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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시(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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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경상남도 사천시 일원을 관할했던 선거구.
한나라당에선 현역 의원 이방호가 단수 공천을 받아 출마해 3선에 도전했다. 제 1 야당인 통합민주당에선 마땅한 인물을 구하지 못했는지 공천을 포기했고 민주노동당에선 사천시 출신의 비례대표 의원 강기갑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 밖에 자유선진당 이순근 후보와 평화통일가정당에서 김순자 후보가 출마했으나 인지도는 매우 낮은 편이라 사실상 이방호 vs 강기갑의 양강 구도로 재편되었다.
그 동안 선거 데이터와 지역구 성향을 참고하면 선거 전 예상은 이방호 후보의 압승이었고 강기갑 후보가 30%라도 획득하면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기울어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터져 나왔다. 그건 바로 지역 내 친박 성향 유권자들이었다. 이방호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맡아 공천에 깊숙이 개입하였다. 그는 친이계에 속했는데 당시 한나라당은 친이 vs 친박의 집안 싸움이 매우 심하게 일어났다. 공천권을 쥐고 있었던 친이계는 이번 총선에서 김기춘, 서청원, 홍사덕, 김무성[3] 등 친박 중진들을 모조리 컷오프시키며 숙청했다. 이에 대한 반발이 발생한 것이다.
거기다 이 사천시는 과거 사천군과 삼천포시가 병합되어 생긴 행정구역인데 묘하게 안에서 지역감정이 있었다.[4] 이방호는 구 삼천포시 출신이었고 강기갑은 구 사천군 출신이었다. 이것이 결합되어 구 사천군 지역 내 친박 성향 유권자들이 절대 이방호가 당선되는 꼴을 못 보겠다며 급기야 "이방호를 찍느니 차라리 강기갑을 찍자!"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선거 당일 출구조사에서 보수 강세 지역인 서부 경남 지역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이방호와 강기갑이 경합이라고 떴다! 그리고 개표 결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초박빙 접전 끝에 47.69% : 47.33%로 민주노동당 강기갑 후보가 한나라당 이방호 후보를 득표율 0.36%, 득표 수 178표 차로 꺾고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다. 덕분에 강기갑 후보는 '헌정 사상 최초로 서부 경남 지역에서 당선된 진보 정당 소속 국회의원\'이란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이방호 후보로서는 예상치 못한 지역구 내 민심 이반과 같은 보수 정당인 자유선진당 소속 이순근 후보가 1,200여 표를 잠식한 것이 낙선의 원인이 되었다. 이방호 후보를 시작으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권영세,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황진하 등 보수 정당 소속 사무총장들이 총선에서 낙선하는 이른바 '사무총장 잔혹사'가 이어졌다.[5]
개표 결과를 보면 구 사천군 지역과 구 삼천포시 지역의 민심이 판이하게 달랐다. 먼저 구 사천군 지역에선 강기갑 후보의 강세였다. 강기갑 후보는 구 사천군 지역 중 서포면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승리했다. 사천읍에서 1,508표 차, 정동면에서 975표 차, 사남면에서 616표 차, 용현면에서 187표 차, 축동면에서 199표 차, 곤양면에서 284표 차, 곤명면에서 119표 차로 승리했다. 이방호 후보는 서포면 1곳에서만 190표 차로 승리하는데 그쳤다. 그리하여 구 사천군 지역에선 강기갑 후보가 총합 3,698표 차로 승리했다. 반대로 구 삼천포시 지역에선 이방호 후보가 강세를 보였다. 이방호 후보는 구 삼천포시 지역 중 남양동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승리했다. 동서동에서 1,072표 차, 선구동에서 361표 차, 동서금동에서 809표 차, 벌용동에서 553표 차, 향촌동에서 397표 차로 승리했다. 강기갑 후보는 남양동 1곳에서만 74표 차로 승리하는 데 그쳤다. 그리하여 구 삼천포시 지역에선 이방호 후보가 총합 3,118표 차로 승리했다.
이렇게 모든 읍, 면, 동 지역 합산 결과 강기갑 후보가 580표 차로 앞서 있었다. 이후 이방호 후보가 부재자투표에서 398표 차로 앞서며 표 차를 182표 차로 좁혔고 잘못 투입된 투표 용지에서 이방호 후보가 4표를 더 보탰으나 표 차를 178표 차로 좁히는데 그쳤을 뿐 당락을 바꾸진 못했다. 그리하여 초박빙 접전 끝에 강기갑 후보가 당선증을 받아들게 되었다.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경상남도 사천시 일원을 관할했던 선거구.
2. 역대 국회의원 목록과 역대 선거 결과[편집]
2.1. 제13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3. 제15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4. 제16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5. 제17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6. 제18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한나라당에선 현역 의원 이방호가 단수 공천을 받아 출마해 3선에 도전했다. 제 1 야당인 통합민주당에선 마땅한 인물을 구하지 못했는지 공천을 포기했고 민주노동당에선 사천시 출신의 비례대표 의원 강기갑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 밖에 자유선진당 이순근 후보와 평화통일가정당에서 김순자 후보가 출마했으나 인지도는 매우 낮은 편이라 사실상 이방호 vs 강기갑의 양강 구도로 재편되었다.
그 동안 선거 데이터와 지역구 성향을 참고하면 선거 전 예상은 이방호 후보의 압승이었고 강기갑 후보가 30%라도 획득하면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기울어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터져 나왔다. 그건 바로 지역 내 친박 성향 유권자들이었다. 이방호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맡아 공천에 깊숙이 개입하였다. 그는 친이계에 속했는데 당시 한나라당은 친이 vs 친박의 집안 싸움이 매우 심하게 일어났다. 공천권을 쥐고 있었던 친이계는 이번 총선에서 김기춘, 서청원, 홍사덕, 김무성[3] 등 친박 중진들을 모조리 컷오프시키며 숙청했다. 이에 대한 반발이 발생한 것이다.
거기다 이 사천시는 과거 사천군과 삼천포시가 병합되어 생긴 행정구역인데 묘하게 안에서 지역감정이 있었다.[4] 이방호는 구 삼천포시 출신이었고 강기갑은 구 사천군 출신이었다. 이것이 결합되어 구 사천군 지역 내 친박 성향 유권자들이 절대 이방호가 당선되는 꼴을 못 보겠다며 급기야 "이방호를 찍느니 차라리 강기갑을 찍자!"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선거 당일 출구조사에서 보수 강세 지역인 서부 경남 지역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이방호와 강기갑이 경합이라고 떴다! 그리고 개표 결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초박빙 접전 끝에 47.69% : 47.33%로 민주노동당 강기갑 후보가 한나라당 이방호 후보를 득표율 0.36%, 득표 수 178표 차로 꺾고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다. 덕분에 강기갑 후보는 '헌정 사상 최초로 서부 경남 지역에서 당선된 진보 정당 소속 국회의원\'이란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이방호 후보로서는 예상치 못한 지역구 내 민심 이반과 같은 보수 정당인 자유선진당 소속 이순근 후보가 1,200여 표를 잠식한 것이 낙선의 원인이 되었다. 이방호 후보를 시작으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권영세,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황진하 등 보수 정당 소속 사무총장들이 총선에서 낙선하는 이른바 '사무총장 잔혹사'가 이어졌다.[5]
개표 결과를 보면 구 사천군 지역과 구 삼천포시 지역의 민심이 판이하게 달랐다. 먼저 구 사천군 지역에선 강기갑 후보의 강세였다. 강기갑 후보는 구 사천군 지역 중 서포면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승리했다. 사천읍에서 1,508표 차, 정동면에서 975표 차, 사남면에서 616표 차, 용현면에서 187표 차, 축동면에서 199표 차, 곤양면에서 284표 차, 곤명면에서 119표 차로 승리했다. 이방호 후보는 서포면 1곳에서만 190표 차로 승리하는데 그쳤다. 그리하여 구 사천군 지역에선 강기갑 후보가 총합 3,698표 차로 승리했다. 반대로 구 삼천포시 지역에선 이방호 후보가 강세를 보였다. 이방호 후보는 구 삼천포시 지역 중 남양동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승리했다. 동서동에서 1,072표 차, 선구동에서 361표 차, 동서금동에서 809표 차, 벌용동에서 553표 차, 향촌동에서 397표 차로 승리했다. 강기갑 후보는 남양동 1곳에서만 74표 차로 승리하는 데 그쳤다. 그리하여 구 삼천포시 지역에선 이방호 후보가 총합 3,118표 차로 승리했다.
이렇게 모든 읍, 면, 동 지역 합산 결과 강기갑 후보가 580표 차로 앞서 있었다. 이후 이방호 후보가 부재자투표에서 398표 차로 앞서며 표 차를 182표 차로 좁혔고 잘못 투입된 투표 용지에서 이방호 후보가 4표를 더 보탰으나 표 차를 178표 차로 좁히는데 그쳤을 뿐 당락을 바꾸진 못했다. 그리하여 초박빙 접전 끝에 강기갑 후보가 당선증을 받아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