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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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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
North Korean won ₩

ISO 4217 코드
KPW
중앙은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은행
사용국
[[북한|

북한
display: none; display: 북한"
행정구
]]

기호

단위
₩5, ₩10, ₩50, ₩100, ₩200, ₩500, ₩1,000, ₩2,000, ₩5,000

1. 개요
1.1. 평양 시내의 물가
2. 시리즈
2.1. 소련군사령부 군표[1]
2.2. 1기 (1차 시리즈)
2.3. 2기 (2차 시리즈)
2.4. 3기 (3차 시리즈)
2.5. 4기 (4차 시리즈)
2.6. 5기 (5차 시리즈, 현행권)
2.7. 기념권 (기념 문구 가쇄권)
3. 현황
4. 여담
5. 만약에 남북통일이 이루어진다면?
5.1. 북한화폐남한의 화폐로 바꾸기
5.2. 남북한의 화폐를 모두 갈아치우기
5.3. 독일의 경우
6. 구하는 법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파일:조선중앙은행 휘장.svg

북한의 통화. ISO 4217 코드는 KPW이며, 기호는 ₩이나 실생활에선 한글로 "원"이라고 쓴다. 일단 북한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 환율은 '1달러=100원'이지만 실제로 시장에 거래되는 가격은 이보다 수십배 가량 높다.[2] 근 10년 통계에선 특별히 낮아지거나 높아졌을 때를 제외하면 대체로 1달러=7~8,000원 사이에서 형성되는 느낌. 2023년 4월 기준으로 암시장 기준 북한 환율은 1달러=8,000원대 초반이라고 한다. #

2009년 화폐개혁의 여파로 2012년도 까지는 환율이 수백배 가량 오르는 혼란상을 겪다보니 외화의 사용빈도가 늘어났고, 2013년 이후로 암환율이 달러당 8,000원으로 어느정도 안정화된 이후로도 고급 상점을 이용할 때에도 외화가 결제 수단으로 쓰이고 있고, 재산축적을 외화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현재도 외화의 사용 비중이 높다. 중국 자본이 많이 진출해있는 라선시 등 국경 지대에서는 장마당(=재래시장)에서도 중국 위안화가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또한 공식 환율과 암환율간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이나 대만에서조차 환전이 불가능하며, 굳이 환전을 할려면 암달러상을 통해 하는것이 이득이다.

데일리NK가 2009년 8월 15일부터 평양, 신의주, 혜산 지역의 1달러당 실질 환율과 쌀값을 거의 2주마다 업데이트하고 있는데, 실질 환율을 보면 보면 2010년은 2009년 북한의 화폐개혁의 영향으로 매우 불안정한 환율을 보여주고 있으며, 2011년 봄~가을까지는 1달러당 3000원 전후의 비교적 안정적인 환율을 보여줬다가 이후 급격히 상승하다가 2013년에야 오늘날과 얼추 비슷해졌고, 2020년 11월~2022년 7월까지는 8000원을 밑돌다가[3] 2022년 8월부터는 1달러당 80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예전엔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을 위한 화폐로 외화와 바꾼돈표가 있었지만, 1990년대 이후로 북한 돈의 가치가 급속히 떨어지고 직거래하는 것이 대세가 되면서 2002년에 폐지하고 미국 달러유로화를 공식적인 외국인용 화폐로 지정한 상태다. 남한 사람들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구경할 일이 없으나 북한 상인과 일반 인민들에 의해 중국의 중개상에게 넘겨져 점차 유출되는 방식으로 퍼져 이 루트를 타면 손 쉽게 구할 수 있다. 북-중 국경 근처(단둥시, 도문시)의 가게에서도 볼 수 있고 파주, 고성(강원도) 소재 통일전망대에서도 팔고 있으나 화폐 가치에 비해 굉장히 비싸므로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가장 저렴한 곳은 다름아닌 알리바바 혹은 타오바오.[4] 국내 화폐상에서도 약간 가격이 있긴 하다만 나름 간단히 구할 수 있다. 참고로 중국 등 제3국에 이미 반출된 북한 화폐를 들여오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고 한다.해당 판결 기사 하지만 허가없이 북한측 당사자와 직접 북한 화폐를 매매, 교환하는 것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이다.

1.1. 평양 시내의 물가[편집]


파일:attachment/북한 원/북조선쇼핑.jpg
물가 참고용 사진. 2012년 경 북한 최초의 대형마트인 광복지구상업중심이 개장했을 당시 리포터가 식용유, 샴푸와 기타 화장품, 2~3kg 정도의 모듬빵, 음료수 2병, 술 1병을 구입했을 때 가격이다. 그런데… 최고액권을 대체 몇장을 줘야할 지 모를 숫자가 인상적이다.[5] 이정도면 북한 노동자의 월급과 맞먹는다. 공식환율이면 아예 말도 안되고[6] 실제 시장환율이나 마찬가지인 암시장 환율 달러로 환산해도 1달러/8,150원 기준으로 44달러나 하므로 물가 자체가 비싸다.

유튜브에서 평양에 여행 갔다온 외국인들이 찍어서 올린 동영상들을 살펴보면 대략적으로나마 가장 나은 형태로[7] 추정할 수 있었다. 2014년 평양 기준으로 호떡이나 밀전병 같은 간단한 간식이 3,500원, 간단한 소형 전자기기들도 50만원 ~ 2백만원에 필적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물가는 그냥 북한에 소식통을 가진 언론사들이 측정하고 있다.

한때는 평양 물가가 북한 전체의 물가가 아니었으나, 적어도 2010년대 중반 이후에는 뇌물을 끼고 운송수단을 이용하는 '서비차'가 보편화 되고, 휴대전화로 물가 등을 공유하여 거의 비슷해졌다. 코로나 시국에 이동이 제한되어 괴리가 일어난 사례가 있던 정도다. 데일리NK라는 언론이 정기적으로 평양 물가와 환율을 측정하고 있다. 링크 지역을 구분 않고 물가를 측정하는 아시아프레스와도 비교할 수 있다. 링크 북한 정권에 대한 반발심으로 평양만 특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정권의 탄압은 심하지만 주민의 저항도 만만치 않아 지방에도 부자가 존재한다. 외국인들도 찾는 평양 중심부에 사는 40~60만명 정도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평양 시민들은 지방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산다고 한다. # 그리고 이 부자가 정부의 감시를 피한 자수성가형 부자일 수도 있다. 평양도 중심부 빼고는 지방도시 못지 않게 가난한 곳이 많다. 이것은 구글 어스 같은 위성사진으로 건물이 정비된 모습을 관찰해도 확인할 수 있다.


2. 시리즈[편집]


북한 원은 5회의 화폐개혁을 거쳤기 때문에 모두 더해 5개의 시리즈가 존재한다. 하지만 개혁을 했어도 ISO 4217 코드는 바뀌지 않았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화폐개혁을 하거나 디자인을 바꾸면 짧아도 2~3년 정도는 교환을 위해 유예기간을 두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해 북한의 화폐정리사업은 딱 1주의 여유만 있었다.

심지어 이 1주 후에는 돈으로써 인정해주지 않았기에 무조건 바꿔야 하지만 이게 북한당국은 인민들이 몰래 모은 돈을 자신들이 꿀꺽하기 위해 시행하는 것이다보니, 평생 모은 돈 10억이 곧바로 1억이 되어 자살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후 모든 자산가들은 위안화나 달러로 보관하게 되었다.


2.1. 소련군사령부 군표[8][편집]


1945년 여름에 소비에트 연방 국가은행/재무인민위원회/국방인민위원회가 금엔으로 표시한 군표의 발행을 제안했으니, 소비에트 연방의 인민위원회의가 소련군에 대하여 금융지원을 결정하면서 소련군이 점령한 곳에서 소비에트 연방 국가은행의 금루블로 거래하는 행위를 엄금했다. 1945년 가을에 소비에트 연방의 인민위원회의가 군표의 발행을 지시한 덕택에 북한 땅을 다스리는 소련군사령부조선 엔과 등가로 교환이 가능한 군표(1엔/5엔/10엔/100엔)를 발행했다.

현재 소련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당시에 이 군표가 미군정 산하 남한에서 발행한 조선은행 원보다는 훨씬 가치가 높았다.


2.2. 1기 (1차 시리즈)[편집]


  • (전화는 왼쪽에서 오른쪽, 원화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
  • 전화 (15전, 20전, 50전) / 원화 (1원, 5원, 10원, 100원) = 7종 [9]

1947년 12월 6일부터 1947년 12월 12일까지 일본 제국의 조선은행권 1엔을 조선중앙은행권 1원으로 바꾸어 주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1947년 12월에는 일본 제국의 조선은행권 20억 엔과 소련군사령부의 군표 80억 엔이 북한 땅에서 돌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 제국의 본토에서 1946년에 실행한 화폐개혁(1:1)과 소비에트 연방의 본토에서 1947년에 실행한 화폐개혁(10:1)은 일본은행소비에트 연방 국가은행이 일본 제국의 금엔과 소비에트 연방의 군표에 대하여 보증을 거부하는 명분이 되었으니, 북한의 국민경제를 위해서 화폐개혁을 실행한 것이다. 당시의 화폐개혁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가) 1세대 단위로 세대주는 500원, 만 18세 이상의 동거가족 1명에 대해서는 200원으로 계산된 금액까지 교환할 수가 있었고, 육해공군/공안당국/민정관청/국유기업/사회단체에서 근무하는 사람들과 국가로부터 생활보조를 받는 사람들은 1947년 11월 봉급과 동액까지 교환할 수가 있었지만, 그들의 가족에 대하여 교환하지 않았다.

(나) 10명 이상의 노동자와 사무원을 고용하는 민간기업소 및 민간단체에 대해서는 교환액이 1947년 11월 지불임금의 50%를 넘지 못했고, 10명 이하의 노동자와 사무원을 고용하는 민간기업가, 수공업자, 소상인 및 자유직업자들은 1947년 11월 납세한 액수에 대하여 시도 인민위원회 재정과장의 증명서를 제출하여 사업소득세 또는 자유소득세의 과세표준액 1개월분의 반액까지 교환할 수가 있었다.

(다) 농민들은 현물세를 납부한 농가에 한하여 1호당 700원까지 교환할 수가 있었고, 기숙사에 있는 중등학교 이상의 학생은 교장증명서를 제출하여 500원씩 교환할 수가 있었고, 전문학교학생 및 대학생들은 1명당 1개월분의 국가장학금 지급액에 준해서 교환할 수가 있었다.

(라) 여행하고 있는 사람은 여행증명서를 제출하여 500원까지 교환할 수가 있었고, 세대주가 감옥에서 복역하는 경우에는 동장증명서를 제출하여 500원을 가족이 교환할 수가 있었고, 소련군에 속한 사람과 인민군에 속한 사람에 대해서는 일반교환소에서 취급하지 않았다.

(마) 소련군은 병영에서 소련군사령부의 군표를 조선중앙은행권에 무제한으로 등가교환해 소련군의 주둔비를 북한인들에게 전가했다.

이렇게 해서 동결한 예금 가운데 단체예금은 1947년 12월 5일을 기준으로 하여 육해공군/공안당국/민정관청/국유기업/사회단체의 예금은 전액 지불하고 그 뒤에 입금된 금액은 동결했다. 협동조합과 백화점의 예금은 화폐개혁 직후에 물가가 절반으로 내려갔다는 기준을 적용하여 교환기간까지의 예금총계의 50%를 지불하였다. 민간예금은 1948년 2월 25일에 지불했는데, 1명의 예금자에 대하여 1개의 계좌로 통합하면서 특정한 계산법에 따라 지불액을 산출하고 잔액은 무이자예금으로 동결했다. 민간예금을 새돈으로 지불하는 계산법을 보아라.

(가) 2,000원 이하는 전액지불하고, 2,000원 초과-5,000원 이하는 옛돈 5,000원=>새돈 2,000원+(3,000원X50%)

(나) 5,000원 초과-10,000원 이하는 옛돈 10,000원=>새돈 2,000원+(3,000원X50%)+(5,000원X30%)

(다) 10,000원 초과-50,000원 이하는 옛돈 50,000원=>새돈 2,000원+(3,000원X50%)+(5,000원X30%)+(40,000원X20%)

(라) 50,000원 초과는 옛돈 10,0000원=>새돈 2,000원+(3,000원X50%)+(5,000원X30%)+(40,000원X20%)+(50,000원X10%)

6.25 전쟁 중 국군이 평양을 잠시 수복했을 때, 북한 원을 법화로 인정한다고 시당국이 밝히면서 남한 화폐의 유입으로 급속히 치솟던 인플레가 진정되기도 했다.#

70년대 말 북한정부에서 위 지폐들을 기념품 형식으로 재발행해 지금도 알리바바, 타오바오나 화폐상을 돌아보면 10~15달러 정도면 입수 가능하다.

진품은 색깔이 좀 노랗고, 빛에 비춰보면 다이아몬드 모양의 체크무늬가 보인다. (이를 투문(透紋)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원 지폐에도 그 지폐에 나오는 인물이 투문으로 따로 새겨져 있다.)
1차 지폐로 투문이 있는 세트는 200만원 정도 하며, 최고액권인 100원권 미사용은 간간히 보여 5~6만원 정도에 입수 가능하나, 저액권일수록 미사용권 입수 난이도가 급상승하는 특징이 있다.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발행한 재발행본은 특정한 숫자패턴이 있으며, 백원권은 70, 10원권 80, 5원권 90, 1원권 50으로 시작한다. 그 외에 번호로 시작하는 투문없는 지폐들은 모두 가짜 복사본 지폐들이다.


2.3. 2기 (2차 시리즈)[편집]


1959년 2월 13일부터 1959년 2월 17일까지 [ 100:1 ]로 무제한으로 교환했는데, 북한판 경제 개발운동인 천리마 운동의 일부로서 투자재원을 수집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이 화폐가 공식적으로 쓰여졌을 때가 북한 경제의 전성기이기도 했다.[10] 탈북자 노인의 증언을 들어보면, 이 시절에는 배급제도 원활하게 작동했고 생활수준도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좋았던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한다. 당장 중국에서 대약진운동이 터지는 바람에 옆 동네의 조선족들이 국경을 넘어서 음식을 달라고 하던 시절이었다! 통계를 봐도 두자릿수 경제성장을 매년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중반) 기록했을 정도다. 남북한의 경제력이 뒤집히는 시기는 1975~1977년 이다. 다만 국부만 늘고 배급제를 통해 일제강점기 못지 않게 주민에게 돌아가는 몫이 적었던 것을 잘산다는 세뇌를 통해 불만을 억제한 정황도 있는데, 장학봉 같은 다른 인사는 전쟁 3년 동안에 지치고, 생활이 극빈하고, 통제가 심해졌기 때문에 정책에 반대하게 되었으나, 1956년의 8월 종파 사건과 더불어 밀고하는 사람들을 동원하여 반대파를 모조리 잡아가고, 공개처형 같은 극단적인 조치를 하고 열성자회의를 만들어 국민들은 김일성을 지지한다는 선전을 가속화한 것이다. 탈북민의 키 같은 건 정작 그 이후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11]

이 시리즈는 북한 원화 중에서는 꽤 구하기 어려우며, 가격이 상당히 비싼 축에 속한다. 지폐 6종류와 동전 3종류(10전, 5전, 1전)가 발행되었다. 그리고 이 시리즈부터 화폐에 한자가 사라진 것도 특징이다.

또한 이 시절 북한의 최고액권이었던 100원권의 크기가 A4용지 반 접은 크기보다 1.5배 큰 크기로 상당히 컸었다.


2.4. 3기 (3차 시리즈)[편집]


1979년 4월 7일부터 1979년 4월 12일까지 [ 1:1 ]로 교환했는데, 다른 의도는 전혀 없고 디자인만 바뀐 흔한 개혁조치 수준. 50전 지폐가 없어진 대신에 천리마 동상이 그려진 동전이 생겼다. 본격적으로 북한 경제를 지탱하던 천리마 운동의 퇴색 탓으로 추정. 그런데 옛돈을 새돈으로 교환하는 절차는 1명당 1회만 할 수가 있었고, 옛돈을 새돈으로 교환하면서 가능하면 전액을 저금해서 필요한 만큼의 돈을 가끔 인출할 것을 장려했다. 무현금유통을 뒷받침하는 은행저축사업을 홍보한 것이다.

실질적으로 이때부터 외화와의 태환권(일명 '돈표')이 발행되어 환율을 도입했는데, 공식 고정환율로 미국 1달러는 북한 2.18원이었다. 따로 태환권이라는 종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지폐 뒷면에 도장을 찍어서 구분했었다. 공산주의국가 출신 외국인에겐 붉은 도장이 찍힌 것을, 자본주의국가 출신 외국인에겐 푸른 도장이 찍힌 것을 주었는데 "외화와 바꾼 돈표" 도장이 안 찍힌 것이 더 귀한 대접을 받으며, 100원권은 찍지 않았다.

그리고 지폐에 김일성이 그려진 첫 시리즈이기도 하다.

앞면
뒷면
파일:attachment/북한 원/nokwon301.jpg
파일:attachment/북한 원/nokwon302.jpg


나팔부는 소년, 꽃 든 소녀, 정복 입은 청년, 후프 체조하는 처녀,
세상에부럼(부러움)없어라
한 자위단원의 운명(영화/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영화/혁명가극), 피바다(영화/혁명가극), 평양거리

파일:attachment/북한 원/nokwon309.jpg
파일:attachment/북한 원/nokwon304.jpg


대학생 및 공업도시 풍경
금강산
파일:attachment/북한 원/nokwon305.jpg
파일:attachment/북한 원/nokwon306.jpg


천리마 동상
남포시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파일:attachment/북한 원/nokwon307.jpg
파일:attachment/북한 원/nokwon308.jpg



주체사상과 4대 근로인민대중(노동자, 농민, 근로인텔리, 인민군)
삼지연 호수
파일:attachment/북한 원/nokwon303.jpg
파일:attachment/북한 원/nokwon310.jpg


혁명의 영재이시며 민족의 태양이시며
전설적 영웅이신 위대한 수령
김 일 성 동 지[12]

혁명의 요람 만경대 고향집(김일성의 생가)

이후 1988년에 조선무역은행에서 위와 같이 내국인용과 완전히 다른 모습의 외화와 바꾼 돈표라는 이름의 태환권을 발행했는데, 매우 조악한 질을 자랑했다.

사회주의 국가용
자본주의 국가용
파일:attachment/북한 원/nokwon311.jpg
파일:attachment/북한 원/nokwon312.jpg
일, 오, 십, 오십전
액면 단위
액면 단위
파일:attachment/북한 원/nokwon313.jpg
파일:attachment/북한 원/nokwon314.jpg
일, 오, 십, 오십원
국제친선전람관
천리마상


2.5. 4기 (4차 시리즈)[편집]


대부분 "북한돈" 하면 떠올리는 시리즈로, 1992년 7월 15일부터 1992년 7월 20일까지 [ 1:1 ]로 교환했다.(그리고 3년 뒤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겪게 된다.) 인민 1명당 400원을 초과한 옛돈을 새돈으로 교환을 거부하면서 400원을 초과한 액수의 옛돈을 조선중앙은행으로 입금했으며, 자연인 1명당 30,000원 이상의 옛돈을 저금할 수가 없게 했으니, 처음으로 재정회수를 위해 계획적으로 자행한 화폐개혁이다. 하지만 교체 당시만 해도 김일성이 버젓이 살아있었고, 그 위대하신 수령님이 원하신다는데 선량한 인민들이 무엇을 의심할까, 그냥 당의 선전만 믿고 입금했다 큰 낭패를 보고 말았다.[13]

북한의 국민경제가 점차 나빠지게 될 때에 발행한 것인데, 그냥 보면 매우 복잡한 구성으로 보이겠지만, 처음 도입했을 무렵에는 3차 시리즈를 계승하여 100원, 50원, 10원, 5원, 1원 5종류를 그대로 이어서 발행했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으로 인한 물가 폭등을 이기지 못하고[14]결국, 1998년에 500원권을 추가 하였다. 이것이 1959년 이후로 등장한 첫 고액권이었다. 그 후 2002년 7월 1일의 조치에 따라 1,000원권과 5,000원권을 발행하면서 2005년에는 200원권을 발행했다. 동전도 마찬가지로 1987년에 1원짜리가 등장한 이후로 계속 변화가 없다가, 2005년에 5원, 10원, 50원, 100원짜리를 급조했다.[15] 이는 2009년에 모두 폐기되어버렸다. 지폐그림 출처.

한국 및 대부분 쇼핑몰에서 수집용으로 판매하는 북한 지폐는 십중팔구 4기 지폐이다.

5원권과 10원권은 1992년판과 1998년판이 있으며 1992년판의 가격이 훨씬 비싸다. 인쇄판식도 다르며, 1992년판은 요판, 1998년판은 평판이다. 4차권은 여러가지 지폐의 변형이 존재하는 판으로 수집하기 매우 까다로운 권종이다.


앞면
뒷면
파일:일원.jpg
일원
영화 "꽃 파는 처녀"의
주인공 꽃분이
(홍영희)
금강산, 선녀
파일:attachment/북한 원/nokwon402.jpg
오원
학생과 지구본
인민대학습당
파일:attachment/북한 원/nokwon403.jpg
십원
노동자, 천리마 동상
서해갑문
파일:attachment/북한 원/nokwon404.jpg
오십원
군인이 제외된
3대 인민계층,
주체사상탑
백두산 풍경
파일:attachment/북한 원/nokwon405.jpg
백원
김일성
만경대고향집
파일:attachment/북한 원/nokwon406.jpg
이백원
함박꽃나무
숫자 200
파일:attachment/북한 원/nokwon407.jpg
오백원
금수산태양궁전
금릉 제2터널, 청류교
파일:attachment/북한 원/nokwon408.jpg
천원
김일성
만경대고향집
파일:attachment/북한 원/nokwon409.jpg
오천원
  • 백원(적색), 천원(녹색), 오천원(보라색)은 티끌 하나 다르지 않고 색깔만 다른 변형이다.


2.6. 5기 (5차 시리즈, 현행권)[편집]


2009년 11월 30일에 도입, 동년 12월 6일까지만 교체가 진행된(단,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 시리즈. 계획경제의 강화와 팽창된 통화를 회수하기 위해 발행하였으며, 북한 사상 처음으로 실패를 인정한 통화개혁이기도 하다.

구권과 신권을 은행에서 교환하는 비율은 [ 100:1 ]인데 누구나 은행에 입금하면 10배 부풀려서 넣어준다는 선전까지 했을 정도로 그 의도가 확실했다. 하지만 이미 4차 개혁때의 속임수를 모르는 인민이 없었으니 어떻게든 안 넣으려 애쓰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의 상황은 북한의 화폐개혁 항목에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으니, 이쪽을 참고하도록 하자.[16]

이전 시리즈와는 달리 권종별 지폐 크기가 모두 동일하다.

  • 동전은 5종류 일원(김일성화,지름 25mm), 오십전(김정일화,지름 22mm), 십전(진달래,지름 20mm), 오전(목란꽃,지름 19mm), 일전(철쭉꽃,지름 18mm)가 있다.
  • 본래 오천원권은 아래와 같이 늙고 살찐김일성이 앞면에 그려져 있었으나, 2014년에 뒷면의 만경대고향집이 앞면으로 옮겨지고 국제친선전람관이 뒷면에 새로 들어간 신권으로 교체되면서 김일성 도안은 유통 정지되었다.

2.7. 기념권 (기념 문구 가쇄권)[편집]


1998년부터 특정한 날을 맞이하여 기존 지폐에 기념 문구를 가쇄하여 발행하고 있으나, 이 분야의 본좌인 태국 바트에는 명함도 못 내밀고, 심지어는 중국 위안의 기념 지폐에 밀리는 처지. 중국과 태국을 본 받아서, 쓰잘데 없이 가쇄만 하지 말고 도안과 디자인을 새로 만들어 발행하는 편이 나을 듯... 1998년, 2012년, 2013년, 2017년, 2018년, 2019년에 기념 문구를 가쇄하여 발행하였다.


3. 현황[편집]


2009년 5차 화폐개혁 이후 사실상 쓰이지 않고 있다. 평양에서는 미국 달러를 사용하며 지방에서는 중국 위안을 쓴다. 심지어 북한 주민들조차도 우스갯소리로 "김일성 할아버지보다 (미국 100달러의) 벤저민 할아버지가 더 힘이 세다." 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어차피 북한에서는 자국 화폐인 북한 원을 아무도 안 쓰고 미국 달러를 쓰기 때문이다.

2020년 코로나 19가 닥친 이후로 암시장 기준으로 원 달러 환율이 8,000원대에서 4,000원대로 내려가며 북한 원의 가치가 크게 오른 적이 있다. 북한의 경제상황이 봉쇄조치와 백신 접종 지연으로 무역재개가 늦어지고 있는 탓에 물자공급이 원할치 못해 별로 좋지 않은 점이나 2010년대 이전에 경제위기가 올 경우에 물가가 폭등한 선례를 볼때 북한 원의 가치가 올라간 것은 특이한 일로, 그 만큼 북한 내에서 외화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이게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썩 좋은 상황이 아닌 것이 수출에 악영향을 끼치는 데다가 수입 물가가 싸졌냐면 그건 딱히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경제에 혼란이 가중되었다. 오죽하면 이 때문에 평양의 한 환전상을 처형했다는 소문이 있다. 주성하 기자 같은 다른 해석으로는 김정은이 코로나로 돈줄이 마른 나머지 지방 상업망에 암시장 시세보다 낮은 국정가격으로[17] 북한 원화만을 취급하게 하려고 했으나, 지방 상업망이 그래도 암시장을 이용하자 본보기로 환전상을 처형을 시켰다는 것이 있다. # 또한 북한 당국이 북한내 외국인(외교관)들에게 미국 달러화 대신 북한 원화만을 사용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

파일:요즘 북한돈 상태.jpg
2021년 10월 경 대북제재의 영향으로 조폐용지와 특수잉크 수입도 중단되어 중앙은행도 돈을 더이상 찍을 수 없게 되었고 이 때문에 그나마 쓰이고 있는 권종들도 위와 같이 심하게 훼손된 상태다. 일부 소식통에 의하면 "내화 지폐가 너무 낡아서 풀로 붙이거나 종이를 덧대는 일이 장사보다 더 번거롭고 돼지고기 데꼬(대규모 상인)나 큰 장사꾼들은 저녁마다 사람을 고용해 돈을 붙이는 작업을 해야 할 정도"라고 전해질 정도니.#

결국 이로 인해 한달 전 북한산 용지로 19년 만에 부활시킨 돈표 형태의 오천원권[18]을 화폐 그 자체로 쓰게 되었고, 이마저도 공급이 원할하지 않은 모양인지 2022년 4월 경엔 기존 액면의 10배인 오만원권 돈표를 발행했다.

  • 뒷면은 걍 숫자뿐이다.

4. 여담[편집]


  • 로동신문과 함께 담뱃잎이나 각성제(빙두)를 말아서 피우기 정말 좋다고 한다. 특히 마약 피우는 데 유용하다. 김일성 도안이 있었을 당시에는 정치범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어서 조심했었지만 신권 오천 원 권의 등장으로 김일성 도안이 퇴출되어 현재는 그리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 동아시아 국가 통화들 중에서는 신 대만 달러, 몽골 투그릭과 함께 국호와 액면을 자신들의 언어로만 표기한 세가지 통화 중 하나이다.[19]


5. 만약에 남북통일이 이루어진다면?[편집]


북한 화폐 정리 사업은 대략 6가지의 시나리오가 있다. 가장 먼저 구글 도서의 원문 검색과 외국어판 위키피디아를 활용하면서 데일리엔케이 웹사이트와 한국은행 경제통계 웹사이트를 꼼꼼하게 살피고, 그 다음에 일반인들이 국회도서관이나 RISS에서 공짜로 다운로드가 가능한 아래 논문들을 꼼꼼하게 살펴야 추측이 가능하다.
  • 북한의 화폐개혁에 관한 연구(이진욱)
  • 화폐통합이론과 남북한에의 적용(서양원)
  • 남북한 통화 및 임금통합에 관한 연구(강석준)
  • 통일독일의 경제통합 정책과 남북한 경제통합(조윤수)]

5.1. 북한화폐남한의 화폐로 바꾸기[편집]


  • [ 1:1 ] 교환: 북한 원(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은행권)을 남한 원(한국은행권) 으로 자연인 1명당 1억 원까지 [ 1:1 ]로 교환하면서 1억 원을 초과한 금액은 모두 0으로 처분한다.

  • [ 100:1 ] 교환: 남북한의 국내 총생산(1조USD vs 100억USD)의 차이 및 남북한의 가장 비싼 월급의 차이(1억KRW vs 1백만KPW)를 반영한, 남한 원(한국은행권)과 북한 원(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은행권)의 무제한 교환 비율.

  • 그러나 북한 현지에서도 북한 원은 전혀 가치가 없어서 북한 주민들도 본격적인 경제 활동에는 미국 달러와 중국 위안화를 쓰고 있고 북한 원화는 잔돈으로나 쓰는 것이 현실인데 정말로 북한 화폐를 비율로 교환해서 사용할리 없을 것이다. 어차피 위조지폐가 대량으로 만들어질 우려가 있으므로 그냥 폐기해버리고 한국 화폐로 갈아타는 방안이 유력하다.


5.2. 남북한의 화폐를 모두 갈아치우기[편집]


  • [ 10,000:1 ] 교환: 가장 먼저 남한에서 화폐개혁(OLD ₩10,000=NEW ₩1)을 실행하여 남한 원(한국은행권)을 배포하면, 그 다음에 북한에서 화폐개혁(OLD ₩10,000=NEW ₩1)을 실행하여 북한 원(조선은행권)을 배포한다. 남북한의 전역에서 달러-원 환율을 개정(미국 1달러=남한 1원=북한 1원)하면, 부당이득을 청산하면서 수출입을 뒷받침할 수가 있다.

남북한이 정치적으로 통일되더라도 남북간 경제 격차가 너무 큰 탓에 화폐 통합은 일단 뒤로 미루고 남북이 화폐를 따로 발행하는 과도 기간을 설정할 수도 있다.[20] 실제로 중국의 경우 중국 위안화(인민폐) 외에 홍콩 달러, 마카오 파타카를 따로 존치하고 있고, 영국처럼 본토 지역 외에 속령이 있는 국가들의 경우도 비슷하게 속령마다 독자 화폐를 두고 있는 경우가 적잖이 있다. 외국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일제강점기에 조선은행권이 따로 발행되었다. 따라서 1국가 2화폐 정책이 특이한 건 아니다. 단 통일 후 노동 시장이 급속히 한데 통합돼 버릴 경우(또는 북한의 정치 상황이 바뀌어 통일 전에 북한의 노동 시장이 개방될 경우) 이 방식을 도입하기도 쉽지 않다. 화폐가 제각각이면 인적·물적 교류상 오히려 손해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관련기사


5.3. 독일의 경우[편집]


앞서 흡수통일을 달성한 독일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동독 마르크서독 마르크의 환율에 대하여 동독의 법정 환율(서독에서 동독으로 여행할 때에 쓰이는 환율)과 서독의 시장 환율(동독에서 서독으로 여행할 때에 쓰이는 환율)이 있었다. 동독의 독일국가은행에 따르면 1989년 10월까지 동독의 특수은행에서 합법적으로 거래하는 동독 마르크와 서독 마르크의 법정 환율을 [ 1:1 ]로 유지했지만, 서독의 독일연방은행에 따르면 1989년 10월부터 서독의 외환시장에서 합법적으로 거래하는 동독 마르크와 서독 마르크의 시장 환율이 [ 10:1 ]에 이르렀다.

그런데 동독이 서독에 통합한 1990년에는 정치적인 이유로 결단을 내려 [ 1:1 ]로 교환하는 바람에 가치가 매우 낮은 동독 마르크의 가치가 갑자기 몇배 이상 폭등했고 동독 마르크를 [ 1:1 ]로 서독 마르크와 교환한 동독 주민들은 처음에는 행복했으나 동독계 기업의 부실화와 동독계 일자리의 감소에 행복하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서독산 소비재의 대량 공급과 독일연방은행의 고금리 정책에 힘입어 옛 동독 지역의 물가는 가까스로 안정을 유지했다.[21]


6. 구하는 법[편집]


당연하겠지만 국내의 시중은행에서의 환전은 불가능하다. 국내에서 구할 경우, 우선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 기념품점과 출입신고소, 판문점에서 구권(4기)을 판매하고 있으며,[22] 우문관이나 옥션, 중고나라 같은 곳에서도 구권(3~4기)을 기념 지폐 개념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다만 5기 현행권 일반권은 워낙 희귀한지 국내 사이트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황학동 도깨비 시장내의 가게 중 국내외 기념화폐나 수집용 화폐 세트를 파는 가게를 뒤져다 봐도 현행권은 찾을 수 없다. 간혹 알리바바나 타오바오서도 5기 현행권을 팔고 있으나 신권이 아닌 사용한 흔적이 많은 너덜너덜한 지폐가 온다. 그리고 알리바바, 타오바오의 경우도 마찬가지나 사기 위험성이 크다.

중국에서 직접 구할 경우 한때 현행권인 5기권을 나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중국과 북한의 접경 지역인 단둥, 연길 등의 은행에서 중국 위안 → 북한 원으로 환전을 할 수 있었다,[23] 이렇게 할 경우 사용한 적이 없는 깨끗한 신권을 받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이후의 현재 시점으론 중국 북한 접경지역의 은행에선 북한에 갈 목적이 없으면(보딩패스, 비자 확인 등) 환전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외에 북한 접경지역의 관광지 길거리나 기념품 가게에서 기념품으로 '조선 돈 묶음'이라고 하여 판매하는 것을 구매할 수도 있다. 한국인이 많이 방문하고, 북한과도 가까운 편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기념품으로 판매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단, 이러한 길거리에서 기념품으로 파는 것들도 십중팔구 구권이니 현행권을 구하고 싶으면 낚이지 말고 은행으로 가자.

중고나라에서 파는 조선 돈, 북한 지폐 전집들은 모두 가치가 적은 구권임에도 불구하고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고 있다. 구권이라도 이렇게 구입하고 싶다면 무턱대고 구입하지 말고 조금만 찾아보면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으니 전문 수집가들에게 물어보자.

7.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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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로 소련은 중국에서도 해당 군표를 발행했다.[2] 물론 그 대신에 공공요금은 대단히 싸기는 싸다. 단지 평양을 제외하면 인프라가 낙후되어 있고, 공식 급여도 공식환율로 따지면 100달러 안팎이지만 실제 암시장 환율로 따지면 몇달러에 불과하기 때문에 현실과 괴리감이 심할 뿐.[3] 심지어 2021년 11월 29일 기준으로는 평양 기준으로 4,690원까지 추락한 적도 있다.[4] 이전엔 eBay를 통해 쉽게 구할 수 있었으나, 2013년 이후로 북한산 물품이 금지 품목으로 지목되어 이란 리알, 시리아 파운드, 쿠바 페소와 더불어 이베이에서 가장 구하기 어려운 화폐가 되었다.[5] 짤방 속 가격은 360,780.00(36만780)원(소수점을 잘 보도록 하자.)이다. 최고액권 72장을 내고 780원을 더 내야 한다.[6] 공식이면 앞에서 설명했겠지만 100원에 1달러를 계산으로 하면 3678달러나 되는 상식을 날리는 수준이다.[7] 남한에서도 세계각국의 물가를 이야기할 때 수도(首都)의 물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다만 북한의 경우는 적어도 2010년대 초반의 경우 지방물가와 수도물가가 차이가 있었다.[8] 참고로 소련은 중국에서도 해당 군표를 발행했다.[9] 5전, 10전, 25전만 만들 수 없고, 다른 것 (예: 1원 25전)은 조합을 통해 만들 수 있다.[10] 남한은 이 시절만 해도 빈곤으로 고심하고 있던 세계적인 후진국 중 하나였다. 반대로 북한은 소련, 중국, 그리고 동독 등 동유럽권이 자본, 물자, 기술을 지원하여 6.25 전쟁의 폐허를 완전히 복구하고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상황이었다.[11] 김일성 항일무장투쟁의 신화화 연구, p.228~232 / 남한 20대 신장, 북한사람보다 6㎝ 크다[12] 현재까지의 북의 화폐 중에서, 이 지폐만 매우 긴 선전글구를 넣었다.[13] 사실 1990년대 들어가면서 은행에서 출금이 안되는 현상이 발생했기에, 저금통장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사실쯤은 1992년 주민들은 알고 있었다.[14] 1970년대에서부터 1990년대 초반에는 100원 1장이 번듯한 직장인 한달치 월급이지만 1990년대 말에는 100원 1장가지고는 쌀 1~2kg밖에 살수없게 되었다.[15] 실물을 보면 알겠지만, 디자인도 그렇고 동전 질도 그렇고 심각하게 조악하다.[16] 북한에서는 예금의 인출이 불가능하며, 예금 자체가 나라에서 돈을 강탈해간다는 뜻이다.[17] 당국이 1200원에 팔라며 준 상품을 지방 상업망이 팔면 암시장 환율에 기초해 1위안을 직접 당국에 내면 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1위안을 은행에 가서 바꾸어 북한 돈으로 내야 하는데, 은행에선 700원만 준다. 1200원을 바치려면 1위안7자오가 필요하게 되어 7자오(원화 환산 129원)를 은행이 그냥 가져가게 된다.[18] 외적으론 국가의 외화가치 안정 보증, 내적으로는 국고로 외화를 긁어오려는 목적으로 발행한 것으로 추정되며 원활한 유통을 위해 검열단까지 조직해서 단속한다고 한다.[19] 만일 북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권으로 인정한다면 신 대만 달러몽골 투그릭 두 종류에 한정될 것이다.[20] 물론 북한이 남한 주도로 통일될 경우 북한 지역에 통용될 화폐에서는 기존의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도안을 폐기하고 새로운 도안을 채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화폐를 따로 발행한다 하여 반드시 남북이 별도의 감독·발행 기관을 둘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한국은행과 한국조폐공사에서 남북의 화폐를 모두 관리하는 방식을 채택할 가능성이 크다.[21] 다만 이 때 유로존 초기 회원국들+영국의 화폐는 독일 마르크에 페그되어 있었는데, 독일연방은행이 금리를 쑥쑥 올려버리니 다른 국가들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특히 영국의 경우 영란은행의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지 소로스파운드화 공격이 결국 성공, 마르크와의 고정환율을 포기하게 된다. 영국이 결국 유로를 썼다면 브렉시트는 일어나기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니, 엄청난 나비효과가 아닐 수 없다.[22] 과거엔 5기 현행권도 팔았으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로 판매 중단 조치되었다.[23] 중국의 모든 은행이 북한 원을 보유하고 있는 게 아닌지라 대부분 북 접경 지역이랑 대도시의 중앙은행급의 큰 은행에만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