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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살충제 요구르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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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울산 살충제 요구르트 사건

1998년 10월 14일 KBS 공개수배 사건 25시에 수배된 용의자 김영세
발생일
1998년 7월 19일
발생지
울산광역시
유형
살인
위치



1. 개요
2. 상세
3. 수상했던 점
4. 공소시효를 하루 남기고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1998년 7월 19일 울산광역시에서 김용민 군(당시 12세)이 고독성[1] 진드기 살충제 포스파미돈이 다량 함유된 요구르트를 먹고 22일 새벽에 사망한 사건. 아직 재판이 확정된 것은 아니나, 김용민 군의 아버지 김영세(당시 49세)가 유력한 용의자로 기소되었다.



범인은 아빠? 살충제 들어간 요구르트 먹고 사망한 아이.. 울산 살충제 요구르트 사건 | 그알 캐비닛

1998년 10월 14일자 공개수배 사건 25시에서 용의자 김영세가 수배되었고[2],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그것이 알고싶다 #904에서 상세히 다룬 바 있다.


2. 상세[편집]


1998년 7월 19일 오후 5시 10분, 멀리 뱃일을 떠났다가 1년 만에 돌아온 김영세는 햄버거를 먹고 싶다는 아들 용민이를 위해 울산광역시 남구 삼산동에 위치한 현대백화점 울산점[3] 으로 향했다. 용민이는 5살에 교통사고로 인해, 다리를 절뚝거리게 되어 거동이 불편했는데도 불구하고, 부자(父子)는 2km라는 꽤 먼 거리를 걸어 백화점에 도착했다. 부자는 음료수 코너에서 딸기맛 요구르트 3개[4]를 사서 스낵 코너로 향한다. 부자가 집을 나선 지 50분이 지난 오후 6시에 그곳에서 샌드위치를 구매한 뒤 샌드위치와 요구르트를 먹던 김 군은 한 모금 마신 뒤, "요구르트의 맛이 이상하다"며 이상 증세를 보이고, 먹은 걸 전부 다 게워내더니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김 군은 이를 확인한 식품관 직원이 119에 신고해,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55시간 뒤인 7월 22일 0시 55분에 끝내 숨졌다.

처음에는 대구 달성공원 독극물 요구르트 사건마냥[5] 판매되는 요구르트에 독극물을 주입하여 불특정 다수를 노린 범행일 가능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에, 이 사건 직후 울산광역시는 어디서 다시 나올지 모를 독극물 요구르트에 대한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러나 수사 결과, 우유팩에서 바늘 자국 등 외부에서 주입된 흔적을 찾을 수 없었고, 요구르트 제조 과정상 요구르트에 다른 이물질을 넣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에 경찰은 요구르트를 건넨 아버지 김영세에게 관심을 돌렸다.

그러나 때는 늦어, 김영세는 참고인 조사 후 목욕탕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끝으로 이미 잠적했다. 이후 김영세는 행방이 묘연하다. 실제로 2002년, 2004년에 울산, 언양의 도박장에서 김영세를 목격했다는 제보가 있었으나 검거에 실패하였고, 시골 아주 깊숙한 곳에 은둔해 살면서 가끔 도인 행세하며, 시골 마을 재래시장을 왔다 갔다 한다는[6] 제보가 들어온 적이 있었으나, 딱히 도움은 되지 못했으며,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잠적, 도주 중인 상태이다.

사건 당시부터 김영세의 행적들은 모두 모조리 엄청난 의문을 남겼다. "아들의 부탁으로 요구르트를 구매하였다"고 진술하였으나 CCTV 확인 결과, 본인이 요구르트를 구매하였다는 점, 사건 전에 수 차례 동일 백화점 식품관에서 같은 요구르트를 구입한 점, 살충제가 들어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사건 8일 뒤인 27일이었는데도 "요구르트에 독극물이 들었다"고 백화점에 항의한 점 등이 그것이었다.[7]

3. 수상했던 점[편집]


1년 동안 뱃일을 떠난 김영세가 7월 16일에 돌아왔고, 이로부터 3일 뒤에 용민이는 백화점에 따라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 중에 "용민이가 5살 때 교통사고를 당하고 나서 김영세가 보험금을 수령한 뒤, 용민이의 다리를 고쳐주지 않고, 그 돈을 김영세가 도박판에서 전부 탕진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사망한 김용민의 아버지 김영세는 '돈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냐'는 경찰의 물음에 '1년 동안 뱃일을 하면서 모은 돈이 꽤 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이 당시 김영세가 선원으로 일했던 의 선장직을 맡았던 사람에게 전화 연결을 통해 사실 확인을 해 보니, 김영세는 단 '8일' 동안만 선원으로 있었고, 이후에는 뱃일이 적성에 안 맞는다며 그만뒀다고 한다.

당시 백화점 판매원은 "아이가 중환자실에서 죽어 가는데도 백화점에 항의만 하고 있는 것이 이상했으며, 심지어는 웃으면서 병원을 나오는 김영세가 무척 수상해 보였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당시 용민이는 무척이나 남루한 차림으로 속옷마저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김영세는 그런 용민이와는 확연히 대조될 정도로 말끔하게 입고 있어서, 그 점도 보통 부자와는 달라 보였다고 증언했다.

백화점 직원은 일반적으로 식품을 먹고 탈이 나면 식중독을 먼저 의심하는데, 사건 직후부터 독극물 타령을 하는 김영세를 보고 수상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김영세는 강한 식초 냄새가 났기 때문이라고 증언했으나,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맡아 보라고 했던 샌드위치 매장 직원은 특별히 이상한 냄새를 맡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해당 살충제는 포스파미돈이라는 살충제인데, 살충제나 농약을 판매하는 사람이 말하기로는 포스파미돈은 냄새가 약해서 향이 나는 식품에 섞으면 알 수 없다고 한다. 게다가 약간 단맛이 나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요구르트에 섞었다는 뉴스를 보고는 농약을 잘 아는 놈이 범인이라고 수군댔다고 한다.

심지어 김영세는 용민 군이 죽었는데도 "큰아들(용민 군의 형)에게 기아 크레도스[8]를 사 주겠다", "백화점 측에서 해결하지 않는다면 아들의 시신을 리어카(손수레)에 싣고 시위하겠다"는 등 적반하장적 태도를 보였다.


4. 공소시효를 하루 남기고[편집]


사건 직후 한동안 사회면을 떠들썩하게 했으며, 김영세가 잠적 후 잊혔던 듯했다. 김영세가 행방불명된 후 2000년 공소 중지되었다. 그러다가 2013년 6월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재조사에서 제조 과정 중 독극물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당시 김영세의 진술에 대한 첨단 프로파일링 결과, 진술의 신빙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판명되어, 공소시효를 하루 앞둔 2013년 7월 17일 재차 기소되어 공소시효가 15년 더 연장되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2028년 7월 18일을 끝으로 만료될 예정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김영세가 검거되지 않아 재판을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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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농약의 독성을 분류할 때, 맹독성, 고독성, 일반 독성으로 나눈다. 포스파미돈은 맹독성보다는 약하고, 일반 독성보다는 강한 2번째 등급이다. 고독성 농약은 모두 2012년 독성 문제로 단종되었다.[2] 이후 2001년 상반기 중요지명 피의자 종합수배 전단에 고유번호 3번으로 등록된 바 있다. 당시 5번은 영주 공기총 살인사건의 범인 '김양호'였고, 2001년 하반기 중요지명 피의자 종합수배 전단에 고유번호 4번으로 다시 등록된다. 하반기 당시 5번은 칠곡 다부삼거리 납치 살인사건의 용의자 안중관이었다. 이후 2002년부터는 중요지명 피의자 종합수배에 수배되지 않았다.[3] 이 시기에는 아트리움에서 현대백화점으로 바뀌었으며, 지하에는 구조만 바뀌었을 뿐, 지금처럼 음식을 파는곳(스낵코너)이랑 식재료나 유제품을 파는 구간이 있었다.[4]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요구르트와는 달리, 현재 시중에 많이 진열되어 있는 덴마크 드링킹 요구르트처럼 우유팩에 들어 있는 요구르트였다. 하지만 용민 군이 사망했을 당시 나온 SBS 8시뉴스 화면 상의 그림에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요구르트 병에 빨대가 꽂아진 걸로 그려져서 나온다.[5] 다만, 달성공원 사건은 이 사건보다 훨씬 후인 2004년에 발생했다.[6] 아무리 도인 코스프레를 하면서 잠적해도 한 번 보면 강렬히 남는 인상 덕분에 그를 만난 사람들은 다 기억한다.[7] 당시 공소장 내용에 의하면, 김영세는 평소에 술을 마신 후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약이라도 먹여 용민이를 죽여야겠다 였고, 아들이 마시는 음료에 농약을 타기로 결심한 후, 용민 군이 죽으면 음료 회사나 백화점에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려 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8] 현재로 치면 기아 K5에 해당되는 차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