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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진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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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 수로왕이 신라를 공격하면서 처음으로 신라와 가야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 77년, 신라가 가야군 1천을 사살하며 첫 격돌은 신라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격돌이 지속되자 87년, 신라 파사 이사금은 가소와 마두 2성을 쌓아 가야의 침략을 대비했다.
77년 (탈해 이사금 21년) 8월, 신라군이 가야군과 황산진 (경상남도 양산과 김해 사이의 낙동강 하류)에서 전투하여, 신라의 아찬 길문이 거느렸던 신라군이 황산진에서 가야군과 전투하여 1,000명의 사망자를 내는 등 큰 승리를 거두었다. 신라군이 가야군을 크게 이겨 승리한 전투이다. 이 전투로 당시 골품제 신분인 아찬이었던 길문은 아찬에서 파진찬으로 신분이 상승 되었다.
1. 개요[편집]
76년, 수로왕이 신라를 공격하면서 처음으로 신라와 가야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 77년, 신라가 가야군 1천을 사살하며 첫 격돌은 신라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크고 작은 격돌이 지속되자 87년, 신라 파사 이사금은 가소와 마두 2성을 쌓아 가야의 침략을 대비했다.
2. 전개[편집]
77년 (탈해 이사금 21년) 8월, 신라군이 가야군과 황산진 (경상남도 양산과 김해 사이의 낙동강 하류)에서 전투하여, 신라의 아찬 길문이 거느렸던 신라군이 황산진에서 가야군과 전투하여 1,000명의 사망자를 내는 등 큰 승리를 거두었다. 신라군이 가야군을 크게 이겨 승리한 전투이다. 이 전투로 당시 골품제 신분인 아찬이었던 길문은 아찬에서 파진찬으로 신분이 상승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