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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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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지명에 대한 내용은 삼국지/지명/예주 문서
참고하십시오.
[include(틀:토론 합의,
토론주소1=OutstandingAgreeableFeignedKnowledge#10, 합의사항1=본 틀에 대한제국 선포(1897년 10월 12일) 이후 폐지된 행정구역만 등재한다.,
토론주소2=OutstandingAgreeableFeignedKnowledge#10, 합의사항2=대한제국 선포부터 광복(1945년 8월 15일) 전까지 폐지된 행정구역 가운데 현재 휴전선 이남에 위치했던 행정구역만 등재한다.,
토론주소3=OutstandingAgreeableFeignedKnowledge#10, 합의사항3=휴전선 이북에 위치한 행정구역을 원칙적으로 등재하지 않는다.,
토론주소4=OutstandingAgreeableFeignedKnowledge#10, 합의사항4=단 광복 이후 6.25 전쟁 전까지 38선 이남에 위치했으나 휴전 후 북한 치하에 들어간 경우와 일부 영역을 수복했으나 인접 시군에 편입시켜 휴전선 이남에 실효지배하는 영역이 없어진 경우에 한해 등재한다.,
토론주소5=OutstandingAgreeableFeignedKnowledge#10, 합의사항5=명칭 변경 사례를 등재하지 않는다.,
토론주소6=OutstandingAgreeableFeignedKnowledge#10, 합의사항6=폐지된 행정구역의 소속 도(道)는 폐지 당시를 기준으로 한다. 단 제주도에 소재했던 행정구역에 한해 제주특별자치도 소속으로 표기한다.,
토론주소7=OutstandingAgreeableFeignedKnowledge#10, 합의사항7=폐지된 행정구역이 행정구역 명칭과 단위가 같은 행정구역으로 다시 설치된 경우 등재하지 않는다.,
토론주소8=FriendlyObtainableAnnoyedCopper#11, 합의사항8=단 1995년 대규모 도농통합 뒤에 폐지된 동명의 행정구역은 등재할 수 있다.,
토론주소9=FriendlyObtainableAnnoyedCopper#11, 합의사항9=폐지된 동·읍·면은 원칙적으로 등재할 수 없다. 단 1995년 대규모 도농통합 뒤에 동으로 승격되어 폐지된 읍·면은 등재할 수 있다.,
토론주소10=YouthfulTangibleDryClam, 합의사항10=1995년 이전에 폐지된 읍·면이라도 2개 이상의 행정구역에 분할 편입되어 폐지된 경우는 등재할 수 있다.,
토론주소11=FriendlyObtainableAnnoyedCopper#11, 합의사항11=1995년 후 동으로 승격되어 폐지된 읍·면이라도 군 전체가 시로 승격하면서 관할 읍·면이 동으로 승격되어 폐지된 경우는 등재할 수 없다.,
토론주소12=FriendlyObtainableAnnoyedCopper#11, 합의사항12=1995년 이후에 군이 폐지되고 해당 지역에 동명의 새로운 시를 설치한 경우 이전의 군을 틀에 등재하지 않는다.(따라서 틀에서 경기도 광주군을 제외한다.),
)]
1. 개요[편집]
영천군이라는 지역은 두 곳이 있었다. 하나는 현재의 영천시, 다른 하나는 현재의 영주시에 있었다. 공교롭게도 영주(永州)가 영천(永川)이 되고, 영천(榮川)이 영주(榮州)가 된 기간은 정확히 500년의 차이가 난다.
2. 永川郡[편집]
영천은 '골벌국'이라는 부족국가 형태를 유지하다가, 서기 236년에 골벌국왕 아음부(阿音夫)가 신라에 항복해 영천 지역은 '절야화군(切也火郡), 신녕지역은 '사정화현(史丁火縣)'이 되었다. 그후 신라 경덕왕 16년(757년) '임고군'으로 고쳤으며, 신라 말기에는 다시 '고울부'라 불렀다. 고려 초기에는 '영주'라고 불리다가 조선 태종때(1414년) '영주'를 오늘의 명칭인 '영천군'으로 바꾸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신녕군을 통합하였다. 1937년 영천면이 영천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금호면이 금호읍으로 승격되었다. 1981년 7월 1일 '영천읍'이 '영천시'로 승격되어 분리 되었다. 1986년 화북면 남부(삼창출장소)가 화남면으로 독립하였다.
1995년 1월 1일 영천시와 영천군이 통합되었다. 이후의 정보는 영천시 문서 참조.
2.1. 관련 문서[편집]
3. 榮川郡[편집]
1914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영천군, 순흥군, 풍기군이 영주군으로 통합되었다. 영주(榮州)라는 이름도 이 때 만들어진 것으로, 같은 경상북도 도내에 같은 음의 영천군(永川郡, 현 영천시)이 있었기 때문에 혼동의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천도 조선 초까지는 영주(永州)로 불렸다.[1]
영천군(榮川郡)과 합쳐진 옛 순흥군과 풍기군은 각 문서에도 나오지만, 원래 영남우로(대구~안동~죽령~제천~원주/충주)의 길목으로 크게 번성했고, 그 중에서도 순흥은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라는 말의 유래가 된 '순흥 청다리'가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도호부까지 성쟁했던 순흥이 1457년 그 곳에 유배를 왔던 금성대군의 역모로 인해서 크게 몰락을 했고 이후 숙종 때 다시 설치되기까지 그 땅은 풍기군과 영천군이 나눠가졌다고 한다. 현재 영주시의 유명한 곳 중 하나인 소수서원이 옛 순흥 땅에 있지만, 세울 당시 이를 주도했던 사람은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인 점을 감안하다면...
이후, 신작로와 중앙선 철도의 개통으로 인해서 서울에서 가까워졌을 뿐 이젠 별 볼일 없는 시골로 전락하였다.
1980년 영주군 영주읍이 영주시로 승격되어, 영주군의 잔여 지역은 '영'주와 '풍'기에서 한 글자씩 딴 영풍군(榮豊郡)으로 개칭되었다가 1995년 영주시와 영풍군이 통합되어 현재에 이른다.
이후의 정보는 영풍군, 영주시 문서 참조.
3.1. 관련 문서[편집]
[1] 영주시와 비슷한 사례로 충청남도 홍성군이 있다. 원래 홍주(洪州)였으나, 일본인들이 같은 충청남도 도내의 공주와 발음상 헷갈린다고 '홍성'으로 개명당했다(...).그 외에도 광양시와 일본어 음이 같다고 흥양에서 강제개명 당한 고흥군 등 이런 사례는 숱하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