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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허 하니족 이족 자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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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성의 자치주. 동쪽으로 취징시 및 원산 좡족 먀오족 자치주, 서쪽으로 푸얼시, 남쪽으로 베트남, 북쪽으로 위시시 및 쿤밍시와 접한다.
훙허의 제1민족은 한족이지만 42.85%를 차지하여 과반수를 차지하지는 않으며, 이족과 하니족이 각각 23.19%와 17.55%를 차지하여 제2, 제3민족으로 존재한다.
참고로, 훙허(红河)는 홍강에서 따온 명칭이다.
과거 백월의 거주지였던 곳으로, 한나라 대에 중국이 정복하여 강가군(牂牁郡)을 설치하였고, 후한 대로 가면 익주군(益州郡)과 영창군(永昌郡)이 분할하여 통치하게 된다. 그리고 촉한 대에 영녕군(建宁郡), 흥고군(兴古郡)을 설치하고 이 두 지역이 훙허를 관할하였다.
서진은 이 곳을 건녕군(建宁郡)과 흥고군(兴古郡) 외에도 운남군(云南郡)과 영창군(永昌郡)의 4개군에 분할시켰으며 당나라 대에는 교주(交州)와 남녕주(南宁州)가 나누어서 관할하였다.
남조는 이 곳에 척동성(拓东城)을 쌓고 통해도독부(通海都督府)의 중심지로 삼았으며, 대리국은 이 통해도독부를 수산군(秀山郡)으로 개명시켰으며, 그 외에도 석성군(石城郡)과 최녕부(最宁府) 역시 훙허 지역을 관할하고 있었다.
명나라 대에는 임안부(临安府)[1][2][3] , 광서부(广西府), 원강부(元江府)의 3개부를 현 훙허 지역에 설치하였으며, 청나라 대에는 광서부가 직예주로 변경된다.
중화민국 대에는 이 지역에 8개 현이 설치되어 통치되었으며, 1950년에는 멍쯔전구(蒙自专区)가 설치되었으며, 1953년에 훙허 하니족 자치구(红河哈尼族自治区)로 개명, 1957년에 현 자치주로 변경된다.
멍쯔역(蒙自站)이 관내에 존재하고 멍허철도(蒙河铁路)가 해당 역을 지나간다. 공항은 없으나 현재 훙허 멍쯔 공항(红河蒙自机场)이 건설중에 있다.
1. 개요[편집]
윈난성의 자치주. 동쪽으로 취징시 및 원산 좡족 먀오족 자치주, 서쪽으로 푸얼시, 남쪽으로 베트남, 북쪽으로 위시시 및 쿤밍시와 접한다.
훙허의 제1민족은 한족이지만 42.85%를 차지하여 과반수를 차지하지는 않으며, 이족과 하니족이 각각 23.19%와 17.55%를 차지하여 제2, 제3민족으로 존재한다.
참고로, 훙허(红河)는 홍강에서 따온 명칭이다.
2. 역사[편집]
과거 백월의 거주지였던 곳으로, 한나라 대에 중국이 정복하여 강가군(牂牁郡)을 설치하였고, 후한 대로 가면 익주군(益州郡)과 영창군(永昌郡)이 분할하여 통치하게 된다. 그리고 촉한 대에 영녕군(建宁郡), 흥고군(兴古郡)을 설치하고 이 두 지역이 훙허를 관할하였다.
서진은 이 곳을 건녕군(建宁郡)과 흥고군(兴古郡) 외에도 운남군(云南郡)과 영창군(永昌郡)의 4개군에 분할시켰으며 당나라 대에는 교주(交州)와 남녕주(南宁州)가 나누어서 관할하였다.
남조는 이 곳에 척동성(拓东城)을 쌓고 통해도독부(通海都督府)의 중심지로 삼았으며, 대리국은 이 통해도독부를 수산군(秀山郡)으로 개명시켰으며, 그 외에도 석성군(石城郡)과 최녕부(最宁府) 역시 훙허 지역을 관할하고 있었다.
명나라 대에는 임안부(临安府)[1][2][3] , 광서부(广西府), 원강부(元江府)의 3개부를 현 훙허 지역에 설치하였으며, 청나라 대에는 광서부가 직예주로 변경된다.
중화민국 대에는 이 지역에 8개 현이 설치되어 통치되었으며, 1950년에는 멍쯔전구(蒙自专区)가 설치되었으며, 1953년에 훙허 하니족 자치구(红河哈尼族自治区)로 개명, 1957년에 현 자치주로 변경된다.
3. 교통[편집]
멍쯔역(蒙自站)이 관내에 존재하고 멍허철도(蒙河铁路)가 해당 역을 지나간다. 공항은 없으나 현재 훙허 멍쯔 공항(红河蒙自机场)이 건설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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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날은 임안진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공교롭게도 명대에 설치된 임안부의 한자와 남송 수도이자 오늘날 항저우시인 임안구와 한자가 같다.[2] 1276년 쿠빌라이가 당시 임안이었던 남송 항저우를 침공해 남송 황족들과 고관대작들을 이곳으로 이주시킨 뒤 이 곳에 임안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원사 지리지>에 따르면 이곳은 물이 많은 지역이라고 기록되어 있다.[3] 모 유튜버는 훙허 하니족 이족 자지주 건수현 임안진을 남송 수도 임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스토리와 맞지 않는다. 2차 몽송전쟁 때 우량카다이가 대리국을 점령한 뒤 광서를 거쳐 호남 지역을 거쳐 북진했다는 스토리와 맞지 않는다. 남송의 수도가 운남 지역에 있었다면 대리국 점령 시 바로 남송의 수도가 함락되었을 것이다. 또한 1273년 양양 공방전 이후 원의 바얀이 장강 일대를 따라 양라보와 악주를 점령한 뒤 안경부에서 범문호의 군대를 항복시킨 이후 무호 일대에서 가사도의 군대를 격파했다는 스토리와 전혀 맞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