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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구속 만세! 탄핵인용 만세! 박근혜 퇴진 18차 범국민행동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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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8차범국민행동.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Flag_of_the_Republic_of_Korea_with_yellow_ribbon.svg.png
3월 1일 집회에 사용된 노란 리본을 매단 태극기[1]
1. 설명
1.1. 주요 집회 장소
1.2. 행진 경로
2. 참가자 추산
3. 집회 진행 및 생중계
4. 지역 집회
4.1. 수도권
4.2. 강원도
4.3. 충청도
4.4. 전라도
4.5. 경상도
4.6. 제주도
4.7. 국외
5. 반응
5.1. 한국 언론반응
5.2. 외신 반응 기사
6. 기타
7. 둘러보기


1. 설명[편집]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와 퇴진 그리고, 탄핵을 요구하며 매주 토요일에만 촛불집회가 열렸었지만, 이번에는 3·1절을 맞아 3월 1일에도 정식 집회를 개최한다고 한다.[2] 이번 집회명은 박근혜 구속 만세! 탄핵인용 만세! 박근혜 퇴진 18차 범국민행동의 날결정되었다.

지난 집회는 다행히도 탄핵 찬성/반대 집회가 유혈사태 없이 평화롭게(?) 끝났지만, 이번 집회에는 마찰 가능성이 더욱 높다. 탄기국 측이 집회장소를 굳이세종대로사거리 인근으로 옮겼기 때문. # 따라서 이전 집회에 비해 두 집회간 거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집회 시작 시간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 인간들이 5시 되면 다 집에 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따라서 이 집회에 참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와 만나는 것을 되도록 피하자.[3]


1.1. 주요 집회 장소[편집]


오후 5시에 광화문 광장에서 집회를 시작한다.


1.2. 행진 경로[편집]




2. 참가자 추산[편집]


주최측 추산 30만여 명이 모였다고 한다. 지난 집회와는 다르게 많이 모이지 않았는데, 이유는 밑에 후술.


2016년-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하야 / 탄핵 요구 집회 연 참가인원(전국)
연도 일시 차수 경찰 추산* 주최 측 추산** 누적 연인원(주최 측 기준) 비 고
2016년10월 29일1차12,00050,00050,000민중총궐기 주최측 주도
11월 5일2차48,000300,000350,000
11월 12일3차280,0001,060,0001,410,0006차 민중 총궐기
11월 19일 4차272,000960,0002,370,000
11월 26일5차330,0001,900,0004,270,000
11월 30일총파업8,000¹60,000¹60,000¹1차 총파업 ***
12월 3일6차430,0002,320,0006,590,000경찰 추산 최대규모 촛불집회
정부 수립이래 사상 최대규모
12월 10일7차166,0001,040,0007,630,000전날(12월 9일)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12월 17일8차77,000770,0008,400,000
12월 24일9차53,000702,0009,102,000
12월 31일10차83,0001,104,00010,206,000누적 연인원 1,000만명 돌파
2017년1월 7일11차38,000643,38010,849,380
1월 14일12차비공개146,70010,996,080경찰 추산 '비공개' 전환
1월 21일13차352,40011,348,480
1월 28일--11,348,480설 합동 차례로 대체
2월 4일14차425,50011,773,980
2월 11일15차806,27012,580,250
2월 18일16차844,86013,425,110
2월 25일17차1,078,13014,503,2407차 민중 총궐기
3월 1일18차300,00014,803,240
3월 4일19차1,050,89015,854,130
3월 11일20차708,16016,562,290전날(3월 10일) 대통령 박근혜
탄핵 인용(파면) 결정
최종 누적 연인원
(공식 누적 연인원)
16,562,290명
(16,581,160명)
괄호 안은 평일집회 등을 모두 포함한
주최측 공식 누적인원
2017년3월 25일21차비공개102,40016,664,690
4월 15일22차
109,60016,774,290
4월 29일23차
50,00016,852,360
* 순간최대인원으로 추산 / ** 연인원으로 추산 / *** 촛불집회 인원과는 별도로 집계

퇴진 행동 측 관계자는 이번 집회를 포함해 연 인원 1500만명은 무난히 넘길 수 있을 거라고 설명하였다. 전날 특검 수사가 공식적으로 종료된 바가 있고, 헌법재판소의 변론 종결로 탄핵 심판도 카운트다운에 접어들면서, 촛불 집회와 맞불집회 양 측 모두 인원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3. 집회 진행 및 생중계[편집]


서울에서는 다음과 같이 집회가 진행된다.
오후 5:00 -집회 시작

4. 지역 집회[편집]




4.1. 수도권[편집]




4.2. 강원도[편집]




4.3. 충청도[편집]




4.4. 전라도[편집]




4.5. 경상도[편집]


부산에서는 집회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부산 일본영사관 소녀상앞과 정발동상 앞에서 천 개의 의자 행사를 진행했다.

4.6. 제주도[편집]




4.7. 국외[편집]




5. 반응[편집]




5.1. 한국 언론반응[편집]




5.2. 외신 반응 기사[편집]




6. 기타[편집]




6.1. 친박 단체 맞불 집회[편집]


이 날 있었던 박근혜 탄핵 및 하야를 반대하는 15차 맞불집회 문서는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경과에서 확인.


6.2. 그 외[편집]


  • 이번 집회 포스터에 적혀 있는 바로는, 지난 16차 집회부터 나눠준 태극기나 개인 소유 태극기를 가져올 참가자는 노란 리본을 달아 달라고 하였다. 아마도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의 참가자와 혼동할 수 있어서일 듯하다.
  •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측에서 청와대 행진로를 먼저 선점해서, 경찰이 차벽을 설치하는 등 광장을 사실상 봉쇄했다고 한다.(이데일리)[4] 여기에 촛불집회는 5시에 시작되었는데, 하필이면 그때 비까지 내려 발길을 돌린 시민들도 있었다고 한다.[5] 그리고 친박단체가 의도적으로 촛불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장소도 촛불집회와 근접한 장소로 선정했고 집회면적도 넓게 썼다. 이 때문에 집회 인원이 감소할 듯 하다. 또한 어찌보면 토요일이 아닌 수요일에 열린 것도 많이 오게 하지 않은 듯하다.[6][7][8]

  • 또한, 탄핵 반대 집회쪽에서 촛불집회쪽으로 각종 쓰레기를 던지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개중에는 음료수가 꽉찬 일회용 컵을 던진 사람도 있어서, 비록 직격해서 맞진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음료수가 튀기도 했다. 게다가 촛불세력을 몰아내야 하는데 차벽으로 막혀있으니 차벽을 밀어내자고 발언하는 등, 여러모로 폭력적인 행동을 보여줬다.

7.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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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처. 이번 집회에서는 탄핵 반대 참가자들과의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아예 주최 측에서 태극기를 지참할 시 노란 리본을 매달아달라고 요청했다.[2] 이로 인해 3월 4일에는 18차가 아니라 19차 범국민행동이 개최된다.[3] 더군다나 점점 탄핵 반대 집회의 양상이 폭력적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에 정말 싸움이라도 붙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 물론 반대 집회 참가자가 폭력을 휘두르면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벼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랬다간 사이좋게 경찰서 정모를 갈 가능성이 높으니 주의하자.[4] 양측간 충돌을 막기 위해 설치했다고 한다.[5] 태극기 집회는 2시에 열렸는데, 이때는 비가 오지 않았다.[6] 그래도 급하게 기획했고 차벽으로 둘러싸인 집회장소, 친박집회의 의도적인 방해, 제한된 행진 경로, 비가 오는 날씨 등 여러 악조건 속에서 30만이 모였다는 것은 대단한 사실이다. 사실 3·1절 집회는 친박단체가 먼저 기획했고 촛불집회는 급하게 기획한 성격이 있었다. 그리고 친박단체는 집회면적도 넓게 잡고 행진경로도 미리 선점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략적으로 5-50만(최대추정) 정도 모이는 데 그쳤고 이것이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이었다.[7] 참고로 친박단체 쪽의 집회인원은 이들이 주장하는 것에서 10분의 1에서 20분의 1, 혹은 100분의 1정도로 나누면 대략적으로 얼마 정도 참여했는지 추측할 수 있다.[8] 그리고 사실상 5만명만 참여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걸 보면 알겠지만, 넓게 썼어도 태극기나 그림자 등 때문에 착시현상이 일어난거지 실제로는 50만명은 고사하고 10만명도 안되는 인원이라는 주장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