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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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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1월 28일에 치러진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본래는 여론조사에서 자민당이 유리할 것으로 나왔었지만, 록히드 사건의 영향 및 너무 많은 수의 자민당 후보들의 출마로 선거 전망이 자민당에게 점점 불리해지기 시작한다.
자유민주당이 250석, 사회당이 112석, 공명당이 58석, 민사당이 38석, 일본 공산당이 26석, 신자유클럽이 12석, 사회민주연합이 3석을 차지하면서 자유민주당은 과반확보에 실패했다. 자유민주당이 원내1당의 자리는 유지 하였다.
이 선거의 최대의 주목 인물이었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는 실형 판결과 주위의 견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22만표, 46.6%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보여주며 당당히 재선에 성공했다.
한편 중의원 과반 확보실패로 타격을 입은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는 다나카의 모든 정치적 영향을 배제한다고 선언하였고, 이후 신자유클럽과 연정하여 정권을 이어나가는 데 성공했다.
1. 개요[편집]
1983년 11월 28일에 치러진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2. 선거 전[편집]
본래는 여론조사에서 자민당이 유리할 것으로 나왔었지만, 록히드 사건의 영향 및 너무 많은 수의 자민당 후보들의 출마로 선거 전망이 자민당에게 점점 불리해지기 시작한다.
3. 선거 결과[편집]
자유민주당이 250석, 사회당이 112석, 공명당이 58석, 민사당이 38석, 일본 공산당이 26석, 신자유클럽이 12석, 사회민주연합이 3석을 차지하면서 자유민주당은 과반확보에 실패했다. 자유민주당이 원내1당의 자리는 유지 하였다.
4. 개표 결과[편집]
4.1. 중선거구[편집]
5. 선거 이후[편집]
이 선거의 최대의 주목 인물이었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는 실형 판결과 주위의 견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22만표, 46.6%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보여주며 당당히 재선에 성공했다.
한편 중의원 과반 확보실패로 타격을 입은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는 다나카의 모든 정치적 영향을 배제한다고 선언하였고, 이후 신자유클럽과 연정하여 정권을 이어나가는 데 성공했다.
[1] 자유민주당[2] 일본사회당, 공명당, 일본 공산당, 민사당, 사회민주연합, 신자유클럽[3] 당선 후 사회당 입당 (1구 다케무라 야스코)[4] 당선 후 자민당 입당 (3구 사토 타카유키, 5구 스즈키 무네오)[5] 당선 후 자민당 입당 (1구 오미 코지)[6] 다나카 가쿠에이[7] 당선 후 자민당 입당 (1구 토츠카 신야, 3구 구마가야 히로시)[8] 공산당 추천 (1구 와타나베 미치코) / 공명당 추천 (2구 하야카와 쇼조)[9] 사회당·공명당·사민련 추천 (5구 곤도 유타카)[10] 당선 후 자민당 입당 (무소속 카기다 슈자부로)[11] 자민당 추가공인 (2구 히가시 치카라)[12] 당선 후 자민당 입당 (1구 에토 세이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