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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기야마 코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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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작곡가, 지휘자, 편곡가.
CM송, J-POP, 교향곡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작곡을 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음악을 작곡한 것으로 유명하다.[3] 게임 음악계의 거장으로 게임 음악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작곡가이지만 이러한 커리어와는 별개로 극우를 띄고 있는 본인의 정치 성향과 이에 따른 온갖 망언으로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켜 명암이 뚜렷하게 공존하는 인물이다.
2. 생애[편집]
1931년 4월 11일 도쿄도 다이토구에서 태어났다. 엘리트 집안으로 유명한데 아버지는 도쿄제국대학 약학과 출신으로 후생성 등에 근무한 공무원이며, 어머니는 도쿄여자의과대학 출신이다.# 어린 시절부터 스기야마는 부모님이 틀어준 많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고#, 이후 스기야마는 음악가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 중학교 입시 면접 때 그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고등학교 이후부터 스기야마는 음악의 대한 열정을 인식하기 시작하였고, 이때부터 음악 작품들을 썼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음악부를 만든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휴지 상태였던 오케스트라를 부활시키기 위해 멤버를 모집했다. 그때 세이케이 중학교 3학년에 트럼펫을 잘부르는 녀석이 있다는 말을 듣고 강제로 데려온 것이 훗날의 재즈, 뉴에이지 작곡가로 활동한 핫토리 가츠히사(服部克久)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핫토리와 함께 재즈 밴드를 결성해 'On the Sunny Side of the Street' 등을 연주했다. 이때의 경험이 나중에 팝을 작곡하는데 도움이 된다.#
스기야마는 이 시기에 처음으로 정리된 곡을 만들게 된다. '아이를 위한 발레 미아의 애벌레 씨(子供のためのバレエ 迷子の青虫さん)'라는 발레 음악 노래다. 이 노래는 2016년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되는 등 꾸준히 재연되고 있다. 이렇게 음악을 좋아한 스기야마는 음악대학을 목표로 했지만 피아노 연주를 못해서 음대는 포기했다. 음대를 포기하고 본인말에 의하면 '어쩔 수 없이' 당시 집안에 돈이 없었기 때문에 학비가 싼# 도쿄대학 이과 II류에 입학했다.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약학을 배우다가 이후 교육심리학을 전공했다. 젊은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학창시절부터 작곡을 했지만, 그 경력의 출발점은 작곡가가 아니라 방송 디렉터로서였다. 대학 졸업 후에는 음악을 공부하면서 일할 수 있다는 이유로 라디오 분카 방송에 취직했다. 이후 보도부에 배속되어 기자로도 활동했으며 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 곡의 선정 등을 담당했다. 후에 희망했던 예능부에 근무했다.
그후 1958년 같은 후지산케이 계열사인 후지 테레비로 이적했다. 이 당시 많은 가요, 경마장의 팡파르를 작곡해 히트곡을 배출했다. 지금은 게임 음악 작곡가로 유명하지만, 그 이전에는 일본의 그룹 사운드 밴드 '더 타이거스[4] (ザ・タイガース)', '가로(ガロ)' 등의 히트곡을 많이 만들어 냈으며, 광고 노래를 1,000곡 이상 작곡했다. 후지 테레비에서 '더 히트 퍼레이드', '신춘 개인기 대회', '어른의 영화' 등의 유명 프로그램의 디렉터로 활동했다. 완벽주의 성향으로 '카메라맨도 조명도, 전원이 악보를 읽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하는 생각 아래, 엄격하게 프로그램 만들기에 임한 결과, '독재자'라는 별명도 붙게 된다. 영국의 유명 가수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그 가수가 '립싱크'를 고집하는 바람에 스기야마가 '겟 아웃'이라고 고함을 친 적도 있다.# 당시 그의 대저택에는 문하생들이 모여 스기야마에게 가르침을 청했고,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음반회사 디렉터에서 작곡가로 변신해 일본 역대 작곡가 매출 1위를 기록한 츠츠미 쿄헤이(筒美京平)다. 후지 테레비에서 메인 작곡가로서 활동하고 있었으나 내부의 반대와 디렉터로서의 일을 맡는 한편 부업으로서 CM송의 작곡을 다루고 있던 것이 문제시 되어 1965년 후지 테레비를 퇴사했다. 이후 프리디렉터 시대를 거쳐 1968년부터 본격적으로 작곡가 전업을 하게되었다. 전업후 후술하는 '과학닌자대 갓차맨', '사이보그 009', '전설거신 이데온을 비록한 애니메이션 음악은 물론이거니와 '돌아온 울트라맨' 등의 특촬물에서도 활동한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게임 음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1986년에 드래곤 퀘스트의 작곡을 담당한 것을 계기로 그의 인지도가 대폭 상승하게 된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음악을 담당하게 된 시점에서 스기야마는 이미 매우 성공한 작곡가였으나 그는 새로운 도전을 한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만남은 스기야마가 PC 소프트 모리타 마사키에게 편지[5] 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되어, 에닉스의 프로듀서였던 치다 유키노부[6] 의 소개로 기용이 결정되었다.[7] 하지만 당시 게임은 대학생 동아리의 연장 놀이로 만들어졌고, 게임사의 몇몇 사람은 외부 사람, 그것도 50대의 어른을 넣는 것에 제작진의 강한 반발이 있었다. 특히 게임 개발을 총괄하는 디렉터였던 나카무라 코이치는 아무리 유명한 작곡가라도 게임을 모르는 사람을 고용해서야 되겠느냐며 극구 반대했다. 그를 설득하기 위해 치다와 스기야마는 나카무라의 집을 방문했는데 처음에는 스기야마를 경계했지만 알고 보니 스기야마는 게임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있었고, 이후 나카무라 코이치의 회사 춘소프트의 스태프들과도 마음을 터놓게 되어 정식으로 의뢰를 받게 되었다. 당시 패미컴은 음원을 3개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었지만, 스기야마는 '음원이 적다고 작곡 못하는 것은 프로가 아니다'라고 단언했으며, 마스터업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8곡을 완성했다. 메인 테마인 서곡에 이르러서는 불과 5분만에 완성했다고 전해지고 있다.[8] 서곡은 이후 이 시리즈를 상징하는 노래가 된다. 이후 게임 음악 이외의 일은 거의 참여하지 않고 있고, 오로지 게임 작곡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 시기에 오케스트라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본인의 음악을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하기도 했으며, 본인이 직접 지휘하기도 한다. 그가 작곡한 드래곤 퀘스트 음악들은 NHK 교향악단,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도 연주됐으며, 매년 일본의 많은 교향악단들이 연주하고 있다.#
그의 작곡 능력은 매우 뛰어나서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작곡을 할 수 있으며 교향곡을 통으로 작곡할 정도의 실력이 있다. 편곡 능력도 있어서 스기야마는 드래곤 퀘스트의 음악들을 브라스 밴드 버전, 피아노 버전, 엘렉톤 버전, 현악 4중주, 금관 5중주, 취주악 등으로 편곡하고 있으며, 직접 지휘할 때도 있다. 스기야마의 음악 스타일은 작품 전반에 걸쳐 모티브가 반복되는 일관성과 들으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기야마의 작곡 양식은 후기 바로크 음악과 초기 고전주의 양식에 영향을 받은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십년에 걸쳐서 갈고 닦아은 작곡 능력만은 정말로 거장 소리를 듣기에 충분한 영역에서 노닌다. 본인이 왕성한 게이머이기도 하며 나이가 이미 30년전 40대일 때부터 PC로 게임을 했고 위에 언급했듯이 게임 잡지에 의견을 투고하다가 에닉스의 게임 제작자들과 인연을 맺게 되어 드퀘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드퀘에서는 음악 뿐만 아니라 게임성에 대해서 의견을 개진했다. 콘서트에서 자신의 팬들과 드래곤 퀘스트 9 엇갈림 통신을 했는데 스기야마 코이치의 플레이 시간이 200시간이 넘어 있어 모두 경악했다는 일화도 있다. 참고로 모든 드래곤 퀘스트 작품들을 플레이했다고 하며 드퀘를 '내 인생의 작품'이라고 부를정도로 드퀘에 대한 애정이 크다.#
또한 최종 학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음악에 관해 전문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독학으로 음악을 배웠다.# 특이한 점은 보통 다른 게임이 개발과 동시에 음악을 만드는데 반해서 스기야마는 게임이 일단 만들어지면 음악이 없는 게임을 자신이 끝까지 플레이해보고, 각 이벤트와 장면에 맞춰서 음악을 집어넣는다. 이것이 드퀘의 음악이 몰입성이 뛰어난 이유이며 동시에 드퀘가 발매가 늦는 이유이기도 하다. 드래곤 퀘스트 소드도 원래는 자기가 하려고 했는데 몸을 써서 플레이해야하는 작품이라 체력이 딸려서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고 한다. 드퀘 11 기준으로 드퀘 음악만 400곡 이상 작곡하였다. 드퀘 게임 중에서도 '스기얀'이란 이름의 동료 몬스터가 나온다. 어떤 몬스터인지는 매 작품마다 달라진다.
애니메이션에서도 다수 참여했는데 대표적으로는 사이보그 009, 과학닌자대 갓챠맨 극장판, 전설거신 이데온, 마법기사 레이어스 TVA[11] , 풍래의 시렌[12] 등의 음악 작곡을 담당했다. 고지라 시리즈의 음악에 참여한 적도 있다.
JASRAC의 높으신 분이기도 하며 자신의 음악을 다른 사람이 연주하거나 일부라도 인용하는 것이라도 싫어한다. 현재 일본 음악 저작권 협회의 무식할 정도로 융통성 없는 운영에 한 몫을 거든 인물이다. 오히려 초반부터 이렇게 나간 끝에 일본은 음악 저작권에 한해선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깨끗한 나라가 되기도 했지만...[13] 저작권에 깐깐한 편인데 유독 니코니코 동화나 유튜브에 드퀘 게임이 올라가는 것엔 상당히 관대하다. 본인이 음악에 저작권 제재를 걸어버리면 드퀘의 플레이 동영상 업로드를 불가능하게 할 수도 있는데 안 하고 있다. 2017년에 저작권에 대한 방침을 공개했는데 음악만 따로 올리는 건 허용 안하지만 드래곤 퀘스트 플레이 영상과 함께 올리면 허용한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드퀘의 실황 플레이도 즐겨보고 있다고 말했던 적이 있기 때문에 본인이 실황 플레이를 보기 위해서 저작권을 안 걸고 있다는 설이 있다.
2016년 9월 3일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음악을 84세에 작곡하여 "세계에서 가장 고령인 현역 게임음악 작곡가"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이후 드래곤 퀘스트의 신작이 발매될 때마다 이 기록이 갱신 중이다. 기록을 인정받을 때 브금으로 깔린 게 드퀘에서 카지노에서 대박터지면 나오는 팡파레 음악이었다. 2018년에는 일본 정부로부터 게임 음악가 최초로 훈장 욱일소수장을 받았으며, 2020년에는 역시 게임 음악가 최초로 문화공로자 칭호를 받았다. 2021년에는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서 그가 작곡한 '서장: 로토의 테마'가 각국 입장 행진곡으로 처음과 끝을 장식했다.[14] 오시이 마모루는 스기야마가 올림픽에서 자신의 음악이 흐르는 걸 보고 감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2.1. 사망[편집]
2021년 9월 30일 패혈증성 쇼크로 사망했다는 것이 10월 7일 스퀘어 에닉스 측을 통해 알려졌다.# 스기야마와 함께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를 상징했던 호리이 유지와 토리야마 아키라가 각각 조사를 발표했다.
실력과는 별개로 생전의 행실이 행실이다 보니 국내 사이트에서는 당연히 관련 기사에서 정치적 성향을 막론하고 잘 죽었다는 식의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다. 전쟁을 겪은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후술될 위안부 부정과 같은 극우적인 정치 성향과 온갖 물의를 빚은 망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15]
해외뿐만 아니라 일본 내에서도 그다지 호의적이기만 한 분위기는 아닌지, 평론가 후지츠 료타는 그의 죽음에 대해 "크리에이터로서는 존경하지만 시민으로서는 실격이었다"라고 일축하며 추도를 하지 않았다.
3. 작품 목록[편집]
3.1. 게임[편집]
3.2. 애니메이션[편집]
3.3. 특촬물[편집]
4. 수상 경력[편집]
5. 극우 성향[편집]
여러 업적과 능력과는 대조적으로 행동하는 극우로서 유명하며 극우 계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사다모토 요시유키 같은 인물하고는 아예 비교를 할 수 없는 극우 인사 예술인 중에서도 최종 보스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스기야마 코이치 정도로 활발하게, 또 악독하게 행동하는 극우 인사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에도 불구하고 보기 드물다. 벌써 십수년째 이런 활동을 하면서도 2021년 드퀘 최신작을 비롯해 계속 제작에 참여 중이였다.
일본의 자위를 목적으로만 군사력을 행사한다는 평화헌법은 당연히 부정하고 있으며, 일본은 지금 중국, 러시아, 대한민국[* 독도 때문에 여기에 껴있다. 중국과 러시아도 센카쿠 열도나 쿠릴 열도를 통해 일본의 주권과 영토를 침범하고 있다고 스기야마는 주장하고 있다.]에게 주권을 침해당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전쟁을 해도 좋다라고 말했다.#
5.1. 위안부 문제 관련[편집]
2012년 뉴저지의 유력지인 스타레저에 '네, 우리는 사실들을 기억합니다(Yes, We remember the facts)'라는 제목으로 종군위안부에 대한 우익 세력의 주장이 담긴 성명이 실린 적이 있는데 이를 지원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스기야마 코이치다.#
한국은 로비 활동으로 4,000억을 내는데 일본은 0이라는 주장을 하며 한탄해 하면서, 자기 개인 돈으로 광고를 냈다며 사쿠라 TV에 나와 당당하게 인터뷰까지 하였다.영상
5.2. 행보[편집]
상술했듯이 일본 내에서도 매우 유명한 강경한 극우이다. 대표적인 에피소드로 2006년에 주간 프라이데이와 에이로쿠스케가 주최한 연극이 황실을 야유하는 내용을 발표한다. 스기야마는 '평소에는 인권, 인권이라고 말하는 주제에 실은 그것이 그들의 정체예요'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2017년에는 "저희 집안은 대대로 계속 애국자거든요. 저는 외국에도 자주 가봤지만, 일본만큼 좋은 나라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도 좋고, 음식은 맛있고, 기후도 평온해요. 여러모로 좋은 나라이고, 일본에서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본에서 태어났는데도 일본이 싫다거나 반일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란 제 입장에서 보면 참 신기하네요."라고 말했다.# 혐중 성향도 강해 2007년에는 신문사 인터뷰에서 "중국은 마왕과 같이 일본과 세계를 어지럽히고 있다. 드래곤 퀘스트에서 마왕을 해치우지 않으면 평화가 오지 않는 것처럼 평화헌법을 없애서 중국을 해치워야 한다"라는 발언을 했다.
드래곤 퀘스트와 스기야마 코이치의 정치적 사상은 별개이지만[25] 드퀘로 벌어들인 저작권 수익으로 그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 드퀘 플레이어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게임 음악의 저작권은 게임 회사에 귀속되기 때문에 작곡가는 그렇게 돈을 많이 벌지 못하지만 드래곤 퀘스트의 저작권 표기를 보면 스기야마가 이끌고 있는 스튜디오 이름이 따로 표기된다. 한 장씩 판매될 때마다 스기야마도 인세를 받는 식으로 계약되어 있어, 그렇게 번 돈으로 스기야마가 저런 일에 돈을 쓰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드래곤 퀘스트의 인기에 힘입어 스기야마 코이치의 일본 내 위상 또한 단단해졌다는 것도 문제다.(드래곤 퀘스트 2 참조) 이 때문에 극우 문제에 민감한 게이머들이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를 비난할 때 항상 끼는 근거 중 하나가 이 사람일 정도로 일본발 우익 요소를 신경쓰는 사람과 안 쓰는 사람간에 호불호를 가르게 만들고 있다.
스기야마는 한술 더 떠 그 광고를 싣는 동안 이런저런 왜곡된 망언을 하면서 미군도 종군위안부를 거느렸다는 식의 망언을 함께 보탠 덕에 격분한 미군에서 공식 반박을 하고 미국 여론까지 분노시켜 오히려 위안부 규탄 결의안이 통과되는데 한 몫을 거들었다(...).
2012년 11월, 일본 극우 단체가 미국의 한 잡지에 "위안부에 대한 (한국측) 주장 중 일부는 허위"라며 반박하는 성명을 냈는데 이 단체에 스기야마가 소속되어 있다. 다만, 루리웹 등 한국 게임 커뮤니티에 알려진 사실과는 다르게 영어 원문을 모두 읽어보면 위안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측 주장 중 일부 사안에 대해서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하는 성명에 가깝다. 이것이 와전되어 "'스기야마 코이치가 뉴욕타임즈(?)에 위안부는 날조다!'라는 광고를 사비로 게재했다"라고 알고 있는 네티즌들이 대다수이다.
2014년에는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제에 위안부는 날조라는 내용의 만화[26] 를 내보내기 위해 제작비를 보탰고 이것을 출품했다가 주최 측으로부터 철거당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적극적인 지지자이며 정치자금을 지원했다. 이 또한 언론에서 보도가 될 정도로 엄청난 금액(160만엔)이었다. 또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 찬성자이기도 하다.#
또한 외국인, 특히 중국인과 한국인의 일본 거주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도 자주 주장하며 제노포비아적인 사상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재밌는 것은 스기야마가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는 리하르트 바그너라고 하는데 바그너의 음악적인 면만 배우면 모르겠지만 반유대주의 같은 나쁜 점까지 본받아버린 것이다.
2018년 2월 LGBT 혐오 발언으로 다시 논란이 되었다. LGBT는 자녀를 낳지 않기 때문에 세금낭비이며 성병률이 높다는 발언.# 서양 쪽에서는 극우 문제는 관심도 없다가 이 문제로 스기야마 코이치의 악명이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마침 드퀘 11의 북미판 발매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불매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재밌는 건 드퀘 11은 주인공 일행 중에 성소수자가 포함되어 있으며 일본의 유명한 게이 연예인이 해보고 자신의 인생이 생각나서 울었다고 할 정도로 LGBT를 상당히 긍정적인 관점에서 묘사한 게임이라는 것이다.
본편은 비판해도 드래곤 퀘스트 빌더즈 같은 외전작은 상관없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는데 외전작도 이 사람 음악을 쓰며 저작권료를 스기야마가 일부 가져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실 때문에 드퀘 11 음악이 까이기도 하는데 이런 행동이 어느 정도의 영향은 있을 수 있으나 드퀘 11은 음악이 좋지 않아서 까이는 것이다. 11 이전 8나 드퀘 외전작 발매 때만 해도 이런 사실이 알려져 있었음에도 음악은 크게 까이지 않았었다.
중국 드퀘 팬덤에서는 아예 언급 자체를 꺼린다. 그도 그럴 것이 작곡가가 난징 대학살을 부정하며, 전쟁을 해서라도 공산당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인데 이걸 중국 공산당이 알았다간 드퀘 시리즈가 통으로 플레이하면 잡혀가는 게임으로 검열되어 봉인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다이의 대모험 2020년 판에서는 음악 담당에서 빠졌다. 중국 및 서양에서의 수출을 위해서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드퀘 시리즈의 상징과 같은 인물인 만큼 그가 스스로 은퇴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참여할 것 처럼 보였으며 드래곤 퀘스트 12에 발매 소식인 35주년 특설 페이지#에 코멘트를 올리기도 했으나 그가 사망하면서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풍래의 시렌 시리즈에서도 초창기 음악을 담당한 적이 있었으나, 사막의 마성 이후의 시리즈는 기존 악곡들의 재악곡만 맡았다가 2010년에 나온 5에서부터 기존 악곡들과 함께 완전히 하차했다. 실질적으로는 3부터 마츠오 하야토(松尾早人)가 메인으로 작곡하는 체계가 되었기에 풍래의 시렌 시리즈는 스기야마의 우익 논란에서 그나마 자유로운 상태다.
이러한 논란들로 인해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서 선수 입장식의 오프닝곡과 마지막곡으로 스기야마가 작곡한 노래인 서곡을 사용해 논란이 일었다.#
6. 여담[편집]
- 이상할 정도로 큰 당나귀 귀로도 유명하다.
- 어마어마한 골초로 유명하며[28] , 흡연문화를 연구하는 연구회 대표다. 그는 "폐암이라면, 그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암이라면 나는 용서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 엔카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그는 "엔카야말로 일본 민족의 음악이다, 라고 하는 권위 부여는 잘못된 것이다", "음악 예술의 면에서 보면 타키 렌타로로부터 시작해, 무럭무럭 자란 일본의 음악 문화에 암흑 시대를 만들었다라고 단언해도 좋다"라고 말했다.#
- 어린 시절부터 마작과 화투를 즐겨했고, 어른이 되고 나서는 컴퓨터 게임에 빠졌다고 한다.# 젊은 시절 요코하마에 밖에 없었던 빙고(핀볼풍의 게임)를 하기 위해 밤중에 차를 몰고, 기름값을 뽑을 때까지 놀았다는 일화가 있다.
- 나이가 90이 넘고 생전까지 게임이나 5ch을 하는 젊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젊은이들의 유행어 등에도 해박해서 젊은 팬과도 별 무리 없이 대화가 가능했다고 한다.
- 취미로는 사진 촬영, 여행, 모형선 조립하기, 낡은 카메라 수집, 독서, 맛집 다니기 등이 있다.
- 일본의 국민 가수 사잔 올 스타즈의 쿠와타 케이스케[29] 는 스기야마의 재능에 경의를 표한 바있다. 스기야마가 작곡한 가요인 '너에게만 사랑을', '학생가의 찻집, '사랑의 푸가', 은하의 로맨스를 그의 콘서트에서 커버했다. 특히 '학생가의 찻집'에 대해 '정말 훌륭하게 완성된 프로그레시브 록'이라고 NHK 특집방송에서 높이 평가했다.
- 일본 언론에 대해 불신하는 성향이 있다. 일부 언론은 공작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정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보도를 검증하고 있는 임의 단체 '방송법 준수를 요구하는 시청자 모임'에서 초대 대변인을 맡은 적도 있다.#
- 2021년 스기야마의 9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도쿄도 교향악단 브라스 섹션에서 드래곤 퀘스트 음악을 연주하며 스기야마에게 헌정했다.#