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구광역시장

덤프버전 :





파일:대구광역시 휘장_White.svg
대구광역시장
[ 펼치기 · 접기 ]

초대
허억
제2대
이호석
제3대
김종환
제4대
허흡
제5대
조준영
제6대
이종왕
제7대
박기서
제8대
김종환
제9대
강원채
제10대
강계원
제11대
태종학
제12대
김수학
제13대
이규이
제14대
김무연
제15대
정채진
제16대
박창규
제17대
장병구
제18대
정채진
제19대
이상희
제20대
이상연
제21대
박배근
제22대
박성달
제23대
이해봉
제24대
한명환
제25대
이의익
제26대
조해녕
제27대
이종주
제28·29대
문희갑
제30대
조해녕
제31·32대
김범일
제33·34대
권영진
제35대
홍준표
← 일제강점기 및 미군정 대구부윤
파일:대구광역시 시정슬로건.svg





파일:대구광역시 휘장_White.svg
대구광역시장
大邱廣域市長
Mayor of Daegu Metropolitan City
파일:_홍준표_대구시장.jpg
현직홍준표 / 제35대 (민선 8기)
취임일2022년 7월 1일
정당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관사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 래미안웰리스트
1. 개요
1.1. 대구광역시장 선거 100% 적중 지역
2. 목록
2.1. 대구현령
2.2. 지대구군사(23부제 시행 이전)
2.3. 대구도호부사
2.4. 대구부윤
2.5. 대구군수(23부제 시행 이후)
2.6. 역대 경상북도 대구부윤
2.7. 역대 경상북도 대구시장
2.8. 역대 대구직할시장
2.9. 역대 대구광역시장
3. 역대 선거 결과
4. 역대 정당별 전적
5. 역대 후보별 순위
6. 시정 구호
7. 여담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구광역시장대구광역시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 1995년 1월 1일 이전까지는 직할시장이라 불렸고, 1981년 7월 1일 이전까지는 경상북도 대구시장이라 불렸으며, 1949년 8월 15일 이전까지는 경상북도 대구부윤이라 불렸다. 지역 특성상 대부분의 민선 대구광역시장이 보수 정당 소속이며, 대구광역시장은 대구 FC 구단주를 당연직으로 겸직한다.

이전까지는 경상북도지사와 비슷하게 중앙 정계의 거물이나 대권 주자급 인물은 없고 주로 관료 출신들이 대구광역시장을 맡았지만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홍준표가 당선되면서 이 경향이 깨졌다.

경상북도지사가 3연임하는 기조가 강하다면 대구광역시장은 재선이 사실상 한계인 기조가 강하다. 대구광역시 지하철 참사로 인해 초선 임기만에 불출마를 택한 조해녕 전 시장과 차기 정치적 행보를 위해 재선에 도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홍준표 시장 외에는 모두 재선에서 대구광역시장 커리어가 마무리 되었다.

경상북도지사가 TK 원로에 가까운 공무원 출신 정치인들이 도전한다면 대구광역시장은 경상북도지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짬이 낮고 지역 맹주라고 불리기는 부족한 공무원 및 정치인 출신들이 도전[1]하는 경우가 많아 3연임에 강한 견제를 받기 때문에 재선으로 마무리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다.[2]

1.1. 대구광역시장 선거 100% 적중 지역[편집]


  • 남구를 제외한 전 지역
    • 중구 - 역대 모든 서울특별시장, 부산광역시장, 인천광역시장, 울산광역시장 선거 모두 중구 승자가 곧 당선되었다.
    • 서구
    • 동구
    • 북구
    • 수성구[3]
    • 달서구[4]
    • 달성군
대구광역시장 선거는 사실 원사이드하게 흘러가는 지역이긴 한데,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딱 한 곳이 적중 지역에서 탈락했다. 무소속으로 재선 남구청장을 지낸 이재용 후보가 무소속으로 나와서 다른 지역에서는 다 졌지만 남구에서 이겼기 때문에 적중 지역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2. 목록[편집]



2.1. 대구현령[편집]


고려 인종 21년인 1143년 현령이 파견된 이래 조선 세종 1년인 1419년까지 현령들이 거쳐갔다.

2.2. 지대구군사(23부제 시행 이전)[편집]


조선 세종 1년인 1419년 군으로 승격된 이래 세조 12년인 1466년까지 지군사#들이 거쳐갔다.

2.3. 대구도호부사[편집]


세조 12년인 1466년 대구군이 대구도호부로 승격된 이래 조선 고종 32년인 1895년까지 도호부사들이 거쳐갔다. 1601년 경상감영이 대구로 이전한 이후로 대구도호부사는 경상감사가 겸직하는 직위가 되어 1895년까지 이어졌다.[5]

2.4. 대구부윤[편집]


조선 고종 32년인 1895년 지방행정이 23부제로 개편된 이래 그 다음해인 1896년 다시 13도제로 개편될 때까지 부윤들이 거쳐갔다.

2.5. 대구군수(23부제 시행 이후)[편집]


1896년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로 환원됨에 따라 부에서 군으로 격하되고 경술국치때까지 군수들이 거쳐갔다.

2.6. 역대 경상북도 대구부윤[편집]


파일:대구광역시 휘장(일제강점기~1996)_White.svg
역대 경상북도 대구부윤
[ 펼치기 · 접기 ]

일제강점기 대구부윤
초대제2대제3대제4대
다케자키 로쿠지로나가노 타이사로마쓰이 노부시케미야다테 테이이치
제5대제6대제7대제8대
우에우치 히코사쿠야마자키 마사오구와하라 이치로이타가키 신지
제9대제10대제11대제12대
다가 히데토시카도와키 마코오이치후루이치 스스무스기야마 무이치
제13대제14대
야마모토 미노루우에노 히코하치
미군정~남조선과도정부~대한민국 경상북도 대구부윤
초대제2대제3대제4대
이경희존 P. 콘치조지 마이어스이경희
제5대제6대제7대제8대
권영세한보용조용해허 억
대한민국 대구광역시장





대수이름임기당적[6]비고
일제치하 조선 경상북도 대구부윤
초대다케자키 로쿠지로1910/9/30~1918/2/26 최장수 부윤조선총독부
2대나가노 타이사로1918/2/26~1919/8/20
3대마쓰이 신스케1919/8/20~1924/11/24
4대미야다테 데이이치1924/11/24~1926/5/24
5대가미우치 히코사쿠1926/5/24~1928/3/30
6대야마자키 마사오1928/3/30~1929/11/28
7대구와하라 이치로1929/11/28~1931/9/23
8대이타가키 타다지1931/9/23~1932/2/13
9대다가 히데토시1932/2/13~1934/5/1
10대가도와키 모쿠이치1934/5/1~1936
11대후루이치 스스무1937/4/1~1939/6/21
12대스기야마 무이치1939/7/1~1941/5/16
13대야마모토 미노루1941/5/17~1943
14대우에노 히코하치1943~1945/8/16 근무이탈
미군정 조선 경상북도 대구부윤 관선
초대이경희1945년 8월 16일 ~ 1945년 10월 10일조선총독부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7]
2대존 P. 콘치1945년 10월 10일 ~ 1945년 11월 18일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8]
3대조지 마이어스1945년 11월 18일 ~ 1946년 1월 18일[9]
4대이경희1946년 1월 18일 ~ 1946년 9월 5일
5대권영세 (權寧世)1946년 9월 5일 ~ 1947년 5월 1일[10]
6대한보용 (韓普容)1947년 5월 1일 ~ 1948년 8월 14일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남조선과도정부
대한민국 경상북도 대구부윤 관선
7대조용해 (趙龍海)1948년 8월 15일 ~ 1949년 1월 8일이승만 정부
8대허억 (許億)1949년 1월 8일 ~ 1949년 8월 14일

2.7. 역대 경상북도 대구시장[편집]


대수이름임기당적[11]비고
경상북도 대구시장 관선
초대허억 (許億)1949년 8월 15일 ~ 1951년 9월 10일이승만 정부
2대이호석 (李浩錫)1951년 9월 19일 ~ 1952년 5월 5일
1952년 5월 5일 ~ 1952년 10월 24일
3대김종환 (金鍾煥)1952년 11월 1일 ~ 1954년 8월 31일
4대허흡 (許洽)1954년 10월 5일 ~ 1958년 10월 5일
경상북도 대구시장 민선
5대조준영 (趙俊泳)1958년 10월 5일 ~ 1959년 5월 29일

[12]
경상북도 대구시장 관선
직무대리이종왕 (李鍾王)1959년 5월 29일 ~ 1959년 6월 12일이승만 정부
6대1959년 6월 12일 ~ 1960년 5월 6일
7대박기서 (朴基西)1960년 5월 16일 ~ 1960년 10월 31일허정 내각
직무대리이백희 (李白熙)1960년 10월 31일 ~ 1960년 12월 28일장면 내각
경상북도 대구시장 민선
8대김종환 (金鍾煥)1960년 12월 28일 ~ 1961년 5월 25일
무소속

경상북도 대구시장 관선
9대강원채 (姜元採)1961년 5월 25일 ~ 1963년 12월 11일국가재건최고회의
10대강계원 (姜啓元)1964년 1월 11일 ~ 1966년 5월 25일박정희 정부
11대태종학 (太鍾鶴)1966년 5월 25일 ~ 1969년 10월 2일
12대김수학 (金壽鶴)1969년 10월 2일 ~ 1972년 6월 30일
13대이규이 (李圭利)1972년 6월 30일 ~ 1974년 7월 18일
14대김무연 (金武然)1974년 7월 18일 ~ 1976년 10월 11일
15대정채진 (鄭埰鎭)1976년 10월 22일 ~ 1979년 1월 15일
16대박창규 (朴昌圭)1979년 1월 15일 ~ 1980년 7월 8일
17대장병구 (蔣炳九)1980년 8월 1일 ~ 1981년 6월 30일최규하 정부

2.8. 역대 대구직할시장[편집]


대수이름임기당적[13]비고
관선 (임명직)
18대정채진 (鄭埰鎭)1981년 7월 1일 ~ 1982년 5월 2일전두환 정부
19대이상희 (李相熙)1982년 5월 3일 ~ 1985년 2월 20일
20대이상연 (李相淵)1985년 2월 21일 ~ 1987년 5월 29일
21대박배근 (朴培根)1987년 5월 30일 ~ 1988년 12월 12일
22대박성달 (朴成達)1988년 12월 13일 ~ 1990년 12월 27일노태우 정부
23대이해봉 (李海鳳)1990년 12월 28일 ~ 1992년 4월 20일
24대한명환 (韓明煥)1992년 4월 21일 ~ 1993년 3월 3일
25대이의익 (李義翊)1993년 3월 4일 ~ 1993년 12월 27일김영삼 정부
26대조해녕 (曺海寧)1993년 12월 28일 ~ 1995년 3월 31일

2.9. 역대 대구광역시장[편집]


대수이름임기당적[14]출신지비고
관선 (임명직)
27대이종주 (李鍾宙)1995년 4월 1일 ~ 1995년 6월 30일김영삼 정부경북 안동
민선 (선출직)
28대문희갑 (文熹甲)1995년 7월 1일 ~ 1998년 6월 30일
무소속

대구 달성[15]
29대1998년 7월 1일 ~ 2002년 6월 30일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1997~2004).svg

30대조해녕 (曺海寧)2002년 7월 1일 ~ 2006년 6월 30일경북 경산
31대김범일 (金範鎰)2006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경북 예천
32대2010년 7월 1일 ~ 2014년 6월 30일[16]
33대권영진 (權泳臻)2014년 7월 1일 ~ 2018년 6월 30일
ta-hash-start=w-fb0268bad35cbe4313aa5dc7691d010d[[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경북 안동[17]
34대2018년 7월 1일 ~ 2022년 6월 30일
ta-hash-start=w-731ae30af8750c2d28720ea3c1f8c2b1[[파일:자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18]
35대홍준표 (洪準杓)2022년 7월 1일 ~ 현재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경남 창녕[19][20]

파일: 전직 대구시장들.jpg
왼쪽부터 김범일, 조해녕, 권영진, 문희갑 전 대구시장

3. 역대 선거 결과[편집]


파일:대구광역시 휘장_White.svg 역대 민선 대구광역시장
19951998200220062010
무소속
한나라당
한나라당
문희갑조해녕김범일
201420182022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국민의힘
권영진홍준표
[ 펼치기 · 접기 ]

3.1. 1995년[편집]


{+1 [[파일:대구광역시 휘장(일제강점기~1996)_White.svg}}} 대구광역시장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조해녕(曺海寧)175,7494위

ta-hash-start=w-d1c1a2daad72f9d116f600c1c542b573[[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
16.87%낙선
2이의익(李義翊)230,6682위

ta-hash-start=w-61ed6df96e88d7b924b36bfb05920111[[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22.14%낙선
3문희갑(文熹甲)383,2721위

무소속

36.79%당선
4안유호(安有鎬)29,6175위
2.84%낙선
5이해봉(李海鳳)222,4093위
21.35%낙선
선거인 수1,663,614투표율
63.97%
투표 수1,064,253
무효표 수22,538

당시 집권 여당인 보수 정당이 4위로, 그것도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구광역시에서 낙선한 유일한 사례이다. 문희갑도 물론 보수 성향 쪽 인물이긴 하지만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에 따른 김영삼의 대구광역시 홀대론으로 인해 반 민주자유당 구도가 형성되며 무소속 문희갑 후보에게 몰표가 나온 것.

3.2. 1998년[편집]


{+1 [[파일:대구광역시 휘장_White.svg}}} 대구광역시장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문희갑(文熹甲)570,1671위
71.98%당선
3이의익(李義翊)163,6532위
20.66%낙선
4유성환(兪成煥)58,2433위
7.35%낙선
선거인 수1,716,312투표율
46.81%
투표 수803,363
무효표 수11,300

3년 전 무소속으로 당선된 문희갑 후보는 이후 한나라당에 입당해 재선에 도전했고, 직전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가 전국 최고 득표율을 기록한 지역인 만큼 무난하게 재선에 성공했다. 반면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광역시 13석 중 8석을 쓸어담았던 자유민주연합은 이번에는 대구광역시에서 별 힘을 쓰지 못했다.

3.3. 2002년[편집]


{+1 [[파일:대구광역시 휘장_White.svg}}} 대구광역시장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조해녕(曺海寧)452,9431위
61.18%당선
3이재용(李在庸)287,3962위
38.81%낙선
선거인 수1,814,278투표율
41.45%
투표 수751,994
무효표 수11,655

범여권 무소속 이재용 후보는 비록 낙선했지만 보수의 심장 대구광역시에서 민주당계 후보로 40%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얻으며 대단히 선전했다. 게다가 자신이 재선 남구청장을 지냈던 남구에서는 51.26%의 득표율로 조해녕 후보를 꺾었는데, 이는 현재까지 대구광역시장 선거에서 비보수 정당 후보가 기초자치단체 단위로나마 승리한 유일한 기록이다.

3.4. 2006년[편집]


{+1 [[파일:대구광역시 휘장_White.svg}}} 대구광역시장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이재용(李在庸)191,1312위
21.08%낙선
2김범일(金範鎰)636,0571위
70.15%당선
4이연재(李演宰)35,4973위
3.91%낙선
5박승국(朴承國)8,7645위
0.96%낙선
6백승홍(白承弘)35,2324위
3.88%낙선
선거인 수1,885,043투표율
48.54%
투표 수915,060
무효표 수8,379

3.5. 2010년[편집]


{+1 [[파일:대구광역시 휘장_White.svg}}} 대구광역시장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김범일(金範鎰)633,1181위
72.92%당선
2이승천(李承天)146,4582위
16.86%낙선
7조명래(趙明來)88,5993위
10.20%낙선
선거인 수1,928,835투표율
45.94%
투표 수886,035
무효표 수17,860

김범일 전 시장이 얻은 득표율은 역대 대구광역시장 중 가장 높은 득표율이고, 한동안 깨지지 않다가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홍준표 후보가 78.75%를 받으면서 12년 만에 깨지게 된다.

3.6. 2014년[편집]


{+1 [[파일:대구광역시 휘장_White.svg}}} 대구광역시장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권영진(權泳臻)581,1751위
55.95%당선
2김부겸(金富謙)418,8912위
40.33%낙선
3송영우(宋映雨)10,8575위
1.04%낙선
4이원준(李源晙)12,9224위
1.24%낙선
5이정숙(李定淑)14,7743위
1.42%낙선
선거인 수2,012,579투표율
52.30%
투표 수1,052,638
무효표 수14,019

예상대로 새누리당 권영진 후보가 55.95%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후보는 비록 패배하였지만, 40.33%의 득표율을 얻으면서 비새누리당 후보 중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수성구수성구 갑 대부분 지역, 달서구 월성1동에선 권영진 후보를 이겼다.

3.7. 2018년[편집]


{+1 [[파일:대구광역시 휘장_White.svg}}} 대구광역시장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임대윤(林大潤)458,1122위
39.75%낙선
2권영진(權泳臻)619,1651위
53.73%당선
3김형기(金炯基)74,9553위
6.50%낙선
선거인 수2,047,286투표율
57.26%
투표 수1,172,279
무효표 수20,047

권영진이 53.73%의 득표율을 얻으며 당선됐지만, 임대윤 후보도 39.75%로 꽤 선전했다.

사실 지난 선거에서 김부겸40.33%를 얻으며 선전했던 건 당시 박근혜와 찍은 사진으로 어필을 했기 때문도 있었다. 동시에, 당시 김부겸 후보는 비노, 비문 계열이라 대구광역시·경상북도에 크게 비토 정서도 없었다는 점도 있었다. 반면 임대윤은 아랫동네와 달리 거부감이 좀 컸고, 게다가 상대는 인지도가 시정 평가에서 40% 후반을 기록하는 권영진이였다. 그런데 이런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특히 2010년대 들어 신도시가 만들어지고 있는 달성군에서는 42%의 득표율을 받아 권영진 후보와 불과 9% 차이의 접전을 벌였다. 이를 제외하고도 달서구의 41%, 수성구의 40%도 주목을 받았으며, 읍면동 단위에서는 달성군 유가읍, 동구 안심3·4동 등 일부 지역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3.8. 2022년[편집]


{+1 [[파일:대구광역시 휘장_White.svg}}} 대구광역시장
기호이름득표수순위
정당득표율비고
1서재헌(徐載憲)156,4292위
17.97%낙선
2홍준표(洪準杓)685,1591위
78.75%당선
3한민정(韓玟晶)20,9043위
2.40%낙선
4신원호(申原昈)7,5424위
0.86%낙선
선거인 수2,044,579투표율
43.19%
투표 수883,141
무효표 수13,107

홍준표 후보가 당내 경선 과정에서부터 현역의원 출마 페널티 및 경선 직전까지 국민의힘 최고위원이었던 김재원, 박근혜 전 대통령을 후원회장으로 앞세웠던 유영하 등 구 친박계의 견제에도 과반 이상의 득표율[21]로 경선을 통과하더니 본선에서도 역대 대구광역시장 최다 득표율(78.75%)을 기록하며 당선된 동시에[22] 총 12곳 당선된 국민의힘 광역자치단체장 중 1위로 제일 높은 득표율이었다. 홍준표 후보는 과거 경상남도지사에 이어서 대구광역시장에도 당선되며 민선 이래 두 곳의 광역자치단체장을 역임하 기록을 최초로 갖게 되었다.[23]

한편 더불어민주당에선 서재헌을 출마시켰지만, 문제는 서재헌 후보는 이전에 내보낸 김부겸, 임대윤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졌기에[24] TK의 반민주당 정서 + 윤석열 정부 허니문 효과 + 홍준표 후보의 인지도와 중량감 격차로 인해 승패는 이미 결정이 났었다. 결국 서재헌 후보는 역대 민주당계 후보 중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이승천(16.86%) 후보 다음으로 낮은 득표율인 17.97%에 그쳤는데, 이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광역자치단체장에 출마한 낙선자 후보 중 유일하게 10%대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거비 전액 보전(15%)을 겨우 넘기는 것에 만족해야했다.

지역별로 보면 모든 지역에서 홍준표 후보가 기본적으로 70%를 가뿐히 넘었으며, 특히 노년층 인구가 많은 서구와 남구에선 무려 80%를 넘는 기염을 토했다.

같은 TK 광역자치단체장으로 출마한 임미애 경북지사 후보는 20%대를 받는데 그쳐서 낙선했지만 경상북도 읍면동 중 그나마도 유일하게 예천군 호명면에서라도 62표 차로 신승해서 유종의 미라도 거뒀지 서재헌은 아예 대구광역시 8개구군 전 행정동에서 패배함로써 송영길, 변성완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후보 중 모든 행정동에서 전패한 후보가 되었다.

더군다나 홍준표 후보 자체가 워낙 넘사벽급의 득표율을 보이고 있던 터라 17개 시도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첫 번째로 가장 주목도가 떨어진 건 사실이다.

4. 역대 정당별 전적[편집]


민주당계 정당보수 정당제3후보[25]
1회-조해녕문희갑[26]
낙선 16.87%당선 36.79%
2회이의익[27]문희갑유성환[28]
낙선 20.66%당선 71.98%낙선 7.35%
3회-조해녕이재용[29]
당선 61.18%낙선 38.81%
4회이재용김범일이연재[30]
낙선 21.08%당선 70.15%낙선 3.91%
5회이승천김범일조명래[31]
낙선 16.86%당선 72.92%낙선 10.20%
6회김부겸권영진-
낙선 40.33%당선 55.95%
7회임대윤권영진김형기[32]
낙선 39.75%당선 53.73%낙선 6.50%
8회서재헌홍준표-
낙선 17.97%당선 78.75%

5. 역대 후보별 순위[편집]


  • 사퇴, 사망, 등록 무효 후보 제외.
1위2위3위4위5위
1회문희갑이의익이해봉조해녕안유호
2회문희갑이의익유성환
3회조해녕이재용
4회김범일이재용이연재백승홍박승국
5회김범일이승천조명래
6회권영진김부겸이정숙이원준송영우
7회권영진임대윤김형기
8회홍준표서재헌한민정신원호

6. 시정 구호[편집]


시장시정 구호
김수학뭉치자 백만 가꾸자 새 대구
김무연창의로 개발 총화로 전진
정채진밝고 푸르고 활기찬 도시
박창규발전시정의 구현
장병구밝은 새 대구 복지 대구 건설
정채진활기찬 새대구 긍지높은 시민
이상희밝은거리 푸른도시 복지대구 건설
이상연긍지높은 시민 건강한 도시
박배근강한 도시 신뢰받는 시정
박성달참여하는 시민 희망찬 도시
이해봉새질서 새생활 새대구
한명환화합하는 시민 봉사하는 시정
이종주대구는 우리모두의 자랑입니다
문희갑화합하는 시민 거듭나는 대구
아름다운 도시 품위있는 대구
조해녕마음을 하나로 대구를 세계로
김범일희망의 도시 일류 대구
권영진오로지 시민행복 반드시 창조대구
행복한 시민 자랑스러운 대구
홍준표자유와 활력이 넘치는 파워풀 대구

7. 여담[편집]


  • 1995년 지방자치제 출범 이후부터 현재까지 임기 중 사퇴하거나 궐위된 시장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광역자치단체장[33] 중 하나이다.
  • 권영진 전 시장을 포함한[34] 역대 민선 대구광역시장들은 퇴임 후에도 모두 대구에서 살고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라고 들릴 지 모르겠지만, 다른 광역자치단체의 경우 광역자치단체장을 지낸 뒤 수도권으로 올라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선 대구광역시장을 지냈던 문희갑, 조해녕, 김범일 모두 은퇴 후에도 대구광역시에서 살고 있다. 관선 대구광역시장을 지낸 이상희, 이의익, 이종주 전 시장 역시도 대구광역시에서 살고 있다.[35]
  • 김범일 전 시장까지 민선 대구광역시장은 모두 경북고등학교, 행정고시 합격 관료 출신이었는데, 권영진 전 시장은 비 경북고등학교, 비 관료 출신이다. 향후에는 고교 평준화의 영향으로 비 경북고등학교 출신 시장들이 더 나올 가능성이 높다. 현 홍준표 시장도 비 경북고등학교 출신이다.
  • 역대 민선 대구광역시장은 전원이 인서울 대학교 출신으로, 문희갑 전 시장은 국민대학교, 조해녕, 김범일 전 시장은 서울대학교, 권영진, 홍준표 시장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했다. 반면 역대 민선 경상북도지사의 경우 이의근, 김관용 전 지사가 영남대학교, 이철우 지사가 경북대학교 출신으로서 전원이 대구시 지역대학을 졸업했다.

8. 관련 문서[편집]





[1] 이러한 경향은 대권 주자급 거물 정치인 홍준표가 대구광역시장에 당선되면서 처음으로 깨졌다. 그러나 지속 여부는 차기 지방선거를 지켜봐야할 듯하다.[2] 대구광역시장과 유사한 광주광역시장도 같은 이유로 3선 시장이 없다. 게다가 광주광역시장의 경우 당내 경쟁이 더 심한 탓에 재선 시장도 박광태 한 명밖에 없다. 나머지 광주광역시장들은 보통 초선으로 커리어가 끝나는 편이며 광주광역시장직을 마치면 사실상 정계 은퇴 수순을 밟게 된다.[3] 다만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수성구 전체는 새누리당 권영진 후보가 이겼지만, 수성구 갑 지역으로 한정하면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후보가 신승하였다.[4] 여기도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달서구 전체는 새누리당 권영진이 압승하였으나, 월성 1동은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이 승리하였다.[5] 도호부사는 원래 종3품 관직이지만 대구도호부사는 경상감사가 겸직했으므로 종2품이었다.[6] 선거 당시 당적.[7] 마지막 일제치하 경상북도 대구부윤 이었던 우에노 히코하치 부윤이 광복 하루 뒤인 8월 16일 근무 이탈함으로 인해 취임. 여담으로, 히코하치 부윤은 해방 직후 기자회견에서 종전 후에도 사랑하는 대구부민으로 남겠다는 말을 했는데, <대구시사>에서는 이 발언을 아부성 헛소리라고 평가했다.[8] 미 육군 대위. 10월 13일자로 일인 관료를 모두 해임했다.[9] 미 육군 소령.[10] 친일반민족행위자.[11] 선거 당시 당적.[12] 지방자치법 부칙 개정으로 인한 민선을 당선되었으나, 당선 후 여당우위의 의회 때문에 시정은 마비가 되었고, 이를 포함한 여러 사유로 시 의회는 시장을 공격하였다. 그 사이 또 개정된 지방자치법(시, 읍, 면장은 관선이나, 각 의회에서 불신임 안 제출 가능)으로 인해 불신임 안이 제출 및 통과되어 가결되어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13] 선거 당시 당적.[14] 선거 당시 당적.[15] 1997.12.3.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1997~2004).svg

복당.
[16] 2012.2.13.
ta-hash-start=w-3823cefed5483b5839a2b12a2732395d[[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으로 당명 변경.[17] 2017.2.13.
ta-hash-start=w-8d6f3fd4877a7237b93c33e9fd3f6613[[파일:자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으로 당명 변경.[18] 2020.2.17.
ta-hash-start=w-9f03268e82461f179f372e61621f42d9[[파일:미래통합당 흰색 로고타입.svg

으로 신설 합당.
2020.9.2.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으로 당명 변경.[19] 최초의 비TK 출신 민선 대구광역시장. 다만 창녕군을 비롯한 경상남도 서북부 지역은 대구광역시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이기도 하며 본인 역시 초중고 학창 시절을 대구광역시에서 보냈기 때문에 대구광역시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있다.[20] 헌정사상 최초의 복수(경상남도지사, 대구광역시장) 광역자치단체장.[21] 실제 경선 득표율 기준. 페널티 10% 적용시 49.45%.[22] 종전 최다 득표율은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김범일 후보가 받은 72.92%이다.[23] 광역자치단체장 이력 기준으로 봐도 사실상 3선이라 봐도 무방하다.[24] 김부겸은 적어도 군포시에서 3선 의원을 지냈을 뿐더러, 한나라당 출신이라 더불어민주당 인사 중에선 상대적으로 보수적인데다 수성구 갑에서 40%를 득표하는 등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임대윤 후보도 한나라당 출신에 대구광역시 동구청장 재선에 성공한 이력이 있고, 민주당 소속으로도 4번 출마했던 사람이다. 반면 서재헌 후보는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동구청장 출마)에서 2차례 출마하여 2연속 낙선한데다가 정치 외 커리어도 상대적으로 빈약한 편이라 사실상 대구광역시의원 내지 구청장 후보 수준의 이력에 가깝다.[25] 3% 이상 득표자만 기재.[26] 보수 성향 후보.[27] 보수 정당 후보, 새정치국민회의단일화.[28] 보수 정당·민주당계 정당 후보.[29] 민주당계 성향 후보.[30] 진보 정당 후보.[31] 진보 정당 후보.[32] 제3지대 정당 후보.[33] 광주광역시, 인천광역시, 충청북도, 경상북도, 전라북도 등. 원래 대전광역시도 이랬으나 권선택 전 시장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2017년 11월 14일 징역 10년, 벌금 5억원 선고로 시장직을 상실해 탈락했다. 충청남도는 도지사 재보궐선거가 없었으나 이쪽은 민선 도지사들이 대부분 1년 미만의 잔여 임기를 놔두고 모조리 사퇴했다. 경기도 역시 재보궐선거가 없었으나 여기도 잔여 임기 1년 미만을 놔두고 대통령 선거 출마로 사퇴한 적이 2번 있었다. 울산광역시는 1997년(여기도 재보궐선거가 없었으나, 임기 종료 전 사퇴한 사례가 1번 있었다.), 세종특별자치시장은 2012년 출범했으므로 제외.[34] 권영진 전 시장의 집은 서울특별시 노원구이고, 대구광역시에서는 관사(그것도 김범일 전 시장 시절 폐지했던 관사를 부활시켰다.) 생활을 해서 말이 나왔다. 게다가 중학교까지 고향인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졸업했으며, 대구광역시에서는 고등학교만 졸업했다. 다만 권영진 전 시장은 대구광역시장 이전에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과 서울특별시 노원구 을에서 국회의원을 지내는 등 모든 정치적 직위를 서울특별시에서 역임하였다. 대구광역시장 퇴임 후에도 가족과 함께 대구광역시에서 계속 살겠다는 인터뷰를 했다. 이후 잠시 서울 노원구 자택서 거주하다 계명대학교 특임교수로 임명되면서 대구에서 거주 중이다.[35] 경상북도지사와 대구광역시장을 모두 지낸 김무연경북지사 역시도 대구광역시·경상북도에서 평생 공직 생활을 했고 대구광역시에서 여생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