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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키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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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키디스
Anthony Kiedis


본명
앤서니 키디스
Anthony Kiedis

출생
1962년 11월 1일 (61세)
미국 미시간 주 그랜드래피즈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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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직업
가수, 작곡가, 래퍼
소속
레드 핫 칠리 페퍼스 (1983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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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블래키 다메트 (1932 ~ 2021) [1] 마가렛 노블
자녀
슬하 1남
에벌리 베어 키디스 (2007 – )
학력
페어팍스 하이 스쿨 (졸업)
파일: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아이콘.png 캘리포니아 대학교/로스앤젤레스 캠퍼스 (중퇴)
신체
175cm, 77kg
종교
기독교
활동
1983년 ~ 현재
사용 악기
보컬
장르
펑크 록, 얼터너티브 록, 펑크 메탈, 랩 록, 하드 록
레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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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음악적 특징
4. 여담



1. 개요[편집]



미국록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에 현재 플리와 함께 남아있는 유이한 원년멤버이자 프론트맨, 보컬리스트이다.

작사 능력과 독특한 보컬 스타일이 특징이며, 그로 인해 낮은 평가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 조차도 RHCP의 노래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앤서니가 유일하다고 할 정도로 밴드의 음악에 있어서 영향력과 지분이 큰 인물이다.


2. 상세[편집]


1962년생으로, 밴드의 원년 멤버인 플리, 힐렐 슬로박, 잭 아이언스와 동갑이다. 앤서니의 부모님은 그가 3살 때 이혼했다고 하며, 그래서 어린 시절을 어머니와 함께 미시간 주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 12살 때 할리우드에 있는 아버지를 보러[1] 여행을 갔다 할리우드와 LA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그는 2주의 여행 끝에 아버지와 함께 살기 위해 할리우드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2] 이후 그의 어머니 마가렛 노블은 재혼을 해서 앤서니의 이복형제 둘을 낳는다.

그리고 고등학교 재학 시절 플리, 힐렐 슬로박과 친구가 되었는데, 그 이후 지역 밴드의 오프닝 공연 제의를 받았을 때 플리와 힐렐, 그리고 드러머 잭 아이언스를 새로 영입하여 밴드를 완성시킨다. 4살 무렵 마약을 판매하던 아버지에 의한 대마 간접 흡연을 시작으로 11살때 대마 흡연자가 된 이후 14살에 헤로인 까지 경험해 보았다고 한다. 앤서니는 힐렐과의 만남 이후 더욱 강력하고 깊게 마약에 빠지게 되기도 하는데,[3] 그는 막장 10대의 삶을 사는 동시에[4] 고등학교 내내 훌륭한 출석률과 성적을 내고 UCLA에 입학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마약 중독의 영향으로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으며, 3집 활동 때 중독 증세가 심했다. 그러나 힐렐 사후 마약을 끊겠다는 의지로 독하게 재활 센터를 다니는 등의 노력을 하며 마약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으며, 이후 공석이 된 기타와 드럼 자리를 메우기 위해 플리와 오디션을 열어 존과 채드를 영입하며 밴드 활동을 이어나가게 된다. 또한 Blood Sugar Sex Magik 이후 밴드를 탈퇴하고 마약에 빠져 엉망이 되어있던 존에게 기타를 사주기도 하며 열심히 설득하여 밴드에 다시 재합류를 시키게 된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3. 음악적 특징[편집]


락밴드의 보컬리스트인 만큼, 특색있는 노래 스타일과 가창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는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초창기 앨범인 The Red Hot Chili Peppers의 수록곡들을 들어보면 알 수 있듯, 노래가 아닌 거의 랩에 가까운 노래를 했었다. 그래서 이후 기타 존 프루시안테가 언급하길 앤서니의 랩에 가까운 보컬 스타일에서 멜로디 비스무리한 무언가를 부르게 되기까지의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며 불만 아닌 불만을 언급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독특한 랩 스타일 덕분에 Give It Away나 Around the World 같은 랩 명곡들도 많이 탄생시키며 그만의 스타일을 확립하게 되기도 하였다.

그의 찰진 랩핑을 볼 수 있는 대표곡인 Give it away.

또한 노래를 할 때의 톤도 매우 매력적인데, 적당히 비음을 섞어 무언가 뻥 뚫린 소리는 아니지만서도 그만의 찰진 톤을 만들어 팬들에게끔 그의 노래가 다시한번 생각 나게 한다. 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RHCP의 노래를 커버한 것을 들을 때 무언가 비어있는 듯한 심심한 느낌을 받게 하기도 한다. 음역대도 은근히 낮은 편이 아닌데, 나이를 꽤나 먹은 지금도 2옥타브 솔~라는 거뜬히 내는 것으로 보아 젊은 시절에는 꽤 높은 음역대를 가지고 있었을 듯.

앤서니의 음악적 특징 하면 작사 능력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는 영미권의 모든 팬들의 이야깃거리이기도 하다. 사실 웬만한 노래들의 가사를 보면 도통 이게 무슨 소리인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라임에 맞춰서 가사를 쓰는 경우도 많다.[5] 그래서 그런지 여러 인터뷰에서 어떤 곡의 전체적인 주제나 특정 가사가 의미하는 바를 밝히는 인터뷰들이 많이 있다. 다만 여러 자료들을 통해 가사의 모티프가 된 요소들을 이해하고 가사에 접근해 본다면, 앤서니 키디스가 사실은 개인적인 경험이나 하나의 발상으로부터 시어들을 끌어오고 또 그것을 발전시키는 창의적인 능력이 아주 뛰어난 작사가라는 점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6]

그렇다고 모든 노래들이 난해한 운율놀이인 것은 아니며, 직관적으로도 잘 이해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다. 밴드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인 Under the Bridge가 대표적인데, 이 곡에서 앤서니는 절친을 잃은 상실감, 마약에 대한 유혹, LA라는 도시에 대한 애정 등 여러 감정을 명쾌하게 잘 담아내고 있다.

또 그의 특징 하면 무대에서 방방 뛰어 다니며 노래를 하는 퍼포먼스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The Uplift Mofo Party Plan 활동 당시에는 매번 스탠드를 잡고 장발의 머리를 흔들며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고, Blood Sugar Sex Magik 활동 때에도 노래를 부르며 절대로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등 팬들의 환호성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어쩌면 말 그대로 나체로 주요부위에만 양말 하나를 두르고 공연을 하기도 하는 등 매번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밴드의 퍼포먼스의 근원이 된 게 앤서니의 영향력일지도 모른다.



4. 여담[편집]


흔히 알려진 괴팍하고 활발한 양아치 이미지와 달리, 세계 최고의 명문 대학 중 하나인 UCLA의 동문이다. 비록 전업 음악인 활동을 위해 중퇴했지만, 지금도 종종 연설이나 공연을 위해 대학을 방문한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마약 딜러였다고 한다.

90년대 했었던 특유의 찰랑거리는 장발로도 유명한데,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활동한 Californication이전의 모든 앨범에서 그의 머릿결 좋은 장발을 감상할 수 있다.

몸 관리가 아주 철저하다. 나이가 환갑을 바라보는 지금도 배에 선명하게 복근이 있고, The Getaway 활동을 위해 관리를 하고 나왔을 때는 젊은 시절에 버금가는 탄탄한 몸매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앤서니 본인의 인터뷰나 미국 잡지의 기사 내용들을 훑어보면 수영, 러닝 같은 운동을 꾸준히 할 뿐만 아니라 식단도 고기 없이 채소와 생선 위주로 꾸리는 등 여러모로 철저한 관리를 하는 모양이다.

팬들 사이에선 공연에서 음정이 엉망인 것과 함께 가사를 잘 까먹기로 유명하다. 라이브를 들어보면 꽤나 자주 운율만 맞춘 틀린 가사로 노래를 부른다.

키디스의 할아버지대에 집안이 리투아니아에서 이주해왔다고 한다.

모히칸 혈통이 일부 존재한다. True Men Don't Kill Coyote나 Can't Stop의 가사에도 해당 내용을 담은 내용이 있다. 위에 언급한 원주민 문신도 이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등엔 천둥새 문신이, 왼쪽 팔엔 Chief Joseph[7]이 큼직하게 새겨져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앤서니는 2012년 플레어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13살 이었을 때 당시 29세 였던 가수 셰어성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고 밝힌 바가 있다. 이는 잘못된 사실이다. 이 기사를 최초로 유포한 이탈리아 언론에서 그의 자서전을 보고 잘못 해석해 이태리어로 기사를 썼고, 이것이 다시 영미권 매체에 의해 기사화되며 잘못된 내용이 퍼져버린 것이다.

이 기사를 보면 여기에서는 단지 셰어가 앤서니의 베이비시터 비슷한 역할을 했으며, 셰어와 앤서니가 같은 침대에서 자고 있는데 앤서니가 잠든 줄 안 셰어가 옷을 벗었고 앤서니는 자는 척하며 그녀의 알몸을 보았다고 서술되어 있다. 앤서니의 자서전 Scar Tissue에서 이 부분이 언급되는데, 이것을 이탈리아 언론에서 성관계를 맺었다고 잘못 파악해 기사를 썼고 그 사실이 퍼진 게 정설인 듯 하다. 당시 그의 아버지가 셰어의 남편이던 소니 보노와 친분이 있어서 셰어가 앤서니를 자주 봐줬다고 한다.

Around the time my hormones started raging, I had the wonderful experience of being babysat one night by Cher. I was in the eighth grade and still hanging with Sonny and Connie from time to time, and for some reason, they got jammed up, so Cher volunteered to watch me for the night. We camped out in her bedroom, having a heart-to-heart talk for hours on end, really getting to be friends for the first time.

After a while, it was time for bed. Because it was a large house and I might get spooked being alone, Cher let me crash on her bed until Sonny and Connie came to pick me up. In my mind, there was a bit of tension—not that I was going to make any moves on this woman, just the idea that I’d be in bed with such a gorgeous creature. But I thought it was okay because we were friends.

Then Cher got up to go to the bathroom and get ready for bed. It was dark in the bedroom, but it was light in the bathroom, so I watched her take off her clothes, all the while feigning to be on my way to sleep. There was a woman’s naked body, and it was long and slender and special and just thrilling. Not that I had the wherewithal to want some physical relationship with her, but in my mind, it was a stimulating and semi-innocent moment. After she put on her nightgown, she walked back into the room and got into bed. I remember thinking, “This is not bad, lying next to this beautiful lady.”



참고로 그의 동정 상실은 12세에 아버지의 여자친구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1] 상술했듯 앤서니의 아버지는 무명 배우 겸 마약 딜러였다. 블래키 다멧이라는 이름으로 배우활동을 했으며, 앤서니도 어린 시절 아역배우로 몇 편의 영화에 나온 적이 있다.[2] 이후에 당시 캘리포니아 여행을 갔던 것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험 중 하나였다고 밝히기도 했다.[3] 힐렐은 결국 이후 헤로인 중독으로 사망하게 된다.[4] 15살 때는 다이빙을 하다가 허리가 부러진 적이 있다고 한다...[5] Californication의 수록곡 Around the World에서는 아예 딩댕동 동댕댕동 동딩댕 이라는 가사를 넣기도 했다(...) 다만 이건 플리의 딸이 좋아해서 넣은 가사.[6]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dstory&logNo=110040336656 모 블로거가 작성한 By the Way 해석. 라임만을 위한 듯한 가사 속에 숨겨져있던 뜻을 유추해 볼 수 있다.[7] 네즈퍼스족 출신의 음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