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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두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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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공화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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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누녜스미겔 안토니오 카로마누엘 안토니오 산클레멘테호세 마누엘 마로킨라파엘 레예스
제6대제7대제8대제9대제10대
라몬 곤잘레스 발렌시아카를로스 에우헤니오 레스트레포호세 비센테 콘차마르코 피델 수아레스호르헤 올긴
제11대제12대제13대제14대제15대
페드로 넬 오스피나미겔 아바디아 멘데스엔리케 올라야 에레라알폰소 로페즈 푸마레호에두아르도 산토스 몬테호
제16대제17대제18대제19대제20대
알폰소 로페즈 푸마레호마리아노 오스피나 페레즈라우레아노 고메즈구스타보 로하스 피니야알베르토 예라스 카마르고
제21대제22대제23대제24대제25대
기예르모 레온 발렌시아카를로스 예라스 레스트레포미사엘 파스트라나 보레로알폰소 로페즈 미첼센훌리오 세자르 투르바이 아얄라
제26대제27대제28대제29대제30대
벨리사리오 베탕쿠르비르힐리오 바르코 바르가스세사르 가바리아에르네스토 삼페르안드레스 파스트라나
제31대제32대제33대제3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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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 연도결정일수여일이름직책국적비고
1949년8월 15일이승만대통령대한민국
1960년8월 13일윤보선대통령대한민국
1963년12월 5일12월 17일박정희대통령대한민국
1967년6월 23일육영수영부인대한민국
1979년12월 7일최규하대통령대한민국12.12 군사반란으로 하야
1979년12월 7일홍기영부인대한민국
1980년8월 29일8월 29일전두환대통령대한민국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1980년8월 29일8월 29일이순자영부인대한민국
1988년2월 24일2월 25일노태우대통령대한민국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1988년2월 24일2월 25일김옥숙영부인대한민국
1993년2월 11일2월 23일김영삼대통령대한민국
1993년2월 11일2월 23일손명순영부인대한민국
1998년2월 17일2월 25일김대중대통령대한민국
1998년2월 17일2월 25일이희호영부인대한민국
2008년1월 28일노무현대통령대한민국
2008년1월 28일권양숙영부인대한민국
2013년2월 12일이명박대통령대한민국
2013년2월 12일김윤옥영부인대한민국
2013년2월 19일박근혜대통령대한민국
2022년5월 3일문재인대통령대한민국
2022년 || 5월 3일 || || 김정숙 || 영부인 || 대한민국 || ||


외국인 [ 펼치기 · 접기 ]

상훈 연도결정일수여일이름직책국적비고
1964년12월 3일12월 8일하인리히 뤼프케대통령서독외국인 최초 상훈자
1964년12월 3일12월 8일빌헬미네 뤼브케영부인서독외국인 최초 상훈자
1966년2월 1일2월 7일이스마일 나시루딘국왕말레이시아
1966년2월 1일2월 7일틍쿠 인탄 자하라왕비말레이시아
1966년2월 1일2월 10일푸미폰 아둔야뎃국왕태국
1966년2월 1일2월 10일시리낏 끼띠야콘왕비태국
1966년2월 1일2월 15일장제스총통중화민국
1968년5월 10일5월 18일하일레 셀라시에황제에티오피아
1969년5월 23일5월 27일응우옌반티에우총통남베트남
1969년5월 23일5월 27일응우옌티마이아인제1부인남베트남
1969년10월 28일10월 28일하마니 디오리대통령니제르
1969년10월 28일10월 28일아이샤 디오리영부인니제르
1970년9월 25일9월 28일피델 산체스 에르난데스대통령엘살바도르
1970년9월 25일9월 28일마리나데 산체스 에르난데스영부인엘살바도르
1975년6월 27일7월 5일오마르 봉고대통령가봉
1975년6월 27일7월 5일조세핀 봉고영부인가봉
1979년4월 17일4월 23일레오폴 세다르 상고르대통령세네갈
1979년4월 17일4월 23일콜레테 위베르트 상고르영부인세네갈
1980년5월 11일할리드 빈 압둘아지즈 알사드국왕사우디아라비아
1980년5월 14일자베르 알아흐마드 알자베르 알사바국왕쿠웨이트
1981년6월 25일수하르토대통령인도네시아
1981년6월 25일시티 하티나영부인인도네시아
1981년6월 29일아마드 샤 이브니 아부 바카르국왕말레이시아
1981년6월 29일틍쿠 아프잔왕비말레이시아
1981년7월 6일페르디난드 마르코스대통령필리핀
1981년7월 6일이멜다 마르코스영부인필리핀
1981년10월 13일로드리고 카라소대통령코스타리카
1981년10월 13일에스트레야 셀레돈 리사노영부인코스타리카
1982년5월 10일사무엘 도대통령라이베리아
1982년6월 7일모부투 세세 세코대통령자이르
1982년6월 7일보비 라다와영부인자이르
1982년8월 25일압두 디우프대통령세네갈
1982년12월 21일케난 에브렌대통령터키
1983년3월 10일3월 15일자파르 모하메드 니메이리대통령수단
1983년3월 10일3월 15일부띠나 칼릴 압불핫산영부인수단
1983년9월 10일후세인 1세국왕요르단
1983년9월 10일누르왕비요르단
1984년4월 9일하사날 볼키아국왕브루나이
1984년4월 21일할리파 빈 하마드 알타니국왕카타르
1984년8월 30일9월 13일다우다 자와라대통령감비아
1984년8월 30일9월 13일치렐 자와라영부인감비아
1985년5월 17일무함마드 지아울하크대통령파키스탄
1985년5월 20일루이스 알베르토 몽헤대통령코스타리카
1986년9월 4일4월 10일엘리자베스 2세국왕영국
1986년9월 4일4월 16일보두앵국왕벨기에
1987년4월 7일아메드 압달라대통령코모로
1988년11월 3일이스칸다르국왕말레이시아
1988년11월 3일자나리아왕비말레이시아
1989년11월 3일11월 20일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대통령서독
1989년11월 3일11월 30일프랑수아 미테랑대통령프랑스
1989년11월 3일11월 30일다니엘 미테랑영부인프랑스
1990년6월 21일안드레스 로드리게스대통령파라과이
1990년11월 5일괸츠 아르파드대통령헝가리
1991년9월 13일아즐란 샤국왕말레이시아
1991년9월 13일투안쿠 바이눈왕비말레이시아
1991년9월 25일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대통령멕시코
1992년8월 13일호르헤 안토니오 세라노 엘리아스대통령과테말라
1993년5월 20일5월 25일피델 라모스대통령필리핀
1993년5월 20일5월 25일이멜리타 마르티네스 라모스영부인필리핀
1994년11월 7일11월 21일에두아르도 프레이 루이스 타글레대통령칠레
1994년12월 5일12월 9일레흐 바웬사대통령폴란드
1995년2월 7일2월 16일이슬람 카리모프대통령우즈베키스탄
1995년2월 21일3월 6일로만 헤어초크대통령독일
1995년3월 28일4월 3일젤류 미테프 젤레프대통령불가리아
1995년6월 26일7월 7일넬슨 만델라대통령남아프리카 공화국
1995년9월 26일9월 29일카를로스 메넴대통령아르헨티나
1996년7월 23일9월 4일알바로 아르수대통령과테말라
1996년7월 23일페르난두 카르도주대통령브라질
1996년10월 8일10월 20일후안 카를로스 1세국왕스페인
1996년10월 8일10월 20일소피아 마르가리타 빅토리아 프리데리키왕비스페인
1996년11월 26일자파 이브니 압둘 라만국왕말레이시아
1996년12월 10일12월 15일레오니드 쿠치마대통령우크라이나
2000년2월 22일3월 3일카를로 아첼리오 참피대통령이탈리아
2000년2월 22일3월 6일자크 시라크대통령프랑스
2006년3월 12일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대통령알제리
2007년3월 26일사마 알아마드 알자베르 알사바국왕쿠웨이트
2007년3월 28일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국왕카타르
2009년5월 13일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대통령카자흐스탄
2009년11월 12일알란 가르시아대통령페루
2012년5월 30일칼 16세 구스타프국왕스웨덴
2012년11월 21일할리파 빈 자이드 나하얀대통령아랍에미리트
2018년10월 8일에마뉘엘 마크롱대통령프랑스
2019년하랄 5세국왕노르웨이
2021년6월 14일알렉산더 판데어벨렌대통령오스트리아
2021년6월 16일펠리페 6세국왕스페인
2021년6월 16일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왕비스페인
2021년8월 25일이반 두케대통령콜롬비아
2021년9월 21일보루트 파호르대통령슬로베니아
2023년7월 13일안제이 두다대통령폴란드
2023년 || || 11월 21일 || 찰스 3세 || 국왕 || 영국 || ||





파일:이반 두케 대통령.jpg
이름Iván Duque Márquez
이반 두케 마르케즈
출생일1976년 8월 1일 (47세)
출생지콜롬비아 보고타
국적콜롬비아 파일:콜롬비아 국기.svg
학력로체스터 고등학교 (졸업) (-1994년)
세르히오 아르볼레다 대학 (법학 / 학사)
아메리칸 대학교 (법학 / 석사)
조지 워싱턴 대학교 (공공정책학 / 석사)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가족배우자: 마리아 산도발
슬하 1남 2녀
약력중남미개발은행 컨설턴트 (1999년)
미주개발은행 수석변호사
콜롬비아 상원의원 (2014년2018년)
콜롬비아 제33대 대통령 (2018년2022년)
정당[[민주중도당|

민주중도당
]]
재임기간2018년 8월 7일 ~ 2022년 8월 7일
직업정치인, 법조인, 저술가
종교로마 가톨릭

1. 개요
2. 생애
3. 정치 활동
4. 2018년 대선
5. 대통령
6. 여담




1. 개요[편집]


이반 두케는 콜롬비아의 제33대 대통령이다.

2. 생애[편집]


보고타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 이반 두케 에스코바르는 한때 콜롬비아 자유당 소속으로 안티오키아 주지사 및 자원에너지부 장관 등을 지낸 유력 정치인이었다. 출생 배경만으로도 두케 대통령은 상류층 출신에 속했으며, 후에 미국에서 유학하기까지 했으니[1], 이 정도면 콜롬비아에서는 단순히 인정받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왕대접을 받는다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3. 정치 활동[편집]


1999년 중남미개발은행에서 컨설턴트로 일하였으며 2001년부터 2013년까지 미주개발은행에서 일했다. 이 시절 후반기 쯤에는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의 조언자로 일했는데, 부친이 자유당 출신이다보니 두케 본인 또한 나름 진보적인 성향이 있었지만,[2] 강경우파 성향의 우리베 곁에서 일하면서 본인 또한 급격하게 우경화되었다.[3] 다만 은행에서 일한 경력만으로도 충분히 우경화될 만도 했다.[4]

이후 우리베 대통령이 퇴임하고 민주중도당을 창당하자 두케 대통령은 여기에 합류했으며, 2014년 민주중도당 소속으로 상원의원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 시절 각종 족적을 남겼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산후휴가법 개정. 기존 최대 14주만 가능했던 것을 최대 18주로 연장했으며, 이러한 두케 대통령의 활약은 한마디로 갑툭튀한 두케 대통령을 단숨에 대권 주자로 끌어올리는데 크게 일조했다.


4. 2018년 대선[편집]


2017년 대선을 약 1년 앞두고 출마를 선언했으며, 이에 따라 민주중도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한때 콜롬비아의 보수우파를 대표하던 보수당마르타 루시아 라미레스 후보[5] 등과 함께 범보수진영 경선에 진입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라미레스를 큰 표차로 누르고 범보수진영의 실질적인 단일후보로 선출되었다. 이 당시 라미레스 후보와 앙금이 붙기도 했고, 라미레스 또한 이번에는 정권을 차출해야 하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었는지 경선이 끝나고 후유증이 가시지 않는 듯 싶었지만, 두케 대통령은 이렇게 낙심한 라미레스를 본인의 러닝메이트로 지명해 곧바로 경선 갈등을 해결했다.

하지만 후안 마누엘 산토스 정권의 지지율이 좋지 않았음에도, 여당인 국민통합사회당에서 밀어준 무소속[6] 헤르만 바르가스 예라스 후보가 급진좌파 성향의 무소속[7] 후보인 구스타보 페트로와 양자구도를 형성하면서, 처음에는 가망이 없는 듯 싶었다. 그러나 산토스 정권에 대한 심판을 내세웠고, 동시에 산토스 대통령의 업적으로 남은 FARC와의 평화 협정을 파기하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이를 바탕으로 보수층을 빠르게 결집시켰으며, 동시에 바르가스의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페트로와 새로운 양자구도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페트로와 함께 결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두케의 강경우파적 성향은 범진보(내지 범중도) 진영의 비토를 크게 샀으며, 안그래도 콜롬비아를 나름 안정시킨 평화협정을 파기하겠다고 선언한 것만으로도 전국을 충공깽에 빠뜨렸다. 한때 두케의 아버지가 일했다던 자유당의 움베르토 델 라 카예 후보라던가, 녹색동맹 출신으로 대표적인 중도좌파 후보인 세르히오 파하르도 후보 또한 평화협정을 지지했기에, 두케가 결선에 진출하더라도 각계의 비토를 사면서 결국에는 낙선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다. 하지만 상대편의 페트로가 두케와 정반대 위치에 있는 강경좌파였던지라 중도파들로서는 "그 놈이 그 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두드러졌으며, 더더욱이나 이러한 성향으로 반군 활동까지 한 경력이 재조명되면서, "페트로=FARC"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리고 콜롬비아는 인접한 베네수엘라에콰도르와는 달리 보수우파 성향이 강한 나라다. 특히 FARC 덕에 더욱 더 우경화한 것은 덤. 거기다가 바로 옆나라인 베네수엘라가 강경좌파 정권 하에서 나라가 망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 게[8] 바로 콜롬비아고, 실제로 두케 또한 페트로를 베네수엘라 정권과 연관 짓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자 정작 평화협정을 지지하며 두케를 비토했던 자유당이 두케 지지를 선언했으며, 3위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파하르도가 유권자들에게 "알아서 투표하라"며 말을 얼버무리는 등, 선거 구도가 두케 위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를 노린 두케는 살짝 좌클릭하면서, 평화협정을 파기를 취소하는 대신 수정으로 변경해, 일단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53.98%로 41.81%를 기록한 페트로를 생각보다 큰 표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9]


5. 대통령[편집]


2018년 8월 7일 정식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취임 후로는 평가가 썩 좋지 않다. 취임 극초기에만 지지율이 50%대를 찍었을뿐 이후로는 지지율이 추락해버렸고, 취임 100일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27~33%대를 기록하고, 비지지율이 지지율의 약 2배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레임덕 상태라는 평이 나와도 무방할 정도의 수준이 되어버렸다.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부가가치세를 18%에서 21%대로 올릴 계획을 내놓은것인데 정작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은 올리지 않으면서 괜히 서민물가가 오르는거 아니냐는 우려가 퍼지면서 서민층들과 중산층들의 반감을 사서 지지율을 왕창 깍아먹었으며 그 와중에 교육예산도 동결해버려서 대학생들이 예산을 올려달라면서 시위에 참여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이전 후안 산토스 정권때와 마찬가지로 FARC가 철수한 지역에서 친정부 민병대와 상당수 반군들이 마약을 놓고 싸움질을 벌이는 일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데다가 사회 인권 운동가들이 살해당하는 상황에서도 별로 손을 쓰지 못하는것은 마찬가지이기도 하고, FARC와의 협정을 별 대안없이 뒤엎을려는 점도[10] 마이너스 평을 듣고 있다. 일단 대학예산은 정부가 반쯤 굴복하는 식으로 겨우 마무리 되었지만, 학생운동을 강경진압하는 모습을 보여왔기에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베의 이미지도 같이 추락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쓴맛이 될듯.

다만 이후로는 베네수엘라 정부와의 대립 및 게릴라의 테러 등 정치적인 호재가 잇따르면서 지지율이 다시금 회복세를 보여서 40%대 초까지 회복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통령 재임 초기임을 감안하면 지지율이 썩 높은 편은 아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정치위기가 잠시 주춤한 국면에 들어가면서 원주민들과의 갈등으로 고속도로가 봉쇄되는 등의 일이 장기화되면서 다시금 지지율이 떨어졌다. 한달씩이나 고속도로가 막히는 상황인데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가 지지율 하락압력에 겨우 합의를 봤지만 삐그덕거리고 있는 형국이고 평화특별재판소의 권한을 축소하는 법안을 제출했다가 하원에서 110:44로 압도적으로 부결나면서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다시 입었다. 베네수엘라가 아니었으면 그냥 무능하고 인기없는 대통령으로 남을 삘이다.

외교적으로는 당장 베네수엘라 난민로부터 난제가 있으며, 마두로 대통령와 대립하기도 했다. 베네수엘라 정치 위기 틈타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였고, 정식 의전까지 가지는 등 어느 정도 영항력을 가지는 모양이다. 마두로에 대해 전범과 같다는 발언을 하였다.#

게다가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의 자녀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한다고 발표했다.# 이것때문에 인권단체로부터 반이민 물결 속에서 높은 평가를 얻었다.

그러나 이후로 경기침체와 은사인 우리베에 대한 유죄판결로 다시금 지지율이 하락하였고, 2019년 지방선거에서 민주중도당이 대도시 지역에서 참패하는 결과를 보였다. 또한 미투항 반군들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사살하는 병크까지 발생했다. 결국 이러한 것에 더해 노동개혁과 연금개혁을 하여 연금지급시기를 늘리고 최저임금 지급시점을 늘리겠다는 방안까지 나오면서 반정부 시위가 일게 되었다. 일단 두케는 해당 사안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추진할 계획은 없다고는 하지만 이미 사망자가 발생한 상태가 되었다. 2019년 11월에 불거진 반정부시위에 대해 국민과 대화하겠다고 한다.#

2020년 2월에 콜롬비아의 인권 상황과 관련한 유엔의 보고서 내용을 두고 '주권 간섭'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2021년 5월에 소득세 징수 기준을 낮춰 납세자를 늘리고 일부 부가가치세 면세 혜택을 폐지하는 내용 등이 포함된 세제개편안을 내놨지만 서민들만 세금 부담 커지는 것에 대한 반발시위가 매우 거세면서 폐기하였다.# 그럼에도 시위가 지속되면서 숨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021년 8월 24일 대한민국을 국빈 방문한다.#

6. 여담[편집]


민주중도당 소속으로 콜롬비아인들 사이에서 "콜롬비아의 마크롱"이라고 불리지만, 두케 본인과 민주중도당 둘 다 이와는 달리 중도주의가 전혀 아니며, 실제로는 강경우파로 분류된다.

프랑스의 정치인으로 일어나라 프랑스여의 대표인 니콜라 뒤퐁애냥과 묘하게 닮았다. 둘 다 강경우파로 성향도 나름 비슷하고.

2019년 중남미 순방 중이었던 박원순 서울시장과 만나기도 했다.#
[1] 이때문에 영어를 프리토킹할 정도로 잘한다. 그래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통역을 쓰지않고 했다.#[2] 대한민국에서는 어감 때문에 보수 정당이라고 알기 쉽지만, 콜롬비아의 자유당은 캐나다의 자유당처럼 진보 성향을 띈다.[3] 다만 우리베 또한 자유당 출신이었다.[4] 다만 우리베보다는 덜 극우적이다.[5] 일전에 보수당 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했지만 1차에서 탈락했다.[6] 산토스 정권 2기 때 급진변혁당 소속으로 부통령을 지냈지만, 차기 대선에 출마하고자 부통령직을 사임함과 동시에 급진변혁당을 탈당했다. 이후 Mejor Vargas Lleras(바르가스 예라스가 최고)라는 정치운동을 조직했지만, 정당은 아니므로 무소속이라 봐야 한다.[7] 진보운동이라는 정치단체를 조직했고 대선 때는 인간적 콜롬비아라는 이름을 내세웠지만, 정당은 아니므로 엄연한 무소속이다.[8] 다만 이건 베네수엘라가 유난히 특이한것이기는 하다. 반대로 볼리비아는 외환보유고를 잘 쌓아놓은 덕택에 남미에서도 아직 1인당 국민소득이 낮기는 하지만 어쨌든 성장률 1위는 유지하고 있고, 에콰도르는 유가폭락하에서도 일단 현상유지는 했고, 다만 코레아가 모레노와 사이가 벌어지면서 뭐해졌다 말 그대로 외환보유고 관리를 소흘히하다가 벌어진 참사다. 사실 니카라과도 연5%대 성장을 기록하고 있었는데 오르테가가 IMF 조언을 받아들였다가 정치면에서 제대로 망테크를 탔다.[9] 그런데 둘을 더하면 100%에 못 미친다. 이는 콜롬비아가 기권표도 따로 인정하기 때문인데, 기권표가 4.21%가 나왔다. 이 기권표를 제외하고 재환산할 경우, 두케는 56.35%, 페트로는 43.65%가 나오면서 오히려 격차가 더 벌어진다.[10] 까놓고 얘기하자면 FARC가 마약과 내전에서 손을 떼는 것은 좋았지만 사후처리가 엉망으로 진행되어서 불법벌목이 성행하고 갱단들이나 상대 게릴라들이 침투해서 마약업을 확대해나가고 있으며 해당지역에 주거하고 있던 주민들을 살해하는 등의 난장판이 되고있다. 이런상황에서 FARC와의 협상을 뒤엎어봐야 FARC 대원들 상당수가 다시 마약에 손을 댈게 뻔하기 때문에 상황이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질 일은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