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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란스니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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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동유럽에 있는 미승인국으로, 1991년부터 사실상 독립 상태이고 독립국가임을 자칭한다.[6] 하지만 몰도바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특히 몰도바는 트란스니스트리아를 가가우지아와 함께 자국의 자치 국가로 규정한다. 그리고 국기에 낫과 망치가 있지만 공산국가가 아니다.
아래 지도에서 진황색이 바로 트란스니스트리아. 몰도바 공화국의 드네스트르강 동쪽 지역으로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드네스트르강을 끼어서 몰도바와 마주보며, 마치 칠레 국토처럼 좁고 길쭉한 모양이다. 수도는 티라스폴(Tiraspol)이며, 그 외 인구 4만 명 이상인 도시로는 벤데르(Bender), 르브니차(Rîbnița·Rybnitsa) 등이 있다.
'드네스트르강 동쪽'이라지만 강 서쪽에 있는 벤데르(Bender)와 주변 마을들도 (명목상으로는 몰도바 정부 소속으로 되어있지만) 트란스니스트리아가 통치하며, 반대로 강 동쪽에 있는 코슈니차(Coșnița) 등 두버사리(Dubăsari)에 속한 일부 지역은 여전히 몰도바 정부가 직접 통치하고 있다. 몰도바의 두버사리 행정 소재지 또한 강 동쪽에 있는 코치에리(Cocieri) 지역이다.[7]
202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인구는 약 465,200명으로, 1989년에 679,000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로 저출산[8] 과 주변국으로의 인구 유출로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또한 유럽 대륙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한 곳이다.
트란스니스트리아의 국기 뒷면에는 붉은 별, 낫과 망치를 빼야 하는데 이는 1980년 이후 소련과 구성 공화국들의 국기 모두에 해당되던 사항이다.[9] 특별한 게 아니라 그냥 1980년 이후 몰도바 SSR 국기가 그랬던 것이다.
2. 명칭[편집]
정식 명칭은 '트란스니스트리아 몰도바 공화국'으로 '드네스트르강(루마니아어로 니스트루강) 너머의 땅'이라는 뜻인 트란스니스트리아(Transnistria)로 흔히 불린다. 러시아어로는 프리드네스트로비예(Приднестровье), 우크라이나어로는 프리드니스트로비야(Придністров'я)로 불린다. 즉 여기서 '트란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어 및 중국어로는 각각 沿ドニエストル共和国(연 드네스트르 공화국), 德涅斯特河沿岸(드네스트르강 연안)라 불린다. 공통적으로 드네스트르강에 면해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3. 역사[편집]
3.1. 소련 이전[편집]
고대에는 스키타이와 트라키아인들이 거주했다 기원전 600년경에 그리스인들이 정착하면서 타라스라는 폴리스를 세웠다. 이후 타라스는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오게 되었지만 로마에서도 변방이었기 때문에 다키아 왕국, 고트족들의 위협에 처해져 있었고 결국 서기 4세기경에 고트인의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 트란스니스트리아는 튀르크인, 슬라브인, 라틴인 등 다양한 종족들이 오고가는 교차로의 역할을 했다. 루마니아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이후부터의 일이었는데 이 당시에는 인구가 많지 않은 변방 지역이었다고 한다.
동로마 제국, 몰디비아 공국, 폴란드-리투아니아, 오스만 제국의 각축장이 되다가 러시아-튀르크 전쟁의 결과로 다른 지역들과 함께 베사라비아라는 이름으로 러시아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러시아 제국은 루마니아인, 러시아인, 독일인, 폴란드인 등 기독교를 믿는 종족이라면 가리지 않고 정착시켰다.
이후 러시아 제국이 러시아 혁명으로 붕괴되자 주변에 있던 루마니아 왕국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베사라비아를 자국 영토로 편입시킨다.
그러나 러시아 제국 이후 등장한 소련은 이곳을 루마니아의 영토로 인정하길 거부하며 영유권을 주장했다.
3.2. 소련 구성국 시절[편집]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사이에 드네스트르 강 서쪽의 몰도바는 루마니아령이었지만, 트란스니스트리아는 계속 소련령이었다. 1차 세계대전 말기에 러시아 제국의 패배가 분명해지자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루마니아인들은 루마니아 병합을 요청했지만 루마니아 왕국은 동맹국 진영에 패배하고 있던지라 군대를 보낼 여유가 없었기에 거절했고, 이후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을 거쳐 소련령으로 남았다.소련은 트란스니스트리아에 몰도바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라는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산하의 자치 공화국을 설치하여 몰도바의 영유권을 계속 주장하였고 독소 불가침조약으로 독일과 소련이 몰도바는 소련이 차지하기로 합의한 후인 1940년 7월 독일의 묵인 아래 소련이 루마니아에게 압력을 가하면서 루마니아는 몰도바를 할양하였다. 소련은 루마니아로부터 할양받은 몰도바를 상술했듯 원래 우크라이나의 영역이었던 몰다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 공화국과 하나로 합쳐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설립하였다.[10]
독소전쟁 당시엔 루마니아가 몰도바를 회복한 것을 넘어서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까지 편입하였다. 이때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범위는 오데사를 포함해 남부크 강(Southern Bug)까지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면서 몰도바는 다시 소련에게 할양되어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 둘은 하나의 나라로 이어가다 페레스트로이카로 소련 체제가 이완되고 민족주의가 강화되면서, 몰도바인들 사이에서는 '루마니아 민족주의'가 대두, 몰도바를 루마니아에 병합시키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몰도바와 루마니아는 사실상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같은 민족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19세기 초반 오스만 제국의 속국이었던 몰다비아 공국의 동쪽 절반이 러시아 제국으로 할양되면서 서로 다른 나라가 된 것이다. 몰도바를 루마니아에 병합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금도 있다.
3.3. 트란스니스트리아 전쟁[편집]
거기에다가 루마니아가 민주화되면서 몰도바 내에서 소련에서 이탈하고 새로히 민주화된 루마니아와 통합하자는 여론이 크게 오르고, 이러한 분위기에서 1990년 몰도바 SSR 선거에서 몰도바 인민전선이 승리를 거두었고, 이들은 러시아인들의 입지를 축소시키고 몰도바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노선을 걸었다. 이렇게 되버리자, 즉 드네스트르 강 동쪽 트란스니스트리아와 가가우지아에서 몰도바 인민전선에 대해 반발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왓다. 즉, 러시아계, 우크라이나계, 슬라브계 사람들이 엄청난 반발을 보였고, 가가우지아인들도 . 몰도바인 중에도 이 지역에 사는 사람은 러시아어만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서 동참하였다. 애초에 트란스니스트리아라는 지역이 몰도바 본토와 달리 소련 초기 시절에도 몰도바인이 절반에 못미치고 러시아인, 우크라아나인 등 슬라브계가 큰 비중을 차지했던 지역이라 몰도바 본토와 정체성이 다를수밖에 없었다. 소련 말기인 1990년에 주민투표를 두 번 하였는데, 압도적 다수로 몰도바에서의 독립을 결정, 같은 해 9월 2일 "트란스니스트리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Приднестровская Молдавская Советская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PMSSR)"이라는 이름으로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부터 독립선언을 했다. 단,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은 아니다. 미국으로 치면 미국 안의 어느 한 주가 미국이라는 범주 안에서 둘로 갈라진 것과 같다.[11]
물도바 중앙정부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트란스니스트리아가 몰도바 GDP의 40%, 전력의 90%를 차지하는 지역이기도 했다. 물론 이때는 아직 소련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소련 중앙정부에서는 소련에 잔류하고자하는 트란스니스트리아측을 비호하였지만, 1991년도 8월 쿠데타때부터 1991년 말까지의 소련은 중앙정부의 힘이 현저히 악화되었고, 각 구성국들이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던 권한을 행사하고, 경제적인 교류도 줄어들며 생필품 공급도 파탄이 나는 등 혼란이 극심했다.[12] 결국 소련이 붕괴하기 전 1990년부터 사실상의 전쟁이 시작됐다. 그니까 아직 독립국이 생기지도 않았는데 반군이 생겼다. 물론 소련 입장에서의 의용군이지만, 몰도바 입장에서 자기네들 영토를 떼먹을려는 반군이었던것이다. 그리고 소련이 붕괴한 뒤인 1992년 3월 2일부터 공식적으로 전쟁이 벌어졌다.
그런데 트란스니스트리아와 우크라이나 서남부에 주둔한 소련 육군 제14군은 러시아 육군에 편입됐는데, 공식적인 명령 없이 트란스니스트리아 반군 측에 서서 몰도바를 공격했다. 심지어 러시아 부통령은 대놓고 트란스니스트리아를 지원(즉 몰도바를 침공)하기 위해 탈영을 해도 막지 않겠다면서 대놓고 지원했다. 제14군의 무장은 당시 막 독립한 몰도바보다 압도적이였다. 사실 당시 옐친이 발트3국 내 러시아인 문제에 대해서 호구처럼 군다면서 까이던 상황이었는데 이때문에 러시아군이 트란스니스트리아에 대한 지원을 해도 막지않은것이다. 당연히 몰도바도 루마니아로부터 지원을 받았지만 루마니아 국력의 한계로 인해서 대대적이지는 못했다. 또한 해당지역언 우크라이나인들도 트란스니스트리아에 동참했던 관계로 우크라이나 정부입장에서는 끼어들기 애매한 문제가 되었던지라 우크라이나 정부는 중립을 선언했다.[13]
반 년에 달한 전투로 반군은 강 동쪽(두버사리 지구 일부 제외)과 강 서쪽의 벤데리 일대도 확보하고 같은 해 7월 21일에 휴전했다. 1995년 12월 24일(트란스니스트리아 제헌절)에는 국민 투표를 통과, 이듬해 1월 반포되었다. 안 그래도 몰도바나 루마니아나 물가폭등과 민영화 등으로 경제적으로 골골거리던 상황에서 전쟁에서 몰도바 중앙정부가 패배해버리자 몰도바와 루마니아의 통일 움직임도 완전히 사그라드는 후폭풍이 일었다. 물론 실질적으로 독립한 트란스니스트리아도 당초에 소련식 계획경제를 유지할 계획을 세웠던것과는 달리, 국영기업들을 올리가르히에게 넘기고, 올리가르히인 셰라프가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나라가 되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발하자 몰도바는 EU 가입을 추진했고,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여기에 반발해서 독립 승인을 요청했다.#
4. 정치[편집]
국기의 낫과 망치에서도 드러나듯 소련 향수가 강하긴 하지만, 의외로 일당제 공산주의 독재정권은 아니다. 트란스니스트리아의 국가 행사 영상을 보면 수뇌부와 함께 정교회 주교가 참석한다. 공산국가라면 있을 수 없는 일. 되려 무분별한 민영화 때문에 큰 피해를 입은 나라(?)이기도 하다. 소련에 대한 향수가 강하기는 해도 공산당은 선거에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지 못하고 의석도 꼴랑 1석에 불과했다.[14] 그마저도 2018년에 범죄혐의로 해당 의원이 구속되면서 하나밖에 없는 의석도 잃고 원외정당으로 전락했다.
2006년 대선 때부터 트란스니스트리아 공산당 후보가 출마하지만 득표율 10%도 확보하지 못할 정도로 공산당의 힘이 약하고, 되려 몰도바 본토에서 공산당 지지율이 훨씬 높았다. 2010년대 중반 이후에는 몰도바 사회당에 지지세를 흡수당하며 지지율이 한 자리수로 낮아졌다. 러시아도 소련 향수가 강하기는 하지만 공산당이 재집권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사실 공산주의식 경제와 국가구조를 유지하는 국가는 아니지만, 친러 이념에 입각한 사회주의 리더를 양성하는 체 게바라 학교가 있을 정도긴 하다. 정보기관 이름도 KGB였는데 2016년 12월 국가보안부(МГБ)로 개칭되었다.
건국 이념으로는 <4개의 기둥>을 내세우고 있다. 1) 주민의 자결권, 2) 몰도바와 역사가 다름 3) 실질적인 (몰도바와의) 차이점(대표적으로 민족구성의 차이) 4)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의 부인이다.
1991년 대통령에 당선된 이고리 스미르노프가 4선을 하였으나, 2011년 12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5선에 도전했던 그는 3위에 머물러 낙선했다. 결선투표에서는 무소속 솁추크 후보가 당선되었다. 2011년까지는 정·부통령제였으나 그 해 이후 대통령-총리제로 개편되었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고리 스미르노프는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셰리프>라는 기업과 결탁하여 슈퍼마켓부터 전력, 수도, 금융, 브랜디 양조, 축구 구단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트란스니스트리아 내 산업을 셰리프가 독과점하게 도와주며 부를 챙겼다. 그리고 셰리프는 정경유착으로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정치와 사회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 결과 이미 대부분의 공공 서비스들은 부정부패가 심각하여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며, 정부는 국민들에게 신뢰를 잃고 있다.[15]
- 역대 대통령
- 초대: 이고르 스미르노프 (1991.12.13. ~ 2011.12.30., 4선, 공화당)
- 2대: 예브게니 솁추크 (2011.12.30. ~ 2016.12.30., 초선, 무소속)
- 3대: 바딤 크라스노셀스키 (2016.12.30. ~, 2선, 무소속)
이 나라의 국회의 이름은 소련 냄새가 물씬 나는 최고 소비에트(Верховный Совет, 단 소비에트의 본래 뜻은 '의회'이다.)로, 33석 단원제로 의원의 임기는 5년이다.
가장 최근의 총선은 2020년 11월에 있었다. 33석중 29석을 갱신당이 차지했으며, 4석의 무소속 의원들도 셰리프와 결탁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민들이 나라에 대한 신뢰를 잃었는지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기로 선택한 국민들의 비율이 20%를 넘겼다. 투표율도 단 27.79%였다.
2021년 대선에선 현 대통령인 바딤 크라스노셀스키와 다른 무소속 후보인 세르게이 핀자르 후보 단 두 후보만 나섰다. 지난 총선과 마찬가지로 35.3%의 낮은 투표율이 나왔으나 25%는 넘기면서 유효한 대선으로 인정이 되었다. 현 대통령인 크라스노셀스키 대통령이 75%이상의 득표율을 획득하며 2선에 성공하였다.
한때 니나 슈탄스키(Nina Ștanski, Нина Штански) 외무장관이 크림 공화국의 검사장 나탈리야 포클론스카야와 비교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슈탄스키 장관은 1977년생으로 포클론스카야 검사장보다 3살 연상이다. 또 트란스니스트리아 역시 크림 공화국처럼 분쟁지역이며 친러 성향을 보이는 곳이다. 2012년 취임하였으며, 2015년 8월 31일 예브게니 솁추크 대통령은 니나 슈탄스키 외무장관이 사임, 자신과 결혼한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5. 경제[편집]
미승인국에다가 내륙국이라서 소련 해체 이후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는 지역이다.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인데[16] , 종종 몰도바가 유럽 기준 1인당 GDP가 꼴찌로 나올 때는 트란스니스트리아를 포함해서 통계를 냈을 때이다. 트란스니스트리아를 제외하면 몰도바의 1인당 GDP 평균이 확 올라간다. 다만, 주변국인 몰도바나 우크라이나도 여기보단 조금 나아도 유럽 전체로 보면 상당히 못 사는 편에 속하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북한같이 혼자서 심각한 격차가 있어 비교가 되는 형태는 아니다.
본래 소련 시절에는 발전된 공업지대라 몰도바 SSR 시절에는 몰도바 GDP의 알짜지역이었고, 몰도바 측도 독립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분리독립 선언 이후로 내륙국에다가 미승인국이라는 불리함이 겹쳐서 낙후되어버린 것이다. 러시아에서 트란스니스트리아에 경제적인 지원을 보내준다고는 하지만 미승인국이라 대규모 지원을 보내주기에도 애매하고 러시아 본토로부터도 매우 이격되어있다. 또한 러시아도 지금 물불가릴 상황이 아니기에 더더욱 지원이 불가능하다.
설령 공장을 건설한다고 해도 수출을 하거나 러시아로 물자를 공급하려면 반드시 우크라이나를 거쳐야되다보니 그 효과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후 양국의 관계가 철천지 원수처럼 되어버려 우크라이나를 통한 러시아와의 무역도 불가능해져 경제적인 고립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독립을 했다가는 우크라이나와 몰도바에 끼인 신세가 되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경제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까닭에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의 규모는 영세한 편이다. 그나마 규모있는 기업이라고 해봐야 상술한 셰리프나 몰도바 제철소(Молдавский металлургический завод)가 있는 정도. 여타 동유럽 개발도상국들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관이 매장되어 있어서 이 통행료 수입도 받아 먹는다. 이렇게 영세한 경제규모 때문에 러시아 등지에서 외노자로 일하는 국민들이 송금해주는 돈은 중요한 수입원 중 하나다.
6. 외교[편집]
유엔에서 여기를 승인하는 나라는 없고 트란스니스트리아가 합병을 원하는 러시아도 나라로 인정하지 않는다. 같은 미승인국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만이 여기를 승인할 뿐이다.
외교공관은 티라스폴에 압하스 공화국과 남오세티야 대표부만 주재하고 있다. 한편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는 모스크바, 수후미(압하지야 수도), 츠힌발리(남오세티야)에 대표부를 두고 있다.
SBS에서 이 지역을 방문한 뉴스 리포트를 냈다.
6.1. 러시아와의 관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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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몰도바와의 관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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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우크라이나와의 관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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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문화[편집]
공용어로는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 몰도바어(키릴 문자)를 쓴다. 몰도바어는 사실상 루마니아어와 같지만,[17]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는 몰도바어로 지칭하면서 루마니아어와 다르다고 주장하며 공적인 상황에서 반드시 키릴 문자로 표기하도록 되어있다. 실제로 루마니아나 몰도바처럼 라틴 문자로 루마니아어를 가르치는 학교들을 트란스니스트리아 정부에서는 지속적으로 억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루마니아어 학교도 그렇게 많지는 않은 상황이다. 몰도바인만 사는 마을에도 러시아어 학교만 있는 곳들이 있다. 몰도바에서도 자국어를 몰도바어라고 지칭했으나, 2013년에 루마니아어를 공용어로 인정했다.
그러나 사실상 러시아어가 주된 공통어로 쓰인다. 명목상이나마 공용어가 3개인 것은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민족 구성 때문인데, 몰도바(강 서쪽)의 주민은 몰도바인이 76%, 우크라이나인이 8%, 러시아인이 6%로 몰도바인이 압도적 다수인 반면에, 트란스니스트리아(강 동쪽)의 주민은 2004년 기준으로 몰도바인이 32%, 우크라이나인이 29%, 러시아인이 30%로 거의 1:1:1의 비율이다. 그리고 몰도바인이나 우크라이나인도 소련 시절을 살았던 중장년층은 기본적으로 러시아어도 할 줄 알다보니 자연히 민족간 의사소통은 러시아어 위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트란스니스트리아 대통령의 신년 연설에서도 전체적인 연설은 러시아어로 진행을 하나, 마지막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부분은 3개의 언어로 다 말한다.
2015년 조사 결과 러시아인이 29.1%, 몰도바인이 28.6%, 우크라이나인이 22.9%로 인구조성이 변동되었다. 그 외 불가리아인이 2.4%, 가가우즈인이 1.1% 정도 거주한다. 특이한 점은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분리독립 선언 이후 처음으로 인구조사에서 트란스니스트리아인 항목이 신설되었으며, 약 천명 정도가 되는 0.1%가 자신을 트란스니스트리아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민족성을 특별하게 나타내지 않은 선택지도 약 14%가 선택하였다.
종교는 러시아 정교회 91%, 가톨릭교회 4% 등.
7.1. 관광[편집]
대한민국 국민의 경우 트란스니스트리아에 입국/입경 시 10시간의 체류허가증을 받는다. 경우에 따라 72시간짜리 통과비자를 내주기도 한다.# 그래도 2000년대보다는 경찰 등 당국의 태도가 여행객들에게 퍽 친절해졌다고 한다. 인터넷에서도 한국인 관광객들의 트란스니스트리아 여행기를 꽤 찾아볼 수 있는데 대부분 수도 티라스폴만 둘러보고 가는 경우가 많다. 몰도바 키시너우 - 트란스니스트리아 티라스폴 - 우크라이나 오데사를 잇는 열차편의 경우 우크라이나 측의 입/출국 검사만이 있어 몰도바와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입/출국절차를 밟지 않는데, 몰도바와 트란스니스트리아에 6개월의 기간 내에 첫 입국하는 경우 관할 영역의 관공서에 들려 입국 확인을 받아야 한다.
열차 외의 대중교통으로 외부에서 트란스니스트리아로 입국하는 경우 트란스니스트리아 측 국경 검문소에서 내부 승객들을 심사하지 않고 체류허가증 발급없이 그냥 보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국경 검문소에서 체류허가증을 받는 것이 나중을 위해 현명한 길이다. 열차 외의 차량 출국 심사는 확실히 진행하고 있으며 체류허가증이나 거주등록증이 없어 체류신분에 대해 증명을 못할 경우 벌금이 부과된다. 의외로 빈번한 일이어서 검문소에서 체류허가증을 못 받고 트란스니스트리아로 입국하였다면 가급적 빠른 시간안에 경찰서나 지역 관청에서 체류허가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트란스니스트리아 영역 내에서 숙박을 하거나 10시간 이상 체류해야 할 경우 경찰서나 지역 관청 등에서 거주등록 절차를 밟아야 한다. 호텔에 숙박할 경우 호텔 측에서 거주등록을 대행하며 이외의 경우 거주등록지의 입주민과 동행하여 절차를 밟아야 한다.
타고난 대단한 관광자원이 있는 나라는 아니지만 수도 티라스폴의 경우 살아있는 소련 테마파크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소련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 외 티라스폴 관광요소로는 드네스트르 강변의 모래사장, Kvint라는 국영 브랜디 브랜드의 공장, 몰도바 리그에 참여중인 FC 셰리프 티라스폴의 메인 스타디움 등이 있다. 분리독립을 주장하고 있으며 무력시위도 빈번하지만 몰도바의 피자체인인 Anndy's Pizza 등이 수도 티라스폴에 입점해 있을 정도로 몰도바와 트란스니스트리아 간 교류가 아예 없는 것은 또 아니다. 이 경기장을 홈그라운드로 하는 FC 셰리프 티라스폴 등, 트란스니스트리아 축구클럽들도 몰도바 리그에 참여하고 있고. 블라디미르 레닌의 동상도 있다.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운 편이다. 다만 가이드 업체가 있긴 있다.#
한국 유튜버인 후안정, 빠니보틀#, 모칠레로# 등이 방문한 적 있다.
7.2. 국가[편집]
"우리는 트란스니스트리아의 국가를 부르네(Слэвитэ сэ фий, Нистрене Slăvită să fii, Nistrene)"
러시아어, 루마니아어, 우크라이나어 순서로 불린다.
(러시아어)
본래 이 곡은 1943년 "우리의 조국이여 영원하라"라는 제목으로 작곡된 곡이다. 또한 작곡가 보리스 알렉산드로프는 소련 국가를 작곡한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프의 아들이다. 독소전쟁 후 소련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며 여전히 구 소련권 국가들에서 많이 불린다.
트란스니스트리아의 국가로 제정된 이후 가사가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 몰도바어로 새로 쓰였다.
7.3. 공휴일[편집]
- 1월 1일~2일 - 신정 연휴
- 1월 7일 - 정교회 크리스마스
- 2월 23일 - 조국수호의 날[18]
- 3월 8일 - 세계 여성의 날
- 5월 1일~2일 - 노동절 연휴
- 5월 9일 - 승리의 날
- 9월 2일 - 독립기념일
- 12월 24일 - 제헌절(1995년)
- 12월 25일 - 정교회를 제외한 기독교 크리스마스
8. 군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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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교통[편집]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시절의 교통망을 대부분 답습했다. 그래서 트란스니스트리아를 종단하는 철도망이 없다는 게 문제점이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남북으로 긴 형태인데 비해, 철도망은 몰도바와 우크라이나를 동서로 잇는 2개 노선이 트란스니스트리아를 동서로 통과하고, 우크라이나와 이어져 있는 노선이 북쪽 끝 카멘카에 있어, 철도망이 3개로 분절되어 있다.
트란스니스트리아 영역의 중앙부를 몰도바가 실질 통치 지역이 관통하고 있고, 남북을 잇는 도로가 몰도바 통치 지역을 지나는데 도로와 주변은 트란스니스트리아가 관할하고 있어 통행 자체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도시교통으로 지하철이나 노면전차는 없고, 무궤도전차가 수도인 티라스폴과 벤데리에 설치되어 있다. 국제공항이 없고 티라스폴 부근에 군용 비행장이 있다.
10. 관련 기사[편집]
11. 관련 문서[편집]
[1] 파일:트란스니스트리아 민간기.svg.png 민간기[2] 국장의 리본에 국명의 약칭을 넣은 버전도 사용된다.[3] 몰도바 영토의 약 12.3%를 차지한다.[4] 사실상 러시아어가 주된 공용어.[5] 정작 본국인 몰도바에서는 몰도바에서 쓰는 언어를 루마니아어라 부르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몰도바어'라 불리는 언어를 쓰는 건 트란스니스트리아 뿐이다.[6] 그러나 러시아로의 합병을 원하는 주민이 대부분인 만큼, 트란스니스트리아인들의 정체성은 "트란스니스트리아인"이 아니라 사실상 러시아인이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트란스니스트리아 현지 주민들은 본인의 정체성을 러시아인이라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7] 위 지도를 자세히 보면 Dubăsari라는 글씨 옆으로 동쪽으로 파고 들어간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강 동쪽에 있는 몰도바 실질 통치 지역이다.[8] 물도바 본토는 출산율이 1.7명이지만 트란스니스트리아는 1.3명 이하로 추산된다. 이 현상은 몰도바 SSR때부터 나타나며, 당시 몰도바에서 농촌 출산율은 3명대를 훌쩍 넘는데 반해 도시 출산율은 1.8~2.1명 안팎을 유지했는데, 상대적으로 도시화된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었다.[9] 때문에 1980년부터 11년간 소련 국기 뒷면은 전체가 그냥 빨간색이었다.[10] 반대로 우크라이나에겐 원래 루마니아-몰도바의 영역인 부자크를 몰도바에서 떼어서 내어주었다. 이로 인해 몰도바는 바다를 잃고 내륙국이 되었다.[11] 비견할 수 있는 사례는 미국 남북전쟁 시기인 1861~63년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독립이다. 원래 소속되었던 버지니아 주가 1861년 타 남부 주와 함께 연방 탈퇴를 결의하자 여기에 반대한 버지니아 주 북서부 지역이 거꾸로 버지니아 주에서 분리하고 연방에 가입하기로 선언했고 2년동안 형식적으로는 남부연합(미연합국) 소속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북부(미합중국) 소속으로 있다가 1863년 정식으로 분리되어 북부에 가입한 것.[12] 발트 3국의 경우 독립을 선언하자 소련 연방정부가 자기 나라를 상대로 봉쇄를 선언했을 지경이였다.[13] 웃기는 사실은 우크라이나 극우세력 UNA-UNSO가 러시아 민족주의자들과 함께 "친러" 반군 편에 의용군을 파견했다. 이 50명의 의용병들은 훈장까지 받았다. 안그래도 폭력집단을 만들고 극단주의 활동을 한 UNA-UNSO가 눈엣가시였던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들을 해산했다. 이후 UNA-UNSO는 우크라이나 보안국의 집요한 감시를 받았다. 그러나 2014년 우크라이나 정부와 친러 반군간의 돈바스 전쟁 당시 우크라이나 보안국의 감시 대상인 UNA-UNSO중 일부가 흡수된 우익 집단 프라비 섹토르는 친정부 민병대를 구성해 친러반군에 대항했다.[14] 트란스니스트리아 의회 문서를 보면 43석 중 자유보수주의로 평가되는 갱신당이 35석, 무소속이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다. 그냥 일당우위 정당제[15] 여담으로 이렇게 스미르노프를 통해 단물 빨아먹던 셰리프는 훗날 야권 대선후보였던 예브게니 솁추크의 편에 서면서 스미르노프의 뒤통수를 제대로 갈겼다.[16] 2007년 1인당 GDP 추산 약 2,000달러였고, 2013년에도 2,076달러에 불과했다.[17] 차이점이라면 몰도바어는 남부지방 방언을 기준으로 삼은 루마니아어에 비해 북부방언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편이고, 거기에 더해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의 영향도 표준 루마니아어보다 더 많이 받았다는 점이다.[18] 붉은 군대 창설기념일로 러시아 등 구소련 국가들에서도 공휴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