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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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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tablewidth=100%><bgcolor=#3d414d> 24사 || ||<rowbgcolor=#9599a5,#595d6a> || || || || || || ||<height=40px><width=16.66%><rowbgcolor=#fff,#191919> 사기 ||<width=16.66%> 한서 ||<width=16.66%> 후한서 ||<width=16.66%> 삼국지 ||<width=16.66%> 진서 ||<width=16.66%> 송서 || || 사마천 || 반고 || 범엽 || 진수 || 방현령 등 || 심약 || ||<rowbgcolor=#9599a5,#595d6a> || || || || || || ||<height=40px><rowbgcolor=#fff,#191919> 남제서 || 양서 || 진서 || 위서 || 북제서 || 주서 || || 소자현 || 요사렴 || 요사렴 || 위수 || 이백약 등 || 영호덕분 등 || ||<rowbgcolor=#9599a5,#595d6a> || || || || || || ||<height=40px><rowbgcolor=#fff,#191919> 수서 || 남사 || 북사 || 구당서 || 신당서 || 구오대사 || || 위징 등 || 이연수 || 이연수 || 장소원 등 || 구양수 등 || 설거정 등 || ||<rowbgcolor=#9599a5,#595d6a> || || || || || || ||<height=40px><rowbgcolor=#fff,#191919> 신오대사 || 송사 || 요사 || 금사 || 원사 || 명사 || || 구양수 등 || 토크토아 등 || 토크토아 등 || 토크토아 등 || 송렴 등 || 장정옥 등 || ||<-6><bgcolor=#3d414d> 기타 || ||<-2><rowbgcolor=#9599a5,#595d6a> ||<-2> ||<-2> || ||<-2><height=40px><width=33.33%><rowbgcolor=#fff,#191919> 동관한기 ||<-2><width=33.33%> 신원사 ||<-2><width=33.33%> 청사고 || ||<-2> 유진 등 ||<-2> 커샤오민 등 ||<-2> 자오얼쉰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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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사 金史 History of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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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탈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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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
| 14세기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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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 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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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수
| 13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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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 1115년 ~ 1234년 (120년) 금 태조 원년 ~ 금 말제 원년
|
金史
금나라의 역사를 다룬 사서로 흠정
24사 중 하나이다. 중서우승상 메르키트
토크토아(脫脫)가 도총재관 겸 감수국사를
[1], 테무르타스(鐵木兒塔識), 장기암(張起岩), 구양현(歐陽玄), 여사성(呂思誠), 게혜사(揭傒斯) 등이 총재관을 맡아서 편찬사업을 시작했다. 《금사》는 《
송사》, 《
요사》와 더불어 함께 편찬되었다.
원나라는 1261년부터 《요사》와 《금사》의 편수 계획을 시작하여 1276년에는
남송의 수도 임안(臨安)을 정복함과 동시에 황실 도서의 완전한 보존을 명령하면서 사서 편찬의 의지를 드러내었다. 그런데 1279년, 남송이 완전히 멸망한 이후,
성리학적 관점에서 정통성 문제가 제기되어 계속 연기되었다. 원 조정내에서는 다양한 주장이 대립했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송을 <본기>(本紀)에 기록하고, 요와 금은 각각 <재기>(載記)에 기록해야 한다. 2. 요와 금을 《북사》(北史)로 편찬하고, 송은 《송사》(宋史), 《남송사》(南宋史)로 분찬해야 한다.
|
이처럼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결국
삼국 모두에게 정통성을 부여하고 각각의 연호를 사용한다(三國各 與正統, 各繫其年號)
는 원칙이 확정되었고,
순제(順帝) 1343년 2월부터 요, 송, 금의 편찬사업이 시작되어 1345년에 완성되었다.
금사(金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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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기(本紀) ] ||<tablewidth=100%><tablebgcolor=#b82647><width=33%> 1권 「세기(世紀)」 ||<-2><width=33%> 2권 「태조기(太祖紀)」 ||<width=33%> 3권 「태종기(太宗紀)」 || ||<rowbgcolor=#fff,#191919> 여진 ||<-2> 완안아골타 || 완안오걸매 || || 4권 「희종기(熙宗紀)」 ||<-2> 5권 「전폐제기(前廢帝紀)」 || 6·7·8권 「세종기(世宗紀)」 || ||<rowbgcolor=#fff,#191919> 완안합랄 ||<-2> 완안적고내 || 완안오록 || || 9·10·11·12권 「장종기(章宗紀)」 ||<-2> 13권 「후폐제기(後廢帝紀)」 || 14·15·16권 「선종기(宣宗紀)」 || ||<rowbgcolor=#fff,#191919> 완안마달갈 ||<-2> 완안과승 || 완안오도보 || ||<-2> 17·18권 「애종기(哀宗紀)」 ||<-2> 19권 「세기·보(世紀補)」 || ||<-2><rowbgcolor=#fff,#191919> 완안영갑속 ||<-2> 완안승과 · 완안와리타 · 완안호토와 || ||<-4><width=1000> ||
※ 20권 ~ 58권은 志에 해당. 59권 ~ 62권은 表에 해당. 금사 문서 참고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 본기(本紀) ] ||<tablewidth=100%><tablebgcolor=#b82647><width=33%> 1권 「세기(世紀)」 ||<-2><width=33%> 2권 「태조기(太祖紀)」 ||<width=33%> 3권 「태종기(太宗紀)」 || ||<rowbgcolor=#fff,#191919> 여진 ||<-2> 완안아골타 || 완안오걸매 || || 4권 「희종기(熙宗紀)」 ||<-2> 5권 「전폐제기(前廢帝紀)」 || 6·7·8권 「세종기(世宗紀)」 || ||<rowbgcolor=#fff,#191919> 완안합랄 ||<-2> 완안적고내 || 완안오록 || || 9·10·11·12권 「장종기(章宗紀)」 ||<-2> 13권 「후폐제기(後廢帝紀)」 || 14·15·16권 「선종기(宣宗紀)」 || ||<rowbgcolor=#fff,#191919> 완안마달갈 ||<-2> 완안과승 || 완안오도보 || ||<-2> 17·18권 「애종기(哀宗紀)」 ||<-2> 19권 「세기·보(世紀補)」 || ||<-2><rowbgcolor=#fff,#191919> 완안영갑속 ||<-2> 완안승과 · 완안와리타 · 완안호토와 || ||<-4><width=1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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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本紀) 19권, <지>(志) 39권, <표>(表) 4권, <열전>(列傳) 71권, 합계 135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후대에 <금국어해>(金國語解) 1권이 추가되었다.
《금사》는 《요사》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나은 평가를 받고 있다. 편찬자들은
당나라 이래로 확립된 ‘설관수사'(設館修史)
[2] 국가 주도로 기구를 설치하여 역사서를 편찬하는 제도이다. 당나라때 정착되었다고는 하나 이미 그 맹아가 남북조시대때 형성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의 방식을 계승했고, 중국 정사를 편찬하기 위한 공식 기관이 설립되는 등 체계적이고 일관성있게 진행했다. 그런 점에서 정복 왕조가 편수했지만, 정통 왕조와 다를 바가 없어 의의하는 점이 크다. 게다가 위에서 상술했듯이 요, 송, 금 모두 평등하게 역사를 서술한 점 역시 이전의 화이론적인 중국 정사와 대비되어 역사학적 가치가 크다. 그러나, 당시 원나라가 쇠퇴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단기간에 편찬되어 사료가 엉성하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구오대사》,《신오대사》, 《송사》, 《요사》, 《금사》, 《원사》, 《명사》와 함께 고려 역사를 기록한 사서라 고려사 연구자들에게는 필수적인 사료이다.
[3] 마치 초기 삼국시대를 알기 위해 《한서》, 《후한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백제와 가야 역사를 알기 위해 《일본서기》를 참고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만주가 본산인
여진족이 일으킨 국가이기 때문에 인접해있고 관련이 많은 한반도 내에서도 이목이 쏠리지 않을 리 없다. 또한, <
고려전>을 통해 학계 내에서도 고려사를 연구하는 데 필요한 원초 사료로 뽑힌다. 번역은 주로 인터넷에 검색하면 간간히 번역된 글을 볼 수 있다.
- 2007년, 금융감독원 윤명수씨가 국한문 대조 형식으로 《금사》 일부분을 번역해 출판했다. 그런데, 무려 출판사 이름이 완안출판사.... 번역 의도가 여진족 신라인설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라는데 교수가 아닌 민간 출판사다. 관련 기사
- 2014년에는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요사》, 《금사》, 《원사》의 <외국전>을 번역했다.
- 2016년 2월 단국대학교출판부에서 《금사》(전4권)를 완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