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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카마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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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카마레나
Kiki Camarena

본명
엔리케 카마레나 살라사르
Enrique Camarena Salazar
출생
1947년 7월 26일
파일:멕시코 국기.svg 멕시코 메히칼리
사망
1985년 2월 9일
파일:멕시코 국기.svg 멕시코 과달라하라
소속
파일:미해병대.png 미합중국 해병대(전역/1970년)
파일:1200px-Seal_of_the_United_States_Drug_Enforcement_Administration.svg.png 미합중국 법무부 마약단속국

1. 개요
2. 생애
3. 죽음
4. 사후
5. 대중문화에서
6. 여담




1. 개요[편집]


DEA의 요원. 1985년 2월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마약 운반 카르텔에 붙잡혀 고문당한 이후 살해됐다. 그의 죽음은 1980년대 미국의 마약과의 전쟁의 불씨가 되었고 DEA의 권한 확대, 과달라하라 마약 카르텔의 멸망을 가져왔다. 키키가 살해당한 이후 미국이 자국 요원의 순직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목격한 다른 남미 카르텔들은 미국 DEA 요원들이나 CIA 요원들을 건드리면 아주 X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후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키키를 살해한 중간보스들은 전부 붙잡혀 미국 교도소에서 복역했지만 그중 라파엘 카로 퀸테로(Rafael Caro Quintero)가 2013년 멕시코 교도소에서 석방돼서 미국-멕시코 관계에 악영향을 주었다. 그는 FBI 10대 수배범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현상금 2천만 달러가 걸렸다. 2022년 7월 멕시코 당국에게 다시 체포되었다.#


2. 생애[편집]


1947년 7월 26일, 멕시코 메히칼리(Mexicali)에서 태어났다. 메히칼리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미국 캘리포니아멕시코의 국경 지대에 위치한 도시이다. 어릴 때 가족들과 함께 메히칼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미국 칼렉시코(Calexico)로 이민을 갔다. 가난했던 키키 가족은 미국에서도 생활이 순탄치 못했다. 그의 형 에두아르도는 가난을 탈출하고자 미국 해병대에 입대했다가 베트남전에서 1965년에 전사했고, 다른 형 에르네스토는 마약에 빠져 허우적대는 등 나락에 빠져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키키는 이런 상황을 타파할 수단은 군에 입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형이 순직했던 미국 해병대에 입대했고, 4년 뒤 1970년에 무사히 전역했다.

전역 후 칼렉시코로 돌아와 일반 경찰관으로 근무하다가, 임페리얼 카운티 마약전담반(ICNTF)의 위장 근무를 하는 특수 요원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1973년에 미합중국 법무부 마약단속국(DEA)이 창설되면서 스페인어 구사자들을 뽑았는데, 키키는 DEA에 들어가 칼렉시코 지사에서 특수요원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그의 여동생 미르나 또한 DEA에 같이 입사해 비서로 일했다.

1977년, 캘리포니아 프레즈노[1] 지사로 발령난 키키는 산 호아킨 밸리 지역에서 위장 요원으로 활약했는데, 푸에르토 리코 발음과 멕시코 발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해서 좋은 평을 받았다.

1980년, 미국 프레즈노에서 멕시코 과달라하라로 옮겨 일하고 있던 동료와 친한 친구가 키키에게도 과달라하라에 올 것을 제안했고, 당시 부인과 세 아들들이 있었던 키키는 가족들이 나은 환경에서 지내게 하고자 학군이 비교적 좋았던 과달라하라에 지원했다고 한다. 또한 DEA에서 승진을 하려면 해외근무가 중요했다.


3. 죽음[편집]


1984년 멕시코군은 DEA가 제공한 정보를 이용해 1천 헥타르에 달하는 마리화나 밭을 태우는 데 성공했다. 80억 달러에 달하는 손해를 본 과달라하라 카르텔은 키키가 DEA 잠복요원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1985년 2월 7일 대낮에 라파엘 카로 퀸테로의 지휘를 받는 과달라하라 카르텔시카리오들이 키키를 납치했다. 그들은 과달라하라 서부에 위치한 881 Lope de Vega Jardines del Bosque의 한 주택에 키키를 감금한 후 30시간에 걸쳐서 고문한 뒤에 살해했다.[2]


4. 사후[편집]


DEA는 키키의 죽음에 즉각 반응해 '작전명 레옌다'를 실행했는데, 이는 DEA 창설 이래 가장 규모가 큰 수사작전이었다.

키키에 대한 직접적인 살해 지시를 내린 에르네스토 폰세카 카리요(Ernesto Fonseca Carrillo), 라파엘 카로 퀸테로(Rafael Caro Quintero)를 체포했다. 멕시코 정부의 보호를 받고 활개치던 카르텔이었지만 미국 정부의 요청에는 속수무책이었고, 재빨리 체포돼서 40년형을 받고 멕시코 연방 감옥에 수감됐다.

키키의 고문을 책임졌던 의사들인 움베르토 알바레즈 마차인(Humberto Álvarez Machaín)과 하비에르 바스퀘스 벨라스코(Javier Vásquez Velasco) 또한 현상금 사냥꾼들에게 붙잡혔다. 이들은 미국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멕시코 정부의 강력한 항의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5. 대중문화에서[편집]


나르코스: 멕시코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배우 마이클 페냐가 연기했다. 과달라하라 카르텔을 파내기 위해 라파엘의 대마초 밭을 잠입해 정보를 캐고 멕시코 경찰과 함께 대마초 밭을 불태우는 등 열혈파 요원으로 그려진다. 이후 시즌 2에서는 그가 살해당한 뒤 DEA 요원들이 멕시코에 잠입해 납치 공모자들을 추적하는 레옌다 작전을 펼치는 것이 주요 스토리로 그려진다.

그 이후 시점인 나르코스에서도 언급된다. 키키가 일종의 수호자같은 상징으로 DEA 요원들을 지켜준다는 언급이 있으며 주인공인 하비에르 페냐가 시즌 3 마지막회에서 자신의 첫 임무가 실종된 키키 카마레나를 찾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10여년이 흐른 시점[3]임에도 그의 존재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드라마가 아닌 다큐멘터리로는 키키 카마레나 살인 사건을 심도깊게 다룬 The Last Narc가 있다.

6. 여담[편집]


  • 1988년 11월 자 《타임지》 표지 커버에 키키의 사진이 실렸다.

  • 2004년, 엔리케 카마레나 재단이 설립됐다.

  • 장남 키키 카마레나 주니어는 샌디에이고 카운티 고등 법원 판사를 지내고 있다. 아버지 키키가 사망했을 당시 11세였다.

  • 키키의 아내 제네바 카마레나는 키키가 납치된 날(2월 7일)과 시신이 발견된 날(3월 5일) 중에 납치된 날이 그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었기 때문에 이날을 좀 더 기일로 생각한다고 한다.

  • 에르네스토 폰세카 카리요는 2022년 현재도 살아있는데 장기복역 중 고령에 건강히 악화되어 2016년 가택연금으로 바뀌었다.

  • 라파엘 카로 퀸테로는 2013년 재판 끝에 불법체포라 하여 40년형에서 28년만 옥고를 치르고 풀려났다. 이후 그대로 실종되어 소노라 지역에 카보르카 카르텔을 만들고 다시 활동한다. 미국은 그를 풀어준 멕시코를 비난하고 FBI 10대 현상수배범에 올려 놓았다. 2022년 7월 다시 체포되었다



[1] 멕시코 국경 지대가 아닌 캘리포니아 중남부에 위치한 도시이다.[2] 의사와 약물을 동원해 기절하지 못하도록 고문했다. 부검 결과 두개골에서 드릴 자국을, 갈비뼈에서 골절을 발견했다.[3] 나르코스 멕시코의 배경은 1980년대 중후반, 나르코스 시즌 3는 1990년대 중후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