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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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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설명
3. 역사적 변천
4. 비동양권의 경우에
5. "동양" 내부의 오리엔탈리즘
7. 비판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은 1970년대영국령 팔레스타인 태생인 미국 문학평론가 에드워드 사이드가 주장한, 서구 중심의 동양관(비서구권)에 기초한 각종 담론들을 총칭하는 낱말이자 동양에 대한 편견 및 고정관념을 뜻하는 말이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지적하기 이전에 오리엔탈리즘이란 주로 '동양학'을 가리키는 낱말이었다.


2. 설명[편집]


에드워드 사이드영국령 팔레스타인기독교를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복잡한 정체성이 서구인들의 편협함을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주로 중동과 인도에 대한 서구의 시각을 드러내는 언설들을 자신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정리했다.

저서의 핵심은 동양에 대한 서구의 지식은 현실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라 '동양'의 여러 사회가 본질적으로 서로 닮아있으며 '서구'의 사회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선입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 선험적 지식이 '동양'을 '서양'의 안티테제로 놓는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 관계에는 힘이 작용한다.

예시:
  • 동양 사람들은 전부 머리가 새카맣고 눈이 째져 있으며 키가 작다.
→ 실제로는 가끔 자연적으로 갈색 머리도 나오고, 눈에 크게 안 띄어서 그렇지 고동색 계통도 상당히 많다. 평균 신장으로 따지면 한국의 경우 남부유럽과는 비슷하거나 되려 더 크고, 서부유럽과도 큰 차이는 없다. 게다가 눈도 타원 형태인 눈도 있고 쌍꺼풀이 진한 눈도 있는 등 다양하다. 심지어 당장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남아시아엔 피부만 회색~검정색인 코카소이드 계통의 민족들이 많다.
  • 특히 중국만을 염두에 두고 "중국인들은 전부 손톱이 길고 요사스럽게 생겼다"는 표현도 많다. 이를테면 푸 만추. 땡땡의 모험에도 '동양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설명하는 장면으로 잠깐 등장. 실제로 중국에서 땡땡이 만난 중국인들은 편견과는 다른 일상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물론 악수가 배꼽 인사를 하는 것과 같이 완전히 같지는 않고 차이도 있다는 점도 묘사된다. 이는 전근대 중국의 왕족들이나 상류층들 사이에서 실제로 손톱을 길게 기르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서태후의 손톱)
  • 동양 사람들은 권모술수에 능하다.
→ 고대 로마 정치사 또한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한다. 현실의 서구고 동양권이고 정치판은 죄다 이렇다.
→ 실제로는 중국의 난징 천주교난, 남명영력제의 가톨릭 공인 시도, 일본의 시마바라의 난카쿠레키리시탄 문화, 조선의 자생적 천주교 전래 등을 보면 오히려 옛날에도 서양과 같이 기독교 신자가 분명히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2010년대 기준으로는 동양권에서 기독교 신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필리핀은 인구의 약 90%가 가톨릭이며, 대한민국은 길거리에서 십자가를 찾는 게 어렵지 않을 만큼 교회들이 퍼져있으며, 국민의 60%가량은 아예 무종교. 오히려 유럽에서 기독교 신자들이 줄어드는 현실이다.아시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은 공산화와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무신론자가 많다. 또한 그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인도에서도 이슬람교힌두교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흔히 말하는 '동양'을 깔보는 선입견이나 풍조가 오리엔탈리즘이 아니라, 동양이라는 범주 자체가 오리엔탈리즘이다. 전혀 상관이 없는 수많은 제국을 서구의 입장에서 타자화해 동일한 담론으로 묶는 것이 바로 오리엔탈리즘의 기본 전제다. 따라서 사이드의 이 저서가 출간된 이후로는 '오리엔트'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오리엔트라는 단어가 완전히 사장된 것은 아니며, 예전에 쓰던 명칭인 중동(Middle East)은 '지중해의 입장이 담겨있는 용어'이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주변의 국가들을 '오리엔트'라고 부르고 있다. 비슷한 이유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는 극동(Far East)이라고 불렸다. 현재에 와서는 아시아라든지 동양 같은 단어가 거의 똑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어서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즉 오리엔탈리즘은 단순히 동양에 대한 서양의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 등을 비난하는 용어가 아니며 서구에서 동양을 인식하고 정의하고 묘사하고 연구하는 그 담론 전체를 아우르는 용어이다. 학문, 희곡, 회화, 문학 등 서구에서 생성된 담론 속 '서구가 동양을 인식하는 방식'을 분석하고자 만들어진 용어다. 그러므로 비서구권 나라의 문화를 깔보는 서양인에게 '이런 오리엔탈리스트!'라고 일갈하는 식으로 써서는 안 된다. 실제로 저런 상황을 마주하면 차라리 Racist(인종차별주의자)라고 하는 편이 낫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의 기저에는 문명화되고 우월한 서양보다 열등한 동양이라는 전제가 깔려있기 마련인 것이 현실이다. 예외라면 불교, 힌두교나 그에 기반한 문화들은 평화적이기에 물질문명에 찌든 서구사회에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나 몇몇 공동체주의 성향 정치철학자들이 말하는 "동양권에는 서구권에서 잃어버린 덕과 정의가 살아있다"는 등의 주장들이 있다. 그런데 이 또힌 '포지티브 오리엔탈리즘'의 예로 볼 수 있다. 오리엔탈리즘적 편견이라고 지적받는 부정적 인식들 사이에도 대조적인 것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동양인들은 비굴하고 소극적이며 겁이 많다." ↔ "동양인들은 잔인하고 무례하며 사기를 잘 친다." 와 같이 모순된 편견도 존재한다.

《오리엔탈리즘》에서는 주로 중동과 인도에 대한 서술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중동과 인도를 제외한 비서구권에 대한 논의는 없으나, 이후에 비서구권을 대하는 근대 서구권의 시각을 분석하는 데 유효한 이론으로 각광받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짧게는 시누아즈리나 튀르크리부터 길게는 오리엔트에 대한 고대 그리스의 인식까지 그 기원을 소급할 수 있다. 그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 이질적인 것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 대상화이다.

근대 서구문명의 강력한 영향을 받은 나머지, 비서구권도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을 스스로 투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내재화된 오리엔탈리즘'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내재화된 오리엔탈리즘' 언설로는 소위 태평양 전쟁 시기에 일본에서 외친 구호인 '근대로의 초극(近代への超克: 동양의 정신문명으로 근대 서구의 물질문명을 극복하자는 의미)'이 있다.

서구권의 영화나 드라마에도 심심찮게 등장하며, 작품에 따라 상당히 묘하게 녹아있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동양의 신비성이나 이념을 강조하는 형태부터, 직접 일본도를 든 사무라이나 때로는 중국과 일본풍이 뒤섞인 닌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아시아 나라들의 문화 차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 한다. 한국인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의 문화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나마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같은 네덜란드 문화권이고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은 같은 북게르만 문화권이기에 참작의 여지는 있다. 물론 이렇게 구별하는 것도 유럽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의 얘기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편이다.

이러한 성향은 만화에도 등장한다. 서구권에서는 영어식 이름이나 지명, 소재가 등장하는 만화 못지 않게 동양풍 배경과 소재가 등장하는 만화도 인기를 끌고 있다. 동양풍 복장과 소재를 이용하는 드래곤볼, 나루토, 블리치 등이 이 오리엔탈리즘과 맞아떨어져서 영미권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오리엔탈리즘론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 계열의 학자들이 흔히 일으키는 문제이지만 이론의 검토 대상이 너무 방대하다 보니 사실문제를 정확히 검토하지 않고 논증에 활용하는 일이 있어 설득력을 잃기도 한다.

동명의 저서는 국내에도 번역되어 있다. 교보문고에서 출판했고, 번역자는 영남대학교 박홍규 교수다. 그런데 번역자가 법학자다 보니 사이드가 방대하게 인용한 문예 작품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각주를 통한 보충이 부실하다. 반면에 역주 및 역자의 후기에는 번역자 본인의 성향이 매우 강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다가 오히려 옥시덴탈리즘 성향을 보이기도 하고, 오리엔탈리즘과는 관련이 없는 개고기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게다가 번역된 문장이 정제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3. 역사적 변천[편집]


언급한대로 '오리엔탈리즘' 이라는 용어 자체는 1978년에 출간된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가 기원이기는 하지만 서구의 동양학을 지칭하는 말은 그 전부터 있어왔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오리엔트를 저열하고 퇴폐한 전제군주정이라 멸시했을 망정 야만인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대신 설화를 통해 그리스인이 세운 나라라고 주장했다. 이건 이집트도 마찬가지. 당대부터 페르시아 제국은 수준 높은 문명국이었고, 로마 제국 시절에도 파르티아, 사산 왕조는 야만국이 아니었으며 이들과 교류하던 유럽인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중국에 대해서도 교역을 통해서 세리카 등으로 불렀는데 세리카는 비단을 뜻하는 라틴어 sericum에 a를 붙인 이름이다. Espania, Britannia, Italia, Croatia, Serbia, Romania 등 국가나 지명 뒤에 붙는 A이다. 비단이 서양에 전래된 것은 고대 그리스 시기부터이며 로마 제국 시절에도 비단이 꽤 사용되었다. 참고로 영어의 Silk는 라틴어 sericum, 더 정확히는 라틴어 sericum의 기원인 고대 그리스어 sērikós가 기원이며 이것은 다시 중국어 絲(si, 실 사)에서 온 것이다. 폼페이 유적에서 중국제 비단 옷의 모습이 그려진 벽화가 발굴되기도 했다. 이처럼 중국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저 멀리 그런 곳이 있다는 사실을 일단 알고는 있었다.

중세이슬람 제국 전성기에 서구 유럽 문명은 대체로 이슬람 세력의 침략을 당하는 입장이었다. 십자군 전쟁, 레콘키스타, 시칠리아 탈환과 노르만의 알제리 정복 등의 반격도 있었으나 유럽 문명의 기원인 고대 로마의 영토인 팔레스티나, 북아프리카, 아나톨리아 등이 모두 이슬람 세력의 손에 넘어갔고,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발칸 반도가 모두 먹히고 중부 유럽까지 공격을 받았다.

중세 유럽인들도 예루살렘성지순례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이슬람 세력과의 교역, 포로생활, 십자군 전쟁, 레콘키스타, 시칠리아 탈환을 거치며 남겨진 이슬람 문명의 모습 등을 통해 이슬람 문명이 야만스러운 문명이 아니라 유럽 문명 못지 않게 발달한 문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중세 유럽인들은 동양인들을 신심없는 이교도라고는 욕할지언정, 열등한 야만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중세까지만 해도 기독교의 가치관이 깊게 남아 있던 탓에 동방 문명을 상종하지 못할 이교도라 볼 뿐이지 이들을 연구하고 관심의 대상으로는 보지 않았다.

다만, 저렇게 기독교의 위상이 높던 중세유럽에서도 이미 몇몇 편리해 보이는 문물은 이교도들인 아랍에서 받아들였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라비아 숫자. 원래 인도 기원이니 인도 숫자라 불러야겠지만, 유럽에서는 중동을 거쳐 들어왔으므로 아라비아 숫자(arabic number)라고 부른다. 아라비아 숫자는 1200년대 초반에 유럽에 들어왔으며, 중세 끄트머리인 1400년대 후반부터는 교회에서조차 아라비아 숫자를 썼고, 1500년대 중반부터는 일상생활에서도 로마 숫자를 거의 몰아내었다. 그 밖에 물질적인 것들로 면직물(인도기원이지만), 시럽, 소다(음료수) 등등은 모두 중세에 중동에서 유럽으로 들어왔으며 연금술과 거기서 이어지는 화학도 중동을 통해 도입되었다.

그런데 근세에 이르자 유럽에서 동양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이슬람 세력은 더 이상 유럽의 위협이 아니었으며, 대항해시대의 개막으로 중동을 넘어 인도나 중국과도 교류하게 되면서 이들에 대한 호기심도 생겨났다. 또 계몽주의의 발현으로 유럽에서 기독교의 색채가 옅어짐에 따라 동양인들을 사악한 이교도들로 보는 관점이 아닌 우리들(유럽)과는 또다른 문명이 있는 세계로 바라보기 시작했으며, 이 시점부터 유럽의 작가나 예술가들이 동양의 문화를 자신들만의 시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고, 동양을 연구하기 시작하는 학자들도 나타났다. 당시 이들을 오리엔탈리스트(Orientalist)라고 불렀다.

이 시절에 전 유럽에 걸쳐서 동양풍 유행이 나타나게 되었다. 중국풍이라고도 번역하는 시누아즈리(Chinoiserie), 터키풍인 튀르크리 등이 퍼졌으며 로코코 양식 전반에 동양풍 유행이 나타났다. 치펜델 양식(chippendale style)이라 일컫는 중국식 가구 스타일이 널리 유행했으며, 중국산 도자기가 널리 쓰였고 아예 유럽인들이 우리도 중국풍 도자기를 한 번 만들어보자해서 나온 게 오늘날에도 유명한 본차이나 도자기다. 건축양식 중에서는 영국의 로열 파빌리온, 프랑스 베르사유 궁의 트리아농 궁 등 동양풍 색채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들이 널리 등장했으며, 동양식 파고다 스타일 건축이 널리 쓰였다.

회화양식 중에서도 프랑수아 부셰, 크리스토프 위에 처럼 동양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화가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 때의 오리엔탈리즘은 오히려 동양을 신비하고 환상적이며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오스만 제국데브시르메 제도나 한자 문화권의 과거제도를 소개하며 '동양의 능력주의'는 근대 국가를 지향하던 계몽주의자들이 여전히 유럽 사회 전반에 남아 있던 봉건제적 정치적 분화, 귀족 권력의 잔재 등을 비판하는데 전형적으로 쓰인 레퍼토리였을 정도. 우습게도 정작 실무 능력은 대학에서 교육받고 오랫동안 경력을 쌓은 서양 관료들이 훨씬 우수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이 시기에 서구에서 다른 문명을 대등하거나 우월한 상대로 간주했던 것은 아니다. 오스만과의 관계 변화에 따른 튀르크리의 발흥이 대변하듯이 당시의 오리엔탈리즘 열풍은 대항해시대의 개막 뒤에 타 문명권에 대한 확고한 질적 우위를 점한 서구에서 지구 방방곡곡을 탐험하며 외국의 신기하고 이질적인 문화를 즐긴 것의 연장선상에 있다. 중국처럼 타 문명을 오랑캐로 멸시하지는 않았지만 동경이나 열등감을 느끼지도 않았고 오히려 흥미로운 연구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중국에 대해서는 아직 막연한 환상이 남아 있었지만, 이 시기에 이미 서구에서는 이슬람과 인도를 후진적인 문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18세기에 이르면 서구에서 동양을 바라보는 시각이 또다시 달라졌다. 산업 혁명 이후에 유럽문명이 전세계를 지배하는 패권문명이 되면서 제국주의 시대가 열려 비서구 각국이 유럽열강들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시기가 되었다. 이렇게 되자 이 때부터는 서양에서 비서구인들을 여지 없이 열등하고 무능력한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비판하는 식민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오리엔탈리즘은 바로 이 시기를 말하는 것이다. 즉, 식민지화를 정당화하고 서양의 우월함을 내세우기 위해 동양을 열등한 존재로 묘사했다는 것이다.

다만 에드워드 사이드의 정의를 떠나서 원래 오리엔탈리즘은 반드시 제국주의의 시각으로 동양을 열등하다고 바라보는 것만이 아니라, 서양에서 동양을 인식하고 정의하는 시각 전반을 이르는 말이라는 것은 위와 같다.


4. 비동양권의 경우에[편집]


오리엔트라는 말은 라틴어 'oriens'에서 왔으며 oriens는 원래 '뜨다'를 의미한다. 물론 해가 뜨는 곳, 즉 동쪽을 뜻한다. 오리엔탈리즘은 동양, 즉 아시아 문명에 대한 시각을 말한다. 그런데 백인우월주의의 시각으로 타 문명을 낮추어 보는 경우에도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단어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남북 아메리카 원주민,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원주민, 오세아니아, 태평양 원주민들에 대한 시각은 원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는 없다. 애초에 이곳은 오리엔트도 아니니, 엄밀히는 이들에 대해서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말도 성립할 수 없다. 지금도 영어의 오리엔탈리즘은 원칙적으로는 이들에 대해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럴 때는 그냥 간단하게 인종차별이라고 부른다.

유럽에서는 고대부터 교류하던 동양과는 달리 신대륙,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원주민들과 대등한 관계로 교류한 적도 없고 인종주의가 타파되는 20세기 전까지는 아예 처음부터 열등한 존재로 여겼다. 바야돌리드 논쟁 등으로 알 수 있듯이 그나마 양심적인 유럽인들은 원주민들을 교화의 대상 정도로는 보았지만 자신들과 대등한 존재라고 여긴 적은 20세기 전까지 한 번도 없었다. 북미에서는 힘이 약했던 초기에 식민지 이주민들과 원주민들이 비교적 대등한 교역관계를 맺는 일이 있었지만 유럽에서 대등한 존재로 여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때문에 이런 단어가 생겨날 여지도 없었다.

간단히 예를 들면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이 있다고 비판받는 인디아나 존스 같은 작품은 'Indiana Jones', 'Orientalism'으로 검색하면 학술 서적, 문서, 언론기사도 수두룩하게 나온다. 물론 인디아나 존스는 4편을 제외하고는 동방이 배경으로 1편은 이집트, 2편은 인도, 3편은 터키(사실 주요 무대는 유럽 전역이다)이니 오리엔탈리즘이 맞다. 영화 300도 오리엔탈리즘적이라며 비판받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역시 식민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는 아포칼립토를 다루는 학술 서적이나 언론 기사는 'Apocalypto', 'Orientalism'으로는 잘 나오질 않는다. 물론 'Apocalypto', 'Racism'이라고 검색하면 숱하게 나온다. 오리엔탈리즘이 아니라고 해서 비판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인종차별이라고 비판한다는 말이다. 다만, 원칙적으로는 이렇다는 것이고 영어로도 신대륙과 관련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용어를 쓰는 사례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는 주로 일반인들이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 등에서 잘 모르고 쓰는 것이지 학술적, 전문적으로는 이렇게 부르는 일이 거의 없다.


5. "동양" 내부의 오리엔탈리즘[편집]


흔히 동북아시아,[1]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서아시아, 중앙아시아를 모두 동양으로 묶는다. 그런데 이 모든 지역은 역사적으로 서로 거의 교류가 없었던, 아주 남남이나 다를 바 없는 지역들이다. 사실 동아시아인, 남아시아인, 서아시아인, 중앙아시아인은 각각을 "같은 동양 문화권"이라고 인지하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한국인만 해도, 전공자거나 대(大)중동의 역사/군사 등의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대(大)중동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이슬람, 히잡, 밸리댄스, 알라딘, 아라비안 나이트, 테러리즘, 성차별"가 전부인 사람이 수두룩하다. 게다가 1990년대에 민주화가 되면서 미국 문화가 유입되었는데 그중에서 1970년대까지 미국에서 성행했던 뉴에이지가 유입되어 인도, 티베트 등 남아시아에 대한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관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현재에도 대(大)중동 문화를 몰이해하여 논란을 빚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유튜브 콘텐츠 튀르키예즈 온 더 블럭에서 튀르키예인 흉내를 낸답시고 아랍 복장을 입었다가 튀르키예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은 것이 그 사례도 있다. 아랍 옷 입고 터키 아이스크림 판 이용진...제작진 사과 “새 의상 준비 중”(조선일보).

남아시아를 인파방스라고 멸칭하면서 성범죄자, 여성혐오자, 사기꾼, 거지로 넘쳐나는 야만지역이라고 욕하는 사례도 네이버, 다음 가리지않고 뉴스 댓글에 흔하다. 인파방스는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의 앞글자만 따온 신조어이다. 대개 부정적인 목적으로 쓰이고 있다.

한편 영미권서유럽을 같은 '서양'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간과하기 쉽지만, 영미권과 서유럽도 사회, 문화 측면에서 차이가 상당히 많으며, 이러한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과장하여 서로간에 갈등을 빚는 사례도 있다.


6. 사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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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비판[편집]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는 지난 2세기 간의 서구 및 러시아 학자들의 '오리엔탈리즘'을 나무라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공들여 연구하지 않았다면 이슬람권을 비롯한 동쪽 세계의 지적 활기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 상당 부분은 결코 오늘날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철저한 국제적 공조 덕에 가능했다.

잃어버린 계몽의 시대 / 프레더릭 스타 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개념을 오남용하면 상술한 사이드 쿠틉의 극단적 사고방식과 다를 바 없이, 제3자가 자신들을 비판, 비평하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배타주의로 이어지기 쉽다.

20세기 후반부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이 화두가 되면서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는 부분이 있는데, 오늘날 중동/중앙아시아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한 것에는 19세기 오리엔탈리스트들의 기여가 결코 적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발 오일머니 때문에 서구 학자들의 중동사/중동문화 해석은 무조건 다 틀린 것이라고 강요당하는 분위기마저 조성되어 있는데,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으로 서구 학자들의 기여를 모두 평가절하하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R. A. 니콜슨이 아랍 문학사 연구에 기여한 바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르다.

해당 개념의 주창자로 알려진 에드워드 사이드영문학자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은 영문학 고전을 상당히 많이 인용했기 때문에 한국어 번역본으로는 그의 책의 진가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그의 저서가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이런 부분이 제대로 번역되지 못해서 한국어판 번역본 기준으로는 제대로 된 책이라고 보기 힘든 수준이기도 하다.즉 사이드는 중동아시아 전문가가 아니다.

비교하자면 190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중동아시아에 대하여 전공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양성과정은 런던파리베를린로마이스탄불모스크바중앙정부부처, 싱크탱크, 명문대에서 극소수의 자국민을 선발한 다음에 약 10년간 이런저런 전공학문들(언어학, 논리학, 역사학, 지리학, 사회학, 고고학, 인류학, 종교학)을 섭렵하면서 현장학습과 실무연수를 모두 마치고, 학석박사학위를 받아 연구원이나 정보기관원 및 고급관료와 대학교수로 임용하는 절차였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그런 절차를 밟지 못했고, 전공 분야도 문학과 철학에 한정되어 있으니, 그의 논거는 허점이 많다. 실제로 그는 중동아시아 학술연구에 어설프게 덤벼드는 매우 큰 잘못을 저질렀다. 그래서 중동아시아 전공학문(앞에서 언급한 학문들)의 대석학급 학자들인 버나드 루이스, 클로드 카엥, 루이 마시뇽, 파울 크라우스, 할릴 이날즉, 조셉 플레처 등은 하더라도 이론과 현장에 모두 밝은 VIP급 능력자로서 사이드를 명색이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논설문의 기초지식도 제대로 모르면서 엉터리로 덤비냐고 맹렬하게 비판했다.

따라서 오늘날에 에드워드 사이드의 이론을 그대로 잘못 인용하면, 이를테면 오늘날의 시점에서 동로마 제국의 역사에 관련한 논문을 쓰면서 18세기 에드워드 기번로마제국 쇠망사에 나온 낡은 이론을 재인용하는 수준으로 우스꽝스러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방패를 내세우면서, 서구인에게 동양에 대한 학습을 강요하는 문제도 있다.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동양인은 과연 서양을 깊이 있게 알고 있냐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대한민국 외교부에서 발틱 국가를 발칸 국가로 잘못 표기해 놓고 방치하다가 라트비아 대사가 외교부에 항의한 사건도 있었다.#1 #2.

북미와 유럽 등으로 큼직하게 구분하는 정도면 그나마 양반이고 그냥 '서양=미국'으로 퉁치는 사람이 넘치는 게 현실이다. 또한 일본산 서브컬처에서는 중세와 근대가 버무려진 시대를 배경으로 독일과 프랑스가 섞인 공간에서 영어와 독어가 섞인 이상한 이름을 쓰는 캐릭터들이 돌아다닌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든 문화권과 문화권의 관계에서든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이해가 필수적인 것일지, 그 기준을 외국인들에게 터무니 없이 올려잡는 게 아닐지 반성해야 할 일이다.

8. 관련 문서[편집]


[1] 동남아시아(특히 베트남)와 중국은 티베트가 위치한 남서부를 통해 자주 교류하기도 했으나, 한반도, 대만 섬, 일본 열도와는 거의 교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