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주 하원의원 ,(1981~1983 / 12선거구 ), 하와이 주 하원의원 ,(1983~1985 / 20선거구 ), 하와이 주 하원의원 ,(1985~1993 / 32선거구 ), 하와이 주 하원의원 ,(1993~1994 / 22선거구 ), 제9대 하와이 부지사 ,(1994~2002), 연방하원의원 ,(2007~2013 / 하와이 2구 ), 연방상원의원 ,(2013~ / 하와이 ),
메이지의 외조부인 사토 히로시는 16세의 나이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로 하와이로 건너간 후 사진 결혼으로 시노키 타리와 결혼했다. 사탕수수 농장 일을 그만두고 난 뒤에는 나중에는 일본식 대중목욕탕을 차려서 돈을 벌었다. 히로시와 타리 부부는 딸 치에와 아들 아키라의 1남 1녀를 두었으며 1939년 타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귀국했고 히로시도 1941년 귀국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아키라는 고향 하와이로 돌아갔으나 치에는 부모님과 함께 일본에 남아 수의사이자 태평양 전쟁 참전용사였던 히로노 마타베와 결혼해서 후쿠시마현으로 이사한 뒤 로이, 메이지, 웨인의 2남 1녀를 낳았다. 하지만 마타베는 결혼 몇 년 후 도박에 빠져서 가산을 탕진하다시피 했다. 메이지의 외삼촌인 아키라는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하와이로 돌아가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1951년에 큰조카를 위해 초등학교 교복비를 부쳤다. 그러나 아이의 아버지인 마타베가 이 돈을 가지고 읍내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치에는 아들의 개학이 임박하자 남편을 찾아나섰는데 남편은 동생이 준 아들의 교복 값으로 새 외투를 맞추어서 입고 있었다. 치에는 지체없이 짐을 챙겼고 자기의 옷들을 판 돈으로 아이들과 함께 도망쳤다.
치에는 기차를 타고 친정에 왔다. 히로시 부부는 딸과 손주들에게 매우 따뜻했고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었다. 히로시는 하와이로 돌아가고자 했지만 그들은 전문직 인원이 아니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미국에서 태어나 시민권을 가진 치에가 먼저 건너갔고 1957년 모두 하와이로 이민했다.
치에는 한동안 아키라의 집에서 지내다가 호놀룰루로 이사했다.치에는 몇 년 동안 하와이의 일본계 신문사인 하와이 호치에서 식자공 일을 하면서 밤에는 출장 요리 회사에서 일했다. 1961년부터는 하와이 뉴스페이퍼 에이전시에서 교열자로 일했다. 아이들도 급식실 청소나 신문 배달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어 보탰다
메이지는 1970년에 하와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조지타운 대학교 로스쿨에 들어가서 1978년에 졸업한 뒤 하와이로 돌아와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