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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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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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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박경훈
제2대
유해진
제3대
임관호
제4대
김용하
제5대
김충희
제6대
최승만
제7대
길성운
제8대
전인홍
제9대
양제박
제10대
김선옥
제11대
강성익
제12대
김영관
제13대
강우준
제14대
정우식
제15대
구자춘
제16대
권용식
제17대
이승택
제18대
장일훈
제19대
강신익
제20대
박상렬
제21대
이규이
제22대
최재영
제23대
장병구
제24대
이창수
제25대
이군보
제26대
홍영기
제27·28대
우근민
제29대
신구범
제30대
김문탁
제31대
신구범
제32·33대
우근민
제34·35대
김태환
제36대
우근민
제37·38대
원희룡
제39대
오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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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지사 권한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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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지사
濟州特別自治道知事
Governor of Jeju Special Self-Governing Province
파일:오영훈.jpg
현직오영훈 / 제39대 (민선 8기)
취임일2022년 7월 1일
정당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1. 개요
2. 역대 제주도지사 및 제주특별자치도지사
2.1. 제주도사
2.2. 관선 1차
2.3. 민선 1차
2.4. 관선 2차
2.5. 민선 2차
3. 역대 선거 결과
4. 역대 정당별 전적
5. 역대 후보별 순위
6. 도정 구호
7. 여담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제주특별자치도지사제주특별자치도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 근무지는 제주시 문연로 6에 있는 제주특별자치도청이다.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특별자치도의 지사로서 다른 광역자치단체장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도 산하 행정시[1]의 시장이 민선직이 아니라 도지사에 의한 관선직(임명직)인 것이다. 산하 시장들이 독립된 기관장인 기초자치단체장이 아니라 도지사가 임명권을 가진 산하 기관장인만큼 실질적으로 기초자치단체장 권한까지 모두 가진 광역자치단체장이라고 볼 수 있다.[3] 또 제주특별자치도 자치경찰에 한해서는 대통령령에 준할만큼의 영향력을 가진다.

2. 역대 제주도지사 및 제주특별자치도지사[편집]


역대 도지사의 명단은 제주특별자치도청의 분류기준에 따른다.

2.1. 제주도사[편집]


대수이름임기임명자비고
일제강점기 제주도사
초대이마무라 도모 (今村 革丙)1915년 1월 1일 ~ 1919년 5월 30일조선총독부[4]
2대콘도 신지로 (近藤 晉二朗)1919년 5월 30일 ~ 1923년 5월 24일
3대마에다 젠지(前田 善次)1923년 5월 24일 ~ 1928년 7월 21일[겸직]
4대스츠키 헤이사쿠(鈴木 兵作)1928년 7월 21일 ~ 1929년 12월 7일[겸직]
5대다나카 한지(田中 半治)1929년 12월 8일 ~ 1931년 12월 11일[겸직]
6대다구치 테이키(田口 禎禧)1931년 12월 11일 ~ 1935년 9월 6일
7대후루카와 사다키치(古川 貞吉)1935년 9월 14일 ~ 1940년 8월 31일
8대사카모토 니고이치(坂本 二五一)1940년 8월 31일 ~ 1943년 9월 30일[겸직]
9대오노 토라이시(小野 虎市)1943년 9월 30일 ~ 1945년 9월 10일[5]
미군정기 제주도사
초대안세훈(安世勳)1945년 9월 10일 ~ 1945년 9월 22일미군정[6]
권한대행김문희(金汶熙)1945년 9월 10일 ~ 1945년 10월 28일
2대셔먼 스타우트(Thurman A. Stout)1945년 10월 28일 ~ 1946년 3월 28일[7]
직무대리김문희(金汶熙)1945년 10월 28일 ~ 1945년 11월 8일
3대박경훈 (朴景勳)1946년 3월 28일 ~ 1946년 7월 31일[8]
1946년 8월 1일 제주도(濟州道) 설치

초대 도지사인 박경훈 전 지사 이전의 전라남도 제주도 도사들은 제주특별자치도청에서 도지사로 분류하지 않으나 제주특별자치도 전체를 관할했다는 점에서 전사(前史)로서 기술한다.

2.2. 관선 1차[편집]


대수이름임기당적[9]비고
관선 (임명직)
초대박경훈 (朴景勳)1946년 8월 ~ 1947년 3월 20일미군정
2대유해진 (柳海辰)1947년 4월 13일 ~ 1948년 5월
3대임관호 (任琯鎬)1948년 5월 28일 ~ 1949년 4월 21일[10]
4대김용하 (金容河)1949년 4월 21일 ~ 1949년 11월 15일이승만 정부[11]
5대김충희 (金忠熙)1949년 11월 15일 ~ 1951년 8월
6대최승만 (崔承萬)1951년 8월 ~ 1953년 11월 23일
7대길성운 (吉聖運)1953년 11월 23일 ~ 1959년 5월 30일
8대전인홍 (全仁洪)1959년 5월 30일 ~ 1960년 4월 30일
9대양제박 (梁濟博)1960년 5월 12일 ~ 1960년 10월 7일허정 내각
10대김선옥 (金善玉)1960년 10월 7일 ~ 1960년 12월 30일장면 내각

2.3. 민선 1차[편집]


대수이름임기당적[12]비고
민선 (선출직)
11대강성익 (康性益)1960년 12월 31일 ~ 1961년 5월 24일
무소속


2.4. 관선 2차[편집]


대수이름임기당적[13]비고
관선 (임명직)
12대김영관 (金榮寬)1961년 5월 24일 ~ 1963년 12월 17일국가재건최고회의[14]
13대강우준 (康祐俊)1963년 12월 19일 ~ 1966년 1월 25일박정희 정부
14대정우식 (鄭雨湜)1966년 1월 29일 ~ 1968년 2월 22일
15대구자춘 (具滋春)1968년 2월 22일 ~ 1969년 10월 25일
16대권용식 (權容湜)1969년 10월 25일 ~ 1971년 6월 11일
17대이승택 (李昇澤)1971년 6월 11일 ~ 1976년 1월 12일
18대장일훈 (張日勲)1976년 1월 12일 ~ 1978년 9월 11일
19대강신익 (姜信翼)1978년 9월 11일 ~ 1980년 1월 17일
20대박상렬 (朴商烈)1980년 1월 17일 ~ 1980년 7월 16일최규하 정부
21대이규이 (李圭貳)1980년 7월 16일 ~ 1982년 1월 5일
22대최재영 (崔在榮)1982년 1월 5일 ~ 1984년 10월 10일전두환 정부
23대장병구 (蔣炳九)1984년 10월 10일 ~ 1987년 10월 21일
24대이창수 (李昌洙)1987년 10월 22일 ~ 1988년 5월 19일
25대이군보 (李君普)1988년 5월 19일 ~ 1989년 12월 13일노태우 정부
26대홍영기 (洪瑛基)1989년 12월 13일 ~ 1991년 7월 29일
27대우근민 (禹瑾敏)1991년 8월 1일 ~ 1993년 3월 3일
28대1993년 3월 4일 ~ 1993년 12월 27일김영삼 정부
29대신구범 (愼久範)1993년 12월 27일 ~ 1995년 3월 28일
30대김문탁 (金文鐸)1995년 3월 29일 ~ 1995년 6월 30일

2.5. 민선 2차[편집]


대수이름임기당적[15]출신지비고
제주도지사 민선 (선출직)
31대신구범 (愼久範)1995년 7월 1일 ~ 1998년 6월 30일
무소속

제주 제주시[16]
32대우근민 (禹瑾敏)1998년 7월 1일 ~ 2002년 6월 30일
ta-hash-start=w-7b2fb7bbd5771fbdff08a677325e3998[[파일:새정치국민회의 흰색 로고타입.svg
[17]
33대2002년 7월 1일 ~ 2004년 4월 27일
ta-hash-start=w-18bbdd93321ecb981eb57b477b75257b[[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18]
권한대행권영철 (權寧喆)2004년 4월 28일 ~ 2004년 6월 5일행정부지사경기 안성
34대김태환 (金泰煥)2004년 6월 6일 ~ 2006년 5월 8일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제주 제주시[19][20][21]
권한대행김한욱 (金漢昱)2006년 5월 9일 ~ 2006년 6월 30일행정부지사제주 서귀포
제주특별자치도지사 민선 (선출직)
35대김태환 (金泰煥)2006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무소속

제주 제주시
36대우근민 (禹瑾敏)2010년 7월 1일 ~ 2014년 6월 30일[22]
37대원희룡 (元喜龍)2014년 7월 1일 ~ 2018년 6월 30일
ta-hash-start=w-a5707b0085dc71b1783efc16453fb0bf[[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제주 서귀포[23][24]
38대2018년 7월 1일 ~ 2021년 8월 11일
무소속

[25][26]
권한대행구만섭 (丘萬燮)2021년 8월 12일 ~ 2022년 6월 30일행정부지사충남 서천
39대오영훈 (吳怜勳)2022년 7월 1일 ~ 현재제주 서귀포[27]

3. 역대 선거 결과[편집]


파일:제주도기(1966-2009).svg 역대 민선 제주도지사
19601995199820022004
무소속
한나라당
강성익신구범우근민김태환
파일:제주특별자치도 휘장_White.svg 역대 민선 제주특별자치도지사
20062010201420182022
무소속
새누리당
무소속
김태환우근민원희룡오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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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1960년[편집]


파일:제주도기(1966-2009).svg 제주도지사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양남전(梁南躔)19,9493위
22.43%낙선
2김선옥(金善玉)22,4272위
25.21%낙선
3양제박(梁濟博)3,1665위
3.56%낙선
4강성익(康性益)23,6731위
26.62%당선
5김영진(金榮珍)19,7314위
22.18%낙선
선거인 수288,928투표율
30.78%
투표 수88,946
무효표 수-

3.2. 1995년[편집]


파일:제주도기(1966-2009).svg 제주도지사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우근민(禹瑾敏)89,0002위
32.53%낙선
2강보성(姜普性)66,4063위
24.27%낙선
3신구범(愼久範)111,2051위
40.64%당선
4신두완(申斗完)6,9614위
2.54%낙선
선거인 수348,191투표율
80.47%
투표 수280,197
무효표 수6,625

3.3. 1998년[편집]


{+1 [[파일:제주도기(1966-2009).svg}}} 제주도지사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현임종(玄林鍾)43,5593위
16.45%낙선
2우근민(禹瑾敏)139,6951위
52.76%당선
4신구범(愼久範)81,4912위
30.78%낙선
선거인 수365,121투표율
73.67%
투표 수268,984
무효표 수4,239

3.4. 2002년[편집]


파일:제주도기(1966-2009).svg 제주도지사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신구범(愼久範)119,5022위
45.41%낙선
2우근민(禹瑾敏)135,2831위
51.40%당선
3신두완(申斗完)8,3733위
3.18%낙선
선거인 수387,982투표율
68.94%
투표 수267,479
무효표 수4,321

3.5. 2004년[편집]


파일:제주도기(1966-2009).svg 제주도지사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김태환(金泰煥)108,8531위
56.00%당선
3진철훈(秦哲薰)85,5422위
44.00%낙선
선거인 수396,248투표율
49.79%
투표 수197,331
무효표 수2,936

2004년 4월 27일 대법원이 우근민제주도지사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해 지사직이 상실되었다.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상대 후보 신구범에 대한 허위 사실 공표 혐의가 문제가 됐다. 재판 과정에 우근민 전 지사는 재판부 매수 의혹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었다. 담당판사가 우근민 전 지사 측근과 골프를 쳤다는 사실을 신구범 전 지사 측에서 폭로하면서 재판부 기피신청 사태까지 벌어져 법원장을 재판장으로 하는 새로운 재판부가 구성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집무실 성추행 등 선거법 이외에도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

3.6. 2006년[편집]


파일:제주도기(1966-2009).svg 제주특별자치도지사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진철훈(秦哲薰)44,3343위
16.15%낙선
2현명관(玄明官)112,7742위
41.10%낙선
6김태환(金泰煥)117,2441위
42.73%당선
선거인 수411,862투표율
67.26%
투표 수277,003
무효표 수2,651

3.7. 2010년[편집]


{+1 [[파일:제주특별자치도 휘장_White.svg}}} 제주특별자치도지사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2고희범(高喜範)48,1793위
18.03%낙선
7강상주(姜相周)사퇴
8현명관(玄明官)108,3362위
40.55%낙선
9우근민(禹瑾敏)110,5881위
41.40%당선
선거인 수424,098투표율
65.08%
투표 수276,056
무효표 수8,918

우근민, 현명관 두 후보 모두 각각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저마다 우근민의 성희롱 혐의현명관 후보 동생의 뇌물 수수 혐의로 공천에 탈락해버리는 바람에 무소속 출마했다. 한나라당은 현명관의 공천을 박탈한 이후 다른 후보를 공천하지 않았지만 민주당은 기호 2번 고희범 후보를 새로 공천하였다. 접전 양상은 대체적으로 기호 8번 현명관 후보가 유리해 보였으나, 95%가 개표된 상태에서 기호 9번 우근민 후보가 역전하여 0.85% 차이로 당선되었다.[28]

3.8. 2014년[편집]


{+1 [[파일:제주특별자치도 휘장_White.svg}}} 제주특별자치도지사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원희룡(元喜龍)172,7931위
59.97%당선
2신구범(愼久範)99,4932위
34.53%낙선
3고승완(高承完)12,2093위
4.23%낙선
4주종근(朱鐘根)3,6374위
1.26%낙선
선거인 수467,182투표율
62.79%
투표 수293,323
무효표 수6,339

원희룡 후보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나고 자란 제주 출신 정치인이었지만 제주제일고 졸업 이후 제주에서 거주한 적이 없고 정치인 생활은 줄곧 서울특별시에서만 했으며 한때 서울특별시장 출마까지 고려했기에 제주에서의 지역 기반은 미약했다. 그랬기에 궨당으로 대표되는 제주특별자치도 특유의 선거 문화를 감안하면 당초 접전이 예상되었다. 그러나 제주지역 정치권 내에서도 한물간 인물로 분류되던[29] 신구범이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나서자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층과 중도 유권자 다수가 실망했고 원희룡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결국 원희룡 후보는 25.44% 차이로 신구범 후보를 손쉽게 누르고 당선되었다.

3.9. 2018년[편집]


{+1 [[파일:제주특별자치도 휘장_White.svg}}} 제주특별자치도지사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문대림(文大林)137,9012위
40.01%낙선
2김방훈(金方勳)11,2414위
3.26%낙선
3장성철(張性哲)5,0195위
1.45%낙선
6고은영(高恩永)12,1883위
3.53%낙선
7원희룡(元喜龍)178,2551위
51.72%당선
선거인 수532,515투표율
65.90%
투표 수350,943
무효표 수6,339

2018년 2월 설 명절을 앞두고 실시한 첫 여론조사부터 4월 초까지의 여론조사에서는 원희룡 후보가 문대림 후보를 대부분 앞서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문재인 전 대통령제주 4.3 사건 70주년 행사 방문 효과와 원희룡 후보에 대한 상대 진영의 정치 공세로 인하여 4월 한 달간은 문대림 후보한테 오차범위 밖으로 역전을 허용하였다. 그러다 5월 초중순까지 오차범위 내로 접전 양상을 보이더니 5월 14일 '제주 신공항 토론회'에서 원희룡 후보 폭행사건이 터지고, 선거기간 도중 문대림 후보 개인에 대한 각종 논란[30]이 지역사회에 불거지면서 골든크로스 현상이 일어나 판세가 완전히 뒤집혔다. 더불어민주당 주요 인사들이 제주특별자치도에 총동원되어 문대림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원희룡 후보를 공격해봐도 소용없었다.[31]

6월 13일 지방선거 당일 날 출구조사로는 원희룡 후보가 문대림 후보를 8.5% 격차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고, 실제 개표 결과로는 11.71% 격차로 여유롭게 압승하며 이번 지방선거에서 전국 유일의 무소속 광역자치단체장의 타이틀을 지켜내게 되었다. 지방선거 직후 보수 진영의 홍준표, 유승민, 남경필 그리고 중도 보수 ~ 중도 진영의 안철수, 손학규가 차기 대선 주자 반열에 상당한 내상을 입고 사실상 재기 불능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계열의 박원순, 김경수와 함께 보수 계열에서는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수혜자로 등극한 셈. 4년 전 새누리당 중진 차출론의 미명하에 자의반 타의반 제주특별자치도지사로의 도전이, 같은 명분하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남경필 전 의원과 상대적으로 비교 열위[32]로 비춰졌던 것을 감안하면, 원희룡 전 지사로서는 그 당시의 선택이 현재 신의 한수가 된 것이다. 전국적으로 더불어민주당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제주특별자치도가 더불어민주당 텃밭임에도 더불어민주당 문대림 후보를 누르고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원희룡 후보는 무소속으로 당선됨으로써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가 다시 한번 당선되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원희룡 전 지사는 2014년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으로 당선됐으나 2006년, 2010년 지방선거에선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제주특별자치도는 더불어민주당이 강한 지역이다.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3개 선거구 모두 더불어민주당이 4번 연속 당선됐을 정도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고, 최근엔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역시 높은 상황이다. 결국 더불어민주당 문대림 후보의 무능으로 인한 반사이익과 지난 4년간 (민선 6기) 원희룡 도정에 대한 제주특별자치도민의 긍정적 평가가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재선 성공에 한 몫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사실 문대림 후보는 김우남 전 의원과의 더불어민주당 제주특별자치도지사 후보 경선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했고, 우근민 전 지사와의 관계 해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으며, 원희룡 후보가 제기한 송악산 부동산 투기 의혹과 골프장 명예 회원 논란, 법학석사 논문 표절 논란, 부동산 개발업체 임원 이력 등 여러 의혹을 해명하지 못한 채 도덕성과 자질 논란이 불거지면서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한 것은 물론, 지지세를 역전당한 이후에 단 한번도 치고 올라가지 못했었다.

반면 원희룡 전 지사는 지난 임기 동안 중앙 정치만 바라봤고 제주특별자치도민과의 소통이 미흡했다는 비판에 진심으로 사과하면서 인물론으로 유권자들의 표심을 파고들었다. 원희룡 전 지사는 제주특별자치도 지역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점을 고려해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도덕성, 진정성, 정책 생산 능력, 준비 정도를 고려하면 원희룡이 문재인 전 대통령과 함께 일을 더 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더불어민주당 입당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말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50대 이상의 제주특별자치도민들에게는 학력고사 전국 수석, 사법시험 수석 출신의 원희룡 전 지사를 큰 인물로 키워야 한다는 정서도 지난 선거에 이어 먹힌 것으로 분석되며 지역별 득표 현황에서도 서귀포시 대정읍 및 제주특별자치도 서쪽의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모든 곳에서 승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YMCA 청소년 모의투표에서도 각 지역별로 청소년들에게서 유일하게 득표율 1위를 기록한 보수 진영 후보가 원희룡이었다. 기사 대체적으로 중년층 이상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하고 청년층, 장년층에서 근소 우세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보수 진영이 지리멸렬한 가운데 살아남은 원희룡 전 지사의 차기 행보도 관심거리다. 3선 국회의원에 재선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된 원희룡 전 지사는 보수 진영의 차기 대권 주자로 비상할 계기를 마련했지만 선거 기간 언급했던 더불어민주당 입당 가능성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 보인다. 차기 대통령 선거 주자들이 많은 여권보다는 보수 진영에서 그의 몸값이 더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희룡 후보는 선거 기간에 중앙 정치를 곁눈질한다는 오해가 있었다. 4년 동안 당적을 갖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중앙 정치에 몸을 담글 가능성이 커졌다.

원희룡 전 지사의 장점 및 강점으로는 대한민국에서 중도적 보수 주의 색채를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는 점이다. 현재 대한민국에 개혁적 보수 및 중도 정치에 대한 갈망이 상당히 있다는 걸 감안하면 나름 유권자들에게 소구력을 강하게 가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다. 구성원 중에서도 가장 진보적 색채가 강하다는 평이고, 2000년대의 중도 ~ 중도 우파 소장파 이미지의 긍정적 이미지가 아직도 강하다는 것은 또한 큰 플러스 요소다. 남경필 및 기타 소장파들과 다르게 흙수저 출신의 자수성가 스토리 및 노동 운동 경력, 친대중 스탠스의 전적들도 나름 스토리가 된다는 평가다. 다만, 엘리트 이미지가 강한 부분과 다소 자기 확신형이 강한 여러 과거 언행들이 비지지자 및 진보 유권자에게 비호감 내지는 견제 심리를 갖게 한다는 단점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외에 무소속 출신으로서 어느 당에서의 확고한 지지 기반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도 리스크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무소속으로서의 운신의 폭을 넓게 가질 수 있지만 잘못하면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위치가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약점 및 단점으로 손꼽힌다.

중국자본 문제 및 쓰레기 처리 문제, 제2공항 문제 해결이 우선시되는 시점에서 재선에 성공한 원희룡은 업무추진에 있어 날개를 펼칠 수 있을지는 과제로 꼽히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방훈 후보의 공약에서 (서귀포시 인구수에 맞추기 위해) 제주시를 동서로 분할하는(...) 공약이 있었고, 장성철 후보의 경우는 제2공항과 제주해저터널의 공론화(주민 투표)를 추진하는 공약이 있었다. 둘 다 제주특별자치도민들 입장에선 엄청 싫어하는 공약이다.(김방훈 후보 쪽에 있어서는 제주특별자치도 거주민들, 장성철 후보 쪽의 경우는 제주특별자치도민 거의 전부(+성산읍 거주민))[33] 그 까닭에 고은영 후보가 어부지리(?) 같은 식으로 3위를 차지하기는 했다. 또한 문대림 후보 측 진영(즉 더불어민주당)의 경우는 도의원 공천 잡음과 도지사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극렬한 대립각 등으로 시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다 시피 했다. 극도로 반발했었던 김우남 측은 선거 운동 말미에서야 문대림 측에게 힘을 보탰고. 결과적으로 더불어민주당 측에게 있어선 잡음 때문에 초래된(+문재인 후광만 믿고 밀어부친 데 대한 부작용이 생긴) 것으로 봐도 될 정도.

그러나 앞으로 해결해야하는 문제는 거의 산더미와 같은 정도로 존재한다. 중국 자본(+외국 자본)의 무분별한 유입으로 외국인들(대표적으로 유커에 해당되거나 갑부에 해당되는 중국인들)이 땅을 사들여서 생기는 환경 문제와, 난민+유커+관광객이 과잉유입되면서 생기는 치안 문제.[34] 등은 해결해야 할 문제다. 쓰레기 처리 문제(봉개소각장 사용량 포화로 인한 소각장 신설관련 해당부지 주민들과의 갈등)와 제2공항 문제도 해결해야할 문제고.

제주특별자치도의회의 경우는 사실상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 채워져서 업무 추진력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가 없는 것이 함정(...).

3.10. 2022년[편집]


{+1 [[파일:제주특별자치도 휘장_White.svg}}} 제주특별자치도지사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오영훈(吳怜勳)163,1161위
55.14%당선
2허향진(許香珍)116,7862위
39.48%낙선
4부순정(夫順貞)5,7504위
1.94%낙선
5박찬식(朴贊殖)10,1383위
3.42%낙선
선거인 수565,084투표율
53.11%
투표 수300,139
무효표 수4,349

제주도의 깨끗한 환경을 보고 들어온 외지인의 비율이 높아지고, 그나마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의 각종 도정 실책으로 인하여 경쟁력 격차가 어느 정도 있었기에 사실상 기호 1번 오영훈 후보에게 승부의 추가 기울어져 있었고, 결과도 역시 15.66%p 격차 완승이였다. 그나마 허니문 효과 덕분에 기호 2번 허향진 후보도 40%p 가까이에 육박한 득표율을 얻었을 뿐이다. 보수 바람이 크게 불었던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제주특별자치도에서만큼은 진보 성향의 기호 4번 부순정, 기호 5번 박찬식 후보 득표까지 합하면 범진보 득표율이 60.52%가 나와, 제주특별자치도가 세종특별자치시를 뛰어넘어 호남 다음가는 진보의 확고한 텃밭으로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는 결과였다. 어찌보면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정반대의 결과라고 보면 되겠다.[35]

4. 역대 정당별 전적[편집]


민주당계 정당보수 정당제3후보[36]
1회강보성우근민신구범[37]
낙선 24.27%낙선 32.54%당선 40.64%
2회우근민현임종신구범[38]
당선 52.76%낙선 16.45%낙선 30.78%
3회우근민신구범신두완[39]
당선 51.40%낙선 45.41%낙선 3.18%
재보선진철훈김태환-
낙선 44.00%당선 56.00%
4회진철훈현명관김태환[40]
낙선 16.15%낙선 41.10%당선 42.73%
5회고희범-우근민[41]
낙선 18.03%당선 41.40%
6회신구범원희룡고승완[42]
낙선 34.53%당선 59.97%낙선 4.23%
7회문대림김방훈원희룡[43]
낙선 40.01%낙선 3.26%당선 51.72%
8회오영훈허향진박찬식[44]
당선 55.14%낙선 39.48%낙선 3.42%

5. 역대 후보별 순위[편집]


  • 사퇴, 사망, 등록 무효 후보 제외.
1위2위3위4위5위
1회신구범우근민강보성신두완
2회우근민신구범현임종
3회우근민신구범신두완
재보선김태환진철훈
4회김태환현명관진철훈
5회우근민현명관고희범
6회원희룡신구범고승완주종근
7회원희룡문대림고은영김방훈장성철
8회오영훈허향진박찬식부순정

6. 도정 구호[편집]


이군보희망찬 새 제주
홍영기선진 관광 제주 건설
우근민믿음과 희망을 심는 도정
신구범위대한 제주시대를 연다
우근민100만 제주인 함께 열린 세계로
세계를 향한 강한 제주
김태환제2의 도약 제주, 하나된 힘으로
도민의 시대 새로운 도전 제주특별자치도
우근민세계가 찾는 제주, 세계로 가는 제주
원희룡자연·문화·사람의 가치를 키우는 제주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 제주
오영훈위대한 도민시대, 사람과 자연이 행복한 제주
다함께 미래로, 빛나는 제주

7. 여담[편집]


  •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광역자치단체장이지만 관할 인구가 중대형급의 기초자치단체에 가까울 정도로 적고 궨당이라는 제주 특유의 지역 문화가 여전히 뚜렷한 탓에 탄탄한 지역 조직을 갖춘 토호들의 무소속 당선이 많은 편이다.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재보궐선거를 포함하여 9번의 선거에서 4번이나 무소속 당선인이 나왔다. 무소속 당선인 중 육지에서 이미 정치적 영향력을 키운 뒤 제주로 내려온 원희룡을 빼면 나머지 3명 모두 제주 토호 출신 지사들이다.

  • 상기 이유 및 내륙과 분리되어 있는 지형 환경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선거는 중앙 정세에 받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민선 3기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하였지만 제주도에서는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공천을 받았던 우근민이 재선에 성공하였고, 민선 7기 선거의 경우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했지만 제주도에서는 보수 성향 무소속 원희룡이 재선에 성공하였으며, 민선 8기의 경우 국민의힘이 압승했지만 제주도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오영훈이 15% 이상의 큰 격차로 승리하였다.

  • 1995년 지방자치 부활 후 민선 8기 기준 서부지역 읍면이나[45] 2006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의 행정구역 기준으로 제주시·서귀포시 시내동에서 태어난 도지사는 아직 없고 출마한 이들도 전원 낙선했다. 원희룡의 고향 중문동은 서귀포시의 동 지역이지만 원희룡이 태어날 당시에는 남제주군 중문면이었고 현재 서귀포시의 원도심인 서귀동과도 거리가 꽤 된다. 그의 집은 전기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던 시골마을에 있었다고 한다.

  • 제주특별자치도는 역사적으로 개신교천주교의 세가 약하고 불교의 세가 앞서다 보니[46] 지방자치 부활 후 제주특별자치도지사들은 모두 불교 신자였다. 원희룡만 유일하게 개신교 모태신앙을 갖고 있으며[47] 신구범은 불교였다가 2019년 가을 개신교로 개종한 것으로 보인다.

  • 민선 제주특별자치도지사 5인 모두 선거법 관련 문제로 법정에 선 적이 있다. #

  • 타 지역의 역대 광역자치단체장들과 다른 게 1930년대생과 1950년대생이 단 한 명도 없다.

8. 관련 문서[편집]





[1] 대도시 특례를 받는 일부 대도시 산하에 설치된 일반구(비자치구)와 동격의 도청 하부기관일 뿐 기초자치단체가 아니다. 제주특별자치도세종특별자치시가 다른 광역자치단체들에 비하여 가지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바로 기초자치단체가 없는 '단층형 광역자치단체'라는 것이다. 다만 2006년 7월 특별자치도 개편 이전 제주도 시절에는 제주시, 서귀포시, 북제주군, 남제주군 모두 기초자치단체였으며, 어쨌든 '시'는 '시'이기에 일반구보다는 권한이 조금 더 많다. 게다가 '시'인만큼 인구 10만 이상이면 시장도 2급 공무원의 대우를 받는다. 일반구는 인구가 많아도 보통 4급 공무원인 것에 비하면 높은 대우라고 볼 수 있다.[2] 특별시나 광역시 산하의 자치구청장한테는 없고 광역시 산하의 군수와 도 산하의 시장·군수만 들고 있는 권한이다.[3] 이는 기초자치단체가 존재하지 않는 또다른 단층형 광역자치단체의 장인 세종특별자치시장 외에는 없다. 둘 모두 산하에 기초단체장이 없는만큼 원래 기초단체장에 배부되었던 도시기획권[2]부터 각종 인·허가권 또한 사실상 다 광역단체장이 쥐고 있다고 볼 수 있다.[4]조선총독부 경찰관.[겸직] A B C D 제주도 경찰서장.[5] 조선총독부 최후의 제주도 도사(島司)[6] 오노 도사의 후임으로 추천되어 임명됐으나 임지에 부임하지 않았음.[7] 최초이자 마지막 서양인 제주도 도사. 현역 미국 육군 소령이자 미군정 제59군정 중대 사령관 겸임.[8] 마지막 제주도 도사. 제주도(濟州道) 설치후 초대 도지사 승계.[9] 선거 당시 당적.[10] 정부 수립 후 첫 도지사.[11]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부친. 6.25 전쟁 중에 납북되었다.[12] 선거 당시 당적.[13] 선거 당시 당적.[14]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으로 한국 최초의 해군대장. 1975년 사이공 함락 당시 주월 한국대사. 제주도지사 임명 당시 현직 해군 장성이었다. 참모총장에는 1966년에 임명됨.[15] 선거 당시 당적.[16] 신구범은 조천읍, 우근민은 구좌읍 출신.[17] 2000.1.20.
ta-hash-start=w-f24a6308617b7104a19af1574680d118[[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으로 당명 변경.[18] 2004.4.27.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지사직 상실.[19] 구좌읍 출신.[20] 2006.2.17. 공천 불복으로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탈당.
2006.5.8. 지사직 사퇴.
[21] 4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 입당 번복 등의 혼란이 생기자, 결국 도지사직을 가지고 이번 선거를 치를 수도 있지만 공무원 선거 개입 의혹이 있는 상황에서 원칙만을 따질 수는 없었다며 오늘 저의 사퇴가 최근 불거진 공무원 선거 개입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며 지사직을 사퇴하고 무소속 출마했다.[22] 2013.11.5.
ta-hash-start=w-11a0252e81868dcf0894b8a9a0031a44[[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복당.[23] 중문동 출신. 지방자치 부활 후 최초의 서귀포 출신이다.[24] 2017.1.4.
ta-hash-start=w-6c83da5d57fc50aebd849df2270d40fa[[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탈당.
2017.1.24.
ta-hash-start=w-8e488eaf07b841e692fc4fe103e7b254[[파일:바른정당 흰색 로고타입.svg

입당.
2018.2.13.
ta-hash-start=w-d1588e685562af341ff2448de4b674d1[[파일:바른미래당 흰색 로고타입.svg
으로 신설 합당.
2018.4.10.
ta-hash-start=w-177a60cf6f66d63873a84f6202112b92[[파일:바른미래당 흰색 로고타입.svg
탈당.[25] 2020.2.17.
ta-hash-start=w-17e9a17b8b49a5e444ef8cd2f00b145b[[파일:미래통합당 흰색 로고타입.svg
복당.
2020.9.2.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으로 당명 변경.
[26] 2021.8.11. 제20대 대통령 선거 국민의힘 경선 출마를 위해 지사직 사퇴.[27] 남원읍 출신.[28] 두 사람의 표차는 2,252표로 역대 지방선거의 광역단체장 사상 최소 득표차로 기록되어 있다. 최저 득표율도 기록하고 있었으나 12년 뒤인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경기도지사 선거에서 기호 1번 더불어민주당 김동연 후보와 기호 2번 국민의힘 김은혜 후보가 불과 0.15%p 차이로 나타나면서 득표율 기록이 깨졌다.[29] 그럴만한 것이 신구범 전 지사가 퇴임하고 16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출마했던 것이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였으니 충분히 잊혀질 만 했다.[30] 1) 도의원시절 자신의 지역구였던 송악산 부동산 투기 의혹, 2) 주식회사 '유리의성' 이중급여 및 재산신고 누락 의혹, 3) 법학석사 논문 표절 의혹, 4) 부동산개발회사 부회장 이력과 인허가 관련 로비스트 의혹, 5) 더불어민주당 도지사 후보 경선 과정 중 당원명부 유출 의혹, 6) 세계 7대 자연경관 추진시 도민 혈세 170억원 사용 방조 의혹, 7) 제주도의회 환경위원장 당시 도내 골프장으로부터 명예회원 위촉 논란, 8) 우근민 도정 시절 도의회 의장으로서 중국자본 투자유치 활동 등.[31] 오히려 원희룡 후보의 지지율만 올랐다.[32] 아무래도 수도권, 한국 최대 광역자치단체장과 제주특별자치도지사의 위상차가 있기 때문이다.[33] 자유한국당 후보의 경우에는 홍준표와 당 지도부의 4.3 사건, 이승만 관련 행보에 지역 주민들이 반감을 가지게 된 것도 마이너스 요소가 되었다.[34] 제주특별자치도에서 3무는 도둑, 노숙자, 대문이다.[35] 당시엔 허니문 효과와 대북정책의 성공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유리했지만 인지도 없는 후보를 내보내는 바람에 보수 쪽에서 개인기로 살아남은 후보에게 패했다.[36] 3% 이상 득표자만 기재.[37] 중도 성향 후보.[38] 중도 성향 후보.[39] 보수 정당 후보.[40] 중도 성향 후보.[41] 중도 성향 후보.[42] 진보 정당 후보.[43] 보수 성향 후보.[44] 진보 성향 후보.[45] 애월읍, 한림읍, 한경면, 대정읍, 안덕면[46] 물론 제주에서 제일 세력이 뚜렷한 종교는 무속신앙이다. 기성 종교 중에서 불교의 세가 그나마 세다는 뜻이다. 개신교와 천주교는 서북청년회 활동과 신축민란의 영향으로 도민들의 반감이 꽤 강하다.[47] 친형이 예장통합 교단 소속의 현역 목사이고 아버지도 장로일 정도로 집안 식구 전체가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