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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루트비히 폰 트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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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해군 소령
게오르크 루트비히 폰 트라프
Georg Ludwig Ritter von Trapp


이름
Georg Ludwig Ritter von Trapp
게오르크 루트비히 리터 폰 트라프[1]
출생
1880년 4월 4일,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오스트리아 제국 자다르
사망
1947년 5월 30일(향년 67세),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미국 버몬트 스토
복무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
(1900년 ~ 1918년)
최종 계급
제국 해군 소령
(Korvettenkapitän)
주요 참전
의화단 반란
제1차 세계대전

1. 개요
2. 학력 사항
3. 경력 사항
4. 군 생활
5. 전쟁 이후
6. 기타
7. 서훈내역



1. 개요[편집]


게오르크 루트비히 리터 폰 트라프는 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 장교로 복무하였으며, 전후 오스트리아미국에서 음악가로 활동한 인물이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트랩 대령'의 모델이 된 인물이다.

별명은 잠수함의 에이스였는데, 제1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수 많은 협상국의 군함과 상선(군용이건 민간이건 가리지 않았다), 잠수함을 격침시켜서 얻은 별명이라고 한다.

영화에서는 '대령'으로 잘못 번역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소령으로 예편하였다. 이는 독일어권의 해군 영관장교 계급 명칭이 영어권과 달라서 생긴 오역이다. 독일어권에서 해군 소령은 "초계함 함장(Korvettenkapitän), 중령은 "호위함 함장(Frigattenkapitän)", 대령은 "해군 함장(Kapitän zur See)"이고 일상 회화에서는 세 계급을 모두 퉁쳐서 "Kapitän"으로 부른다. 그러나 영어권에서는 해군 소령과 중령을 "(Lt.) Commander"라고 칭하고, 대령만 "Captain"으로 표기한다. 번안 과정에서 이런 차이를 무시하고 "Kapitän"을 실제 영어권 계급체계에 대응하는 "Commander"가 아니라 그냥 "Captain"으로 직역하면서 계급이 두계단 뛰는 오해가 발생한 것.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는 남작이라고 나오는데, 성명에 있는 칭호 '리터(Ritter)'는 세습기사 칭호로 남작(Freiherr)보다 한 단계 위계가 낮다. 영국식으로 하면 준남작 비슷할 것이다. 세습기사 칭호는 게오르크의 부친 대에 얻은 것.

2. 학력 사항[편집]




3. 경력 사항[편집]


  • 제국 해군장교 (잠수함)
  • 음악가


4. 군 생활[편집]


1880년 4월 4일 현재 크로아티아의 영토이자 달마티아 왕국의 수도인 자다르[2]에서 태어났으며, 해군 중령이었던 부친을 따라 현재 크로아티아 영토[3]리예카[4]해군사관학교에서 사관생도로서 군 생활을 시작했다. 1900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소속으로 의화단 운동 진압에 참가했다. 당시 사관후보생으로서 해군 육전대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후 잠수함에 관심을 갖고 그 분야로 진출하였으며, 1910년 영국인 여자인 애거사 화이트헤드(Agathe Whitehead)와 결혼하였다. 그는 세계 최초의 근대적 어뢰인 화이트헤드 어뢰를 개발한 로버트 화이트헤드(Robert Whitehead)의 손녀로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녀였다. 참고로 그녀의 사촌언니는 비스마르크의 장남 헤르베르트와 결혼했고 사촌오빠인 호요스 백작[5]은 헝가리의 외교관으로 이름을 떨쳤다. 한마디로 최상류층이라고 보면 된다. 로버트 화이트헤드는 영국인이었지만 그의 어뢰 디자인은 원래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의 어뢰 디자인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헝가리와도 커넥션이 있었다. 애거사 화이트헤드는 1922년 성홍열로 세상을 떠났다.

파일:SM_U-14_(Austria-Hungary).jpg
▲ 트랍 소령의 유보트 U-14함. 원래 프랑스 해군의 브뤼메르급 잠수함 '퀴리' 함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이었던 1915년에는 대위 계급을 달고 제국 해군 소속 SM U-5 잠수함의 지휘관으로 있으면서 프랑스 해군 소속의 순양함레옹 강베타(Leon Gambetta)를 격침시키고 잠수함 퀴리[6]를 나포하였다. 퀴리는 제국 해군 소속으로 변경되었고 SM U-14로 개칭되었다. 그리고 트라프 본인이 SM U-14의 지휘관이 된다. 이외에도 수많은 협상국 측의 상선과 잠수함을 격침하여 에이스 함장들 중 한 명이 되었고, 1918년 5월에는 소령으로 진급하였으며, 제국 최고의 훈장인 마리아 테레지아 무공훈장까지 받았다.

전쟁이 끝나자 소령[7]으로 예편하였으며, 더 이상 해군에 복무하지 못하게 되었다. 본인은 해군인데 자기 나라가 내륙국이 되어서 더 이상 해군을 운영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제국 해체 이후, 폰 트라프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부가 되어 버린 고향 크로아티아에 남지 않고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으로 가는 것을 택했다. 이후 그의 가족들은 1924년에 잘츠부르크 근교의 아이겐(Aigen)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해당 지역에 위치한 논베르크(Nonnberg) 수도원에서 수녀로 일하다가 파견 온 가정교사이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의 모델이 되는 마리아 아우구스타 쿠체라(Maria Augusta Kutschera, 1905~1987)와 1927년에 재혼하였다. 이후 그녀와의 사이에서 로제마리(Rosemarie, 1928년 출생.)와 엘레오노레(Eleonore, 1931년 출생.)를 얻었다.


5. 전쟁 이후[편집]


1938년 오스트리아 연방국나치 독일강제 합병되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트라프에게 크릭스마리네 복무를 권유했지만 그는 자신의 조국은 오스트리아뿐이라면서 거절하였다.

이후 트라프 일가는 나치를 피해 미국 버몬트의 스토로 이주하였고 본인은 제2차 세계 대전추축국의 패망으로 끝난 지 2년 뒤인 1947년 5월 30일 미국에서 지병인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6. 기타[편집]


폰 트라프 일가 자녀들의 살아생전 인터뷰에 따르면 폰 트라프 대령 본인은 오히려 동시대 군인치곤 집안에선 온화하고 좀처럼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기 힘든 다정다감한 가장이었고 오히려 새엄마 마리아가 성격이 드센 군기반장으로 아이들이 무서워했다고 한다. 사운드 오브 뮤직 내에서도 자세히 보면 영화다보니 아이들한테 소리지르고 무섭게 구는 모습은 순화하거나 표현을 안해서 그렇지 마리아가 성격이 굉장히 드세고 자기 주장이 강한 반면 폰 트라프 대령은 완고한 외면 속에 의외로 부드럽고 온화한 성격이다.

의화단 전쟁에 참전하던 중 대한제국의 제물포(현 인천광역시)에 온 적이 있다. 당시 제물포는 가장 가까운 국제항구로서 8개국 함대가 물자를 보급받고 휴식하는 곳이기도 했기 때문이다.[8] SMS 센타 함과 마리아 테레지아함 등 오스트리아 함대 또한 대한제국을 기항지로 자주 사용했다. 사관후보생 시절의 트라프도 이때 승선해 있었다.

7. 서훈내역[편집]


  • 마리아 테레지아 무공훈장



[1]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대로는 '리터 폰트라프'로 표기한다. 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나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2] 당시 명칭은 '차라'[3] 그래서 가끔 크로아티아인으로 오해되기도 한다.[4] 당시 명칭은 '피우메'[5] 제1차 세계대전의 전야인 7월 위기 당시 베를린과 빈을 오가며 황제들의 친서를 들고 바삐 뛰어다녔던 그 호요스 백작 맞다.[6] 마리 퀴리피에르 퀴리 부부의 이름에서 유래[7] 제국 해군 기준 Korvettenkapitän(Corvette captain[8] 이때 2년간 대한제국은 엄청난 전쟁특수를 누렸다. 이는 곧 근대화의 주요 재원으로 사용되며 광무개혁대한제국군 현대화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러나 1904년 러일전쟁이 터지며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