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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위트 클린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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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미국의 정치인이자 제6대 뉴욕 주지사. 조지 클린턴의 조카이다.
2. 생애[편집]
1769년 제임스 클린턴[1] 과 메리 드위트 사이의 3남으로 태어났다. 프린스턴 대학교(당시 뉴저지 칼리지)와 컬럼비아 대학교를 다녔고, 삼촌의 비서를 거쳐 1798년 뉴욕 주의회 상원의원(1789~1802, 1806~1811)이 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1802년 2월에 전임자가 사임하면서 공석이 된 뉴욕주 연방상원의원에 임명되었으나 다음해 11월에 사직하고 뉴욕으로 돌아갔고, 뉴욕시장(1803~1807, 1808~1810, 1811~1815)과 뉴욕주 부지사(1811~1813)를 역임했다.
1812년 대선을 앞두고 버지니아의 대통령직 독식에 불만을 품고 있던 많은 북부 민주공화당원들은 당초 염두에 두고 있던 부통령 조지 클린턴이 사망하자 드위트 클린턴을 대안으로 밀기 시작했다. 당의 분열을 막기 위해 (조지 클린턴의 경우처럼) 대신 부통령직을 주는 것이 진지하게 검토되었으나 최종적으로 무산되었고, 드윗 클린턴은 독자적으로 대통령 본선 후보로 출마, 북부 민주공화당원들과 상당수 연방당원들[2] 의 지지를 받아 2위로 낙선했다.
낙선한 드위트 클린턴은 1817년 대니얼 D. 톰킨스가 부통령이 되기 위해 주지사직을 사임한 후 열린 뉴욕 주지사 보궐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820년에 다시 주지사직에 재선되어 1822년까지 역임했고, 1824년 선거에서 다시 당선되어 사망할 때끼지 뉴욕 주지사를 역임했다.
1828년 2월 11일 뉴욕주 올버니에서 사망했다.
3. 여담[편집]
- 1810년부터 1824년까지 이리 운하 위원회의 위원을 맡아 이리 운하 건설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 두 번 결혼했고, 10명의 자식을 남겼다.
[1] 미국의 군인, 정치인. 프렌치-인디언 전쟁과 미국 독립전쟁에서 종군했으며, 최종적으로 소장 계급을 받았다.[2] 전체 연방당 차원의 공식 지지를 받지는 못했고, 버지니아 등 루퍼스 킹을 지지한 일부 주를 제외한 대다수 주 연방당 조직의 개별 지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