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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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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법조인, 정치인이다.
2. 생애[편집]
1957년,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에서 태어났다. 철원 김화공업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에 합격하였다. 이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 학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로 근무하다가 사직하고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강원도 철원군-화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자유당 김재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3년 공직자 재산 공개 파동에 따라 김재순이 국회의원직을 사임하여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자유당에 입당한 후 후보로 출마하여 민주당 김철배 후보[1] 를 꺾고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강원도 철원군-화천군-양구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다가 1997년 이인제를 따라 신한국당을 탈당하여 국민신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이후 국민신당에서 원내총무, 이만섭 총재 비서실장을 역임하였다. 1998년 국민신당이 새정치국민회의에 흡수 합당되자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이 되었고, 이후로는 쭉 민주당계 정당에서 활동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부터 2002년까지 행정자치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강원도 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후보가 출마하면서 표가 분산된 탓에 한나라당 박세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나라당 박세환 후보에게 설욕하였다.
임기중이던 2010년 1월, 위암으로 별세하였다. 장례식은 국회장으로 거행되었다.
3. 여담[편집]
- 정운찬 당시 국무총리가 이용삼 의원이 별세하자 빈소를 찾았는데, 고인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가서 조문을 했고, 가서도 각종 실언을 하는 바람에 구설수에 올랐다.
- 지역기반이 상당히 강했던 인물이다. 14, 15대 때는 보수성향의 여당(민주자유당 - 신한국당) 소속이니 그렇다 쳐도 16대 총선 때 부터는 강원권에서 열세를 보이는 경향이 강한 민주당계 정당의 후보로 나왔음에도 2번이나 당선되었다. 심지어 17대 총선은 열린우리당 후보가 안 나왔거나 열린우리당에 합류했더라면 민주당계 표가 분산되는 일 없이 당선도 노릴 수 있었다.
- 16대 대선 경선까지는 이인제와 정치적 행보를 같이 했으나, 이인제가 자유민주연합으로 이탈할 때 동행하지 않고 새천년민주당에 잔류했다. 이후 후단협을 했으나 온건한 성향 때문에 열린우리당 창당 당시에 이탈할 것이라는 설도 돌았다. 이후 잔류를 선언하고 원내대표에 도전했으나 낙선했고, 이후 당 내에서 온건파로 활동했다.
- 상임위원장을 상당히 젊은 나이(만 42세)에 지냈는데, 처음 국회의원이 될 당시의 나이가 만 35세로 상당히 젊은 나이에 정치인이 되었다.
- 평생 독신으로 산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