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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티드 브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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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아리스티드 브리앙은 프랑스 제3공화국의 총리이자 최초의 사회주의자 총리이다.
그는 전간기 내각의 총리로써 바이마르 독일과 관계를 개선하는 정책을 폈다. 그는 1926년에 독일의 외무부 장관이자 그와 같은 외교관을 공유했던 구스타프 슈트레제만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미국 국무장관 프랭크 켈로그와 함께 조인한 31개 국가 사이에서 전쟁을 불법화하는 부전조약을 맺으면서 또다른 세계전쟁의 발발을 막으려고 한다. 하지만 반독 성향이 강했던 프랑스 우파와 슈트레제만의 독일과 의견 조율에 실패한 탓에 결국 사임한다.
2. 생애[편집]
아리스티드 브리앙은 낭트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 뛰어난 학생으로, 그는 바칼로레아 이후 파리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한다. 1886년부터 1900년까지 생 나제르에서, 1900년부터 1909년까지 그는 퐁퇴즈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도중 아나키스트 정치인 페르낭 펠루티에를 만난다. 사회주의 신문 "라 랑테른" (La Lanterne)의 기자로써 사회당 측을 대변하는 신문 기사들을 쓰기 시작한다.
1902년에 생테티엔의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한다. 정계에 입문하자 마자 독보적인 웅변술과 정치적 감각으로 주목을 받는다. 1906년에 예술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중도파로 전향한다. 이것 때문에 그는 사회주의자들로부터 변절자 취급을 받고, 극우파와 왕당파들에게는 "민주파 쓰레기"라고 매도당한다. 1908년에 조르주 클레망소 정부의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사형법을 폐지하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1909년에는 사회당 최초 총리를 역임한다.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비교적 능력있는 총리로써 활약한다. 클레망소의 대표적인 정적으로, 1920년 대선에서 클레망소가 아닌 폴 데샤넬이라는 카리스마 없는 인물이 당선되게 한다. 1921년 다시 총리로 선출되어 독일에 친화적인 정치를 펼친 탓에 우파 레몽 푸앵카레와 에두아르 에리오와 대치한다.
구스타프 슈트레제만과 협업해 1925년에 집단안전을 보장하는 로카르노 조약[2] 을 조인했고, 전쟁 자체를 항구적으로 포기하는 켈로그-브리앙 조약을 추진하는 등 전간기의 평화주의적 아이콘으로 활약하고, 그 공로로 1926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여받는다. 1929년에는 국제 연맹에서 원시적인 유럽연합을 건설하려는 의지를 표명하는 연설을 한다. 하지만 같은 해 내각을 잃은 직후 미국 대공황이 터지고 나치즘이 판치기 시작하면서 브리앙은 정계에 돌아오지 못한다. 1932년에 사망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을 견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엄청난 질책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