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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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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 늙어 만기(萬機)에 귀찮음을 느낀다. 하늘의 역수가 네 몸에 있다. 게다가 넌 안으로는 국정에 참여하고 밖으로는 군사를 총괄하니 오랫동안 사직에 공을 쌓았다. 신민의 소망을 채웠으니 내가 부탁할 인물을 얻었다고 가히 이를 수 있다. 너로 하여금 즉위하게 하니, 영원히 영광을 누릴 것이다!”
"吾旣老倦於萬機 天之曆數在汝躬 況汝內參國政 外摠軍事 久有社稷之功 允塞臣民之望 吾所付託 可謂得人 作汝其卽位 永孚于休!"
1. 개요[편집]
고구려의 제7대 군주. 휘는 수성. 한국사에 등장한 최초의 역사왜곡 논란이 없는 폭군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왕호 자체가 태조대왕 다음(次) 대의 군주이다. 진시황의 다음 황제라는 뜻의 이세황제와 같은 식이다.
고 기록하고 있다.#"그는 용감하고 체격이 건장하여 위엄이 있었으나 인자한 마음은 적었다."[4]
2. 의문의 가족 관계[편집]
《삼국사기》에 따르면 차대왕은 태조대왕의 동복동생[5] 이자 신대왕의 형이다. 그러나 중국 측 사서인 범엽의 《후한서》에는 수성(차대왕)이 궁(태조대왕)의 아들이자 백고(신대왕)의 아버지로 기록되어 있어 국내 기록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진수의 《삼국지》나 이연수의 《북사》에서는 고수성이 아예 등장하지 않고 궁이 죽자 아들 백고가 즉위했다고 한다. 한편 《삼국지》와 《북사》에서는 동천왕을 궁의 증손으로 기록해 놨는데, 동천왕은 신대왕의 손자이므로 신대왕은 태조대왕의 아들이 된다. 이 경우 차대왕의 족보는 미궁에 빠져, 태조대왕의 형제일 수도 아들일 수도 있게 된다.
단재 신채호는 《후한서》나 《삼국지》가 더 현실적이라 보고, 이를 채택해 차대왕과 신대왕을 태조대왕의 서자로 봤다. 연대상으로 《후한서》나 《삼국지》 측 의견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사실 태조대왕의 연대가 불확실해서 차대왕이 태조대왕과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 결론을 내리기가 애매한 상황이다. 일반적으로는 나이 차이가 무지하게 큰 동생임을 인정하거나 서자로 보는 두 가지 설이 채택된다.
3. 생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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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4. 《삼국사기》 기록[편집]
《삼국사기》 〈차대왕 본기〉
一年冬十二月 차대왕이 즉위하다
二年春二月 관내부 미유를 좌보에 임명하다
二年春三月 우보 고복장을 죽이다
二年秋七月 어지류를 좌보에 임명하다
二年冬十月 양신을 중외대부에 임명하다
二年冬十一月 지진이 일어나다
三年夏四月 태조왕의 장자를 죽이다
三年秋七月 무당을 죽이다
四年夏四月 일식이 일어나다
四年夏五月 점치는 사람이 점괘를 거짓 보고하다
四年冬十二月 겨울에 얼음이 얼지 않다
八年夏六月 서리가 내리다
八年冬十二月 지진이 일어나다
十三年春二月 혜성이 북쪽에 나타나다
十三年夏五月 일식이 일어나다
二十年春一月 일식이 일어나다
二十年春三月 태조대왕이 붕어하다
二十年冬十月 명림답부가 차대왕을 시해하다
즉위 4년차부터는 전부 자연재해 관련 기록뿐이다(...).
5. 대중매체에서[편집]
- 다음 웹툰 《위나암림》에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웹툰의 내용은 《맥베스》의 기본 스토리 얼개를 배경만 고구려로 바꾸고 거의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데[6] 그래서인지 차대왕이 태조왕을 밀어내고 왕위를 찬탈한 것으로 나온다. 태조왕이 너무 오래 살아서 동생인 차대왕이 갈등 끝에 결국 자신의 야심을 참지 못하고 태조왕을 손수 찔러죽이는 그러면서도 죄책감에 몸서리치며 더더욱 광기를 내뿜는 등의 장면에서 드러나는 차대왕의 심리 묘사가 인상적이다.[7] 실제 역사에서는 차대왕(수성)이 태조대왕을 살해하고 왕위 찬탈 음모를 꾸미는 것으로 나오기는 하나 실제로 실천에 옮기지는 않는다. 태조대왕이 "내가 나이가 들어서"라는 이유를 시작으로 상왕으로 물러나는 데서 마무리되는데 모르긴 몰라도 안 물러났으면 죽였을 것 같기도 하다. 허나 어째 고구려 왕이 칭제를 한다든지, 고조선 시대부터 내려왔다는 천부인을 고구려 태왕인 차대왕이 즉위식에 건네받는다는지 하는 내용을 보면 뭔가 환빠스럽다.
6. 둘러보기[편집]
[1] 《삼국사기》의 기록이다.[2] 《삼국사기》의 기록이며 《후한서》에서는 121년이라 기록하고 있다.[3] 이를 시작으로 완전히 고수성의 시대가 열렸다. 사실은 유언이었을 수 있다.[4] '그는 용감하고 굳세며 위엄이 있었으나 인자한 마음이 적었다.'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5] 원문은 동모제(同母弟)이다.[6] 초반부에 귀신이 왕이 되기 전의 수성(차대왕)에게 예언을 내리는 것도 맥베스와 비슷하다.[7] 다만 태조왕은 완전히 죽지는 않았고 심한 부상으로 인하여 식물 인간 상태가 되었다. 이는 삼국사기에서 태조왕이 차대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도 몇 년 동안을 더 살았다고 묘사한 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