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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쓰치미카도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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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제103대 천황.
이름은 후사히토(成仁)로, 그의 치세때 센고쿠 시대의 서막을 연 오닌의 대란이 일어났다. 이후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오기마치 덴노때까지 황실은 무로마치 막부의 몰락과 극심한 대전란의 영향으로 매우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다.
2. 생애[편집]
고하나조노 덴노의 장남으로 어머니는 오오이노미카도 노부무네(大炊御門信宗)의 양녀(養女)였던 오오이노미카도 노부코(大炊御門信子)였다. 고쓰치미카도 덴노는 정식으로 맞이한 황후(皇后)가 없었고, 세 명의 황실 배우자를 두어 총 5남 7녀를 낳았다. 그 중 다이나곤(大納言, 대납언) 니와타 나가카타(庭田長賢)의 딸인 덴지(典侍, 전시) 니와타 아사코(庭田朝子)가 낳은 장남이 훗날 제104대 고카시와바라 덴노(後柏原天皇)가 되었다.
1464년 6월 21일, 후사히토 친왕(成仁親王)은 아버지인 고하나조노 덴노로부터 양위(讓位)를 받아 26세에 천황으로 즉위했다. 즉위 이후 약 3년 동안 고하나조노 덴노가 상황(上皇)이 되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고쓰치미카도 덴노가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아 무로마치 막부 쇼군 집안 내에서 후계자 문제로 갈등이 일어났다. 이 갈등은 일본 열도 전체의 무사 세력에게까지 확산되어 1467년 1월 11년에 걸쳐 지속될 오닌의 대란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수도 교토는 장기간의 전란에 휩싸여 사원, 신사, 황족들의 저택 등 많은 건물이 불타버렸다. 게다가 전란이 오래 지속되어 무사들이 황실의 영지까지 빼앗자 황실 재정은 매우 어려워져 고쓰치미카도 덴노를 비롯한 황족들은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다. 고쓰치미카도 덴노는 1477년 9월에 전란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무질서한 전란으로 황실의 권위는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고쓰치미카도 덴노의 재위기간 내내 이어졌다.
고쓰치미카도 덴노는 1500년 11월 21일, 58세의 나이에 병환으로 붕어했다. 이때 황실이 얼마나 가난했던지 붕어 직후 장례를 위한 자금을 동원하지 못해 시신이 몇 달 동안 황실 창고에 방치되었다가 기부금이 들어오고 나서야 장례가 치러졌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