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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의 민족대표 33인 | - [ 펼치기 · 접기 ]
||<tablewidth=100%><width=9%><table bgcolor=#fff,#191919><tablecolor=#fff><bgcolor=#d60026> 권동진 ||<width=9%><bgcolor=#d60026> 권병덕 ||<width=9%><bgcolor=#ba4160> 길선주 ||<width=9%><bgcolor=#ba4160> 김병조 ||<width=9%><bgcolor=#d60026> 김완규 ||<width=9%><bgcolor=#ba4160> 김창준 ||<width=9%><bgcolor=#d60026> 나용환 ||<width=9%><bgcolor=#d60026> 나인협 ||<width=9%><bgcolor=#ba4160> 박동완 ||<width=9%><bgcolor=#ba4160> 박희도(日) ||<width=9%><bgcolor=#ff8c00> 백용성 || ||<bgcolor=#d60026> 박준승 ||<bgcolor=#d60026> 손병희 ||<bgcolor=#ba4160> 신석구 ||<bgcolor=#ba4160> 신홍식 ||<bgcolor=#ba4160> 양전백 ||<bgcolor=#d60026> 양한묵 ||<bgcolor=#d60026> 오세창 ||<bgcolor=#ba4160> 오화영 ||<bgcolor=#ba4160> 유여대 ||<bgcolor=#ba4160> 이갑성 ||<bgcolor=#ba4160> 이명룡 || ||<bgcolor=#ba4160> 이승훈 ||<bgcolor=#d60026> 이종일 ||<bgcolor=#d60026> 이종훈 ||<bgcolor=#ba4160> 이필주 ||<bgcolor=#d60026> 임예환 ||<bgcolor=#ba4160> 정춘수(日) ||<bgcolor=#d60026> 최린(日) ||<bgcolor=#ba4160> 최성모 ||<bgcolor=#ff8c00> 한용운 ||<bgcolor=#d60026> 홍기조 ||<bgcolor=#d60026> 홍병기 || ||<-11> ※ 친일반민족행위자 관련 인물은 (日)로 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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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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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립운동가, 서예가, 언론인.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받았다.
1864년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의동 45번지에서 태어났다.
#1879년, 16세의 나이로 식년시 역과에 급제하여
한학 역관이 되었다가
#, 1886년 박문국 주사로서
한성순보 기자를 겸임하였다.
1902년 천도교에 귀의한 그는
천도교의 기관지인
만세보를 창간했다.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다. 제자로 간송
전형필이 있으며,
전형필에게 한국의 전통 문화 유산을 보는 안목을 키워주었다. 전형필과 함께 문화재들을 구입, 보존하는 작업에도 참여했다.
예술에도 조예가 깊어서 특히
서예가에서는 전서, 예서, 초서에 능하고 조각도 하였으며, 둥그스름한 형태의 독특한 서체(위창체, 오세창체)를 창안하는 등 한국 현대 서예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 89세의 나이까지 장수했기 때문에 이승만 못지 않게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몸소 체험한 인물임에도[1]
고종 1년에 출생했으며 아버지가 개화 사상가 1세대에 해당되는 인물인지라 김옥균 등의 개화파 2세대와도 가깝게 지냈으며, 만년에는 6.25 전쟁까지 경험한 인물이다! 이 때문에 휴전 직전에 고향인 서울(당시 한성부)이 아닌, 피난지 대구에서 생을 마쳐야 했다.
근현대사 교과서의 매 단원에서 심심치 않게 언급되는 이승만에 비해 오경석의 차남, 만세보 사장 경력, 3.1 운동 참여 등으로만 언급되는지라 존재감이 덜한 편.
- 이승만과 달리 과거(역과)에 합격했으며. 이승만과는 해방 후 결성된 대한독립촉성국민회장으로 추대되면서 인연을 맺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