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권익현
덤프버전 :
분류
제7대 민선 부안군수에 대한 내용은 권익현(1961)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군인, 정치인. 본관은 안동(安東). 종교는 불교다. 법명은 혜명(慧明). 호는 정암(貞岩, 亭岩)이다.
아내 영산 신씨 신덕임(辛德任)[4] 여사와의 사이에서 1남 5녀를 두었다. 장녀 권혜경(權惠慶)의 남편이자 권익현 본인의 맏사위가 김태기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며, 차녀 권혜정(權惠貞)의 남편이자 권익현 본인의 둘째사위가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이다.
2. 생애[편집]
1934년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에서 아버지 권영세(權寧世)와 어머니 성산 이씨 이현정(李賢貞) 사이의 1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대구 능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교하였다. 졸업 후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1964년 육군사관학교 동기인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정호용 등과 하나회를 조직했다.
1973년 제26사단 제76연대장으로 있을 때 윤필용 사건에 연루되어, 1974년 8월 육군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예편 이후 삼성정밀주식회사(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무이사를 지냈다. 당시 이건희 부회장이 직접 전화하여 상무로 스카우트 하였고 이병철 창업주에게 소개했다. 이 때의 인연으로 제5공화국 정부와 삼성그룹 간의 가교역할을 하였다.#
1980년 잠깐 제2무임소장관 보좌관을 역임하였다가 민주정의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남도 산청군-함양군-거창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권당 임채홍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2년 5월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으로 경질된 권정달의 후임으로 민주정의당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1983년 5월 김영삼 단식 농성 사건 때 전두환의 특사 자격으로 김영삼이 입원한 병실에 갔다. 1984년 투서 사건으로 사임한 정래혁의 뒤를 이어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이 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한민주당 김동영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러나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공천 탈락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경상남도 산청군-함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7년 민주당과 신한국당이 합당하여 한나라당이 되자 윤필용 사건 때 육군보안사령관이던 강창성과 재회하여 한 때 험악한 분위기가 오갔다. 이후 제15대 국회의원 임기 중 뇌일혈로 쓰러졌고, 이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출마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정계를 떠났다.
이후 2017년까지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상임고문을 지냈다. 2017년 6월 4일,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84세(만 83세).
3. 선거 이력[편집]
4. 소속 정당[편집]
5. 둘러보기[편집]
[1] 인근의 양전리와 함께 안동 권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박권세·박노근·권숙린 북한정치인박갑동도 이 마을 출신이다.[2] 복야공파 두흥(斗興)계 35세 현(鉉) 항렬.[3] #[4] 신동식(辛東植)의 딸이다.[5] 거창군, 산청군, 함양군[6]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신설 합당, 이른바 3당 합당[7] 통합민주당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