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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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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전(失傳)되어 현재는 존재하지 않음.
번외: 현대 역사서
한국사




新羅古記
1. 개요
2. 기록


1. 개요[편집]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인용된 신라의 역사서. 현전하지는 않는다. 신문왕 대 문장가인 강수, 발해의 건국기사가 있는 점을 보아, 제작 시기의 상한선은 7세기 말 이후로 추정된다.[1]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인용된 점을 미뤄보면 고려 말기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신라고기라는 책이 있는게 아니라 신라의 옛 기록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2. 기록[편집]


玄琴之作也, 新羅古記云, “初𣈆人以七絃琴, 送髙句麗, 麗人雖知其爲樂噐, 而不知其聲音及鼔之之法, 購國人能識其音而鼔之者, 厚賞. 時第二相王山岳, 存其本樣, 頗攺易其法制而造之, 兼製一百餘曲, 以奏之. 於時玄鶴来舞, 遂名玄䳽琴, 後但云玄琴.

거문고(玄琴)의 제작에 대해 신라고기(新羅古記)에서 이르기를 “처음에 진(晉)나라 사람[2]

이 칠현금(七絃琴)을 고구려(高句麗)에 보냈는데, 고구려 사람들이 비록 그것이 악기(樂器)임은 알지만 그 성음(聲音)과 연주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여, 국인(國人) 중에 능히 그 음(音)을 알고 연주하는 자를 구하여 후한 상을 준다 하였다. 이때 둘째 재상(第二相)인 왕산악(王山岳)이 그 본 모습을 보존하면서 그 법식과 제도를 약간 고쳐 바꾸어 이를 만들고 겸하여 1백여 곡을 지어 이를 연주하였다. 이때에 검은 학(玄鶴)이 와서 춤을 추니 마침내 현학금(玄鶴琴)이라 이름하고 그 후로는 다만 거문고(玄琴)라 불렀다.

삼국사기 권 제32 잡지 제1 음악[樂]


羅古記云, “加耶國嘉實王, 見唐之樂器而造之. 王以謂‘諸國方言各異, 聲音豈可一哉.’乃命樂師省熱縣人于勒, 造十二曲.

신라고기[羅古記]에서 이르기를 “가야국(加耶國)의 가실왕(嘉實王)이 당(唐)의 악기를 보고 만들었다. 왕이 ‘여러 나라의 방언이 각기 다르니 음악(聲音)이 어찌 한결같을 수 있겠는가.’ 하며, 이에 성열현(省熱縣) 사람 악사 우륵(于勒)에게 12곡을 만들게 하였다.

삼국사기 권 제32 잡지 제1 음악[樂]


新羅古記曰, “文章則強首·帝文·守真·良圖·風訓·骨沓.” 帝文已下, 事逸不得立傳.

신라 고기(古記)에 “문장은 강수, 제문(帝文), 수진(守眞), 양도(良圖), 풍훈(風訓), 골답(骨沓)이다.”라고 하였으나, 제문 이하는 사적(事跡)이 전하지 않아 [독립된] 전기를 만들 수 없다.”

三國史記 권 제46 열전 제6 강수


又新羅古記云 “高麗舊將祚榮姓大氏, 聚殘兵立國於大伯山南國號渤海.”

≪신라고기(新羅古記)≫에 이르기를 “고(구)려의 옛 장수 조영의 성(姓)은 대씨(大氏)니 남은 군사를 모아 태백산 남쪽에서 나라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발해라고 하였다.”라고 한다.

삼국유사 권 제1 기이 말갈(靺鞨)·발해(渤海)


[1] 강수는 진덕여왕 ~ 신문왕 시기에 활동한 인물이고, 발해의 건국은 698년에 일어났다.[2] 서진 혹은 동진 중 하나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