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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턴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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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9일 창시해 마이클 미들턴에게 가문의 가장으로서 수여된 문장[1]
1. 개요
2. 역사
2.1. 골드스미스 가문
3. 구성원
3.1. 마이클 프랜시스 미들턴
3.2. 캐럴 엘리자베스 미들턴
3.3. 캐서린 엘리자베스 미들턴
3.4. 필리파 샬럿 매튜스
3.5. 제임스 윌리엄 미들턴
4. 유대인 혈통 의혹



1. 개요[편집]


영국영연방 왕국의 왕세자비 캐서린 미들턴의 친정가문.

현 국왕 찰스 3세의 사돈 가문이며, 차기 국왕 윌리엄 왕세자의 처가이자 왕위계승서열 2위 조지 왕세손, 3위 샬럿 공주, 4위 루이 왕자의 외가이다.

2. 역사[편집]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평민’이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아주 부유한 집안이다. 때문에 캐서린은 대학 시절부터 명품 브랜드인 알렉산더 맥퀸을 애용했을 정도였다.

아버지 마이클 프랜시스 미들턴과 어머니 캐럴 엘리자베스 미들턴[2]영국항공 지상직과 항공직 승무원 출신으로, 직장에서 만나 결혼했다. 캐서린과 여동생 피파가 태어날 때만 해도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이었으나, 부부가 1987년에 시작한 파티용품 사업이 그야말로 초대박이 나 엄청난 부를 축적해 자수성가한 백만장자가 되었다.[3] 덕분에 캐서린은 넓은 부지가 딸린 주택에서 명문 사립학교에 다니는 금수저 아가씨로 자라났다. 말이 평민이지 사실 영국의 복잡한 신분제도를 고려하자면 영국 일반인들 기준으로는 상류층이다. 영국 언론에서는 이들 가족의 사회적 지위를 미들턴 중상류층(Upper-middle class) 용어로 나타내기도 했다.

중요한 점은, 미들턴 가문에 버금가거나 그보다 더 많은 재산을 보유한 상류층 가문의 딸들은 많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상류사회에 돈독한 인연이 있는 집안도 아닌데다 외가 쪽으로는 광부 집안 핏줄을 타고난 캐서린이 최상위 계층인 왕족과 결혼, 그것도 HRH/전하 경칭을 가진 고위 왕족이자 차기 국왕인 왕세손의 아내가 된 것은 단순한 신분상승을 넘어서 본인과 친정의 입장에선 인생 로또 맞은 수준의 벼락상승이었다.[4] 일단 귀족은커녕 준남작의 자녀들도 일반인[5]들의 입장으로서는 살면서 만날 일이 없는 게 영국 신분사회이기 때문. 그래서 캐서린과 윌리엄 왕세손의 결혼은 해외는 물론이고 영국 내에서도 큰 화제가 된 것이다.

캐서린의 형제로는 연년생인 필리파 샬럿 매튜스(애칭은 피파)와 5살 아래의 남동생 제임스 윌리엄 미들턴이 있다. 이들 3남매는 성인이 된 현재까지도 우애가 좋기로 유명하다.

미들턴 가(家)에 수여된 문장은 캐서린의 아버지인 마이클 미들턴에게 수여된 것이다. 가운데 도토리 세 개는 마이클의 세 자녀(캐서린, 피파, 제임스)를 의미하며, 도토리가 채택된 이유는 그들이 자란 웨스트 버크셔 주변에 참나무 숲이 많기 때문이다. 중앙의 금색 띠는 캐서린의 어머니인 캐럴 미들턴의 결혼 전 성인 골드스미스를 상징한다. 위 아래의 흰 띠는 언덕과 산을 상징하며 가족이 함께 즐기는 야외 활동을 나타내며, 파란색과 빨간색은 영국 국기의 기본 색상이므로 선택되었다.

미들턴 가문은 캐서린의 증조할머니인 올리브 미들턴[6]을 통해 젠트리+법조인 집안이던 럽튼 가문의 후손이며, 럽튼 가문은 전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과 먼 친척 관계이기도 하다. 다만 영국 상류층은 직계방계를 엄격하고 복잡하게 구분하기 때문에, 케이트가 태어나기 몇세대 전부터 럽튼으로써의 대우는 없다시피 했다.

20세기에 들어 영국 귀족과 결혼하기도 했고, 영국 왕실과도 인연이 좀 있다. 캐서린의 친할아버지 피터 미들턴은 필립 공이 1960년대에 직접 조종사로서 북아프리카 투어를 떠났을 때, 부조종사로서 같이 근무했다. 즉 50여년 후에 본인들의 손자와 손녀가 부부 사이가 된 것이다.[7]

증조할머니 올리브 미들턴의 남동생 라이오넬 럽튼은 젠트리 가문 영식답게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컬리지에서 다이애나 스펜서의 할아버지 앨버트 스펜서와 같은 과목을 전공했고, 제1차 세계대전에 함께 참전하여 결국 전사했다. 올리브 미들턴은 조지 5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부계 쪽으로는 영국의 성공회성가를 집대성한 토마트 데이비드 신부의 후손이기도 하다. (가톨릭과 달리 성공회는 성직자도 결혼이 가능하다.)


2.1. 골드스미스 가문[편집]


캐럴 엘리자베스 미들턴의 친정인 골드스미스 가문은 가난한 탄광 노동자 계급(Working Class) 출신 가문으로, 캐서린의 외할아버지는 광부였다. 그래서 현재 캐서린의 ‘평민 출신’, ‘미천한 신분’이라는 이미지는 친가보다는 외가의 영향이 크다.[8] 교사를 지망했던 캐서린의 어머니 캐럴은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캐서린의 외할머니 도로시 해리슨은 젊은 시절부터 집안의 신분 상승에 힘썼기 때문에, 캐럴은 그 시절 여성에게 있어 나쁘지 않은 직업인 스튜어디스가 되어 마이클에게 시집갈 수 있었다.[9] 게다가 외손녀 캐서린은 왕세손비가 되어 왕실에 입성해 현재는 왕세자비, 훗날에는 왕비가 될 것이며, 증손자 조지 왕세손 역시 영국 국왕이 될 전망이라, 도로시의 염원은 마침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2011년 발표 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캐럴의 증조모, 즉 캐서린의 고조모가 되는 제인 리들이 에드워드 4세의 후손인 9대 코니어스 남작의 증손녀라고 한다. 다만 이건 혈연적으로 남남이나 마찬가지라 큰 상관은 없다. 특히 직계방계, 남계와 여계, 장유유서로 장래가 극명하게 갈리는 유럽 귀족사회는 더더욱.[10]


3. 구성원[편집]



3.1. 마이클 프랜시스 미들턴[편집]


마이클 프랜시스 미들턴 (Michael Francis Middleton)

1949년 6월 23일에 태어났다. (74세) 어머니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암호 해독가 겸 간호사로 복무했으며,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RAF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한 피터 미들턴 대위였다. 1962년 비행기 조종이 취미였던 필립 공남미로 비행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는데, 이때 부조종사로 함께 탑승한 적이 있다고 한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브리티시 에어웨이에서 항공 배차 담당자로 근무했으며, 이때 승무원이었던 아내 캐럴을 만나 결혼했다. 이후 1987년 아내와 함께 항공사를 퇴사하고 파티용품 업체를 차렸는데, 이게 대박이 나서 부유층으로 신분 상승을 이루었다. 미들턴은 튜더 양식의 저택을 비롯해, 첼시의 아파트[11] 등 여러 부동산을 구입햤으며, 경주마와 맨션까지 구매할 정도로 호화스러운 생활을 누리기 시작했다.

3.2. 캐럴 엘리자베스 미들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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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 엘리자베스 미들턴(Carole Elizabeth Middleton).

영국 언론에서 표현하는 캐럴의 이미지는 ‘상류사회에 진입하려고 힘쓴 야심가’, ‘극성맞은 치맛바람으로 자식들의 신분상승을 위해 노력하는 어머니’이다. 캐럴은 캐서린의 최대 조력자이다. 윌리엄 왕세손이 태어났을 때부터 그와 나이가 비슷한 자신의 딸들을, 특히 (윌리엄 왕세손과 동갑인) 큰딸을 윌리엄 왕세손과 맺어주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철저히 이행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전해질 정도이다.

상대적으로 캐럴의 남편이자 캐서린의 아버지인 마이클은 거의 거론되지 않는데, 점잖은 성격 덕에 나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미들턴 부부는 불화 및 별거설도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다. 관종으로 평가받는 캐럴은 가족까지 동원되는 왕실 행사 외에 파파라치에도 종종 얼굴을 보이지만, 마이클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미들턴 부부가 자수성가한 준재벌이긴 하지만, 엄격한 계급사회인 영국에서는 명예를 돈으로 사기는 힘들다. 일종의 보수적 귀족주의에서 나온 문화 권력인데, 한국에서 학벌이 지닌 기능과 비슷한 면이 있다.[12] 당장에 캐서린의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다고. 퍼스트네임과 미들네임인 ‘캐서린’과 ‘엘리자베스’는 계층 구분 없이 두루 쓰이는 영국적인 이름이지만, 성씨인 ‘미들턴’은 듣자마자 바로 상류층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덕분에 상류층이 아니면서도 딸들을 왕자에게 시집보내려고 노력한 캐럴은 Social Climber(신분상승을 하려는 사람)이라고 늘 조롱당하며, 큰딸을 왕실에 시집보내면서 오랫동안 꿈꾸었던 상류층에 진입한 듯 해보여도 정작 영국 상류층들의 사이에서는 왕따다. 예를 하나 들자면, 영국 왕족과 귀족들은 화장실을 Lavatory나 loo라고 부르는데, 모임에서 캐럴이 다른 귀족 여성들에게 “Toilet이 어디인가요?”라고 물어서 무시당한 적이 있다. 굳이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1970~1980년대에 제법 있는 집안의 사람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화장실을 찾는데 “뒷간은 나가서 어디냐”고 묻는 셈이다. 이 일화를 보면 알겠지만, 영국은 계급에 따라서 평상시에 사용하는 단어조차도 매우 다르다. 왕족이나 귀족 계급이 쓰는 RP(Posh), 일반 서민들과 같은 노동자 계급이 쓰는 코크니 등으로 나눠진다. 쓰는 말과 억양에 따라 계급차를 확연히 알 수 있다.[13]

예전 윌리엄과 캐서린이 한참 사귈 때 왕실에서 공식 초대를 했었는데, 거기서 그렇게 을 쫙쫙 씹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입도 가벼워서, 왕족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왕실에서 일어나는 비공식적인 이야기를 외부에서 떠드는 것인데, 캐럴이 딱 그런 케이스이다. 약혼 발표 바로 전에도 “캐서린이 결혼 못할 것 같다”면서 공개적인 자리에서까지 오두방정을 떨고 다닐 정도였다.

캐럴이 영국 상류층들 사이에선 왕따인 이유는 신분제가 엄격한 영국이다 보니 신분 가르기인 것도 있지만, 평민 일반인이 봐도 천박하고 경악스러운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것도 있다. 명문 귀족이 되고는 싶지만, 정작 그럴 준비는 아예 되어있지 않은 사람인 셈이다. 귀족 반열에 오르고 싶으면 옷은 최대한 단정하게, 은 입에 아예 대지 말아야 하며, 실제 성격이 과묵하지 않더라도 최대한 과묵한 척을 해야만 하는 등, 귀족들의 사교계에서는 기품이 필수다.[14] 그러나 캐럴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본래 명문 귀족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소한 예법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지금 21세기가 되어서 좀 누그러진 것이 이렇다. 전근대에는 정말 극심해서, 아침에는 어떻게 기상해야 하고, 식사는 어떻게 해야 하며, 옷은 어떤 순서대로 입어야 하며, 걸음걸이는 어떻게 해야 하고 등등, 이러한 사소한 행동들에 대한 예법도 매우 엄격했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 왕자와 거지[15], 연암 박지원양반전[16] 등에도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외에도 캐럴의 남동생 게리 골드스미스는 마약 제조자인데, 창녀와 동거하면서 불법 유통에도 몸 담고 있어서 논란이 많았다.


3.3. 캐서린 엘리자베스 미들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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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필리파 샬럿 매튜스[편집]


파일:피파미들턴들러리.jpg
2011년, 캐서린의 결혼식에서 들러리를 맡은 피파
필리파 샬럿 매튜스(Philippa Charlotte Matthews).

피파는 언니 캐서린의 결혼식 때 신부들러리를 맡아서 단숨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결혼식 후 웨스트민스터 성공회 성당에서 퇴장할 때 형부 윌리엄 왕세손의 남동생인 해리 왕자와 팔짱을 끼며 뒤따랐었는데, 이 모습을 두고 “캐럴이 조금 더 원했던 금상첨화”라며 조롱을 당하기도 했다.

브래지어만 입고서 한 남성과 열심히 춤추고 있는 사진이 유출되어서 말이 많았다. 언니에 비해 다소 노안이라는 평이 많다. 다만 타고난 몸매가 좋아, 다소 평범한 의상을 착용해도 그 의상은 품절이 될 정도이다.

홈파티를 주제로 한 책을 낸 적이 있었는데, 언니의 후광으로 쓴데다 정작 음식 사진보다 본인의 얼굴이 더 많이 나와 독자평이 최악을 달렸으며, 결국 나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아마존닷컴 세일행이라는 굴욕을 맛보았다.

파일:피파미들턴결혼식.jpg
2017년, 피파 미들턴과 제임스 매튜스의 결혼식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별다른 직업이 없는 사교계 명사로 지내다가 2017년 5월, 펀드매니저이자 스코틀랜드 귀족 가문의 장남 제임스 스펜서 매튜스와 결혼했다. 언니 캐서린은 브라이드 메이드(신부들러리)를 섰고, 청첩장 그림을 그려주었다. 이 결혼식에는 캐서린 뿐만 아니라 윌리엄 왕자, 해리 왕자, 베아트리스 공주 등 다른 왕족들도 참석했다. 당시 3살, 2살이던 캐서린의 큰아들 조지 왕자와 딸 샬럿 공주도 화동으로 활약했다. 여담으로 이날 조지 왕자는 동생 샬럿과이모의 웨딩드레스를 밟으며 장난을 치다가 결국 엄마 캐서린에게 혼나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피파의 결혼식 당시 ‘파트너는 약혼했거나 결혼한 사람만 데려와라(No ring, No bring)’는 규칙을 내세워서, 당시 해리 왕자의 연인이었지만 약혼은 하지 않았던 메건 마클은 본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저녁에 열린 피로연에만 참석했다. 이에 대해 “동년 3월 자메이카에서 열렸던 해리 왕자의 친구의 결혼식에서 해리 왕자와 메건이 신랑 신부보다 더욱 주목받았는데, 그것을 의식해서 한 행동이다.”라는 루머가 있었는데, 당사자들이 자서전에서 확인사살 했다. 더 자세히는 미들턴 가족이 ‘마지 못해’ 메건 마클까지 초대했고, 이에 메건도 나름대로 스타일리시하지만 튀지 않는 옷을 준비하고, 미디어에 과도하게 노출되는 일을 막으려 했지만 결혼식 당일 더 선에서 피파와 메건을 비교하는 헤드라인을 내걸어 “참석하지 않았다”라고 표현했다. 저녁식사가 끝난 뒤에는 둘만 있다가 자리를 나왔다고 한다.

피파의 남편이 된 제임스 매튜스는 Laird의 후계자(the younger)다. Laird는 스코틀랜드 특유의 타이틀로 ‘지주’, ‘영주’ 정도로 번역될 수 있다.[17] 할아버지가 광부 출신이었지만 자수성가해 Glen Affric의 1만 에이커 Laird까지 된 것이다. 훗날 제임스가 영주 자리를 물려받으면 피파는 공식적으로 ‘레이디(Lady)’ 칭호까지 쓸 수 있게 된다.

물론 언니 캐서린이 시집간 영국 왕실이 훨씬 더 부유하긴 하다.[18] 영국 왕실은 대대로 가문 소유의 성, 영지, 보석, 가보 같은 상당한 가치를 지닌 재산을 소유하고 있고, 그외에도 관광, 부동산 사업 등으로 벌어들이는 수입도 엄청나다.[19] 하지만 이렇게 재산이 많은데도 국민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어느 정도는 검소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왕족과 달리, 피파는 세간의 시선으로부터 한결 자유롭다.

2018년 10월 15일[20], 세인트 메리 병원에서 첫째(장남) 아서 마이클 윌리엄 매튜스(Arthur Michael William Matthews, 5세)출산하였다. 케임브리지 공작가(왕세손) 자녀들의 첫 번째 사촌이다. 2021년 3월 15일에는 둘째(장녀) 그레이스 엘리자베스 제인 매튜스(Grace Elizabeth Jane Matthews, 3세)를 출산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2세의 플래티넘 주빌리 콘서트에 참석한 모습에서 셋째를 임신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2022년 6월 차녀 로즈 루이즈 빅토리아 매튜스(Rose Louise Victoria Matthews, 1세)를 출산했다. 한편 ‘로즈’라는 이름이 피파의 형부 윌리엄 왕세손과 불륜설이 휩싸인 로즈 한버리와 같아서 구설수에 올랐다. 윌리엄이 정말 불륜을 했다면, 피파가 딸의 이름을 로즈라고 지었을 리가 없기 때문.


3.5. 제임스 윌리엄 미들턴 [편집]


제임스 윌리엄 미들턴(James William Middleton).

제임스 미들턴은 개인화 연하장 회사인 붐프(Boomf)를 운영하는 사업가이고, 붐프를 운영하기 이전에는 케이크 제조 사업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큰누나의 결혼식에서 성경 구절을 낭독했다.

젊은 시절 괴상한 누드 사진들이 여럿 유출되어서 곤혹을 치른 바 있다. 엉덩이가 노출된 뒷모습은 애교고, 본인의 트렁크 속에 손을 집어넣은 사진이라든지, 여성용 원피스메이드복을 입은 모습, 그리고 다른 남자와 야릇한 장면을 연출한 사진 등이 있다. 제임스의 친구들은 “대학 신입생 시절에 장난으로 촬영한 것”이라고 쉴드를 쳐주었고,“민망하기는 하지만 짓궂은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네티즌들도 있었지만, 왕실 입장에서는 품위를 지키지 못한 사돈총각의 행동에 대해 매우 못마땅해 했다고 한다.

그래도 범죄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나이의 청년답게 노는 것을 매우 좋아했을 뿐이다. 현재는 조용하게 잘 살고 있어서, 20대 시절의 흑역사 정도로 취급하는 모양이다.

난독증이 있다고 한다. 2019년에 우울증ADHD 투병 사실을 공개했는데, 이는 그가 왕세손과 결혼한 큰누나로 인해 23세부터 대중의 관심을 받아왔던 게 원인이라고. 2017년에 인지행동치료를 받기도 했다.

파일:20210924_224616.png
2021년, 제임스 미들턴과 알리제 테베네의 결혼식
2019년에 프랑스인 금융 전문가 알리제 테베네와 약혼했다. 원래 2020년 여름에 결혼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19 때문에 결혼식을 미뤘다가, 2021년 9월 11일 프랑스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에는 큰누나 캐서린네 가족이 모두 참석했다고 한다. 테베네가 이날 입은 웨딩드레스는, 시어머니 캐롤이 1980년 결혼식 당시 입었던 웨딩드레스를 물려받은 것이다.

20대 시절에는 그저 그런 외모였지만, 수염을 기르고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나서는 인물이 훤해졌다. 그러나 3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부터 이마선이 점점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 흠. 참고로 큰누나 캐서린도 결혼 전보다 머리숱이 부쩍 늘어서, 부분 인모(人毛) 가발 착용설이 있다.

여담으로, 스파니엘 브리딩을 하고 있어 캐서린 부부에게 강아지들을 분양시킨다. 현재 캐서린이 키우고 있는 강아지인 올라(Orla)도 제임스로부터 분양받은 것.

2023년 10월 아내 엘리제가 아들을 출산했다. 아이의 이름은 이니고 미들턴(Inigo Middleton)이다.


4. 유대인 혈통 의혹[편집]


캐서린의 외가쪽 성씨는 골드스미스(Goldsmith)이다. 이 ‘골드스미스’라는 성씨 때문에 모계 쪽으로 유대계가 아니냐는 오해도 많이 받았지만, 유대계가 아니다. 캐서린의 혈통은 거의 영국인이고 1/16은 스코틀랜드인, 1/512는 프랑스인의 혈통이 섞여 있다.

왜 이런 오해를 받았느냐면, 골드스미스는 영어식 성씨이지만 프랑크 골트슈미트(Goldschmidt)라는 독일유대인이 1895년에 영국에 정착하면서 성씨를 영어식인 ‘골드스미스’로 바꾸었기 때문. 원래는 독일계 성씨인 애들러(Adler)와 같이 이 두 성씨가 유대인들 사이에서 매우 흔한 성씨다 보니 비유대인들도 다들 유대인으로 오해를 받는다.

어쨌든 캐서린이 유대계가 아닌데도 결혼 전 혈통 논란이 잠깐 있었는데, 그 이유는 윌리엄 왕세손이 직계 왕족인데다가, 유럽 왕실과 귀족은 유대인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물론 돈 때문에라도 유대인 지인이나 인맥 정도는 당연히 있지만, 유럽의 귀족이나 왕족이 유대인과 결혼하면 주변에서 “얼마나 돈이 없기에?!”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다들 돈이 궁했는지 매우 흔했다. 일례로 영국 총리이자 백작이었던 아치볼드 프림로즈도 유대인 상속녀와 결혼했다.) 미국인 상속녀들이 돈을 바리바리 싸들고 유럽의 귀족 및 드물게는 왕족에게 시집왔을 때도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배우자 선택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방계 왕족들조차도 유대인이거나 유대계 혼혈인 사람을 배우자로 맞이하겠다고 하면, 배우자 될 사람이 개차반이 아닌 이상 집안에서 허락해주지만 속으로는 매우 떨떠름해한다. 흑백혼혈메건 마클영국 왕실에 시집올 수 있었던 것도, 신랑인 해리 왕자가 차남이며, 영국 왕실이 다른 나라의 왕실들보다는 신분과 혈통에 그나마 관대하기 때문이었다.

해리 왕자 외에도, 상류층의 차남이나 딸이 종종 유대인이나 유색인종과 결혼한 케이스는 드물게 있다. 아만다 너치불[21]과 안토니 암스트롱존스[22]는 유대인 혈통이 섞였고, 프레데릭 윈저[23]는 유대계 여배우 소피 윙클먼과 결혼했고, 다이애나 스펜서의 먼 조상 중에는 인도인이 있고, 다비나 윈저[24]뉴질랜드 출신의 마오리족 게리 루이스와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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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중에 그의 아들인 제임스가 이를 물려받게 될 것이다.[2] 혼전 성은 골드스미스.[3] 2018년 기준으로 미들턴 가문의 순자산만 6,700만 달러다.(약 760억 / 부동산 소유 미포함)이다. 몇년이 지났기 때문에 2024년인 현재와는 다를 수 있다.[4] 덕분에 광부 집안 출신인 캐서린의 외가 친척들까지, 상류사회에 편입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대우를 받고 있다.[5] 물론 캐서린의 친정은 엄청나게 부유한 집안이기 때문에 일반 서민은 아니나, 어머니 캐럴이 많은 돈을 쏟아부어 3남매 전부 명문 사립학교를 보낸 덕에 상류층 인맥을 형성할 수 있었다.[6] 혼전 성은 럽튼.[7] 다만 아쉽게도 필립 공과 달리 피터 미들턴은 2010년에 사망하여 1년 뒤에 열린 손녀의 결혼식을 보지 못했으며 필립 공과도 재회를 못했다.[8] 더군다나 외가 친척들이 지저분한 구설수를 많이 일으킨다.[9] 한마디로 이것이 1차 신분 상승이었다.[10] 당장에 대한민국의 경우 이론상으로는 귀화자를 제외한 모든 국민이 30촌 안에 들어간다. 기초수급자도 재벌과는 먼 친척이라는 얘기(…)[11] 후일 이 아파트에서 윌리엄 왕세자캐서린 미들턴이 대학 친구들과 함께 동거 생활을 했으며, 이후 두 사람이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12] 물론 학벌은 본인의 피나는 노력으로 바꿀 수 있지만, 혈통은 날고 기어도 바꾸기 어렵다는 점에서 훨씬 더 심하다.[13] 여담으로 흔히 타국 사람들이 영국 드라마영국 영화를 통해 갖고 있는 영국 영어에 대한 세련되고 고급진 이미지는 RP로 인해 생긴 이미지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게, 잉글랜드는 정극 연기의 전통이 지나치게 오래된 나머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정도는 교양으로 눈감고 소화하는 고학력 부유층 출신이 아니라면 애초에 정극 연기를 익힐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닌 경우가 오히려 손에 꼽는다. 신분에 따라 이런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게 현재 영국의 현실이다.[14]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정부(情婦)로서 그의 총애를 받았던 뒤바리 부인은 경박스럽고 서민스러운 행동으로 인해, 당시 프랑스 내 다른 귀족들에게 왕따를 당했다.[15] 에드워드 왕자와 옷을 바꾸어 입었다가 얼떨결에 가짜 왕자가 된 톰 캔티가, 기품 문제로 인해 고역을 겪는다.[16] 돈으로 양반 신분을 산 부농이 양반으로서 지켜야 할 각종 규율들을 듣고 진절머리를 내는 장면이 나온다.[17] 영국 여권에도 표시되긴 하지만 절대 오등작 귀족이 아니고, 매수 매각도 가능하다. 존 네이피어가 세습받았던 작위가 이 레어드인데(8대 머치스턴의 레어드) 아들대에 스코틀랜드의 남작급인 로드로 승작한다.[18] 당장 뽑아 쓸 수 있는 돈과 사치만 따진다면 중동이나 동남아시아 왕실 등이 넘사벽이고, 룩셈부르크, 모나코 공실 같은 유럽의 공가들도 영국 왕실보다 더 우위이긴 하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위상은 영국 왕실이 훨씬 더 높다. 더군다나 모나코 공실 같은 경우는 다른 유럽 공실조차 ‘격 떨어지는 집안’이라며 같은 군주 가문 취급도 안 해준다고.[19] 개인 자산은 커녕 국민들의 세금으로 연명하느라 최대 연 10억 정도의 생활비로 생활하며 전 세계 왕실 중에서 가장 가난한 일본 황실과 비교된다.[20] 이날은 해리 왕자메건 마클이 장남 아치를 임신했다고 발표한 날이기도 하다.[21] 루이 마운트배튼의 외손녀. 한때 찰스 왕세자의 신붓감으로 고려되었다.[22] 마거릿 로즈 공주의 전 남편.[23] 켄트 공자 마이클의 아들[24]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의 장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