양지 클라이페다가 소련인 간부들이 은퇴하고 정착하는 곳 중 하나로 각광받았다. 다른 한편으로 리투아니아의 시골 농촌 지역의 경우 특별히 러시아 본토보다 더 살기 좋은 것도 아니고 해서 리투아니아 시골에 정착하는 소련인 인구는 소수에 불과하였고, 리투아니아 자체도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보다 인구가 훨씬 많았고, 인구증가율도 높았기 때문에[1] 러시아인들의 비중은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보다 크게 낮았다. 이것이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와 다르게 러시아인 무국적자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이유였다.

리투아니아 북동부의 소도시인 비사기나스(Visaginas)는 러시아계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는 유일한 도시인데, 이는 비사기나스가 1975년 이그날리나 원자력 발전소를 세우면서 같이 세워진 도시이기 때문이다. 원래 도시의 이름은 리투아니아 공산당 서기의 이름을 딴 스니에치쿠스(Sniečkus)였으나, 리투아니아 독립 이후 도시 바로 옆에 있는 비사기나스 호수의 이름을 따서 개명되었다. 이그날리나 원자력 발전소는 한때 리투아니아 전력의 70%를 공급하였으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와 동형의 원자로를 사용했기 때문에 체르노빌 사고 이후 원자로 2기의 건설이 취소되었고, 남아 있던 2기도 안전 문제로 2009년까지 폐쇄되었다. 이후 도시의 인구 역시 1989년 32,438명에서 2021년 19,446명으로 감소세에 있다.


4. 관련 문서[편집]



[1] 라트비아인과 에스토니아인들이 이미 1950년대에 인구 대체 수준에 머문데 반해 리투아니아인들은 1970년대까지도 인구 대체 수준을 유지했고, 이에 따라 인구 자연증가율도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보다 훨씬 높았다. 따라서 러시아인들이 이주해 온다 해도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에 비해 훨씬 충격이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