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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악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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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岳郡 / Anak County / 아사달 (고유어/지명)

안악군
安岳郡 / Anak County
국가북한
광복 당시 면적851㎢
광역시도황해남도
광복 당시 행정구역1읍 8면
시간대UTC+9



1. 개요
2. 역사
3. 교통
4. 지리
5. 출신 인물
6.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



1. 개요[편집]


안악군(安岳郡)은 북한 황해남도 북부에 있으며 동쪽으로 재령군, 황해북도 봉산군, 황주군, 서쪽으로 은률군삼천군, 남쪽으로 신천군, 북쪽으로 은천군과 접해 있는 군이다.


2. 역사[편집]


대방군(帶方郡) 함자현(含資縣)이었고 고구려 시대에는 아사달이라고 불렸다.

안악 1,2,3호 고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던 곳으로 보인다. 안타깝게도 이들 고분은 완전히 도굴당하여 유골과 부장품이 없는 관계로 주인을 알 수 없다. 주인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미천왕고국원왕 항목 참조.[1]

통일신라에서 한산주에 소속시키고 고을 이름을 양악(楊岳)이라 이름붙였다.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황해도 안악군이 되었다. 구한말에는 신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진취적인 고장으로, 도산 안창호는 "우리 강토 13도마다 안악 같은 고을이 하나씩만 생겨도 이 나라의 문명은 10년 안에 일본을 따라잡게 될 것"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그러나 1911년 안악 사건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광복 후 국토가 분단되면서 북한 땅이 되었다. 1952년에 북한이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북부 5면(은홍면, 대행면, 서하면, 안곡면, 용문면)을 분리해 은천군을 신설한 대신, 신천군의 북부 3면(용진면, 산천면, 노월면)을 편입하면서 군 자체가 남쪽으로 이동한 모양새가 되었다.

치하포 사건의 무대라고 한다.

3. 교통[편집]


도로는 51번 국도(대한민국 기준)가 지나간다. 하지만 다리가 없어 대행면[2] 대동강가에서 남포시로 가는 51번 국도 구간이 끊겨 있다.

산지대 고장이 아닌데도 철도가 없다. 광복 당시의 황해도 17군 가운데 철도가 지나지 않는 3군 가운데 하나이다. 나머지 두 곳은 산중삼읍으로 불리는 산간지역인 수안군곡산군.

그나마 도로망은 태탄군이나 룡연군보다는 훨씬 낫다.


4. 지리[편집]


평야가 많은 편이다. 유명한 산으로는 은율군과의 경계에 있는 구월산이 있다. 안악읍 북쪽에는 양산(陽山, 379m), 남쪽에는 남산(176m)이 있다. 광복 당시 군의 북쪽은 대동강을 끼고 평안남도와 접했으나, 지금은 은천군에 내어주었다.


5. 출신 인물[편집]


구한말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지역이기도 하다.



6.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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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안악군기.png
파일:안악군.jpg











[1] 다만 남한학계에서는 3호분의 경우 동수의 묘로 거의 확실시하는 분위기이다. 애초에 딴거 떠나서 국내성에서 500km 떨어진, 그것도 갓 확보한 영토인 안악에다 왕릉을 지을 이유가 없다. 조선으로 치면 조선왕릉을 함경북도에다 설치한거나 마찬가지다...[2]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안악군이 아닌 은천군[3] 원래는 말 그대로 섬이었으나, 1930년대 초에 간척되어 육지화됐다.[4] 가톨릭 신앙촌이었다. 위 지도도 그렇고 문헌에 따라 민화(玟花)라고도 잘못 적혀 있는데 이는 옥돌 민()과 매괴 매()가 매우 비슷한데서 오는 착오로, 충북 음성군 감곡 매괴 성모순례지의 매괴(玫瑰)와 같은 한자다. 가톨릭대사전이나 가톨릭계 언론도 이 곳에 있는 본당 이름을 매화동본당(玫花洞本堂)이라 적고 있다. 아무튼 이 이름은 묵주('매괴'가 묵주의 옛말이다)에서 유래한 것#이고, 황해도 최초의 본당이 1896년에 일개 마을인 이 곳에 세워졌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