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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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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정복고
초대제2대제3대제4대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아르망에마뉘엘 뒤 플레시 드 리슐리외장조제프 데솔엘리 드카스
(제2대)제5대제6대제7대
아르망에마뉘엘 뒤 플레시 드 리슐리외조제프 드 빌리에장바티스트 실베르 게 드 마르티냐크쥘 드 폴리냐크
제8대
카지미르루이빅투르니앙 드 로슈슈아르 드 모르트마르
7월 왕정
제9대제10대제11대제12대
자크 라피트카지미르 페리에니콜라 장드듀 술트에티엔 모리스 제라르
제13대제14대제7대제16대
위그베르나르 마레에두아르 모르티에빅토르 드 브로이아돌프 티에르
제17대(제11대)(제16대)(제11대)
마티외 몰레니콜라 장드듀 술트아돌프 티에르니콜라 장드듀 술트
제18대(제17대)
프랑수아 기조마티외 몰레
제2공화국
제19대제20대제21대제22대
자크 샤를 뒤퐁 드 뢰르프랑수아 아라고루이외젠 카베냐크오딜롱 바로
제23대제24대
알퐁스 앙리 도풀레옹 포셰
제2제국
제25대제26대
에밀 올리비에샤를 쿠쟁몽토방
제3공화국
제27대제28대제29대제30대
루이 쥘 트로쉬쥘 아르망 뒤포르알베르 드 브로이에르네스트 쿠르토 드 시셰
제31대(제28대)제32대(제29대)
루이 뷔페쥘 아르망 뒤포르쥘 시몽알베르 드 브로이
제33대(제28대)제34대제35대
가에탕 드 로슈부에쥘 아르망 뒤포르기욤 워딩턴샤를 드 프레이시네
제36대제37대(제35대)제38대
쥘 페리레옹 강베타샤를 드 프레이시네샤를 뒤클레르
제39대(제36대)제40대(제35대)
아르망 팔리에르쥘 페리앙리 브리송샤를 드 프레이시네
제41대제42대제43대제44대
르네 고블레모리스 르비에피에르 티라르샤를 플로케
(제43대)(제35대)제45대제46대
피에르 티라르샤를 드 프레이시네에밀 루베알렉상드르 리보
제47대제48대(제47대)(제46대)
샤를 뒤피장 카지미르페리에샤를 뒤피알렉상드르 리보
제49대제50대(제40대)(제47대)
레옹 부르주아쥘 멜린앙리 브리송샤를 뒤피
제51대제52대(제42대)제53대
피에르 발데크루소에밀 콩브모리스 루비에페르디낭 사리앵
제54대제55대제56대제57대
조르주 클레망소아리스티드 브리앙에르네스트 모니조제프 카요
제58대(제55대)제59대제60대
레몽 푸앵카레아리스티드 브리앙루이 바르투가스통 두메르그
(제46대)제61대(제55대)(제46대)
알렉상드르 리보르네 비비아니아리스티드 브리앙알렉상드르 리보
제62대(제54대)제63대제64대
폴 팽르베조르주 클레망소알렉상드르 밀랑조르주 레이그
(제55대)(제58대)제65대제66대
아리스티드 브리앙레몽 푸앵카레프레데리크 프랑수아마르시알에두아르 에리오
(제62대)(제55대)(제66대)(제58대)
폴 팽르베아리스티드 브리앙에두아르 에리오레몽 푸앵카레
(제55대)제67대제68대(제67대)
아리스티드 브리앙앙드레 타르디외카미유 쇼탕앙드레 타르디외
제69대제70대(제67대)(제66대)
테오도르 스테그피에르 라발앙드레 타르디외에두아르 에리오
제71대제72대제73대(제68대)
조제프 폴봉쿠르에두아르 달라디에알베르 사로카미유 쇼탕
(제72대)(제60대)제74대제75대
에두아르 달라디에가스통 두메르그피에르에티엔 플랑댕페르낭 부아송
(제70대)(제73대)제76대(제68대)
피에르 라발알베르 사로레옹 블룸카미유 쇼탕
(제76대)(제72대)제77대제78대
레옹 블룸에두아르 달라디에폴 레노필리프 페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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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대제81대제82대(제7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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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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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라마디에로베르 슈만앙드레 마리로베르 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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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쾨유조르주 비도앙리 쾨유르네 플레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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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쾨유르네 플레뱅에드가르 포르앙투안 피네
제91대제92대제93대(제89대)
르네 마예르조제프 라니엘피에르 망데스 프랑스에드가르 포르
제94대제95대제96대제9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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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대제103대제104대제10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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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 파비위스자크 시라크미셸 로카르에디트 크레송
제109대제110대제111대제112대
피에르 베레고부아에두아르 발라뒤르알랭 쥐페리오넬 조스팽
제113대제114대제115대제116대
장피에르 라파랭도미니크 드빌팽프랑수아 피용장마르크 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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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뉘엘 발스베르나르 카즈뇌브에두아르 필리프장 카스텍스
제121대
엘리자베트 보른




프랑스 제96대 총리
프랑수아 샤를 아르망 피용
François Charles Armand Fillon
파일:Francois_Fillon.jpg
출생1954년 3월 4일 (70세)
프랑스 페이드라루아르 르망
학력르망 대학교
파리 데카르트 대학교
정당

직업정치인
배우자페넬로프 피용
1. 개요
2. 생애
2.1. 총리
2.2. 2017년 프랑스 대선 공화당 후보 경선
2.3. 2017년 프랑스 대선 후보
3. 평가



1. 개요[편집]


201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후보[1]였던 프랑스의 중도우파 성향의 정치인으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총 5년간 총리를 지냈다.[2] 당적은 공화당.

친러 성향 정치인으로 평가되며[3] 돈바스 전쟁으로 인한 對러시아 제재를 풀고, 시리아 내전에서도 시리아 정부군을 돕는 러시아와 함께 IS를 퇴치하자고 주장한다.#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 대처리즘, 외교적으로는 친러, 사회적으로는 낙태 반대와 동성부부의 입양 금지 (가톨릭 보수주의), 이민 축소를 주장하는 보수주의자다. #


2. 생애[편집]



2.1. 총리[편집]


파일:external/cdn-europe1.new2.ladmedia.fr/Fillon-les-cinq-ans-d-un-collaborateur.jpg

200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여당이었던 UMP가[4] 니콜라 사르코지를 내세워 자크 시라크의 뒤를 이어 다시 한번 집권하는데 성공하였고, 한달 뒤에 치러진 하원선거에서도 승리하면서(의석수는 조금줄어들었지만 과반확보) 총리도 마음대로 선출할 수 있었는데 사르코지는 피용을 총리로 임명하면서 내각을 꾸렸다.

특이하게도 프랑스 공화국 총리들 중에서 재임기간이 3년을 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반면에 사르코지랑 코드가 잘 맞아 떨어졌는지 2012년 대선총선을 치를 때 까지[5] 사르코지 정부 밑에서 무려 5년 동안 총리로 재임했다.

다만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는 단점정부, 즉 여대야소 정국일 경우 사실상 막강한 대통령제 국가인지라 딱히 피용이 할만한 건 없었다. 피용처럼 5년 동안 총리로 지냈던 리오넬 조스팽의 경우 시라크가 1997년 의회 해산으로 자폭하면서 실세 총리로 군림했던 것과는 대비된다. 프랑수아 미테랑이나 자크 시라크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여대야소 정국일 경우 대통령이 총리 권한까지 전부 행사할 수 있으나 여소야대 정국에서 총리는 내치 대통령은 외치로 구분지어지면서 사실상 대통령은 식물화 되기 때문에 실세 총리로 활동할 수 있었다.


2.2. 2017년 프랑스 대선 공화당 후보 경선[편집]


2017년 4월에 실시되는 대선을 앞두고, 2016년 11월 20일 실시된 공화당 1차 경선에서 피용은 득표율 44.1%로 1위를 차지했고, 알랭 쥐페 전 총리가 28.6%로 뒤를 이었다. 니콜라 사르코지는 3위를 차지해 결선 진출에 실패,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2차 결선 투표에서 득표율 65.5%를 차지해 공화당 대선후보로 선정되었다.#


2.3. 2017년 프랑스 대선 후보[편집]


자신의 아내를 보좌관으로 고용해 혈세를 타냈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기소가 되면 후보를 사퇴하겠다라는 말을 했다.# 사회당의 모략이라며 강력히 부인도 하고 있다.

공약으로 이민자 수를 제한하기 위해 쿼터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상기한 부인 고용 비리 의혹 이후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더니 급기야 마린 르 펜, 에마뉘엘 마크롱에 이어 3위에 머물게 되었으며 다급해진 공화당 내부에서는 대선후보를 교체해야 하는게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피용이 사퇴할 경우 가장 유력한 후보인 알랭 쥐페가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하고, #, 피용은 대선후보로서 계속 가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며 피용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피용의 지지자들간에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6]

그 와중에 정치자금 스캔들이 또 터졌다!# 결국 밀가루 맞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결국 1차 투표에서 3위를 기록해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2020년 6월에 하원의원 시절 부인을 보좌관으로 허위 채용해 급여를 지급한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2021년에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자루베쥐네프티' 이사로 근무 중이다.

3. 평가[편집]


"인기 없는 정책을 말하는데도 안정적이고 일관적이어서 미움을 사지 않는다."


"온건하지만 현실과 목표를 돌려 말하지 않는 직설적인 스타일이다."


RTL 등 현지 매체들은 "근로시간 연장처럼 인기 없는 발언을 하는데도 특유의 침착함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피용의 특징"이라고 했다. 인기에 연연해 현실과 목표를 돌려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4 09:06:57에 나무위키 프랑수아 피용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한때 가장 유력한 후보였으나 올랑드가 재선을 포기하면서 지지율이 올라 변수가 생겼다. 그리고 본문에 서술한대로 아내 고용 관련 비리 사건이 터진 후로 지지율이 계속해서 하락해 2017년 2월 들어 급기야 1위에서 3위까지 곤두박칠 친 상황.[2] 당시 대통령은 같은 당의 니콜라 사르코지였으며 프랑스는 같은 해에 대선과 총선을 같은 시기에 치루기 때문에 임기도 비슷하다.[3] 사실 유럽의 우파들은 친러 성향이 강한편이다.[4] 대중운동연합의 약칭으로써 현 공화당의 전신.[5] 이때 사회당프랑수아 올랑드가 승리하면서 사르코지가 진 동시에 사회당+기타 좌파정당들이 하원에서 대거 승리하였다.[6] 피용 지지측에서는 좌편향된 프랑스 사법 시스템이 법적으로는 크게 문제가 될 사항도 아닌 것을 단순히 정치적으로 음해하기위해 수사를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