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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 미스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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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후궁과의 차이
3. 특성
4.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5. 로얄 미스트리스들
6. 로얄 미스트리스 캐릭터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중세근세 유럽의 준후궁 직첩 및 제도. 다만 후궁과는 성격이 다르다.

유럽에서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일부일처제가 오래전부터 자리 잡아 동양과 같은 일부다처제의 정식 후궁 제도가 없었다. 귀족·성직자 등 사회 유력자들이 정부를 두는 관습은 중세 초부터 있었지만 정식 혼인관계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단, 후궁에 비견될 만한 제도는 있었는데 바로 "정식 정부"(情婦, mistress)라 할 만한 존재를 두는 것이다. 의 정부를 영어로 로얄 미스트리스(royal mistress)라고 부르며, 프랑스 왕국에서는 메트레상티트르(maîtresse-en-titre), 일본에서는 공첩(公妾) 또는 총희(寵姫)라는 번역어를 사용한다. 영어권도 후궁과 정부를 확실하게 분간하고 있어서 후궁은 'Royal Concubine'로 달리 표기하고 있다.

법적인 혼인관계는 아니기에 정부와 그 자녀는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했을 뿐더러, 왕위 또한 물려받을 수 없었다. 중세 초기에는 이 규범이 철저하게 확립되지 않아서 정부의 자녀가 계승권을 주장하거나, 적자가 없을 때 이들이 아버지의 지위를 상속받는 일이 종종 있었다.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이슬람 제국의 침입을 저지한 궁재 카롤루스 마르텔은 피핀 2세의 사생아였으나 차별을 받았을지언정 가문의 일원임이 부정되진 않아 그가 카롤링거 가문의 대를 이을 수 있는 근거가 되었고, 정복왕 윌리엄은 미천한 어머니를 둔 사생아였으나 아버지의 유언에 의해 노르망디 공작위를 물려받았다. 슬하에 적자가 없는 카롤링거 왕조의 왕들은 정부 사이에서 난 사생아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하려 시도했으며, 이 중 아르눌프 왕 정도만이 사생아로서 왕위를 계승하는 데 성공했다. 이 시기의 정부는 어느정도 정조의 의무가 있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러나 이런 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져갔고 정부의 자녀가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예외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2. 후궁과의 차이[편집]


동양의 후궁은 왕비보다 지위가 낮을 뿐 엄연한 군주의 정식 아내 및 가족으로 인정 받았지만, 서양의 로얄 미스트리스는 단지 공인 내연녀에 불과했다. 따라서 정부는 아내로서의 의무를 지지 않았지만 권리 또한 없었다.

예를 들어 후궁 제도가 있는 국가들에서 후궁이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하면 불륜, 간통으로 엄중한 처벌을 받았지만[1], 정부는 다른 남자들과 자유로운 성생활 문어발을 걸치는 오픈 릴레이션십을 행해도 왕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여 괘씸죄로 총애를 잃을지언정 대놓고 정조를 어겼다고 해서 법적으로 처벌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부부 관계조차도 아니니 간통을 운운할 근거도 없어 처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영국 스튜어트 왕조찰스 2세는 정부 바바라 팔머가 다른 남자들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몇 번이나 목격했지만 바바라는 물론 그 애인들에게도 처벌을 가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물론 찰스 2세가 유난히 자기 정부의 남자 관계에 대해 관심이 없었거나 관대했던 탓도 있다.

그 대신 동양의 후궁은 모시는 왕이 살아있는 한 왕의 첩이자 아내, 가족으로서 계속 궁에 거주하였고, 후궁의 자식은 왕비 소생 적자녀에 비해 한 단계 낮은 지위의 서자녀이기는 해도 엄연한 왕족으로 대우를 받았다. 특히 서자는 적자보다 우선순위는 밀렸긴 해도 왕위 계승권이 있었기에 중국사, 한국사동양사에서, 후궁의 소생으로 태어나 황위나 왕위를 이어받은 군주가 매우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유럽의 정부는 동양의 후궁보다 대우가 가혹했는데 오로지 왕이 베푸는 총애와 호의에 기대어 궁에 거주하는 공식적으로 묵인된 정부에 불과했기에 왕이 살아있어도, 교회나 귀족 사교계, 민간에서는 불법적 욕정의 결정체, 왕의 창녀란 비웃음과 매도를 당하며 총애를 잃는 즉시 궁에서 내쳐졌고 그 자녀들도 왕위 계승권을 갖기는커녕 왕족으로도 대우받지 못하는 그냥 사생아에 불과했다. 게다가 왕이 사생아를 친자로 인지하고 여러 가지 지원을 해주는 경우는 흔했으나, 그래봤자 귀족 작위를 받는 게 한계였고 왕족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2]

왕의 총애를 잃거나 왕의 사후 그 정부들이 궁에서 쫒겨나 보복받은 사례도 많다. 정부에게 있어 왕의 총애만이 권세를 누리게 해주는 유일한 이유였는데, 그 왕이 사망함으로서 유일한 보호막이 사라지고 묵인받을 자격조차 없어진 것이다. 예시를 들자면 에드워드 3세의 정부로 국정을 농단하며 부를 축적한 걸로 악명높은 앨리스 페러즈에드워드 3세의 임종이 임박하자마자, 모든 권력을 상실하고 재판에 회부되어 부정부패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토지도 몰수당하고 잉글랜드 왕국에서 추방당하기까지 했다. 앙리 2세가 죽을 때까지 가장 총애한 정부이자 왕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를 넘어서는 권력을 누린 디안 드 푸아티에도 앙리 2세가 죽자마자 그녀를 싫어한 카트린의 명에 의해 왕에게 선물받은 왕가의 보석부터 슈농소 성을 환수당하는 걸 시작으로[3], 그간 누리던 특권도 전부 박탈당하고 앙리 2세의 장례식 참석마저 금지당한 뒤 정치에서도 배제당하면서 모든 권세와 입지를 상실하고 그나마 재산만 보위한 채로 남은 평생을 조용히 살아야만 했다.[4] 그나마 이런 조치조차 카트린이 디안과 6촌지간인 인척관계인데다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았던 걸 참작해, 미약한 처벌을 내린 것이라고 하니 총애해주던 왕의 사망으로 뒷배를 잃은 정부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지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예시로는 알렉산드르 2세의 정부이자 귀천상혼한 후처인 예카테리나 돌고루코바는 유리옙스카야 여공작 작위를 하사받고 비공식적인 황후로 대우받으며 잘 나갔으나, 알렉산드르가 폭탄테러로 사망하자마자 바로 자식들과 함께 러시아 황실에서 내쳐졌고 연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황실 거주지에서 살 권리마저 포기하고 평생동안 해외를 전전해야만 했다.[5] 에드워드 7세의 정부인 앨리스 케펠도 에드워드에게 경제적으로 풍족한 지원을 받는 것은 물론 그의 정치 고문으로서도 상당한 입지를 자랑했지만, 에드워드 7세의 사후 아버지의 정부를 꺼린 조지 5세에 의해 모든 궁중 행사에서 배제되고 사교계에서도 소외되면서 단번에 모든 입지를 상실했다. 이외에도 총애해주던 왕의 사후 생활고에 시달리며 불행하게 산 정부들이 많다.

이것도 뭔가 굉장히 심각한 물의를 일으키거나[6] 정비 혹은 왕세자와 척을 진 것이 아닌 이상[7][8], 정식 부군으로 모시던 왕의 사후 출궁은 하되 왕족으로 대우받고 자식이 있으면 경제적 어려움없이 편안한 여생을 보내던 동양의 후궁들과 다른 점이다.


3. 특성[편집]


왕의 정부들은 의외로 유부녀들이 많았는데, 이는 정부가 왕의 사생아를 낳으면 정부의 법적 남편의 아이로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눈 가리고 아웅일 뿐 당시 사회에서도 소문 좀 듣는다 하는 사람들은 왕의 자식임을 다 알았다. 일종의 출생신고 같은 개념으로 사생아의 법적 아버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혼이거나 신분이 낮은 여성을 귀족과 결혼시켜 신분세탁을 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정부의 결혼은 필수가 아니였기에 매우 드물게 끝까지 미혼으로 남는 경우도 있었는데, 찰스 2세의 정부였던 넬 그윈배우 출신의 천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분세탁용 결혼을 하지 않아 끝까지 천민 신분으로 남아서 찰스 2세의 사망 이후 재정적으로 고생을 했었다. 정부들이 대중들에게 매춘부라고 비난받은 것은 유부녀로서 외간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는 당대 도덕관념을 위반해서만이 아니라 경제적 문제로 코르티잔(courtesan)을 겸하면서 상류층 고객들을 후원자로 두거나, 코르티잔 본인이 작위 및 사생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당한 남자를 골라 위장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9] "부도덕하고 문란한 매춘부" 라는 인식이 박힌 것이다.

이렇게 왕의 정부가 된 귀부인들은 남편과 별거하고 사실상 이혼 상태에 들어갔다. 당연히 남편들은 아내를 왕에게 빼앗기는 것이니 불만을 품었지만, 왕의 보복이 무서워 함부로 못하며 왕이 그 대가로 막대한 재물을 하사하거나 작위, 봉토를 주기도 해서 참고 넘어갔다. 드물게 이 재산과 지위 때문에 아내가 왕의 정부가 되는 걸 환영하는 유부남 귀족들도 있었고, 애초에 왕이 정부를 신분세탁해줄 목적으로 찾아다가 결혼시킨 한미하거나 아예 아내를 바친 귀족 같은 경우엔 자기도 그 대가로 받은 게 있으니 불만이 없었을 것이며 있어도 대놓고 드러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몽테스팡 후작부인의 남편처럼 대놓고 왕에게 분노를 표출한 경우도 있기는 했다.

동양에서 왕이 정치를 못하면 대놓고 왕을 비난 못했으니 왕의 총애를 받는 후궁들이 대신 비난 받은 것처럼, 서양에서 왕의 정부도 왕실을 대신해서 비난받은 샌드백이었다. 특히 정부는 후궁보다 사회적 인식이 더 좋지 못해 비난의 강도가 더 셌는데 퐁파두르 부인뒤바리 부인도 실제로는 각종 후원이나 자선 사업을 많이 하는 등 선량한 성품의 소유자였지만 대중들에게 죽을 때까지 악녀, 탕녀라고 비난받았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평생동안 프랑스의 백성과 귀족들에게 증오를 받은 건 그녀가 적국인 오스트리아 출신이었던 것도 있었으나, 남편 루이 16세에게 정부가 없었기에 비난을 대신 받은 것도 있었다. 왕의 정부는 단순한 국민들의 욕받이(?) 역할 뿐만 아니라 각종 사교 행사들을 주관해야 했는데, 이를 본처인 마리 앙투아네트가 직접 주관해야 하다 보니 국민들에게 더더욱 반감을 사게 된 것이다.[10]


4.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편집]


서양권 작품들은 같은 유럽의 문화(?)에 친숙하다보니 대체로 로얄 미스트리스 제도를 역사적 재현에 적합하게 묘사하는 반면, 동양권은 역사적으로 일부일처다첩 제도가 일반적이었다보니 유럽의 로얄 미스트리스 재현을 완벽하게 묘사한 작품들은 거의 없다. 동양산 역사물, 로맨스 소설, 판타지물(서양 판타지), 로맨스 판타지, 할리퀸 창작물들 대다수는 후궁의 특성이 퓨전 혼합되어 황비, 귀비 같은 칭호를 붙이거나, 후궁으로 동일시하는 등 로얄 미스트리스를 후궁으로 오해해 잘못된 반영을 하거나, 복식과 배경만 유럽이지 사실상 동양 후궁 복사 붙여넣기로 묘사하는 재현 오류가 참 많다. 공첩, 총희로 표기한 일본산 창작물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도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의 왕의 정부가 되는 엔딩들, 은하영웅전설의 정부 캐릭터인 안네로제 폰 그뤼네발트, 주산나 폰 베네뮌데를 후궁으로 잘못 번역하는 사례가 많다.[11] 이런 건 반영 오류 문제만 있는 게 아니라 문화적 전유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참고로 소비자들의 배려를 위해서인지 실제 유럽 왕실의 로얄 미스트리스와 달리 창작물의 로얄 미스트리스들은 미혼녀들이 대다수이다(...). 일부 재현에 신경쓴 작품은 기혼녀도 있었다는 식으로 둘러댄다.

한국 로맨스 판타지에서는 재혼 황후[12]를 시작으로 악녀는 두 번 산다[13] 등 로얄 미스트리스 제도를 반영한 작품이 늘어나는데 역사를 판타지로 배운 일부 유럽 왕실의 역사를 모르는 독자들은 정부가 등장하면 "로판 세계관" 이라고 몰상식적인 발언을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5. 로얄 미스트리스들[편집]


분류:로얄 미스트리스도 참고할 것.


  • 프랑스 왕국
    • 샤를 7세 - 아녜스 소렐
    • 앙리 2세 - 디안 드 푸아티에
    • 샤를 9세 - 마리 투셰
    • 앙리 4세 - 가브리엘 데스트레
    • 루이 14세 - 올랭프 만치니[14], 마리 만치니, 마리 안젤리크 드 스코라이,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 몽테스팡 후작부인[15], 맹트농 후작부인[16]
    • 루이 15세 - 마이 자매[17], 퐁파두르 부인, 뒤바리 부인(루이 15세 및 프랑스 왕국의 마지막 로얄 미스트리스)

  • 루마니아 왕국
    • 카롤 2세 - 마그다 루페스쿠[18]


6. 로얄 미스트리스 캐릭터[편집]


해당 문단은 주로 유럽 왕실을 묘사했거나 유럽 왕실에서 모티브를 따온 창작물의 정부(총희)들로 후궁이 아니다. 단 일부 동양 창작물(특히 한국산 판타지 소설)에서는 정부를 후궁으로 묘사하거나 동일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확실히 정부로 묘사되거나 일본어 창작물 한해 로얄 미스트리스의 일본어 번역어인 공첩, 총희로 표기된 경우에만 넣을 것.

  •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 - 이벨라 드 페퍼츠[19]
  • 델피니아 전기 - 폴라 달시니
  • 레이디 투 퀸 - 로즈몬드 메리 라 대로우
  • 밤마다 남편이 바뀐다 - 리반펠의 어머니
  • 악녀는 두 번 산다 - 밀라이라 로산[20]
  • 알드노아 제로 - 루엘 엔버스[21]
  • 엘더스크롤 시리즈 - 바렌지아[22]
  • 은하영웅전설 - 안네로제 폰 그뤼네발트, 주산나 폰 베네뮌데
  • 언니, 이번 생엔 내가 왕비야 - 루비나 부인[23], 이사벨라 데 마레[24]
  • 재혼 황후 - 라스타 이스쿠아[25], 알레이시아[26], 소피아 백작부인[27]
  • 펠루아 이야기 - 이그레인 라이슬
  •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 - 총희[28], 딸(왕의 총희 엔딩 한정)
  • 황후가, 돌아왔다 - 아이리스
  • 황후 자리를 버리겠습니다 - 디안 푸아티에, 베아트리체[29]


7. 관련 문서[편집]



[1] 후궁 제도가 있는 나라에서 환관이 출현한 게 이 때문이다. 공사적으로 생활을 하다 보면 남성이 필요할 일도 있는데, 그렇다고 멀쩡한 남성을 데려다 놓으면 후궁과 간음을 저질러 내연남사생아태어나거나 왕실의 씨를 바꿔치우는 탁란을 당할 수 있으니 아예 남성성을 거세한 남성을 들인 것.[2] 프랑스의 발루아 왕조만 보더라도 마지막 왕인 샤를 9세에게 아들이 있었지만 정부가 낳은 사생아였기에, 앙굴렘 공작위만 주었을 뿐 왕족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20촌이 넘는 부르봉 왕조앙리 4세가 프랑스의 왕을 계승하여 결국 발루아 왕조는 대가 끊겼다.[3] 카트린은 자신의 소유여야 한다고 생각한 왕가의 보석과 슈농소 성을 디안으로부터 돌려받았지만, 대신 쇼몽 성을 넘겨주었고 디안이 소유한 다른 성들의 소유권은 그대로 인정되었다.[4] 이건 사실이긴 한데 장례식 참석 금지는 단순 보복이 아니라 다른 정부들 역시 똑같이 겪는 사례이다. 애초에 서양에서 로얄 미스트리스는 다음 왕의 적모커녕 친모도 될 수 없으므로 정치적인 권리가 있을 리가 없으며 장례식에는 정실부인만이 참석하는 것이 관례였다.[5] 유리옙스카야 일가는 알렉산드르 2세의 장례식에서 다른 황실 인사들과 같이 서있지도 못했고 추도식에는 아예 참석을 금지당해 대놓고 외부인 취급을 받았으며, 러시아를 떠난 뒤에도 해외에 있는 로마노프 황족들에게 외면받고 알렉산드르 2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그의 차남 알렉산드르 3세가 보낸 비밀경찰들에게 감시당하기까지 했다.[6] 조선 인조의 후궁 귀인 조씨가 이 사례. 인조의 사후 효종장렬왕후를 저주했던 게 들통나면서 조씨는 사사당했고, 그녀의 자식들도 전부 폐서인이 되어 유배를 가야만 했다. 또한 영조의 후궁 숙의 문씨사도세자를 모함했다는 죄목으로 영조가 승하하자마자 바로 폐서인이 되어 사사당했는데, 이쪽은 숙의 문씨가 처신이 부적절하긴 했으나 실제로 사도세자를 모함했다기보다는 정치적 희생양으로 숙청당한 거라고 보기도 한다.[7] 유방의 후궁 척부인이 그 예시. 유방의 총애를 업고 자신의 아들 유여의를 황태자로 만들기 위해 유방의 적장자이자 본래 황태자였던 유영폐위에 찬성하는 등, 일개 후궁 신분으로 명백한 무리수를 두다가 거의 모든 조정 대신들에게 외면받고 질타만 받으며 아들을 황태자로 만드는데에도 실패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유방의 정비이자 유영의 모후로서 권력욕이 강했던 여후와 노골적으로 대립하면서 원한을 샀고, 결국 유방의 사후 기다렸단 듯이 폐서인이 되다시피 하여 온갖 고초를 겪다가 끝내 아들 유여의와 함께 끔살당했다. 그것도 통칭 인간돼지로써 동서고금 역사에 비슷한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굉장히 잔혹하게 살해당했기 때문에, 앞서 서술한 척부인의 실책 역시 만만치않았는데도 억울한 피해자 이미지가 생겼고 여후의 평판은 크게 깎인다. 여후 생전에 기세등등했던 여씨 가문은 그녀가 죽은 후 한나라 고관대작들에 의해 거의 멸문을 당하는데 핵심 원인은 지나친 여씨 일족 우대이지만, 여후가 여러 실책으로 반발심을 부채질하기도 했는데 척부인을 과할 만큼 잔인하게 죽인 것도 그 중 하나였다.[8] 다만 유영의 폐위를 노린 것은 척부인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인 유방 본인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미 여후의 노골적인 권력욕과 그녀의 가문인 여씨가 나라를 망칠 징조를 보고 미리 견제하려 했던 것. 하지만 적장자라는 엄청난 정통성과 이미 오랫동안 태자 지위에 머물러 있는 유영을 아무런 명분도 없이 그냥 자기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로 폐위시킨다는 것은 황제인 유방조차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런 유영의 대항마로 내세운 게 하필 평민이나 다름없는 한미한 출신의 후궁에 불과한 척부인이 낳은 서자이자 당시 10살도 안된 유여의였기 때문에 태자 후보로는 가당치도 않아서 유영이 차기 황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정작 유영은 황위에 오른 뒤 이복동생인 유여의와 서모인 척부인을 친모인 여후에게서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9] 퐁파두르 부인의 생모인 마들렌 드 라 모트가 이렇게 위장결혼을 한 코르티잔이었다. 마들렌은 스캔들이나 사생아들을 처리할 용도로 프랑수아 푸아송과 위장결혼을 하고, 결혼 후에도 매춘을 그만두지 않았으며, 남편 프랑수아는 아내의 손님과 후원자들이 귀족 계층이라서 연줄이 생기는 것을 오히려 환영했다. 이 때문에 퐁파두르 부인은 프랑수아 푸아송이 친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의 후원자 중 하나인 르 노르망 드 투르넴이 친부라는 의혹이 있었다.[10] 마리 앙투아네트는 평민들에게까지 공개된 공개 저녁식사에 참가하지 않고 귀부인, 귀공녀들과만 어울리거나, 아예 프티 트리아농 궁에 칩거하먀 소 치고 닭 치는 목가적 취미생활에 몰두하게 되면서, 자기에 대한 루머를 만회할 기회를 회피하고 민중과 점점 괴리되는 선택을 하게 된다.[11] 다만 은하영웅전설 같은 경우는 동양의 후궁 제도가 섞여있는데, 황제가 이런 정부들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은 사생아가 아니라 서자로서 엄연한 왕위 계승자로 인정받는다는 점과 외간 남자와의 불륜이 금지된다는 점에서 유럽 정부를 제대로 재현한 것은 아니다.[12] 이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13] 밀라이라 로산 참조.[14] 사실 정부라고 하기 애매할 정도로 가벼운 사이였으나 애정관계였던 것은 사실이다.[15]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의 후임.[16] 후에 루이 14세와 비밀결혼했다.[17] 자매라고 되어있는 이유는 5자매 중 4명을 애인 삼았기 때문이다(...)[18] 카롤 2세가 폐위된 후 그와 귀천상혼으로 결혼했다.[19] 외전에 등장하는 아르첸 국왕의 정부. 외전 후반엔 리플리의 설득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국왕과의 관계를 정리한다.[20] 공식적인 신분은 로산 후작부인이지만 그레고르 황제의 공공연한 정부다.[21] 길젤리아 버스 보르돔의 정부이자 2기의 히로인 렘리나 버스 엔버스의 생모. 본편 시점에서는 고인으로 외전에만 등장한다.[22] 던머 여성으로 모운홀드의 공주이자 흐랄루 가문의 여왕. 셉팀 왕조의 초대 황제 타이버 셉팀(탈로스)의 정부였다. 서적 진정한 바렌지아에서는 탈로스의 아이를 임신했다 낙태를 당하는 비극을 겪었다.[23] 체자레 데 코모의 어머니이자 레오 3세의 정부.[24] 중후반에 레오 3세의 공식 정부가 된다.[25] 동대제국의 황제 소비에슈의 정부. 나중에 이전 황후였던 나비에랑 이혼한 소비에슈와 정식으로 혼인하면서 황후가 되었다. 하지만 이후 그동안 저지른 악행과 도망 노예 출신이었다는게 들통나면서, 황후 자리에서 폐위된 뒤 감옥에 유폐되었고 결국 그곳에서 자살한다.[26] 소비에슈의 아버지 오시스 3세의 정부 중 하나.[27] 오시스 3세의 정부 중 하나. 그가 가장 총애한 정부였다고 언급된다.[28] 프린세스 메이커 2의 등장인물. 성을 방문할 때 예의범절이 85 이상이면 대화를 허가해주고 화술 수치당 인맥을 높여준다. 한국어 번역판에서는 귀비(윈도우즈 판), 후궁(리파인 판)으로 오역되었다.[29] 카를의 생모로, 선대 황제의 정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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