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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와 왕봉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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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당의 군사가 말갈·거란 군사와 함께 북쪽 변경을 침범하여 왔는데, 무릇 아홉 번 싸워 우리(신라) 군사가 이겨 2천여 명을 목베었고 당의 군사 중 호로(瓠瀘)와 왕봉(王逢) 두 강에 빠져 죽은 자는 이루 셀 수 없었다.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
673년 9월(문무왕 12년), 통일 신라의 호로하와 왕봉하에서 벌어져, 나당전쟁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전투이다.
신라군은 남하를 시작하는 당나라 군대를 격파하며, 승리를 거두었다.
2. 배경[편집]
신라군은 석문 전투 대패 이후 주력군이 궤멸하였으며, 신라가 이후 최후의 군대를 임진강에 보내지만, 여기서 조차 10,000명 이상이 전사하여 대 패배를 하게된다.
그리하여, 당나라는 지속적으로 남하를 시작하여, 호로하와 왕봉하에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통일 신라는 신라군을 호로하와 왕봉하에 보내며, 당나라군과 마주치게 되는데, 이것이 호로와 왕봉 전투이다.
3. 전개[편집]
문무왕은 대아찬 철천 등 다수의 지휘관을 보내어 병선 100척으로 서해를 지키게 하였다.
이 당시 당나라 군대는 말갈과 거란의 병사와 함께, 북쪽 변경을 침벙하였는데, 여기를 지키고 있던, 신라군은 당나라군을 격파하였고, 지속적인 패배로 수세에 몰려있던 통일 신라는, 숨을 돌리게 된다.
4. 결과[편집]
이 전투가 일어나기 전에는 신라의 지속적인 패배로 그림자가 드리웟지만, 9번의 전투에서 당나라군이 2,000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였고, 호로하와 왕봉하에 빠져 익사한 자가 매우 많았다.
이번 전투를 통하여 석문 전투 이후 수세에 몰렸던 신라군이 공세로 돌아서게 된다.
또한, 이후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하는 발판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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